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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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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극장 (民衆劇場)은 1970年代 가장 活潑하게 活動하는 劇團의 하나이다. 1963年 1月 '民衆 속에 뛰어들어가 民衆과 더불어 呼吸할 수 있는 演劇을 摸索' 하고 '偉大한 演劇遺産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未來의 演劇을 追求'한다는 宣言文을 採擇하며, 發足한 민중극장은 이근삼(李根三)·김정옥(金正鈺)·양광남(梁廣南) 等 主로 中央大 敎授陣이 中心이 되었던 意欲的 極端이었다. 이들은 斬新한 感覺을 지니고 프랑스 系統의 喜劇과 이근삼의 創作 喜劇을 主로 初期에 公演하였다. 따라서 創立公演 <달걀>(마르쏘 作)을 비롯해서 <대머리 女歌手> <別莊 팝니다> <盜賊들의 舞蹈會> 等 初期에 舞臺에 올린 作品들이 하나같이 프랑스 系統의 喜劇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중극장'은 初期의 意欲과는 달리 60年代 後半에 와서 沈滯했고 結局 海産 狀態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민중극장'을 70年代에 와서 演出家 이효영(李孝英)·정진수(鄭鎭守) 等이 다시 일으켰다. 그것이 1974年 겨울이었다. 조셉 헬러의 <우리는 뉴海이븐을 爆擊했다>를 再出發點으로 하여 75年, 76年, 77年 等 每年 눈부신 活躍을 거듭하였었다. 그런데 再興된 '민중극장'은 初期의 喜劇 爲主의 스피드나 感覺보다 좀더 眞摯하고 社會性을 强하게 띠어가는 傾向을 보이면서 興味있으면서도 삶의 眞摯性을 담은 演劇, 專門的인 演劇, 內的 協同作業에 依한 演劇을 내걸고 용산에 雅淡한 小劇場을 마련하여 漸次 創作劇에 力點을 두어 70年代 演劇을 이끌어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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