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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 3幕’ 金上珉 이롬 代表|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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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 3幕’ 金上珉 이롬 代表

健康食의 패러다임 바꾼다

EDITOR 최호열 記者 정재연

2020. 03. 03

‘황성주 生殖’으로 有名한 이롬의 새 代表理事가 殊常하다. 지난 1月 就任한 金上珉 代表理事는 靑年 NGO 活動家 出身으로 19代 國會議員을 지내는 等 언뜻 專門經營人과는 距離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直接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내 왜 그여야만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에디터가 金上珉 이롬 代表理事를 처음 만난 건 2013年 初였다. 當時 그는 初選議員이었지만 大統領職引受委員會 靑年特別委員會 委員長을 맡으며 政治權과 言論의 注目을 한 몸에 받았다. 當時 “金上珉이 없었으면 ‘大統領 박근혜’도 없었다”는 評價가 나올 程度로 朴槿惠 大統領 當選의 一等 功臣이었다. 박근혜에게 가장 脆弱한 部分이던 靑年層을 끌어들이는 데 크게 寄與했기 때문이다. 

只今은 비록 ‘憲政 史上 最初로 彈劾당한 大統領’이 되었지만, 그래도 朴槿惠 政府의 成果를 꼽자면 斷然 ‘所得連繫型 半값 登錄金’ 實現일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大學 登錄金은 大學生들만의 問題가 아닌 大學生 子女를 둔 50代 家長들에게도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 金上珉 前 議員은 ‘半값 登錄金’을 박근혜 靑年 公約 1號로 만들었고, 2年 만에 現實化하며 國民의 家計 負擔을 크게 덜어주었다. 大韓民國 國會議員 議政 對象도 受賞했다. 2015年엔 아나운서 出身의 放送人 김경란 氏와 結婚하며 1億餘원의 結婚 祝儀金을 어린이財團에 寄附해 世間에 話題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塞翁之馬라 했던가. 人生은 恒常 좋은 일만 繼續되는 건 아니었다. 2016年 第20代 總選에서 落選한 데 이어, 結婚 3年餘 만에 離婚 消息이 傳해졌다. 以後 한동안 近況을 接할 수 없었던 그를 지난해 1月 다시 만날 機會가 있었다. 그는 母校인 아주대大學院에서 藥學 碩士課程을 밟고 있으며, 황성주 生殖으로 有名한 이롬에서 副會長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아주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그때만 해도 그의 行步를 政治 再開를 위한 숨 고르기 程度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初 그에 關한 消息을 偶然히 接하게 되었다. 首席으로 碩士 學位를 받은 데 이어 博士課程(아주대大學院 藥學科)에 合格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롬 經營을 總括하고 責任지는 代表理事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政治 再開를 위한 履歷 次元이 아닌 듯싶다. 뜬금없이 藥學을 工夫하고, 專門經營人으로 變身한 理由가 궁금했다. 


“政治보다 어려운 건 없는 것 같아요”

이롬과는 어떤 因緣이 있었나요. 

이롬 會長인 황성주 博士님과는 아주 오래된 因緣이에요. 大學 時節 聯合동아리(CCC) 先輩셨으니까요. 大學도, 하는 일도 서로 달랐지만 黃 博士님이 워낙 有名하셨고 훌륭한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聯合동아리 活動을 하면서 因緣이 닿을 機會가 있었죠. 서로 통하는 部分도 많았고요. 제가 政治를 그만두고 藥學을 工夫하고 있을 때 “實力을 더 단단하게 쌓으면서 企業人으로 變身해가는 時間을 가지면 어떻겠냐”며 이롬 副會長 자리를 提案하셨어요. 참 感謝한 일이었죠. 무엇보다 저를 믿어주셨으니까요. 企業人으로서의 經驗이 不足했지만 저의 長點을 높이 봐주시고 지난 삶에 對한 眞情性과 리더십을 認定해주신 거죠. 人生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博士님이 가진 事業 哲學과 目標 等에 對한 期待와 믿음이 있어 하겠다고 한 거죠. 



利潤을 追求하는 會社 經營은 NGO 活動이나 政治와는 全혀 다른 分野인 듯한데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NGO 活動家로 始作해 30代 大部分을 NGO 事業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NGO 活動家는 公的 利益을 爲해 다양한 活動을 하고 그 結果物을 社會에 還元하는 일을 합니다. NGO 事業家는 거기에 더해 그런 活動이 持續될 수 있도록 體系化하고 收益을 創出하는 일을 합니다. 一般 事業은 利潤을 極大化하는 데 集中하고 그 利益을 事業 當事者와 株主들과 나누지만, NGO 事業은 利潤이 公的 活動을 위해 다시 쓰입니다. 政治도 事業家的 마인드와 體系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豫算도 잘 짜고, 效率的 構造와 시스템도 만들어야 하고, 全 世界 經濟 戰爭에서 살아남을 只今과 未來의 먹거리를 잘 開發해 育成하고, 人材들도 키워야 해요. NGO든 政治든 事業이든 形態와 目的은 다르지만 모두 훌륭한 經營 能力과 리더십에 따라 結果가 左右되는 건 똑같습니다. 核心은 分野를 넘어 리더십과 經營의 能力이죠. 

NGO 事業 經驗이 있다고 해도 이롬은 規模 面에서 次元이 다를 텐데요. 그에 따른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政治보다 어려운 건 없는 것 같아요(웃음). 事業도 쉽지는 않죠. 하지만 事業은 데이터가 있어 어느 程度 인풋에 對한 아웃풋을 豫測할 수 있어요. 또한 去來 會社 間에, 職員들 間에 서로 協力하고 ‘윈윈’하겠다는 마인드가 바탕에 깔려 있고요. 그에 비해 政治는 이기고 지는 게임의 論理가 더 크게 作用해요. 이긴 쪽이 結果物을 獨占하려는 傾向도 强하고요. 갑자기 생각도 못 했던 게 툭 튀어나와 이제껏 했던 努力이 물거품이 되는 境遇도 茶飯事고요. 政治에 비해 事業은 問題를 正確히 診斷하고 努力하면 解決策이나 結果物이 거의 제대로 나온다는 點에 魅力을 느끼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代表理事로 就任하신 지 100日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어떤 일을 했나요. 

지난해부터 競技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럴 때 가장 손쉽게 企業 損失을 줄이는 方法은 人力을 構造 調整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 方法은 매우 危險합니다. 한 家族의 삶과 生存에 큰 影響을 주기 때문이죠. 黃 博士님의 哲學과도 어긋나는 方法이죠. 그래서 解雇 없이, 비즈니스的인 調整을 많이 試圖했습니다. 군살을 빼는 거였죠. 그동안 慣行처럼 處理하던 原價 算定, 手數料 支給 等을 再點檢해 아깝게 새나가던 돈을 줄였습니다. 그렇게만 했는데도 20億원 程度의 費用이 節減됐습니다. 

單純히 經營 收支 改善이 目的이라면 會計 專門 CEO를 迎入했겠죠. 황성주 會長이 金 代表에게 뭔가 더 期待하는 게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이롬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황성주 博士님 아직 살아 계셔?” 하고 물어봅니다(웃음). 살아 계시다고 하면 “年歲가 많으시겠다”고 해요. 黃 博士님은 올해 63歲로 젊으세요. 워낙 젊은 時節부터 有名하셔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30代 時節부터 白髮인 博士님의 머리 色도 한몫했지만요. 이롬은 많은 분들의 사랑 德分에 草創期 時節 以後 廣告를 一切 하지 않고 製品力 하나로만 成長해왔습니다. 하지만 時代가 變하면서 젊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重要해졌습니다. 黃 博士님도 經營에 對한 大革新과 世代交替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던 中에 저와 因緣이 닿았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役割은 이롬을 더 젊게 革新해서 다양한 年齡帶의 消費者들이 이롬의 健康食을 接하고, 맛있고 幸福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팔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먹이기 위해 만든다”

生殖에 對한 槪念조차 없던 1999年 設立된 이롬은 生殖과 豆乳라는 健康 製品으로 始作해 只今은 年賣出 1千億원이 넘는 代表的인 健康食品 會社로 成長했다. 製品群도 LED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子會社인 이롬플러스에서 販賣하는 LED 마스크는 식약처로부터 最高 等級인 3等級 醫療機器로 許可를 받은 唯一한 製品이기도 하다.

이롬은 經營 哲學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롬은 같은 建物을 쓰는 사랑義病院이 그 母體라 할 수 있습니다. 主로 癌患者들을 케어하는 病院인데요. 抗癌 治療는 抗癌劑 投與로 體力과 免疫力이 急激히 떨어지기 때문에 正말 좋은 飮食과 營養素를 攝取해야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抗癌 治療 副作用으로 飮食을 잘 攝取하지 못해 營養失調나 免疫力 低下로 死亡에 이르는 境遇가 많습니다. 이런 患憂에게 어떻게 營養을 쉽고 고르게 攝取하게 할 수 있을까 苦悶하다가 만든 것이 황성주 博士님의 方式으로 科學化한 生食입니다. 또한 質 좋은 植物性 蛋白質을 먹을 수 있도록 國産 콩을 使用해 두誘導 만들었지요. 國産 콩은 비싼 데다 價格 變動 幅도 커 豆乳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利益도 거의 없고요. 그래서 제가 돈이 안 되는 國産 콩 豆乳를 왜 파냐고 물었더니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이기 위해 만든다”고 하시더군요. 患者들이 좋은 豆乳를 먹어야 하는데,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먹이기 위해 만들기 때문에 製品 質이 當然히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健康을 위해 먹으면 좋고, 안 먹으면 오히려 損害인 食品인 것이죠. 神奇한 건, 顧客들이 鬼神같이 아는 것 같아요. 저희 會社 國産 콩 豆乳가 國産 콩 豆乳 市場 占有率에서 壓倒的인 1等을 차지하고 있답니다. 한 달에 1千萬 팩이 나가고 있으니까요. 

社會 貢獻度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利益의 社會的 還元에 對한 槪念이 明確한 會社입니다. 會社 設立 當時부터 每年 純利益의 10%를 社會에 還元하고 있습니다. ‘國際사랑義奉仕團’을 통해 손길이 必要한 國內外 이웃, 疏外받는 어린이, 靑少年 救護 活動 等을 꾸준히 進行하고 있습니다. 黃 博士님이 우간다 쿠미大學校 理事長을 맡고 있어 아프리카를 中心으로 全 世界 脆弱 地域에 다양한 敎育 支援 事業, 醫療 支援 事業도 進行하고 있습니다. 사랑義共同體에 所屬되어 있는 사랑醫病院, 꿈의학교, ‘冊앤꿈’ 讀書 클럽, 어린이집도 運營하고 있고요. 

大學院에서 藥學을 專攻해 博士課程까지 밟고 있는데, 理由가 있나요. 

議政 活動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분들의 所望은 大部分 素朴합니다. 健康하고 예쁘게 나이를 먹는 것이었어요. 100歲 時代라고 해서 壽命은 길어졌지만 그만큼 健康하지 않게 사는 期間도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問題에 對한 政策的 解答을 찾기 위해 헬스케어 分野에 關心을 갖게 되었고, 關聯 專門家들과 疏通하기 위해 工夫를 始作했죠. 

그런 理由라면 꼭 藥學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었을 텐데요. 

2013年에 우리나라에서 超微細먼지의 危險性이 本格的으로 提起되었어요. 제가 國會 環境위를 통해 첫 番째 發議한 ‘國民健康 保護를 위한 微細먼지 對策 强化 促求 決議案’이 國會에서 可決되면서, 以後 關聯 法과 政策들이 만들어졌어요. 大學院을 進學하게 된 데에는 제가 始作한 微細먼지 解決方案을 찾아보자는 意味도 包含돼 있어요. 實際 微細먼지로부터 우리 몸을 保護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硏究하다 도토리가 效果가 크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걸로 碩士 學位까지 받았어요. 博士課程에서는 이 硏究를 더 심화시켜 도토리 抽出物로 微細먼지를 막는 製品을 開發하는 데까지 나아갈 생각입니다. 

會社 經營을 하면서 博士課程까지 可能할까요. 

오히려 硏究하기 더 좋은 與件입니다. 이롬에는 食品醫藥品安全處에서 認證받은 動物 實驗室과 細胞培養 實驗室, 分子生物學 實驗室 等 硏究에 必要한 最高의 施設과 人力을 갖춘 生命科學硏究院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藥學 博士課程이 會社의 硏究力을 增進시키고 共同 硏究 等을 통해 많은 시너지를 發生시킬 것으로 期待하고 있습니다. 이롬의 設立者인 황성주 博士님은 醫學 博士고, 代表理事는 藥學 博士가 되면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政治는 社會와 國家가 나를 必要로 할 때 해야 하는 일”

이롬을 만든 황성주 박사(왼쪽)와 함께한 김상민 대표이사. 두 사람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같은 경영 철학을 갖고 있다.

이롬을 만든 황성주 博士(왼쪽)와 함께한 金上珉 代表理事. 두 사람은 企業의 利潤을 社會에 還元해야 한다는 같은 經營 哲學을 갖고 있다.

私的인 質問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連이어 落選과 離婚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웃음) 살다 보면 豫想치 못하게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나쁜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過程들이 自身에게 滋養分이 될지, 쓴 뿌리가 될지는 本人의 選擇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人生살이라는 게 좋은 經驗만이 藥이 되고 나쁜 經驗이 꼭 毒이 되지만은 않는 것 같거든요. 저는 요즘 完全히 새롭게 열린 只今의 삶에 하루하루 感謝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分野에 挑戰하고 새로운 成就를 이루며 산다는 건 참 가슴 벅찬 일이죠. ‘오늘이 幸福할 수 있고, 來日이 期待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經驗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지난 時間의 經驗들이 人生의 貴한 藥이 되고 滋養分이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計劃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健康해졌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위해 藥學 博士課程 工夫도 始作하게 되었고 이롬의 代表理事도 되었으니 現在 맡은 바에 專心을 바쳐 最善을 다하려 합니다. 또 그동안 이롬을 生殖, 豆乳, 食品會社로 많이 사랑해주셨는데 이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더욱 젊어진 헬스케어 바이오 會社로 업그레이드되어 사람들과 더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도록 努力하려 합니다. 이番 인터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롬이 알려질 수 있는 機會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다시 政治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슬쩍 물었다. 

“생각해보면 政治는 제가 選擇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選擇받아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社會와 國家가 저를 必要로 할 때 할 수 있는 일인 거죠. 只今은 좋은 企業人이 되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只今 내가 해야 할 일을 最善을 다해 하다 보면 그것이 滋養分이 되고 열매가 되어 다시 社會와 國民을 위해 일하게 되는 選擇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家庭을 다시 꾸리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只今의 삶을 熱心히 살다 보면 運命的인 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繼續 혼자 살 것은 아니니까요(웃음).” 

逆轉에 逆轉을 거듭하며 사는 게 人生이라지만, 이쯤 되면 金上珉 이롬 代表理事의 人生 自體가 한 篇의 잘 짜인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다음 스토리가 어떻게 展開될지 궁금해진다.

寫眞 홍중식 記者 디자인 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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