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계식
(姜桂植,
1917年
4月 21日
~
2000年
1月 13日
)은 大韓民國의
俳優
이다.
主要 履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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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 强占期 朝鮮 忠淸南道 牙山(牙山)에서 出生한 그는 萬19歲 때
京城實踐高等商業學校
를 卒業 後 1年間 農業에 從事하였으며 그 後 1937年에서부터 1938年까지 1年間
日帝强占期
忠淸南道
天安郡 직산면 面事務所
面書記步(面書記補)로
公務員
職을 지내다가 1938年 公務員職에서 辭退를 하고 1938年에서부터 1940年까지
國民政府 大陸 本土 時代 中華民國
베이핑
과
滿洲國
신징
에서 亞細亞中華國際電氣會社 隸下 平職員(平社員)을 지내다가 1940年 洞 會社 平職員 辭退를 宣言하고 같은 해 1940年 日帝 强占期 조선국에 歸國하였으며 1941年
演劇
《대추나무》라는 作品을 통하여
演劇俳優
로 첫
데뷔
後 1942年 當時
朝鮮演劇協會
傘下 國民演劇硏究所를 修了하고, 1943年 極端 '현대극장(現代劇場)'에서 本格 演技 活動을 始作하였다. 1944年 同僚 演劇俳優
이용남
(李龍男)과 結婚하였으며 1945年 光復 後에는 1947年에 極端 '靑葡萄(靑葡萄)'와 1948年 極端 '민예(民藝)'에 들어가 活動했다. 1950年度에는 '신협(新協)'에 들어가 活動했다. 1950年度에는 '신협(新協)'을 經由 以後 '國立劇團(國立劇團)'에 所屬된 前歷이 있으며,
1977年
8月 21日
을 期하여
고설봉
等과 함께
國立劇團
에서 同伴 停年 退任을 한 그는
韓國演劇協會
拷問 等을 지냈다. 한때 映畫에 出演하여 先輩 俳優
고설봉
等과 함께 演劇·映畫界를 주름잡던 俳優였다.
出演作品으로는 1941年에
유치진
作 《대추나무》로 始作, 《春香傳》(1944), 《에밀레鐘》(1945), 《落花巖》(1946), 《草原의 祭典》(1947), 《카추샤》 《젊은 그들》(1948), 《원술랑》(1950), 《漢江은 흐른다》(1954), 《信仰과 故鄕》(1956), 《세일즈맨의 죽음》(1957), 《罪와 벌》(1958), 《對修養(大首陽)》(1959), 《젊음의 讚歌》 等 多數가 있다.
出演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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演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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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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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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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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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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