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同飜譯聖書
(共同?譯聖書
[1]
)는
大韓民國
의
에큐메니컬 運動
의 一環으로 構成된 城西共同飜譯委員會가 1977年
復活節
에 編纂한 韓國語
聖經
이다.
天主敎
와
改新敎
를 統合하기 위한 目的으로 쓰였으나 現在 兩側에서 거의 使用되지 않으며
大韓聖公會
와
韓國 正敎會
만이 公式的으로 採擇하고 있다.
編纂 經緯
[
編輯
]
1965年
第2次 바티칸 公議會
以後에야 天主敎側은 라틴語 聖經만이 아니라 모든 信者가 聖書에 쉽게 接近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以後 自國語 聖經을 이미 飜譯하여 出刊하던 世界聖書公會와 자국어 飜譯을 처음 해야 하는 天主敎는 新舊敎 城西共同飜譯에 關한 合意를 이끌어내는데 成功한다. 以後 大韓民國에서도 韓國語 聖經을 出刊하던 大韓聖書公會와 天主敎 飜譯 委員會가 合意를 하게 되었다. 共同 飜譯을 위해
김재준
, 이태준 牧師, 박양운 김남준 新婦를 爲始로 1968年 1月에 舊約共同飜譯委員會가 發足한다.
[2]
參與者들은
延世大學校
聯合神學 大學院
初代 院長인
김정준
牧師,
大韓聖書公會
의 정용섭 牧師,
한신대학교
敎授인
문익환
牧師,
장로회신학대學校
의 崔議員
배제민
牧師가 改新敎側 飜譯委員으로,
가톨릭대학교
敎授인
선종완
神父 等 6名이 天主敎側 飜譯委員으로 參與하였다. 舊約聖經은
死海 文書
의 內容이 反映된 루돌프 키텔의 《
非블리아 헤브라이카
》 3板(1937)을 原典으로 삼아 飜譯에 着手하였다.
[3]
1969年 1月에 新藥共同飜譯委員會가 構成된다.
[4]
以後 1971年에는 505쪽 分量의 新約聖書가, 1977年에는 畏敬을 包含한 舊約聖書 1,997쪽이 發行된다.
[5]
槪要
[
編輯
]
原文 版本
[
編輯
]
舊約聖書
의 原本의 版本은 루돌프 키텔이 編纂한 《
非블리아 헤브라이카
》 3板(1937)을,
新約聖書
의 原本의 版本은
世界聖書公會聯合會
가 出版한 《그리스語 新約聖書》 1板(1961)을 參考하였다
[6]
.
天主敎
에서는
선종완
神父가,
改新敎
에서는
韓國基督敎長老會
의
문익환
牧師와
곽노순
牧師가 飜譯 原稿를 마무리하고,
基督敎大韓監理會
의
이현주
牧師가 文章과 맞춤法을 矯正하였다.
[7]
共同飜譯 改訂版
[
編輯
]
1971年에
新約聖書
의 原文이 飜譯되었고 이어서 1977年에
舊約聖書
의 原文이 飜譯되었다. 1989年 以後에는 改正된 한글 맞춤法, 標準語 改正案을 反映할 必要性이 擡頭되기 始作했다. 또 '韓國 天主敎 主敎會議韓國天主敎中央協議會'에서도
불가타
役을 基準으로 하여 共同飜譯 第2經典의 編輯을 調整해 달라는 要請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1995年 1月 21日 '共同飜譯 聖書 改正委員會'를 組織하고 改正을 始作하였다. 共同飜譯 改訂版의 '原文 版本'이나 '飜譯 原則'은 《共同飜譯聖書》 初版과 같다.
共同飜譯 改訂版을 펴낼 때에는 明白히 틀린 것만 고친다는 小幅改正의 原則을 두었는데, 各 細部項目은 다음과 같다.
- 고쳐서 좀더 부드러워지더라도, 틀리지 않다면 그대로 두었다.
- 明白한 改善이 아니라 論難의 餘地가 있는 것은 共同飜譯을 尊重하여 그대로 두었다.
- 맞춤法 矯正도 小幅 改正의 原則에 따라, 最小限의 幅으로, 明白히 틀린 것만 고쳤다.
- 띄어쓰기는 可讀性을 考慮하여 붙여 쓸 수 있는 것은 붙여서 矯正하였다.
以外에도 現在의 共同飜譯 聖書와 通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바 불가타 順序를 基準으로 하여 再編輯하는 等의 改正을 새로 試圖하였다. 天主敎龍 聖經에서는 노바 불가타 順序를 參考하여 再編輯하여 여러 가지
第2經典
을 뒤에 따로 모으지 않고 합쳐서 現 共同飜譯 聖書 初版의 目次 順序대로 編輯하였다.
[8]
이 때 改正 內譯은 右側 脚註를 參考하라.
[9]
敎派別 分類
[
編輯
]
改新敎用과 天主敎용이 따로 出版되고 있는데, 天主敎用意 境遇 改新敎側에서 舊約
畏敬
으로 여기는
第2經典
이
天主敎會
의 노바
불가타
에 따라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舊約聖書에 包含되어 있다.
新約聖書
部分만 따로 出版되기도 한다. 初期에는 改新敎用은 畏敬이 있는 版本과
畏敬
이 없는 版本으로 出版되었고, 改訂版에서는 天主敎用과 改新敎用으로만 出刊했다.
共同飜譯聖書 使用 敎會
[
編輯
]
共同飜譯聖書는
大韓聖書公會
를 통하여
出版
되었으며, 1977年 共同飜譯聖書 飜譯 以來
韓國의 天主敎會
와
韓國 正敎會
가 採擇했다.
改新敎
敎團 中에서는
大韓聖公會
가 採擇하였고, 大部分의 敎團은 敎育用으로 活用하였고, 少數 敎會에서만 採擇하였다. 2020年 基準,
韓國 正敎會
와
大韓聖公會
等은 共同飜譯聖書를 禮式에 使用한다.
[10]
[11]
一部 進步的 敎會에서 禮拜時 使用하나 大部分의 敎團은 改譯改正 聖經全書를 禮拜時 使用한다.
改新敎側은 出版 初期에는 學生들을 위한 聖經으로 活用하기도 했으나, 敎育用으로만 限定 使用하고 禮拜時에는 使用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1993年
標準새飜譯 聖經全書
가 出版되며 이를 代身하고, 共同飜譯 聖書는 敎育用으로도 使用하지 않는다.
現在 改新敎 敎團에서는 거의가 새飜譯 聖經全書나 改譯改正 聖經戰를 採擇하여 使用한다. 敎團이 採擇했다는 意味가 强制的인 事項이 아니므로 改新敎 中 에큐메니컬 運動에 參與하는 一部 個敎會들은 共同飜譯聖書를 禮拜用 聖經으로 使用하기도 한다
[12]
天主敎會
에서는 公式的인 첫 한글飜譯本으로 採擇하여 使用했지만,
1984年
宣敎 200周年을 記念하여 1991年에 《
韓國 天主敎會 200周年 記念 新約聖書
(普及版)》(
분도출판사
)를 出版하였고 敎會曆 2006年(2005年
待臨節
)부터 自體 飜譯한 《
聖經
》(
韓國 天主敎 主敎會議
)을 全面 採擇함에 따라, 現在는 禮式에 使用하지 않는다.
現在
大韓民國
에서는
大韓聖公會
와
韓國 正敎會
가 共同飜譯을 敎會에서 예식용 聖書로 採擇하고 있다. 1982年
大韓聖公會
에서 使用을 認可받은
聖公會 共同祈禱文
(1965年版 聖公會 共同祈禱文의 部分改訂版)에는 共同飜譯聖書를
感謝聖餐禮
에 쓰도록 規定되어 있으며, 2004年 改正된
聖公會 祈禱書
와
性抒情과
에서도 共同飜譯聖書를 使用한다.
評價
[
編輯
]
監理敎
牧師이자 兒童文學家인
이현주
牧師
[13]
와 舊約神學者이자
是認
人
문익환
牧師가 參與했으므로
時
를 읽는 듯한 뛰어난 文體와 政丞, 거뭇, 잠뱅이 等 韓國語 語彙들이 使用됨으로써 韓國語의 아름다움이 描寫되었다는 肯定的 評價가 있다.
[14]
뿐만 아니라 共同飜譯聖書는 改新敎會와 天主敎會의 協力에서 意味 있다. 大韓民國 基督敎 內部에서 改新敎는 天主敎를 異端이며 墮落의 元兇으로, 天主敎는 改新敎를 裂敎로 置簿하던 雰圍氣를 改善하는 重要한 事件이 되었다. 改新敎會나 天主敎의 主님의 말씀인 聖書를 함께 飜譯했다는 象徵的인 意味에서 好評을 받았다.
反面, 읽기는 便해졌으나 말씀의 權威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서 剛하게 와닿지 않게 되었다는 批評도 存在한다.
[15]
에큐매니컬 運動 側에서는 이 또한 共同飜譯聖書에서 天主敎의 새飜譯 聖經으로 移行될 때 聖經을 읽는 맛이 덜 하다는 內部의 意見이 있는 바로 익숙함과 낯설음의 差異 程度로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한다며, 聖書의 權威는 읽기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人間을 어떻게 읽어내서 感動하게 하는가에 있다고 主張한다.
[16]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