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坊
(敎坊)은
高麗
,
朝鮮
時代
妓生
과 關聯된 主要 建物이다.
鄕樂
과 舞踊을 비롯한 音樂을 敎育하였으며, 朝鮮後期에는 妓生社會의 行政 中心地이기도 하였다.
敎坊은 11世紀 初
顯宗 (高麗)
때 처음으로 史料에 登場한다. 그러나 그 記錄에는 王이 敎坊에서 妓生 1,000名을 풀어주었다고 記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0世紀에 妓生半이 形成되었던 時期로 推定된다.
20世紀 初 韓國이
日本의 支配를 받자
敎坊은
券番
으로 代替되었다. 少數의 그림 描寫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敎坊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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