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기
(金容基,
1909年
9月 5日
[1]
~
1988年
8月 1日
)는 大韓民國의
改新敎
農村 運動家이다. 號는 '一家 (一家)'.
京畿道
楊州郡
초부면 봉안리(現
南楊州市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나 廣東學校를 卒業하였다. 1931年 京畿道 楊州郡에 奉安 理想村(理想村)을 建設하고,
1943年
에 日帝의 監視를 받았던
呂運亨이 理想村에 參與 하며 獨立運動에 貢獻 하였다.
.
[2]
[3]
1955年 京畿道 廣州郡 동부면 풍산리(現 京畿道
河南市
풍산동)에 가나안 農場을 設立하였다. 1962年
가나안 農軍學校
를 設立하여, 많은 農村 일꾼을 길러 내는 搖籃으로 만들었다. 1962年 農林部 長官賞·鄕土文化 功勞賞을 受賞했고, 1964年 空軍 參謀總長 感謝狀과 協助 賞牌를, 1966年
막사이사이상
福祉 部門賞을, 1973年 招待 인촌文化相을 받았다.
[1]
그의 哲學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처럼 勞動과 삶의 聯關性을 基督敎 敵으로 解釋하여 새마을 運動의 精神的 바탕을 세웠다.
[4]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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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
김종일
(1930年 ~ 2020年 12月 8日)
- 아들: 김범일 (1936年 ~ )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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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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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農軍 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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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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