茂朱 적상산성

茂朱 적상산성
(茂朱 赤裳山城)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私的
種目 私的 第146號
( 1965年 7月 10日 指定)
數量 214,976m 2
時代 高麗時代
位置
무주 적상산성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무주 적상산성
茂朱 적상산성
茂朱 적상산성(大韓民國)
住所 全北特別自治道 茂朱郡 적상면 북창리 山119番地
座標 北緯 35° 56′ 43″ 東京 127° 41′ 9.3″  /  北緯 35.94528° 東經 127.685917°  / 35.94528; 127.685917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茂朱 적상산성 (茂朱 赤裳山城)은 全北特別自治道   茂朱郡   적상면 , 赤裳山 에 있는 高麗時代 의 城郭이다. 1965年 7月 10日 大韓民國 私的 第146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絶壁으로 이루어진 山 위의 盆地를 에워싼 代表的인 防禦酸性이다.

高麗 後期 거란이 侵入한 後 崔瑩은 이곳에 酸性을 쌓게 하고 倉庫 짓기를 建議했으며, 朝鮮 世宗 때의 體察使 최윤덕度 반드시 保存할 곳이라고 建議한 바 있다. 高麗 때 거란과 倭寇의 侵入에 이미 酸性을 利用하여 隣近 여러 고을의 百姓이 避難한 事實에서 이 山城은 高麗 後期에 築造된 것으로 推定되고 있다.

朝鮮 光海君 2年(1610) 이곳에 朝鮮時代 5個의 歷史冊保管所 中의 하나인 赤裳山史庫를 設置하고 『朝鮮王朝實錄』과 『王室族譜』를 保管하였다. 實錄展, 死角(史閣), 船員角, 軍器庫, 臺別館, 호국사를 세웠고 壬辰倭亂 以後 陳(鎭)을 두어 酸性을 收縮하고 運營했다. 赤裳山에 保管되었던 朝鮮王朝實錄은 1911年 昌德宮 藏書閣으로 옮겨져 保管되다가, 韓國戰爭 當時 北韓에 搬出되어 現在 平壤의 人民大學習堂에 保管되어 있다. [1] 二重 南쪽에 남아있던 4冊의 朝鮮王朝實錄 赤裳山史庫本 을 2019年 國寶 154-4號로 指定하였다. 4冊中 1冊은 國立中央博物館에 3冊은 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에 保管되어 있다.

現在 城壁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死角과 其他의 建物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最近에 城 안에 貯水池를 만들어 놓았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

各州 [ 編輯 ]

  1. 신찬균, 平壤의 李朝實錄 , 한겨레新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