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고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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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女 마리아 고레티
童貞女, 殉敎者
出生 1890年 10月 16日
이탈리아 코르니달도
腺腫 1902年 7月 6日 ( 1902-07-06 ) (11歲)
이탈리아 네투度
敎派 로마 가톨릭교회
諡福 1947年 4月 27日 , 敎皇 비오 12歲
諡聖 1950年 6月 24日 , 敎皇 비오 12歲
祝日 7月 6日
守護 어린이 犯罪 犧牲者, 靑少年, 10代 少女

聖女 마리아 고레티 ( 라틴語 : Sancta Maria Goretti , 1890年 10月 16日 - 1902年 7月 6日)는 이탈리아 로마 가톨릭교회 成人 이다. 그女는 强姦 을 當할 뻔한 危機에서도 끝까지 抵抗하며 拒否하여 純潔을 지켜냈으며 그 結果, 여러 番 칼에 찔림을 當하여 善終하였다. [1]

略歷 [ 編輯 ]

幼年期 [ 編輯 ]

마리아 테레사 고레티 (Maria Teresa Goretti) [2] 는 1890年 10月 18日 이탈리아 王國 안코나 週 코리날도 에서 루이지 고레티와 雅馴타 칼리니 사이에서 6男妹 中 셋째 딸로 태어났다. [2] 그女의 女子 兄弟로는 테레사와 에르실리아가 있었으며, 男子 兄弟로는 안젤로와 산드리노, 마리아노가 있었다. [3] [4]

마리아 고레티의 家族은 무척이나 가난해서 그女가 6歲가 되었을 때, 農場을 抛棄하고 다른 집으로 移徙를 가서 다른 農夫들을 위해 일을 代身 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父親 루이지는 말라리아에 걸려 健康이 急速度로 惡化되었으며, 結局 마리아 고레티가 겨우 9歲 때에 死亡하였다. [5] 아버지를 여읜 後 어머니와 언니, 男동생들이 들에서 일하는 동안 마리아 고레티는 집안에서 淸掃와 料理, 바느질 그리고 아직 갓난아기였던 女同生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하루하루가 매우 고단한 삶이었지만, 집에서는 恒常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家族들은 서로에 對한 友愛가 깊었으며, 또한 하느님에 對한 깊은 信心을 갖고 있었다. 마리아 고레티의 家族은 오늘날 라치오洲 에 該當하는 라티나와 네투노 隣近의 레 페리에레 地域으로 집을 옮겨 한 조그마한 집을 얻어 살았다. 그 집에는 마리아 고레티의 家族뿐만 아니라 조반니 세레넬리와 그의 아들 알레산드로 세레넬리도 얹혀살았다. [4] [6]

殉敎 [ 編輯 ]

1902年 7月 5日 當時 11歲였던 마리아 고레티는 집안에서 혼자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본 19歲의 少年 알레산드로 세레넬리는 집안에 自身과 마리아 고레티 外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欲情에 눈이 멀어 門을 잠그고 마리아 고레티에게 다가가 칼을 빼들고 萬若 自身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威脅하였다. 그리고는 그女를 强姦하려고 試圖하였다. 그러나 마리아 고레티는 이에 屈服하지 않고 오히려 알레산드로에게 그가 只今 하려는 짓이 待罪 라고 말하면서 地獄 에 가게 될 것이라고 警告하였다. [7] 그女는 알레산드로에 依해 純潔을 잃지 않으려고 必死的으로 抵抗하였다. 그女는 “안 돼, 알레산드로! 이런 짓은 하느님께 罪를 짓는 거야!”라고 繼續 소리쳤다. 알레산드로는 처음에는 마리아 고레티의 목을 조르다가 그女가 그에게 屈服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擇하겠다고 固執하자 結局 그女를 11군데나 칼로 찔렀다. 크게 傷處를 입은 마리아 고레티는 門 쪽을 向해 가려고 했지만, 채 달아나기도 前에 알레산드로에 依해 세 番 더 칼에 찔려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8]

갓난아기였던 마리아의 女同生 테레사가 一連의 일이 벌어지는 동안 일어난 騷音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큰소리로 울기 始作하자, 알레산드로의 아버지와 마리아 고레티의 어머니가 무슨 일인가 싶어 집에 와보니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마리아 고레티를 發見하였다. 그래서 서둘러 마리아 고레티를 업고 가까운 隣近의 病院으로 데려갔다. 病院에 到着한 마리아 고레티는 痲醉劑 없이 바로 手術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女의 狀態는 너무나 深刻해서 이미 醫師가 손을 쓰기에는 力不足이었다. 手術하던 中間에 마리아 고레티는 意識을 되찾았다. 그女는 無意味한 治療는 그만두라고 要請하였다. 醫師는 마리아 고레티에게 “마리아野, 하늘나라 에 가서 나를 생각해 다오.”라고 付託하였다. 그러자 마리아 고레티는 意思를 쳐다보았다. “글쎄요, 누가 먼저 하늘나라에 갈지 어떻게 알겠어요?” “바로 너란다, 마리아野.”하고 醫師가 말하자 마리아 고레티가 말했다. “그렇다면 전 기쁜 마음으로 當身을 생각하겠어요.” [9] 다음날 마리아 고레티에게 路資聖體를 주기 위해 온 司祭는 그女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마리아野, 너도 알다시피 主님께서는 十字架에서 怨讐들을 容恕하시고 그들을 위해 祈禱하시지 않았니? 너도 너를 이같이 慘酷하게 만든 그 사람을 容恕해 주겠니?” 마리아는 “예, 神父님. 저도 그 사람을 容恕하고, 그 사람도 죽은 後에 하늘나라에서 제 옆에 올 수 있게끔 祈禱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聖母 마리아 를 아름답게 描寫한 像本을 바라보다가 善終하였다.

알레산드로의 收監과 懺悔 [ 編輯 ]

알레산드로 세레넬리는 마리아 고레티아 善終한 直後에 警察에 逮捕되었다. 元來대로라면 그는 無期懲役을 받아야 했지만, 當時 그는 아직 未成年者였기 때문에 懲役 30年型으로 減刑되었다. 알레산드로는 그 地域 地球丈人 조반니 브란디니 몬시뇰 이 그가 收容된 矯導所를 訪問하기 前까지 3年 동안 全혀 뉘우침 없이 世上과의 疏通을 斷絶한 채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는 마리아 고레티가 百合꽃을 모아서 自身에게 가져다주며 自身을 위해 祈禱해주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몬시뇰이 찾아오자 그는 이 事實을 告白하며 눈물을 흘리며 懺悔하였다. [10]

服役을 마치고 釋放된 後 알레산드로는 아직 生存한 마리아 고레티의 어머니 雅馴타를 찾아가 잘못을 빌며 容恕를 求했다. 阿順타는 自身의 딸이 이미 그를 容恕했으니 나 亦是 容恕한다며 받아주었으며, 다음날 두 사람은 함께 미사에 參禮하여 나란히 聖體를 모셨다. [11] 消息通에 依하면, 알레산드로는 每日 마리아 고레티에게 轉求를 請하며 祈禱하였으며, 그女를 ‘나의 꼬마 聖女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2] 그는 1950年에 擧行된 마리아 고레티의 諡聖式에 參席하였다.

알레산드로는 나중에 카푸親 작은兄弟會 의 在俗會員이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修道院에서 살며 그곳에서 接待員과 庭園師로 奉仕하며 지냈다.

諡福과 詩聖 [ 編輯 ]

1947年 4月 27日 바티칸 聖 베드로 大聖殿 에서 擧行된 마리아 고레티의 諡福式에서 敎皇 비오 12歲 는 마리아 고레티의 어머니 아순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女는 거의 昏絶하였다. “敎皇 聖下께서 다가오시는 것을 보자 저는 祈禱했습니다. 聖母님,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聖下께서는 當身의 손을 제 이마에 얹고는 ‘祝福받은 어머니, 幸福한 어머니, 복녀 의 어머니!’ 하고 부르셨습니다.” 敎皇과 마리아 고레티의 어머니 모두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13]

그로부터 3年이 지난 1950年 6月 24日 비오 12世는 마리아 고레티를 諡聖하였다. 그는 마리아 고레티를 일컬어 “20世紀의 聖女 아녜스 ”라고 稱頌하였다. [1] 阿順타는 다시 남은 네 名의 子女들과 함께 마리아 고레티의 諡聖式에 參席하였다. 알레산드로 歲넬리 亦是 諡聖式에 參席하였다.

마리아 고레티의 屍身은 로마 南쪽 네투櫓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에 산타 마리아 고레티 聖堂에 安置되었다. 一角에서는 그女의 遺骸가 腐敗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事實이 아니다. 그女의 屍身은 聖堂의 祭臺 밑에 있는 銅像 안에 保管되어 있는데, 살아生前 그女의 모습을 그대로 再現한 이 銅像을 본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마리아 고레티의 肉身이라고 錯覺하곤 한다. [14]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Hoever, Rev. Hugo, ed. "Lives of the Saints, For Every Day of the Year", New York: Catholic Book Publishing Co., (1955) p. 259-60
  2. Ruef, Vinzenz. Die Wahre Geschichte von der hl. Maria Goretti , Miriam, Jestetten, 1992, ISBN   3-87499-101-3  {{ isbn }}의 變數 誤謬: 有效하지 않은 ISBN . p. 12
  3. O'Grady, Desmond. Maria Goretti: A Rush to Judgment? , February 25, 1985 in The Age newspaper of Melbourne, Australia. Accessed April 11, 2010.
  4. Crusz, Noel. Maria Goretti - Saint Under Siege , July 7, 2002, The Sunday Times of Sri Lanka . Accessed April 11, 2010.
  5. Ruef, 21
  6. Ruef, 20
  7. Ruef, 46
  8. Ruef, 44
  9. Ruef, 54
  10. Ruef, 87
  11. Ruef, 88
  12. Ruef, 88-91
  13. Ruef, 67
  14. The Incorruptibles: A Study of the Incorruption of the Bodies of Various Catholic Saints and Beati , TAN Books & Publishers , Inc. ISBN   0-89555-066-0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