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번
(南乙蕃,
1320年
~
1395年
2月 13日
)은
高麗
末期,
朝鮮
前期의 文身이다. 高麗 때 密直副使(密直府使)를 지내고, 朝鮮 建國 後
開國功臣
이 된 아들
南在
,
남은
等의 공으로 檢校市中(檢校侍中)이 되었다. 將軍
남이
의 5代祖가 된다. 諡號는 庚熱(敬烈)이다.
1320年
(忠肅王 7)에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豐儲倉
府使(豊儲倉副使)와 豐儲倉社(豊儲倉使)를 지낸 남翊儲(南益? 또는 芥菹(盖?))이며, 아버지는 지영광軍事(知靈光郡事)를 지낸 남천로(南天路)이고, 어머니는 咸陽朴氏(咸陽朴氏)로
中郞將
(中郞將)을 지낸 鎛鐘(朴琮)의 딸이다. 동생은
남을진
,
南乙頃
이다.
生涯 初期의 行跡에 對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高麗
말에 官職에 올라 密直副使(密直副使)를 지냈다.
1392年
(供養王 4)
7月
李成桂
가 朝鮮을 建國하자 官職에 나아갔다.
開國功臣
이 된 아들
南在
(南在)와
남은
(南誾) 等의 勳功으로 그는 檢校市中(檢校侍中)이 되었다. 이어 翊戴步조찬화功臣(翊戴補祚贊化功臣)에 책록되고, 輔國崇祿大夫 門下省市中(輔國崇祿大夫門下省侍中)을 거쳐 宜寧府院君(宜寧府院君)에 封君되었다.
1395年
(太祖 4)
2月 13日
에 死亡했다. 庚熱(敬烈)의 諡號가 追敍되었다. 한참 뒤에 增 大匡輔國崇祿大夫 領議政이
追贈
되었다.
墓는
京畿道
楊州郡
別備面
화접리(後日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282-7番地로 바뀌었다가 남양주시 別內東으로 變更) 朱乙曲部落에 있고, 아들
南在
의 墓所가 近處에 있다.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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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 남翊儲(南益?)
- 아버지 : 남천로(南天路)
- 어머니 : 咸陽朴氏(咸陽朴氏),
中郞將
鎛鐘(朴琮)의 딸
- 否認 : 最强(崔?)의 딸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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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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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聯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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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구문화사, 《韓國人命大辭典》 (신구문화사, 1976)
- 양주군청, 《楊州郡地, 下卷》 (楊州郡地編纂委員會, 1992)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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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科謗木의 남계영(南季瑛, 1415年 ~ ?)의 家族 記錄에는 乙頃(乙卿)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