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鍾哲
(金種鐵,
1944年
~ )은
大韓民國
의
言論人
이다.
[1]
동아自由言論守護鬪爭委員會
의 主動者 中 한 名이다.
聯合뉴스
社長을 歷任하였다.
2016年
現在 自由言論實踐財團 理事長, 동아自由言論守護鬪爭委員長이다.
[2]
[3]
[4]
生涯
[
編輯
]
1944年
忠淸南道
燕岐郡
(現
世宗特別自治市
)
全義面
에서 태어나
서울大學校
文理科大學 國語國文學科를 卒業했다. 第3代
韓國家庭法律相談所
腸
곽배희
의 配偶者이고 곽배희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5]
[6]
1967年
東亞日報
記者로 入社했으나
1975年
동아自由言論守護鬪爭委員會
主動者라는 理由로 强制 解職된 뒤 文學 評論과 飜譯에 從事하였다.
1984年
<民衆文化運動協議會> 共同代表를 맡았고,
1985年
부터 <民主統一民衆運動聯合(민통련)>의 代辯人과 事務處長을 지냈다.
1988年
한겨레
新聞 創刊에 參與해서 論說幹事, 編輯副委員長, 論說委員 等으로 일했다. 그 後 聯合通信(
聯合뉴스
로 改名) 代表理事, 社團法人 <韓國-베트남 함께 가는 모임> 理事長, <民主改革國民聯合> 共同代表, <啞胎民主指導者會議> 理事, <國際言論人協議會> 理事, <韓國新聞協會> 監査 等을 歷任했다.
2011年
現在,
仁川才能大學校
招聘 敎授, 市民團體 <民主統一市民行動> 共同代表이다.
2012年
프레스바이플
創刊에 參與하였다.
[7]
2004年
出版ㆍ印刷 企業 〈聖戰企劃〉 會長에 就任하기도 하여 活動하기도 했다.
[8]
著書로는 <地域感情 硏究>(共著,
1991年
), <저 假面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
1992年
),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1995年
),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1999年
) 等이 있고, 譯書로는 <말콤 엑스>(共同 飜譯,
1978年
), <引渡의 發見>(
1981年
), <프랑스革命史>(
1982年
), <마호멧>(
1983年
), <武裝한 豫言者 트로츠키>(
2005年
) 等이 있다.
[9]
評價
[
編輯
]
大韓民國 內 言論社가 골프 接待에 對한 警戒令을 내린 事例는
1998年
聯合通信이 最初였는데 聯合通信 社長 김종철은 就任하면서 記者들의 골프 接待가 蔓延해 있다는 判斷에 社內에 골프 接待를 삼가 달라는 公知를 띄웠다.
[10]
著書
[
編輯
]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