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韓國敎會서 只今 가장 必要한 건 質問하는 힘” - 京鄕新聞

“韓國敎會서 只今 가장 必要한 건 質問하는 힘”

박경은 記者

放送人 린데灣과 최주훈 牧師, 宗敎改革 意味를 묻고 答하다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오른쪽)과 루터교회 최주훈 목사가 11일 서울 용산구 중앙루터교회에서 종교개혁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放送人 다니엘 린데만(오른쪽)과 루터敎會 최주훈 牧師가 11日 서울 龍山區 中央루터敎會에서 宗敎改革에 對한 對話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記者 ifwedont@kyunghyang.com

500年 前 獨逸에서 루터에 依해 일어난 宗敎改革은 現在 韓國 社會에서 어떤 意味를 던져주고 있을까. 腐敗한 宗敎的 傳統과 權威主義的 舊習. 이에 맞선 改革과 變化가 改新敎의 始作이다. 하지만 現在 韓國 改新敎는 500年 前 改革 對象이던 敎會와 꼭 닮았다는 批判에 直面해 있다.

<非正常會談> <어서와 韓國은 처음이지> 等으로 視聽者에게 잘 알려진 獨逸 出身 放送人 다니엘 린데만(32)이 <루터의 再發見> 著者인 최주훈 牧師(47·中央루터敎會 擔任)에게 宗敎改革의 意味와 韓國 改新敎 現實에 對해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들은 얼마 前 함께 獨逸에서 루터의 行跡을 旅行하며 宗敎改革의 意味를 되새겼고 이러한 旅程은 現在 CBS TV를 통해 다큐멘터리 <다시 쓰는 루터 로드>로도 放送되고 있다.

“한국교회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질문하는 힘”

다니엘 린데만 = 유럽에서 敎會는 宗敎보다는 文化的 느낌이 더 剛한 것 같아요. 宗敎生活을 하지 않다가 크리스마스나 復活節이 되면 文化 行事로, 또는 크리스마스 市場에 參與하러 敎會나 聖堂에 가는 게 一般的이에요. 이 때문에 유럽 敎會가 宗敎的인 意味를 잃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최주훈 牧師 = 그걸 너무 批判的으로만 볼 必要는 없을 것 같아요. 韓國은 正말 敎會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요. 그 程度 數字의 信者들이 있는 나라라면 이 나라의 全般的인 것이 다 變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變한 게 없어요. 數字가 아니라 살아가는 世界가 바뀌어야 하는데 말이죠.

린데만 = 只今도 故鄕(랑엔펠트)에 가면 어릴 때 다녔던 聖堂을 찾는데 日曜日에 聖堂이든 敎會든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이런 狀態가 繼續되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싶기도 해요.

崔 牧師 = 歷史를 보면 敎會 數字가 줄어드는 것이 消滅의 길로 가는 건 아니었어요. 宗敎心이 어느 쪽으로 噴出되느냐의 差異가 있는 거죠. 유럽에선 宗敎改革을 거치며 宗敎心이 文化로 噴出됐습니다. 只今 韓國에도 敎會에 나가지는 않지만 宗敎性을 끊어버리지 않는 ‘가나안 聖徒’ 現象이 나타나기 始作했어요. 旣存 形態의 宗敎生活이 아니라 一種의 아카데미 運動, 信仰에 對한 共同體 運動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는 거지요.

린데만 = 그것을 어떻게 評價하시나요.

崔 牧師 = 肯定的이라고 봐요. 루터가 목숨을 걸고 라틴語 聖經을 獨逸語로 飜譯한 것은 福音이 주는 自由와 解放의 기쁨 때문이었어요. 그前엔 神과 나 사이에 司祭가 있었어요. 그들이 中間 役割을 하며 聖經을 解釋해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가야 했지요. 現在로 봤을 땐 牧師에게 모든 걸 다 믿고 맡긴다는 式이죠. 이건 宗敎改革의 意味에서 봤을 때는 잘못된 거예요. 中間 段階가 必要 없어요. 스스로 聖經을 읽고 苦悶하며 責任的 存在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게 宗敎改革 精神입니다.

린데만 = 어떤 事案에 對해 恒常 내 생각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 서로 討論하고 相對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 그게 獨逸 敎育의 核心인데 그 精神이 獨逸 社會와 敎育에 큰 影響을 끼친 것 같아요.

崔 牧師 = 宗敎改革 思想을 가장 잘 이어받은 사람으로 哲學者 헤겔을 꼽을 수 있어요. 그는 近代와 前近代를 나누는 基準은 ‘끝까지 質問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 힘이 있으면 近代를 살아가는 사람인 거죠. 21世紀 韓國 敎會에서도 가장 必要한 것이 質問하는 힘, 勇氣예요.

린데만 = 韓國 敎會 牧師님들은 信者들에게 ‘質問하라’는 이야기를 하나요?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웃음). 게다가 韓國 敎育에도 質問이 別로 없다는 指摘이 많잖아요.

崔 牧師 = 儒敎文化 影響 때문인지 예로부터 어른이 答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敎會에서도 牧師가 答을 줘야 한다는 强迫觀念이 있지요. 우리가 살면서 正答과 誤答이 完璧히 갈려 있는 것은 없어요. 選擇의 갈림길에서 苦悶하게 되는데 루터는 그 選擇의 基準을 提示했어요. 첫 番째는 내가 아닌 남에게 有益한 건지, 두 番째는 善한 未來를 만들 수 있는지, 마지막은 내가 責任을 달게 質 選擇인지입니다. 우리의 判斷이 完璧하지 않지만 예수를 믿는다면 적어도 이런 基準으로 이웃과 未來, 社會的 責任을 苦悶해야겠죠.

린데만 = 獨逸에는 改新敎와 가톨릭 사이에 큰 障壁이 없어요. 엄마하고 다녔던 聖堂에서 每週 日曜日 午前 10時 半 가톨릭 미사를 드리면서 全 오르간을 쳤어요. 같은 空間에서 午前 9時에는 改新敎 禮拜를 드려요. 같은 基督敎人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죠. 그런데 韓國은 서로를 아예 다른 宗敎라고 區分하는 것 같아요.

崔 牧師 = 韓國 敎會의 記憶喪失症이라고나 할까요. 500年 前에 서로 싸운 것만 記憶하지 그사이에 서로가 얼마나 努力하고 變했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아요. 獨逸은 가톨릭과 改新敎 神學者들이 宗敎改革 歷史冊을 만드는 데 함께 參與하기도 했는데 韓國에서도 敎會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理解하고 배우려는 場이 必要합니다.

린데만 = 宗敎改革 精神에 맞는 信者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崔 牧師 = 宗敎改革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이 人間을 同一하게 神的인 價値를 갖고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다 平等하죠. 그러므로 權威를 부리는 사람에게 抵抗해야 하고, 사람의 價値대로 待接받지 못하는 弱者를 끌어올려 섬기는 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삶이어야 합니다.

린데만 = 韓國에서 흥미로웠던 點은 좁은 地域에 宏壯히 다양한 宗敎가 평화롭게 共存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生活 속에서 宗敎 間의 葛藤이나 排斥이 꽤 있는 것 같아요. 祭祀 問題도 그렇고요. 제가 <다시 쓰는 루터 로드> 다큐멘터리에 出演한다고 했을 때 知人이나 팬들 中 이런 분들이 있었어요. ‘다니엘, 가톨릭 信者 아니었어? 그런데 改新敎 關聯 프로그램에 出演하는 거야?’라고요. 함께 사는 共同體 構成員들이 서로를 더 배우고 알아가야 建設的인 批判이든 評價든 할 수 있잖아요. 宗敎와 關聯 없이 疏通의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봐줬으면 해요.

崔 牧師 = 宗敎改革의 歷史는 敎理가 아니라 그 精神이 삶에 어떻게 具現되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獨逸을 비롯해 덴마크, 北유럽 等 루터교의 歷史가 오래된 나라일수록 普遍的 福祉와 人權, 敎育 政策 等이 잘 具現돼 있어요. 우리에게 나타난 宗敎改革 精神은 어떠한지 韓國 改新敎는 스스로에게 質問을 던져봐야 합니다.

?
Today`s HOT
침수된 하노이 거리 법원 나서는 오타니 전 통역사 뜨거운 햇빛 아래 기다림 3연임 모디 총선 승리
6월 프라이드의 달 톈안먼 사태 희생자 추모식
거리가 물에 잠긴 스리랑카 싱가포르에서 훈련 나선 대표팀
멕시코 200년 헌정사 첫 여성 대통령 토론토대 졸업식에서 헌화하는 친팔 시위대 허공에 8964 쓴 예술가 연행한 홍콩 경찰들 인도 총선 개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