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貫은 덕수(德水)이며 字는 女高(汝固), 號는 택당(澤堂)이다. 1610年(光海君 2) 文科에 及第하여 7年 뒤 宣傳官이 되었으나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落鄕하여 擇風當(澤風堂, 楊平郡 鄕土遺跡 第16號)을 지어 學問에만 專念하였다.
落鄕하여 隱居한 後 數次例에 걸친 王의 出仕(出仕) 名을 繼續 拒否하여 1621年(光海君 13)에는 王命을 어겼다 하여 拘束되기도 했다. 1623年 仁祖反正 後 吏曹佐郞·禮曹參議·同乘敷地·右參贊 等을 歷任하였다. 이듬해 大司諫·大司成·左副承旨 等을 지냈으며, 1633年 副提學을 거쳐 大提學과 禮曹參判·吏曹參判을 歷任하였다.
1642年(仁祖 20) 김상헌(金尙憲) 等과 함께 斥和(斥和)를 主張하여 瀋陽(瀋陽)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 다시 義州(義州)에서 구치(拘置)되었으나 脫走하여 돌아왔다. 以後 大提學·禮曹判書 等을 歷任하였으며, 1647年(仁祖 25) 택풍당에서 世上을 떠났다.
長幼(張維)와 더불어 當代의 이름난 學者로서 漢文4代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宣祖實錄(宣祖實錄)》의 修正을 맡아 하였다. 諡號는 문정(文靖)이고, 著書로는 《澤堂集(澤堂集)》, 《初學者燻蒸집(初學字訓增輯)》 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