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박팔양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本文으로 移動

박팔양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박팔양
作家 情報
出生 1905年 8月 2日
京畿道 火星
死亡 1988年 10月 4日
國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職業 作家, 言論人
장르

박팔양 (朴八陽, 1905年 8月 2日 ~ 1988年 10月 4日 )은 韓國 是認 이다. 筆名은 김려수 (金麗水), 餘水産人 (麗水山人)이며, 麗水(麗水, 如水)는 雅號이기도 하다.

生涯 [ 編輯 ]

京畿道 火星 에서 出生하였고, 어릴때 京城府 로 移住하여 배재高等普通學校 를 卒業했다. 정지용 과 함께 搖籃 同人으로 活動하다가 《 東亞日報 》 新春文藝를 통해 〈神의 株(神의 酒)〉(1923)를 發表하면서 登壇했다.

耽美主義的인 傾向의 具仁會 와 參與的 性向의 카프 에 모두 參加한데서 알 수 있듯, 그의 作風은 모더니즘과 階級的 傾向性의 兩面的인 모습을 보여준다. 다다이즘 의 影響을 받은 都市的인 느낌의 詩와 함께, 植民地 現實의 矛盾을 認識하면서 抵抗性이 엿보이는 作品 亦是 發表했다. 詩集으로는 《麗水市初(麗水詩抄)》(1940)와 《박팔양 詩集》(1947年)을 냈다.

光復 當時 《 만선일보 》 記者로 滿洲 에 머물고 있던 박팔양은 歸國하던 中 北韓에 그대로 머물러 越北 作家가 되었고, 勞動新聞 의 前身인 《정로》 初代 編輯局長과 《勞動新聞》 副主筆, 金日成綜合大學 講座長 等을 지냈다.

韓國 戰爭 時期에는 從軍 作家로 參戰해 活潑한 創作 活動을 했으며, 《黃海의 노래》(1958), 《눈보라 萬里》(1961), 《民族의 榮譽》, 《이름없는 한 풀잎의 노래》(遺稿作) 等 長篇 敍事詩를 發表했다. 韓國 戰爭을 背景으로 共和國英雄 조옥희 를 다룬 作品 《黃海의 노래》는 唱劇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事後 [ 編輯 ]

越北 後 조선작가동맹 副委員長(1956)과 最高人民會議 代議員을 지내는 等 政治的으로도 成功하였으나, 1960年代 中盤 以後 公式的인 活動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肅淸說이 나돌았다. 休戰 以後 곧바로 除去된 조선문학건설본부 系列의 林和 , 김남천 等과 달리 아직 남아있던 카프 舊主流 出身 作家들이 한설야 를 中心으로 大擧 肅淸되었다는 說이었다. 特히 박팔양은 日帝强占期 동안 管制 言論社인 만선일보의 記者를 지내 親日派 로 規定될 수 있다는 弱點이 있었다.

肅淸說의 眞僞는 確認되지 않았으나 2000年代의 北朝鮮에서는 復權된 狀態로, 革命性과 階級性을 잘 드러낸 作品으로 主體文學의 기틀을 세웠음을 認定 받아서 初期作인 〈진달래〉(1930) 等의 作品도 높은 評價를 받고 있다. 非轉向 長期囚 2000年 送還된 兩者 박문재 와 함께 代를 이은 愛國者로 指稱된다. [1]

1988年 越北 作家들이 解禁되면서 大韓民國 에서도 再評價가 始作되어, 詩選集 《太陽을 등진 거리》 [2] 가 發刊됐다. 2008年 發表된 民族問題硏究所의 친일인명사전 收錄豫定者 名單 中 文學 分野에 選定되었으나 保留되었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資料 [ 編輯 ]

各州 [ 編輯 ]

  1. “世紀를 이어 愛國과 信念의 길로 이끌어주시여”. 勞動新聞. 2006年 1月 26日.  
  2. 박팔양 (1991年 11月 1日). 《太陽을 등진 거리》. 서울: 未來事. ISBN   50001497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