比流王
(比流王, ? ~
344年
10月
,
在位:
304年
10月
~
344年
10月
)은
百濟
의 第11代 國王이다. 《
三國史記
》 백제본기에 따르면, 比流王은
구수왕
의 둘째 아들이자
사반왕
의 동생이다. 그러나
三國史記
백제본기의 다른 줄에 依하면 그는 平民으로 살면서 名聲을 얻었다고 한다.
8代 古爾王의 孫子
汾西王
이 죽자 그의 아들 界(契)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 하여
沸流
가 臣下들의 推戴를 받아 卽位하였다. 그는 활을 잘 쏘았으며 性品이 너그러웠다고 한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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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計 背景 疑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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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에 依하면 그는
구수왕
의 아들이자
사반왕
의 동생이다. 또,
三國史記
백제본기
의 다른 줄에는 그가 平民으로 살면서 名聲을 얻었다고도 한다. 比流王과 比流王의 兄
사반왕
사이에는 70年 以上의 連帶 差異가 나므로 兄弟 與否에 關하여 異見이 있다. 《
三國史記
》에서 아버지로 指目하는
구수왕
과 刑으로 指目한
사반왕
이 죽은 뒤 70年 만에 卽位하여 40年을 統治한다.
治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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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史記
》
백제본기
에 따르면,
312年
陰曆 2月 臣下를 보내 百姓들의 疾病과 苦痛을 살피고, 홀아비, 寡婦, 孤兒, 그리고 子息 없이 외롭게 지내는 老人들을 도와주었다. 그中에서도 스스로 生活할 수 없는 者에게는 穀食을 3섬씩 나누어주었다.
兵官佐平
(兵官佐平)에
海口
(解仇)를 登用하였고
321年
正月에는 王의 서제(庶弟)
雨覆
(優福)을
內臣佐平
(內臣佐平)으로 삼았으나 우복이
327年
北漢山城
을 根據地로 叛亂을 일으켜 王은 이를 討伐하였다.
337年
봄 陰曆 2月에
新羅
에서 使臣을 보내왔으며 極盡히 待接하였다.
344年
겨울 陰曆 10月 比流王이 崩御하자
界
(契)가 王位를 물려받아 12代
契王
이 되었다.
一般的으로 比流王의 卽位는
百濟
王室이
초고왕
系로 變化된 것으로 理解된다. 比流王 事後
契王
이 卽位하면서 暫時
古爾王
系로 復歸하였으나
契王
이
2年
만에 死亡하고
近肖古王
이 卽位하면서
초고왕
界 王室이 確立되었다고 본다.
自然災害 및 天文 現象 記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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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流王 代에는 自然災害와 天文 現象 記錄이 多數 남아 있기도 하다.
- 308年
봄 正月 初하루 病者:
日蝕
이 發生했다.
[1]
- 316年
봄: 가뭄이 發生했다.
- 321年
가을 陰曆 7月:
太白星
(太白星)이 낮에 나타났다.
나라
南쪽
에 雨雹이 내려 穀食을 해쳤다.
- 327年
가을 陰曆 7月: 붉은 까마귀와 같은 구름이 해를 끼고 있었다.
[2]
- 331年
봄, 여름: 가뭄이 크게 들어 풀과 나무가 마르고 江물이 말랐다. 陰曆 7月에 이르러서야 비가 왔다. 이 해에 飢饉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3]
- 333年
여름 陰曆 5月: 별이 떨어졌다.
- 335年
겨울 陰曆 10月 初하루 乙未: 日蝕이 發生했다.
[4]
- 336年
봄 正月 神社:
彗星
(彗星)李
별자리
규(奎)에 나타났다.
[5]
家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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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父王 또는 先祖 :
구수
- 異說 있음.
[6]
- 兄 또는 先祖 :
사반
- 異腹 동생 :
不여우복
- 王妃 : 王妃 該氏(解氏)
- 後宮 : 王妃 晉氏(眞氏)
比流王이 登場한 作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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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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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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