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은(2011年)
|
|
本名
| 고은태
|
---|
出生
| 1933年 8月 1日
(
1933-08-01
)
(90歲)
日帝 强占期 朝鮮
全羅北道
沃溝郡
未免 미룡리
|
---|
言語
| 韓國語
,
日本語
,
中國語
|
---|
職業
| 是認
,
小說家
|
---|
學歷
| 群山高等普通學校
中退
|
---|
經歷
| 檀國大學校
碩座敎授
|
---|
宗敎
| 佛敎
|
---|
筆名
| |
---|
活動期間
| 1952年 ~ 2018年 3月
|
---|
장르
| 詩文學, 小說
|
---|
受賞
|
- 2007年 그리핀 詩人像 平生功勞賞
- 2007年 노던 캘리포니아 北 어워즈
|
---|
配偶者
| 李相花(
中央大
敎授 歷任)
|
---|
子女
| 딸1名, 高차령
|
---|
兄弟
| 男동생 2名 고충조, 고은철
|
---|
|
《五十年의 思春期》, 《만인보》
|
웹사이트
| www.koun.co.kr
|
---|
고은
(?銀, 本名:
고은태
(?銀泰),
1933年
8月 1日
~ )은 大韓民國의
是認
이다.
本館
은
濟州
(濟州).
號
(號)는 派옹(波翁)이다.
日帝强占期
時節 쓰던
創氏改名
이름은
다카바야시 도라스케
(高林虎助)이다.
生涯
[
編輯
]
全羅北道
沃溝郡
出生이다.
群山高等普通學校
를 4學年 時節에 中退하였다.
韓國 戰爭
으로 인한 戰亂 時期였던
1952年
日本
曹洞宗
의 群山
동국사
에 出家하여 重官學 權威者인 中將慧超로부터 一秒(一超)라는 法名을 받고
佛敎
僧侶
가 되었다. 以後 10年間 京畿道 江華 傳燈寺 等의 査察에서
參禪
과 放浪을 거듭하며 詩를 쓰기 始作하였다.
1958年
조지훈
과
장만영
과
徐廷柱
의 共同 推薦으로 인하여 《
현대문학
》에 〈
肺結核
〉을 發表하며 登壇하였다. 1960年代 初에 本山 住持,
佛敎新聞社
主筆 等을 지냈고,
1960年
첫 詩集 《
彼岸感性
》을 내고
1962年
還屬하여 本格的인 始作活動에 沒頭하게 되었다.
고은의 文學的 性向은 〈
問議 마을에 가서
〉를 낸
1974年
을 基準으로 크게 둘로 나뉘는데, 그의 電氣 詩들은 虛無의 情緖, 生에 對한 絶望, 죽음에 對한 審美的인 耽溺이 主를 이루는 反面 後期 詩들은 時代狀況에 對한 批判과 現實에 對한 鬪爭意志를 담고 있다. 그 뒤 '自由實踐 文人協議會' 代表로 行動主義 關聯 體制 面에서 活躍하기도 했다.
1983年
에, 14年 年下女 李相花 중앙大學校 英語英文學科 敎授와 結婚한 그는
노벨 文學賞
候補로도 자주 擧論되고 있는데, 世界 各國에서 그가 잘 알려진 것은 노벨文學賞 候補라는 것 以前에 그의 詩가 20餘個國에 飜譯되어 많은 靈感을 주고 있다는 點 때문이다. 實際로 2005年 以後 여러番 노벨文學賞 候補로 擧論 되기도 하였다.
[1]
[2]
노르웨이
에서는 自國의 노벨 文學賞 受賞者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
을 麒麟 비에른손 勳章을 받았고,
스웨덴
에서도 自國 노벨 文學賞 受賞者
下뤼 마르틴손
을 기리는 上인 同時에 東아시아圈 文學에 주는 商人 시카다상을 授與하였다.
學歷
[
編輯
]
名譽 博士 學位
[
編輯
]
經歷
[
編輯
]
受賞
[
編輯
]
作品 目錄
[
編輯
]
詩集
[
編輯
]
時
[
編輯
]
- 〈선제리 아낙네들〉: 主題는 고단한 生活 속에서도 정겨움을 잃지 않는 民衆들의 삶이다.
[6]
- 〈머슴 대길이〉: 歷史 속에서 소외당하고 賤待 받는 階級이지만, 삶에 對한 肯定的 認識으로 남을 위해 넉넉한 人間味를 잃지 않고 사랑을 實踐하는 人間像이 그려진다.
[7]
- <가을 便紙>:
小說
[
編輯
]
에세이
[
編輯
]
性醜行 論難 및 관여된 法定 訴訟
[
編輯
]
性醜行 疑惑 關聯 損害賠償 請求
[
編輯
]
性醜行 疑惑 提起
[
編輯
]
2018年
최영미
詩人의 고은 性醜行 暴露 以後 고은이 오래 前부터 性醜行을 일삼았다는 被害者들의 具體的인 證言이 나오고 있다.
[8]
2018年 3月 2日 고은은 英國의 出版社를 통해 性醜行 疑惑을 全面 否認하고 글쓰기를 繼續하겠다는 立場을 밝혔다.
[9]
최영미에 따르면 고은은 '1993年頃 한 술집에 들어가 天障을 보고 누운 채 自身의 바지 지퍼를 열고 아랫도리를 주물렀고, 興奮해 呻吟소리를 뱉었다. 한참 自慰를 즐기던 고 詩人은 崔 時人의 一行을 向해 命令하듯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했다.'고 한다.
[10]
박진성
詩人은 "2008年 4月, C 大學校에서 主催하는 髙銀 詩人 招請 講演會 뒤풀이 자리에서 髙銀 詩人이 옆에 앉은 女性의 身體 部位를 더듬고 自身의 性器를 露出하는 모습을 目擊했다"고 暴露했다. 박진성은 "저는 그 當時 그 자리로 저를 오게 한 K 敎授에게 왜 髙銀 詩人을 말리지 않느냐고 抗議했지만, K敎授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면서 "고은 詩人의 醜行은 以後에도 繼續됐다"고 밝혔다. 以後 髙銀 詩人은 자리에 앉으며 "너희들 이런 勇氣 있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11]
1審
[
編輯
]
고은은
2018年
7月 17日
서울中央地法
에 최영미 詩人과 박진성 詩人, 言論社 等을 相對로 10億 7千萬원의
損害賠償
을 請求하는 訴訟을 提起했다.
[12]
2019年 2月 서울중앙지법 民事合議14部는 原告 敗訴 判決했다. 裁判部는 “崔 詩人의 글 內容과 法廷 陳述이 具體的이고 一貫되며, 提報한 動機와 經緯 等을 따져보면 虛僞라 疑心할 事情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裁判部는 또한 고 詩人 側 證人들이 虛僞 證言을 했다는 崔 詩人의 主張을 받아들였다. 裁判部는 또한 고 詩人의 1994年 性醜行 疑惑을 報道한 新聞社가 고 詩人에게 損害賠償을 할 必要가 없다고 判斷했다. 單, 裁判部는 고 詩人의 2008年 性醜行 疑惑을 暴露한 박진성 詩人(41)에 對해 "被害 女性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根據로 고 詩人에게 1000萬 원을 賠償하라고 判決했다.
[13]
抗訴審
[
編輯
]
以後 고은은 抗訴했고,
2019年 11月
서울高等法院 民事13部는 고은의 損害賠償請求 訴訟 抗訴를 棄却했다. 單 1審 때 내려진 박진성(詩人) 氏의 賠償 責任은 維持되었다.
[14]
2019年 12月
고은이 大法院 上告를 抛棄함에 따라, 고은의 損害賠償 訴訟 敗訴 判決은 最終 確定되었다.
[15]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
各州
[
編輯
]
- ↑
노벨賞에 對한 誤解와 眞實…올해 이그노벨賞 受賞者는?
MBC TV( 2014.10.07) 記事 參照
- ↑
광교산 中턱… 30餘年만에 삶터 옮긴 髙銀 詩人
경인일보(2013.10.02.) 記事 參照
- ↑
天安,이준호記者 (2010年 8月 18日).
“髙銀 詩人 단국대徐 名譽文學博士”
. 韓國日報
. 2010年 8月 24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
가
나
髙銀 詩人, 스웨덴 '시카多相' 받는다
中央日報 2006.10.25 綜合 23面
- ↑
髙銀 詩人 스웨덴 시카多像 受賞 … 바리外 大使, “고은은 世界的 詩人”
東亞日報 2006-11-29
- ↑
강승원, 編輯. (2009年 1月 5日). 《EBS 修能特講 言語領域》 初版. 韓國敎育放送公社. 12, 解說2쪽.
- ↑
김인봉, 編輯. (2009年 1月 5日). 《EBS 修能特講 言語領域》 初版. 韓國敎育放送公社. 解說53쪽.
ISBN
9788954711159
.
- ↑
“[單獨]"고은, 女大學院生 性醜行하며 身體 主要部位 露出
"
”
. 東亞日報. 2018年 2月 27日.
- ↑
“고은 "부끄러운 일 안했다" 主張…최영미 "내 말과 글 事實
"
”
. 《聯合뉴스》. 2018年 3月 4日.
- ↑
“최영미 詩人, ‘고은 性醜行’ 暴露 “아랫도리 주무르며 만져달라고 해””
. 《mk.co.kr》
. 2018年 3月 4日에 確認함
.
- ↑
“박진성 詩人 “髙銀 詩人, 술자리서 性醜行…直接 봤다””
. 《中央日報》. 2018年 3月 6日
. 2018年 3月 8日에 確認함
.
- ↑
이보배 (2018年 7月 25日).
“髙銀 詩人, '性醜行 暴露' 최영미 詩人에 損害賠償 請求”
. 《聯合뉴스》.
- ↑
이호재·金睿智·이지훈 (2019年 2月 16日).
“法院 “고은 性醜行 虛僞 아니다”… 최영미 勝訴”
. 《東亞日報》.
- ↑
金恩京 (2019年 11月 8日).
“
'
性醜行 疑惑' 髙銀 詩人, 최영미 詩人 相對 損賠訴 2審도 敗訴”
. 《聯合뉴스》.
- ↑
李承雨 (2019年 12月 5日).
“최영미 "고은, 損賠訴 上告 안해…대법원 안가고 끝
"
”
. 《聯合뉴스》.
外部 링크
[
編輯
]
- 위키미디어 公用에
고은
關聯 미디어 分類가 있습니다.
1974年
民主回復國民宣言 署名者(銃 71名)
|
---|
元老
| |
---|
獨立鬪士
| |
---|
制憲議員
| |
---|
天主敎
| |
---|
改新敎
| |
---|
佛敎
| |
---|
學界
| |
---|
文人
| |
---|
言論人
| |
---|
法曹人
| |
---|
女性界
| |
---|
政治人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