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번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남을번 (南乙蕃, 1320年 ~ 1395年 2月 13日 )은 高麗 末期, 朝鮮 前期의 文身이다. 高麗 때 密直副使(密直府使)를 지내고, 朝鮮 建國 後 開國功臣 이 된 아들 南在 , 남은 等의 공으로 檢校市中(檢校侍中)이 되었다. 將軍 남이 의 5代祖가 된다. 諡號는 庚熱(敬烈)이다.

1320年 (忠肅王 7)에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豐儲倉 府使(豊儲倉副使)와 豐儲倉社(豊儲倉使)를 지낸 남翊儲(南益? 또는 芥菹(盖?))이며, 아버지는 지영광軍事(知靈光郡事)를 지낸 남천로(南天路)이고, 어머니는 咸陽朴氏(咸陽朴氏)로 中郞將 (中郞將)을 지낸 鎛鐘(朴琮)의 딸이다. 동생은 남을진 , 南乙頃 이다.

生涯 初期의 行跡에 對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高麗 말에 官職에 올라 密直副使(密直副使)를 지냈다. 1392年 (供養王 4) 7月 李成桂 가 朝鮮을 建國하자 官職에 나아갔다. 開國功臣 이 된 아들 南在 (南在)와 남은 (南誾) 等의 勳功으로 그는 檢校市中(檢校侍中)이 되었다. 이어 翊戴步조찬화功臣(翊戴補祚贊化功臣)에 책록되고, 輔國崇祿大夫 門下省市中(輔國崇祿大夫門下省侍中)을 거쳐 宜寧府院君(宜寧府院君)에 封君되었다. 1395年 (太祖 4) 2月 13日 에 死亡했다. 庚熱(敬烈)의 諡號가 追敍되었다. 한참 뒤에 增 大匡輔國崇祿大夫 領議政이 追贈 되었다.

墓는 京畿道 楊州郡 別備面 화접리(後日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282-7番地로 바뀌었다가 남양주시 別內東으로 變更) 朱乙曲部落에 있고, 아들 南在 의 墓所가 近處에 있다.

家族 關係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 高麗史
  • 朝鮮王朝實錄 太祖實錄

關聯資料 [ 編輯 ]

  • 신구문화사, 《韓國人命大辭典》 (신구문화사, 1976)
  • 양주군청, 《楊州郡地, 下卷》 (楊州郡地編纂委員會, 1992)

各州 [ 編輯 ]

  1. 文科謗木의 남계영(南季瑛, 1415年 ~ ?)의 家族 記錄에는 乙頃(乙卿)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