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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協奏曲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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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協奏曲 라長調
루트비히 版 베토벤의 바이올린 協奏曲
베토벤 (1804-05)
요제프 빌리브로르도 멜러에 依한 肖像畫
造成 라長調
作品番號 61
時期 古典主義 音樂
장르 바이올린 協奏曲
作曲 1806年  ( 1806 )
憲政 슈테판 폰 브로이닝
出版 1809年 3月 - 빈
樂章 3
初演
날짜 1806年 12月 23日  ( 1806-12-23 )
場所 안 데르 빈 劇場
演奏者 프란츠 클레멘트

바이올린 協奏曲 라長調, 作品番號 61 》은 루트비히 版 베토벤 1806年 作曲한 바이올린과 管絃樂을 위한 協奏曲이다. 베토벤의 中企 傑作 中 하나로, 그의 唯一한 바이올린 協奏曲 이다.

베토벤은 바이올린과 管絃樂을 위한 作品에 關하여 이 作品 外에 세 曲을 남겼다. 두 個의 小品, 로망스(《 로망스 1番, 作品 番號 40 》 및 《 로망스 2番, 作品 番號 50 )》와 1樂章의 途中에서 未完成으로 끝난 《 바이올린 協奏曲 다長調, WoO 5 》(1790-2年)가 이에 該當하며, 完成된 바이올린 協奏曲은 이 作品 한 篇 밖에 없다. 그러나 그 完成度는 경이로워서 "바이올린 協奏曲의 王子"라고 불리고, 멘델스존의 《 作品番號 64 》, 브람스의 《 作品番號 77 》과 함께 "3代 바이올린 協奏曲"이라고도 불린다.

같은 時期의 《 交響曲 4番 》, 《 피아노 協奏曲 4番 》과도 相通하는 이 作品은 抒情性이 넘치고 平穩하고 平安한 表情이 印象的이지만, 테레제 브룬스비크와의 緊密한 關係가 影響을 미쳤다고도 傳해진다.

이 作品이 구상된 時點이 언제인지, 特定된 證據는 없으나, 《 交響曲 5番 》의 1樂章의 스케치에 이 作品의 主題를 적은 것이 存在한다고 傳해진다. 作曲의 時期는 《 交響曲 3番 》과 《 交響曲 4番 》의 作曲 時期 사이이며, 《 피아노 協奏曲 4番 》의 作曲 時期와 同時代的이다. 如何튼 "傑作의 숲"'이라는 중기의 가장 充實한 創作 時期의 作品이라는 것은 다름이 없다. 創作에 있어서 베토벤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안 데르 빈 劇場 管絃樂團의 콘서트마스터였던 프란츠 클레멘트를 獨奏者로 想定해 그의 助言을 받아 作曲했다.

經緯 [ 編輯 ]

背景 [ 編輯 ]

"테레제 브룬스비크 / 不滅의 戀人"이라는 假說을 믿는 特定 歷史家들에 따르면, 如前히 論議되고 있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 作品은 1806年 5月에 테레제 브룬스비크와 隱密히 맺은 約婚에 따른 베토벤의 幸福感을 表現한 "사랑의 詩"이다. 그는 運命的인 노랑턱멧새 보다 훨씬 더 可能性 없는 根源에서 바이올린 協奏曲을 위한 靈感을 얻었다고 말했다. [1] 그들의 사랑의 感情이 結婚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딸들과 더 財政的인 關係를 維持하고 貴族의 志願者들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테레제의 어머니의 家族 政策에 根據했다. 그러나, 테레제와 搖祭피네는 어머니의 妨害에도 不拘하고 언제나 베토벤과 密接한 接觸을 維持하고 있었다. 테레제는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決코 結婚하지 않았다. 熱烈한 音樂 愛好家였던 그女는 삶을 마감할 때까지 베토벤 追從者로서의 모습을 보였고, 베토벤의 音樂을 사랑했다. 그女는 오늘날의 베토벤 硏究를 위한, 매우 重要한 大規模 便紙, 그리고 수많은 日記帳을 남겼다.

作曲 및 初演, 그리고 以後 [ 編輯 ]

이 作品은, 1806年 12月 23日 안 데르 빈 劇場 에서 열린, 콘서트마스터 프란츠 클레멘트 主催의 音樂 아카데미에서, 클레멘트의 바이올린 獨走에 依해 公開 初演이 이루어졌다. 베토벤은 클레멘트의 要請으로, 初演의 날짜를 거의 코 앞에 두고 테아터 안 데어 빈 에서 急히 이 曲을 썼으며, 初演 直前에 作品을 完成했다. 이 때문에 클레멘트는 거의 卽席에서 演奏하여야 했지만, 이 난곡을 處해진 環境 속에서 比較的 잘 消化해 냈고 聽衆의 歡呼도 받았다. 베토벤의 弟子 카를 체르니에 依하면 成功한 初演으로 看做되었지만, 베토벤의 다른 作品 만큼 빠르게 퍼지지는 않았다. [2] 分明히 臺바이올리니스트, 클레멘트의 훌륭한 演奏로 聽衆의 呼應을 얻어냈지만, 作品은 初演을 얼마 앞두고 急히 만들어진 까닭에, 弱點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弱點은 批評家들에게 依해 꼬집어 졌다. 한 批評文에서는 “이 協奏曲은 아름다운 點도 있긴 하지만, 音樂的 事件의 連結이 間或 一貫性이 없는 듯하며 平凡한 樂節이 끊임없이 反復되어 疲困하다"는 評價를 내렸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버전은 1806年 12月 23日의 超年始에 遂行된 버전과는 다르다. [2] 베토벤에 依해 높이 評價받는 作曲家 무치오 클레멘티 는 1807年에 作曲家를 訪問, 그가 共同 所有主人 런던 出版社를 위해 바이올린 演奏會를 包含한 最新 作品들의 出版權을 要請했다. 또한 그는 이 作品의 피아노와 管絃樂을 위한 버전도 追加로 要請했다. 이에 베토벤은 바이올린 協奏曲의 樂譜를 再作業했고, 同時에 피아노를 위한 버전도 作業했다. 빈 國立 圖書館에 所藏되어 있는 이 作品의 樂譜는, 서둘러 쓴 첫 番째 버전과 印刷가 되어있는 修正된 버전,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버전의 樂譜로서 作品의 歷史를 反映한다. [2] 이 作品의 超年始에 베토벤은 그 草稿를 클레멘트에게 바쳤지만, 1809年 3月에 樂譜의 出版이 이루어졌을 때의 憲政은, 以前에 그의 오페라 《 피델리오 》에 對해 도움이 되는 助言을 했던, 當時의 先導的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그의 竹馬故友, 슈테판 폰 브로이닝에게 이루어졌다. [3]

初演의 작은 成功 以後, 이 作品은 演奏되는 機會가 적어지면서(현재는 부드러움과 平穩함의 傑作으로 稱頌받고 있지만, 當時의 批評家들은 너무 길다고 생각했고 바이올리니스트들은 演奏가 너무 어렵다고 不平했다) 位相도 漸漸 稀微해 져 갔지만, 이를 다시 採用, "바이올린 協奏曲의 王子"로 불리는 瞬間까지 知名度를 준 것은, 19世紀의 가장 重要한 바이올리니스트 中 한 名으로 評價받는 요제프 요아힘 의 公的이었다. 베토벤의 死亡 以後인 1844年, 멘델스존 이 指揮한 로얄 筆 하모닉 協會의 管絃樂團과 함께 當時 열두 살의 바이올린 演奏者, 요제프 요아힘 公演으로 이 作品은 다시 復活했다. 요아힘은 이 作品을 가장 偉大한 바이올린 協奏曲으로 稱頌하며 死亡할 때까지 平生동안 연주했다.

樂器 編成 [ 編輯 ]

  • 獨奏 바이올린
  • 木管樂器 ː 플루트 , 두 個의 誤報에 , 두 個의 클라리넷 , 두 個의 바순
  • 金管樂器 ː 두 個의 호른, 두 個의 트럼펫
  • 打樂器 ː 팀파니
  • 絃樂5部 ː 第1바이올린, 第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樂章 構成 [ 編輯 ]

全 樂章의 演奏 時間은 約 45分 程度가 所要된다.

第1樂章 [ 編輯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라長調, 演奏時間 約 25分-26分.

協奏風 소나타 形式. 張大한 管絃樂 提示部에 依한 序奏가 팀파니 의 隱隱하게 새기는 리듬으로 始作된다. 이 모티브가 樂章 곳곳에 나타난다. 木管樂器가 牧歌的이며 아름다운 제1주제를 노래한다. 이어 실레지아 民謠에 依한 두 番째 主題가 먼저 木管樂器로 演奏된다. 이윽고 絃樂器가 트레몰로 를 펼치고 金管樂器度 加勢해 차츰 興이 올라 管絃樂 提示部를 마무리한다. 이어 獨奏 바이올린이 登場해 第1主題를 펼치는데, 여기서도 팀파니의 모티브가 나타난다. 두 番째 主題로는 獨奏 바이올린 트릴 위에서 木管樂器가 演奏된다. 그리고 結米 主題로 이끌어 提示部를 마무리 한다. 展開部는 管絃樂에서 始作, 第2主題를 木管樂器에서 全體 演奏로 交響曲風으로서 展開해 간다. 獨奏 바이올린을 追加하면 제1주제를 연주하여 꼼꼼한 主題 造作이 行해지고 있다. 再現部에 들어서면 亦是 管絃樂이 第1主題를 연주하고 獨奏 바이올린이 加勢한다. 여기서부터는 提示部와 거의 다르지 않다. 管絃樂이 豪快하게 마무리 하면 카덴차 가 始作되겠지만, 베토벤은 이 카덴차를 作曲하지 않았다. 카덴차 以後 絃樂器가 피치카토 로 연주함과 同時에 獨奏 바이올린은 第2主題를 조용히 연주하는데, 漸次 힘을 더하다가 마지막에는 講主의 主要和音으로 힘차게 끝이 난다.

第2樂章 [ 編輯 ]

라르게토 사長調, 演奏時間 約 11分-12分.

變奏曲 形式(或은 變奏曲의 主婦를 가진 세도막 形式 ). 平穩하고 溫乾한 主題가 弱音器가 딸린 絃樂器에 依해 提示된다. 第1變奏부터 第3變奏까지 獨奏 바이올린은 主題를 擔當하지 않고 裝飾的으로 움직인다. 第1變奏에서는 호른과 클라리넷, 第2變奏에서는 바순이 主題를 맡는다. 第3變奏에서는 管絃樂에 이어 獨奏 바이올린이 새로운 旋律을 연주하기 始作해 中間部에 들어간다. 이 旋律은 G線과 D線으로만 연주하도록 指定되어 있다. 이것이 華麗하게 變奏되면서 主婦의 主題가 變形되고 中間部의 主題와 얽힌다. 絃樂器가 重厚한 울림을 내면 여기에서부터 獨奏 바이올린의 짧은 카덴차가 되고(이 카덴차는 베토벤의 손에 依한 것), 끊김 없이 바로 3樂章으로 들어간다.

第3樂章 [ 編輯 ]

론도 알레그로 라長調, 演奏 時間 約 10分.

론도 形式. 갑작스럽게 獨奏 바이올린이 론도 主題를 提示하면서 始作되고 管絃樂이 이를 反復한다. 다음으로 獨奏 바이올린이 朗朗한 第1副主題를 演奏한다. 以後 獨奏 바이올린은 細密한 經過句를 거쳐 론도 主題를 再現한다. 管絃樂이 론도 主題를 反復하면 獨奏 바이올린은 이를 變奏하기 始作해 곧 感傷的인 第2副主題가 된다. 이를 바순이 引受하고 獨奏 바이올린은 裝飾音에 이어 론도 主題를 再歸시킨다. 管絃樂의 反復, 獨奏 바이올린 第1副主題와 론도의 틀대로 曲이 進行되어 카덴차가 된다. 獨奏 바이올린을 通한 론도 主題 再現圖 겸해 管絃樂科 함께 빛나는 絶頂을 이루며 힘차게 全曲의 幕을 내린다.

카덴차 [ 編輯 ]

베토벤은 피아노 協奏曲에 關해서 5番(피아노 協奏曲 5番에는 카덴차가 없으며 베토벤 自身도 不必要하다고 指示함)을 除外하고는 모든 作品의 카덴차를 作曲했지만, 바이올린 協奏曲에 關해서는 1樂章의 카덴차를 남기지 않았다.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各各 카덴차를 作曲하고 있으며, 그 中 現在 자주 演奏되는 것은 요제프 요아힘 , 레오폴트 아우어 , 프리츠 크라이슬러 等이 創作한 것이다. 그 밖에도, 野샤 하이페츠 는 스승 아우어의 作品을 編曲해 使用하고 있지만, 異例의 것으로는, 베토벤 스스로에 依한 피아노 協奏曲 編曲版의 카덴차에 根據한 것이나, 알프레트 시닛케 의 것이 있다.

피아노 協奏曲 編曲版 카덴차에 基盤한 것 [ 編輯 ]

볼프강 슈나이더韓銀 後述한 피아노 協奏曲 編曲版의 카덴차를 編曲한 것을 錄音에 使用하고 있다. 피아노 파트는 바이올린으로 代替됐지만 피아노 協奏曲 編曲版 오리지널 카덴차에 있던 팀파니의 파트는 그대로 팀파니에서 演奏된다. 또 기돈 크레메르度 피아노 協奏曲 編曲版의 카덴차를 編曲해 演奏에 使用하고 있다. 카덴차에 있는 팀파니의 파트가 그대로 演奏되는 것은 슈나이더恨과 同一하지만 피아노 파트는 그대로 바이올린으로 代替되는 것이 아니라 一部는 피아노 파트인 채로 남겨지고 있어, 그 部分을 연주하기 위한 피아노가 反復되고 있다. 그 밖에, 近來에는 토마스 體트마이어나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같은 試圖에 依한 錄音을 實施하고 있다.

시닛케 판 카덴차 [ 編輯 ]

카덴차의 素材는 通常 完全한 卽興演奏의 境遇를 除外하면 같은 曲 中에서 素材를 選擇하는 것이 普通이다. 그러나 詩닛케가 쓰고 크레메르가 나중에 改作한 카덴차는 다른 曲, 그것도 베토벤 以外의 作曲家(베르크, 브람스 等)의 作品에서도 所在가 引用되고 있다는 點이 注目된다. 또 바이올린뿐 아니라 바순과 팀파니度 演奏에 參與하고 있다는 點에서 完全히 이채롭다. 또한 時닛케판 카덴차의 原曲은 舊蘇聯의 바이올리니스트 마르크 壘보츠키를 爲해 쓰여졌다.

피아노 協奏曲 라長調, Op. 61a [ 編輯 ]

1807年, 베토벤은 무치오 클레멘티 의 勸誘에 따라 이 曲을 피아노 協奏曲으로 編曲했다(Op. 61a). 피아노 버전은 바이올린 協奏曲의 憲政子 슈테판 폰 브로이닝의 아내 율리에 폰 브로이닝(內實 이름)에게 獻呈되었다. 율리에 폰 베링은 피아니스트로, 1808年에 슈테판 폰 브로이닝과 結婚했으며, 이 編曲版은 베토벤이 가장 親한 親舊 夫婦에게 줄 結婚 祝賀 膳物이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原曲人 바이올린 協奏曲에는 카덴차를 쓰지 않았지만, 이 피아노 協奏曲에는 功들여 카덴차를 쓰고 있다. 特히 第1樂章의 것은 125小節에 걸친 張大한 것이고, 카덴차이면서 팀파니를 同伴한 破格的인 作品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카덴차를 바이올린用으로 編曲해 바이올린 協奏曲 演奏 때 使用하는 境遇도 적지 않다. 어느 例에서도, 팀파니의 파트는 그대로 팀파니에서 演奏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카덴차로 가끔 使用될 뿐 피아노 協奏曲 판으로서의 Op. 61a의 演奏 및 錄音의 例는 적다.

錄音 [ 編輯 ]

이 協奏曲에 關하여는 거의 260個의 錄音이 存在한다. 첫 番째로 알려진 것은 1925年에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볼프슈탈이 錄音한 것이다. [4] 모든 偉大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作品을 새겼다. 그 中에는 예후디 메뉴인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과 함께 세 個의 錄音을 包含하여 거의 열 個 가까이 錄音했는데, 그 中 가장 重要한 錄音은 1947年 루체른, 1953年 런던에서의 것이다)과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거의 11個 錄音)도 있다.

參考 文獻 [ 編輯 ]

各州

  1. Asher, Dewitt (2017年 12月 12日). “The Beethoven Violin Concerto Opus 61 History and Analysis:” . 《American String Teacher》 (英語). doi : 10.1177/000313136601600413 .  
  2. magazin.klassik.com. “Ludwig van Beethoven - Das Violinkonzert” . 《klassik.com》.  
  3. Theater-Zeitung , Wien, Jg. 2, Nr. 2 vom 8. Januar 1807, S. 27 (Digitalisat)
  4. Rey X, Ecoute comparee : le concerto pour violon de Beethoven , Classica Repertoire , juin 2007, p 64-69.

出處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