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大學 다니며 平凡한 삶 꿈꿨지만, 現實은 MZ 무당” 권수진|여성동아

PEOPLE

“大學 다니며 平凡한 삶 꿈꿨지만, 現實은 MZ 무당” 권수진

이경은 記者

2023. 03. 14

‘무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堂堂하게 自身의 運命을 받아들이고 無業 外 趣味 活動에도 熱心인 권수진 氏. 平凡한 듯 다이내믹한 그의 삶을 따라가 봤다. 

MZ世代는 무당도 다르다. 熱心히 工夫해 名門大에 進學하고 필라테스를 다니며 ‘워라밸’(일과 生活의 均衡)을 追求한다. 1月 11日 開封한 映畫 ‘時間을 꿈꾸는 少女’의 主人公 권수진(26) 氏 얘기다.

權 氏는 첫돌 무렵 父母님의 離婚으로 親할머니에게 맡겨져 忠南 洪城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身柄을 앓고 내림굿을 받은 40年 次 무당. 할머니와 함께 山속에서 살던 權 氏는 네 살 무렵 꿈을 통해 누군가의 未來를 점치는 身氣를 보였다. 孫女가 自身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랐던 할머니는 店肆(占卦에 나타난 말) 보는 일을 막았지만 權 氏는 理由 모를 가슴痛症을 느꼈고 結局 여섯 살이 되던 해 神내림을 받았다. 以後 SBS ‘진실게임’, KBS ‘成長다큐 꿈’, OBS ‘멜로다큐 家族’ 等에 出演하며 大衆에 얼굴을 알렸다. 어느덧 20代 中盤인 그가 걸어온 時間을 들으려 京畿 平澤에 位置한 新黨을 찾았다.

科 代表와 무당을 오간 二重生活

친할머니(왼쪽)와 함께 한 권수진 씨의 어릴 적 모습.

親할머니(왼쪽)와 함께 한 권수진 氏의 어릴 적 모습.

平澤 新黨에 할머님도 함께 계시네요.

웬만하면 親할머니와 같이 움직이려고 해요.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 있어와서요. 할머니와 제가 살던 洪城의 新黨과 이곳을 오가면서 지내요.

꼬마 무당으로 이름을 알린 지 벌써 20年이 돼가요.

어릴 땐 店肆 보는 일을 무척 싫어했어요. 제가 너무 우니까 할머니께서 “아이에게 묻지 마시오”라는 標識를 壁에 붙여놓기까지 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제가 點 보는 걸 막고 싶으셨던 거죠. 그런데 여섯 살 때쯤 제가 韓服을 차려입고 할머니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는 “가슴이 답답하니 저 表紙를 떼달라”고 한 거예요. 그렇게 神내림을 받았고, 그 以後부터 또래 아이들처럼 놀고 싶을 때 놀고 자고 싶을 때 자는 平凡한 生活은 힘들었죠. 學校 다니면서 無業(巫業)을 竝行했어요.

靑少年期는 어떻게 보냈나요.

週末마다 新黨에서 손님을 받은 것만 빼면 보통의 高等學生, 大學生과 비슷한 삶을 살았어요. 大學 入試를 準備할 땐 누구보다 熱心히 工夫했고요. 그 結果 韓國外國語大學校 미디어커뮤니케이션學科에 進學했어요. 大學生이 돼선 남들처럼 授業도 듣고 課題도 하고, 就業 苦悶도 했죠. 그러다 專業 무당으로 마음을 굳혔지만요(웃음).



그의 하루는 보통의 20代와 조금 다르게 始作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新黨에 出勤해 玉手를 갈고 초와 香을 켠다. 午前 10時부터 午後 5時까지는 相談 時間이다. 相談을 모두 마치면 山속 祈禱터에 오르거나 新黨에 남아서 祈禱를 올린다. 그는 自身의 職業을 두고 “24時間 일하는, 워라밸이 어려운 職業”이라고 말했다.

神來臨으로 一種의 進路가 定해졌을 것 같은데, 大學에 간 理由는 뭔가요.

꿈이 많았거든요. 아나운서, 廣告 企劃者 모두 제 將來 希望이었죠. 그래서 언젠간 占을 보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도 컸어요. 映畫 속에서처럼 高3 時節 내내 “나는 工夫를 熱心히 해서 꼭 내가 願하는 일을 하고 살 거야”라고 다짐했어요. 서울에 있는 大學에 가면 新黨과도 멀어지니 無業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期待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大學 生活도 熱心히 했어요. 어쩌다 보니 科 代表도 했고요(웃음).

熱情이 넘쳤네요.

大學에서 親舊들과 많이 놀고 싶었어요. 동아리도 여러 個 들고, 同期들과 잔디밭에 둘러앉아 수다도 떨고요. 하지만 現實은 碌碌지 않았어요. 週末마다 洪城에 가야 했거든요. 新黨을 外面하면 理由 없이 몸이 아프고 힘든 일이 생겼어요. 結局 科 代表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同期들한테 괜한 誤解를 사기도 했죠. 普通 科 代表는 週末에도 單科大學 會議나 과 行事 進行 等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그 時節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어요. ‘運命에 굴복당하는 過程인 건가’ 싶었죠.

週末마다 서울과 洪城을 오가기 힘들었겠어요.

金曜日마다 授業이 끝나면 바로 汽車를 타고 洪城으로 내려갔어요. 日曜日에 마지막 손님 相談을 마치면 바로 서울로 올라왔죠. 서울 自炊房에 와서는 밀린 日課 課題를 몰아서 했어요.

꿈을 좇아 大學에 갔는데 結局 專業 무당의 길을 選擇한 理由는 뭔가요.

그렇게 서울과 洪城을 오가는 生活을 몇 年 하다 보니, 只今까지 拒否한 運命에 最善을 다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暫時 이 일과 멀어졌을 때 많이 힘들기도 했고요. 그제야 저는 남들처럼 職場 生活, 特히 제가 願하는 廣告 일은 現實的으로 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죠. 廣告 일은 週末 勤務도 많은데 週末마다 新黨을 가야 하니까요. 職場에 個人 事情으로 諒解를 求하는 것도 한두 番이죠.

7年의 記錄 映畫로 誕生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한 장면.

映畫 ‘時間을 꿈꾸는 少女’ 한 場面.

權 氏의 이 같은 젊은 날의 孤軍奮鬪는 映畫 ‘時間을 꿈꾸는 少女’에 고스란히 담겼다. 平日엔 大學生, 週末엔 巫女로 사는 二重生活부터 巫俗人이란 運命 代身 廣告 企劃者를 꿈꾸는 變化無雙한 心理를 모두 그린다. 이 映畫를 演出한 박혁지 監督은 한 인터뷰에서 “2015年부터 2022年까지 긴 時間을 들여 映畫를 完成했다. 平凡한 學生과 非凡한 巫女(巫女)를 넘나드는 主人公 ‘수진’의 모습을 담기 위해 남다른 努力이 必要했다”고 밝혔다. 權 氏의 日常과 巫俗일은 쉽게 區分할 수 없는 領域이었다. 映畫에선 權 氏와 할머니의 아찔한 葛藤도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포스터.

映畫 ‘時間을 꿈꾸는 少女’ 포스터.

撮影이 7年이나 걸렸다고요.

元來는 2年만 撮影할 생각이었어요. 2015年에 始作했으니 2017年에 끝날 豫定이었죠. 監督님 提案도 “演出이 必要 없고 2年 동안 季節마다 한 番씩, 總 여덟 番 오겠다”고 해서 承諾한 거예요. 映畫를 찍다 제가 大學에 入學하니 監督님은 새내기 모습을 담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動機들에게도 事情을 말하지 못했던 터라 撮影에 對한 負擔이 컸죠. 結局 이런저런 힘든 일이 겹쳐 2016年 6月에 撮影을 中斷했어요. 1學年 1學期가 끝난 直後였죠.

그래도 無事히 映畫 한 篇이 完成됐네요.

撮影을 멈추고 3年이 지나자 進路에 對한 생각이 整理됐어요. 專業 무당이 되기로 決心한 거죠. 할머니와 相議 끝에 監督님께 電話했어요. “제 파일 아직 남아 있나요?” 하면서(웃음). 監督님이 “그걸 어떻게 버려” 하시더라고요. 그 길로 다시 撮影을 始作했죠.

이쯤 되니 監督님이 映畫 製作을 始作한 契機가 궁금하네요.

‘진실게임’을 보고 只今의 제 모습이 궁금했대요. 그 아이는 어떻게 컸을까, 只今도 그 일을 할까 싶어 찾아오셨다고 해요. 마침 當時 저는 進路에 對한 苦悶이 컸고요. 監督님은 巫俗人이기 前에 1名의 平凡한 靑春인 제 모습을 담고 싶어 했어요.

撮影에 應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傳하고 싶었나요.

처음엔 點을 보고 굿을 하는 專門的인 무당의 面貌가 드러났으면 했어요. 完成된 映畫를 보니 그런 場面은 거의 없더라고요. 總 5分 程度(웃음)? 처음엔 “映畫가 뭐 이래요!” 하며 監督님께 아쉬움을 吐露했는데, 開封하고 나서 사람들의 反應을 본 다음에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正確히 말하면, 映畫를 두고 “占집 弘報 아니냐”는 댓글이 올라오니 더 그렇더라고요. 차라리 偏見을 바꾸려면 이 映畫처럼 저 自身과 할머니, 그리고 社會에서 겪은 葛藤을 보여주는 게 大衆과 더 가까워지는 方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結果的으로 監督님께 感謝하고 있어요.

平凡함을 꿈꾸는 少女

映畫는 神技가 느껴진다는 한 손님을 相談하는 場面으로 幕을 내린다. 權 氏는 그를 두고“신을 받아야 한다”고 斷乎하게 말했지만 손님이 자리를 뜨자 한참을 苦悶한다. 그리고 그는 “나도, 저 사람도 이것 말고 答이 없을까” 싶었다며 그 場面의 뒷이야기를 밝혔다.

함께 大學을 다닌 同期들은 잘 지내나요.

廣告 會社, 大企業, 放送局 같은 다양한 分野에서 活動해요. 가끔은 ‘내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죠. 그럴 때면 代理 滿足하는 셈 치면서 마음을 便安하게 가지려고 해요.

그런데도 욕심나는 게 있나요.

平凡한 家庭을 꾸리고 싶어요. 映畫 題目인 ‘時間을 꿈꾸는 少女’엔 제가 꿈꾸는 平凡함의 意味도 들어 있어요. 普通 무당이라고 하면 家庭不和나 事業 失敗 等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할머니의 도움으로 大學까지 卒業했으니 穩全하게 家庭도 꾸리고 싶어요(웃음).

주어진 運命을 씩씩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印象的이에요.

分明히 運命은 있지만 조금씩은 바꿀 수 있어요. 저도 運命을 아예 거스르眞 못해도 最大限 남들처럼 平凡하게 살려고 努力해요. 重裝備 關聯 資格證 取得에 挑戰한다거나 中國語를 배우는 等의 色다른 趣味를 가지려고 하죠. 事實 무당은 워라밸이 쉽지 않은 職業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더 積極的으로 스트레스를 풀 方法을 찾아야 해요. 現在는 國家無形文化財 第104號 서울새남굿 履修者 試驗에 超集中하고 있어요. 지난해 末에 傳授者까지 따서 3年 뒤에는 履修者 試驗을 볼 수 있어요.

窮極的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요.

어릴 땐 저를 둘러싼 偏見에 傷處를 많이 받았어요. 只今은 제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慰安을 삼아요. 그래서 힘든 이들로부터 번 돈을 그들에게 다시 베풀고 싶어요. 어릴 때 冊을 좋아했는데 시골 圖書館엔 冊이 많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圖書?山間 地域에 圖書館을 세우고 싶은데, 그게 힘들다면 疏外된 아이들을 위해 冊이라도 잔뜩 寄附하고 싶어요.

#巫俗人 #MZ世代 #時間乙꿈꾸는소녀 #여성동아



  • 推薦 0
  • 댓글 0
  • 目次
  • 共有
댓글 0
닫기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