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가든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노이즈가든
基本 情報
장르 헤비 메탈
活動 時期 1992年 ~ 1999年

노이즈가든 (Noizegarden)은 大韓民國 밴드이다. 크래쉬 , 레이니썬 과 더불어 1990年代 大韓民國 헤비 메탈을 代表하는 한便 언니네 理髮館 , 델리스파이스 와 함께 홍대 인디밴드 1世代를 代表한다.

歷史 [ 編輯 ]

1992年 기타리스트 윤병주 가 PC通信 하이텔 을 통해 보컬리스트 정재준을 만나면서 밴드는 始作되었다. 여기에 親舊들인 최민호(베이스), 김태윤(드럼)과 함께 合奏室에서 사운드가든 , 앨리스 認 체인스 等의 카피曲을 연주하던 어느 날, 合奏室 豫約 問題로 밴드의 이름을 묻는 主人의 質問에 멤버 모두가 사운드가든의 팬이라는 理由로 '노이즈가든'이라고 장난으로 對答한 것이 結局 밴드名이 되어 버렸다.

合奏를 즐기기 위해 모인 밴드였지만 1993年에는 몇 番의 클럽 公演을 하게 되었고, 그러던 途中 베이시스트 최민호의 入隊로 亦是 周邊의 知人이었던 金起炫으로 交替되었다. 當時 멤버 全員이 學生이었던 關係로 93年 末에는 各自의 事情 때문에 더 異常 活動을 持續할 수 없게 되는데, 그때까지의 活動으로 自信感을 얻은 이들은 記錄을 남기고자 데모 테잎 作業에 着手한다

윤병주가 以前에 록 밴드 터보의 其他솔로 세션을 하면서 알게 된 스튜디오에서 各自 주머니를 털어 錄音한 데모에는 〈Negative〉, 〈Into The Ground〉, 〈Rain Of Compromise〉(後에 〈妥協의 非〉라는 題目으로 데뷔 앨범에 收錄), 그리고 〈Dizzy Sunshine〉 等, 英語 歌詞로 된 네 曲의 自作曲이 收錄되었다. 1994年 秒에 하이텔의 메탈 同好會와 언더그라운드 同好會를 中心으로 少量配布된 이 데모는 아마추어답지 않은 音樂과 데모답지 않은 良質의 사운드로 작지만 暴發的인 反應을 불러 일으켰다. 노이즈가든의 데모 테이프는 當時 인디씬의 代表的인 人氣 데모로 記憶된다.

1994年 봄에는 밴드 解産 後 暫時 블랙 신드롬 에서 活動하던 드러머 김태윤이 윤병주에게 다시 프로 志向의 노이즈가든을 만들자고 提案, 이番에도 亦是 周邊의 知人들인 朴建(보컬)과 염재민(베이스)을 끌어들여 再出發하게 된다. 몇 個月 後 밴드의 未來에 不安感을 느낀 김태윤이 다른 밴드로 移籍, 밴드는 드럼을 公席으로 남겨둔 채 가을에 '第1回 톰보이 록 콘테스트'에 參與한다. 對象의 境遇 賞金 1,000萬 원에 獨집 出班이라는 유례없는 規模의 이 大會에서 〈Rain Of Compromise〉로 大賞을 受賞했지만(드럼은 臨時 세션을 起用), 노이즈가든은 獨집앨범 製作時 商業性을 條件으로 내건 主催側 音盤社의 要求를 拒絶한다. 그 後 드러머에 박경원을 맞아들여 約 2年間 홍대앞 最初의 록클럽人 록월드를 비롯한 클럽 公演을 繼續한다.

1996年 , 條件 없이 良質의 록 앨범을 製作하고자 하는 뜻있는 製作者를 만난 노이즈가든은 5月부터 錄音에 着手, 安孃의 태광 스튜디오에서 2個月에 걸쳐 첫 앨범 《Noizegarden》을 製作한다. 밴드의 리더인 윤병주가 프로듀서를 兼任하면서 製作한 이 앨범에서는 염재민의 軍入隊로 노이즈가든의 라이브 사운드 엔지니어를 맡아 주던 以上文이 베이시스트로 參與했다. 一面 거칠게 들리기도 하지만 라이브와도 같은 느낌과 質感을 最大限 살린 이 앨범의 마지막 마스터링 過程은 有名한 美國의 A&M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그 밖에 이 앨범에서는 初代 베이시스트인 최민호(〈宇宙꽃사슴〉)와 錄音期間中 軍에서 暫時 外泊을 나왔던 염재민(〈묻지 말아줘〉와 〈妥協의 非〉)의 演奏도 들을 수 있다.

1997年 末부터 準備에 들어갔던 두 番째 앨범은 1998年 가을에 本格的인 製作에 着手, 1999年 2月에 《...But Not Least》 라는 題目으로 發賣되었다. 1輯과 마찬가지로 美國 A&M 스튜디오의 데이빗 콜린스에 依해 마스터링되었다.

以後 1999年 10月에는 國內 록 밴드로서는 最初로 서울 팝스 오케스트라 藝術의 殿堂 에서 協演을 펼치기도 했으나 곧이어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윤병주가 밴드를 脫退하였으며 곧 解體하였다.

박건의 캐나다 移民을 즈음해서 2009年 2月 14日 밴드 解體 10周年 記念 公演을 하였다. [1] 보컬리스트 박건이 韓國에 돌아오기 前까지는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公演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4年, 두 張의 앨범에 《'94 Demo》, 그리고 여러 컴필레이션에 收錄했던 曲들과 부틀렉 라이브 트랙까지 모아 리마스터링한 《Deluxe Remastered Edition》을 發表하고 一時的으로 再結成, 5月 24日 發賣記念公演과 6月 21日 사운드홀릭 페스티벌 等 두 次例의 公演을 하기도 했다.

2016年 9月 26日, 캐나다 밴쿠버에서 移民生活을 하던 박건이 持病으로 死亡, 이제 더以上의 再結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構成員 [ 編輯 ]

  • 創團·데모 테이프
윤병주(其他) 정재준(보컬) 최민호/金起炫(베이스) 김태윤(드럼)
  • 1輯
윤병주, 朴建(보컬), 이상문(베이스), 박경원(드럼)
  • 2輯
윤병주, 朴建, 염재민(베이스), 박경원

音樂 [ 編輯 ]

밴드의 리더인 윤병주는 한 인터뷰에서 半弄談으로 노이즈가든의 音樂은 "Cathedral + Black Sabbath + Danzig + Led Zeppelin + Soundgarden + Jane's Addiction + The Cult + Alice in Chains + Metallica + John Zorn /100"이라고 밝힌바 있다. 卽, 正統 헤비 메탈의 基盤 위에 스래쉬 메탈과 얼터너티브 및 둠 메탈(또는 스토너 록)의 性格이 加味되고 部分的으로 아방가르드 性格이 加味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代表作인 데뷔 앨범의 사운드는 COC나 Cathedal 2輯, 사운드가든의 《Badmotorfinger》 앨범의 混合이지만 이 장르와는 어울리지 않는 박건의 高音 보컬(?)로 因해 (意圖的이건 그렇지 않건) 스토너 록의 사운드와는 區別된다. 한便 리더 윤병주의 아방가르드 趣向은 大韓民國에서 企劃된 메탈리카 트리뷰트 앨범 《 Am I Metallica? 》에 실린 〈Ride The Lightning〉에서 遺憾 없이 發揮되고 있다.

다양한 影響을 吸收 綜合하여 獨創的인 色깔을 創出해내는 리더 윤병주의 卓越한 音樂的 能力 못지않게 注目할 것은 韓國 록 歷史上 最高 水準의 레코딩 사운드이다. 90年代末까지 크래쉬 를 除外하고는 韓國의 어느 그룹도 이만한 水準의 사운드를 들려준 적이 없다는 것이 定說이다.

音盤 [ 編輯 ]

  • 데모 (1994)
  • 1輯 - 《 Noizegarden 》 (1996年)
  • 2輯 - 《... But Not Least》 (1999)

關聯 音樂인 [ 編輯 ]

윤병주의 親舊인 이석원이 이끄는 모던 록 밴드로 이들의 1輯을 윤병주가 프로듀스했으며 노이즈가든의 2輯에는 이석원이 客員보컬로 參與하기도 했다.
윤병주의 親舊인 김민규, 윤준호가 있는 모던 록 밴드로 이들의 2輯에 윤병주와 박건이 게스트로 參與하기도 했다.
노이즈가든의 앨범에서 세션 뮤지션으로 活動했었고 윤병주와 이상문과 切親한 親舊이기도 한 Pain이 리더로 있다.
헤비 메탈 그룹 사하라 의 멤버이자 윤병주의 오랜 親舊로 노이즈가든의 레코딩에 엔지니어로 參與하여 2輯의 뛰어난 사운드에 큰 役割을 했다.

各州 [ 編輯 ]

  1. 김부원 (2009年 2月 5日). “록밴드 '노이즈가든', 公式解體…14日 告別公演” . 아시아經濟.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