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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氣(王氣) 서린 현대그룹 桂洞社屋 터|週刊東亞

週刊東亞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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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氣(王氣) 서린 현대그룹 桂洞社屋 터

[안영배의 웰빙 風水] 財閥 創業主들 ‘땅의 歷史’ 重要視… 益善洞 韓屋거리 豐饒의 知己(地氣) 가득

  • 안영배 美國 캐롤라인臺 哲學科 敎授(風水學 博士)

    入力 2024-01-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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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 일대는 왕의 기운이 담긴 터다. [뉴시스]

    서울 종로구 季冬 현대그룹 社屋 一帶는 王의 기운이 담긴 터다. [뉴시스]

    땅도 좋은 땅과 나쁜 땅이 있다. 땅 自體는 좋고 나쁠 게 없지만, 사람이 땅을 對하는 瞬間 길凶의 意味가 附與된다. 사람에게 肉體的·精神的으로 利로운 기운을 주는 땅을 明堂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곳을 凶黨이라고 부른다.

    風水는 땅에서 나오는 기운을 解釋하는 行爲다. 땅 기운을 直接的으로 解釋하는 것은 風水 專門家의 몫이라 하더라도, 一般人도 明堂과 凶黨을 區別할 수 있는 좋은 方法이 있다. 바로 터의 來歷을 살펴보는 것이다.

    不動産으로 富를 蓄積한 國內 財閥 創業主들은 땅에 對한 關心이 남달랐다. 그들은 터를 選擇할 때 ‘땅의 歷史’도 重要視했다. 代表的인 事例로 삼성그룹을 象徵하는 建物 中 하나인 옛 삼성생명 本館(現 富榮太平빌딩) 터다. 이곳은 朝鮮 高宗 때 近代式 白銅錢을 찍어내던 典圜局이 있던 자리였다. 只今도 富榮太平빌딩과 바로 이웃한 新韓銀行 사이에는 ‘典圜局 터’라는 標識石이 세워져 있다(서울시 中區 태평로2街 69-20). 1984年 이병철 삼성그룹 創業主는 部를 代表하는 造幣機關 터에 建物을 세움으로써 땅의 財物 기운을 누리려 했던 것으로 解釋된다.

    삼성그룹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인 옛 삼성생명 본관(현 부영태평빌딩)은 조선 고종 때 근대식 백동전을 찍어내던 전환국이 있던 자리였다. [안영배 제공]

    삼성그룹을 象徵하는 建物 中 하나인 옛 삼성생명 本館(現 富榮太平빌딩)은 朝鮮 高宗 때 近代式 白銅錢을 찍어내던 典圜局이 있던 자리였다. [안영배 提供]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會長 亦是 미래에셋 本社 敷地를 物色할 때 朝鮮時代 돈을 찍어내던 鑄錢所 터 中 한 곳을 選擇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年에 竣工된 미래에셋센터원빌딩(서울市 中區 수하동 67)李 바로 그곳이다.

    王氣 터에 들어선 현대社屋

    터를 使用하기 前에 땅의 來歷을 살펴보는 行爲는 매우 오래된 傳統이기도 하다. 朝鮮 成宗 때인 1477年 當時 勢道가 임원준은 王氣(王氣; 王의 기운)가 서린 터에 子孫의 집을 지었다. 임원준이 집터로 選擇한 곳은 이미 40餘 年 前인 世宗 임금 때 地官 최양선이 景福宮, 昌德宮보다 더 나은 ‘나라의 名當’이라고 豪言壯談했던 터였다. 當時 이곳에는 나라의 外交文書를 管掌하는 承文院이 자리 잡고 있었다. 只今의 鍾路區 季冬 현대그룹 社屋 一帶가 바로 그곳이다.



    이 터에 對한 事緣을 더 들여다보자. 當時 風水地理에 關心이 많았던 世宗은 朝廷 大臣들에게 최양선의 主張을 檢討해 보도록 指示했다. 正統 性理學만 崇尙하던 維新(儒臣) 大多數는 최양선을 ‘妄靈된 者’로 몰아붙였다. 風水說 같은 잡된 말에 眩惑되지 말라고 世宗에게 諫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世宗은 承文院 터의 기운을 받아 英雄豪傑이 나오면 國家 社稷에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世間의 所聞을 無視할 순 없었다. 世宗은 代案으로 100餘 間 規模의 別宮 建設을 指示했으나 大臣들은 이마저 反對했다. 結局 世宗은 아예 承文院까지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면서, 이 터를 그 누구도 쓰지 못하게 하는 쪽으로 結論지었다.

    한동안 ‘잊힌 땅’이었던 承文院 터는 成宗 때 이르러 다시 注目받게 된다. 임원준의 孫子가 先王인 睿宗의 딸 賢淑公主와 婚禮를 치른 後 이곳에 新婚집을 지었던 것이다. 이 일이 알려지자 卽刻 投書가 날아들었다. “임원준이 宮闕을 지을 땅에 子孫의 집을 짓고 있으니 이는 反逆과 같은 罪”라는 上疏文이었다. 急해진 임원준은 成宗에게 그곳이 吉地가 아님을 납득시켜야 했다. 임원준은 “이 땅이 일찍이 벼락을 맞은 바 있고, 또 時速(時俗)에 獨女穴(獨女穴)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살다가 일찍 寡婦 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고 辨明했다. 나라의 대명당人 承文院 터가 猝地에 寡婦를 輩出하는 獨女血路 遁甲해버렸다.

    事實 임원준은 風水地理說에 매우 밝았던 人物이다. 承文院 자리가 흉지였다면 피붙이 孫子가 新婚집을 차리도록 放置하지는 않았을 터다. 成宗도 임원준이 함부로 對할 수 없는 外戚이기에 ‘믿어주는’ 쪽으로 事態를 收拾했던 것으로 보인다. 以後 이 터는 觀象監, 興宣大院君의 조카 완림軍의 집터, 휘문高校 等으로 活用되다가 1983年 현대그룹 創業主 정주영 會長에 依해 현대그룹 계동사옥으로 變身했다.

    현대그룹을 象徵하는 이곳에 터를 마련한 以後 故(故) 정주영 會長은 旺氣를 꿈꾸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1992年 大統領 選擧 出馬를 위한 統一國民黨 創黨, 1998年 ‘소떼 訪北’ 等 對北事業 等을 構想했던 것이다. 그러나 承文院 터의 旺氣를 톡톡히 누린 이는 尹潽善 前 大統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社屋에서 直線距離로 不過 300餘m 떨어진 윤보선 家屋(1870年 建立)에서 大統領을 排出했기 때문이다. 實際로 이 一帶는 기운이 旺盛한 名當 穴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것도 事實이다.

    豐饒 明堂에 韓屋 分讓한 朝鮮의 디벨로퍼

    ‘조선의 건축왕’이라 불리던 정세권에 의해 탄생한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안영배 제공]

    ‘朝鮮의 建築王’이라 불리던 정세권에 依해 誕生한 서울 종로구 益善洞 韓屋마을. [안영배 提供]

    對日抗爭機 時節 ‘朝鮮의 建築王’이라 불리던 정세권度 집을 지어 팔면서 터의 來歷을 活用했던 것으로 보인다. 늘 무명 두루마기를 걸치고 다니던 그는 檀君을 받드는 大倧敎 信徒이자 民族運動家였다. 그는 不動産으로 돈을 벌면서도 한글 지킴이人 朝鮮語學會와 朝鮮物産奬勵會의 든든한 財政的 後援者로 活動했다.

    民族意識이 剛했던 정세권은 용산과 明洞에서 主로 居住하던 日本人들이 景福宮과 昌德宮 等 宮闕들이 들어선 淸溪川 北쪽으로까지 浸透해 들어오는 것을 容納하지 않았다. “사람 數가 힘”이라고 믿은 그는 이 一帶 땅을 사들여 20~30餘 坪 規模의 작은 韓屋들을 지어 朝鮮의 中産層 및 庶民들에게 싸게 팔았다. 이런 式으로 다닥다닥 붙은 ‘퓨전 韓屋’ 마을들이 종로구 益善洞과 北村 이곳저곳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는 아무렇게나 땅을 사들인 게 아니다. 沒落한 兩班들의 땅과 韓屋을 集中的으로 攻掠했다. 그는 1929年 高宗의 庶子 완화군의 私邸인 완화궁 터(종로구 益善洞 33)를 開發한 以後, 特히 益善洞 166番地 一帶를 注目했다. 이곳은 元來 ‘强化 도령’ 哲宗 임금의 아버지 전계大院君의 私邸인 累東宮 터로 哲宗이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정세권은 땅을 買入한 뒤 改良 韓屋들을 지어 朝鮮人들에게 分讓했다. 옛날부터 明堂으로 注目을 받았던 이곳은 朝鮮 사람들에게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只今의 鍾路區 益善洞 韓屋마을이 誕生한 背景이다. 現在 100餘 채의 韓屋이 올망졸망 들어선 이곳은 2018年 서울市 韓屋 保存 政策에 따라 ‘韓屋密集地域’으로 指定됐다. 益善洞 韓屋거리를 걷다 보면 땅에서 豐饒의 知己(地氣)가 가득하다. 거리를 散策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便安해짐을 느낄 수 있을 程度다. 이 거리는 宮中 料理, 宮中 韓服 等 多樣한 宮中 文化가 흘러나온 곳이기도 하다. 日帝에 依해 朝鮮王朝가 解體되면서 宮闕 밖으로 나온 宮人들이 이곳을 中心으로 活動했기 때문이다.

    종로구 가회동과 삼청동 等 北村 韓屋마을도 정세권의 作品이다. 北村 韓屋歷史觀에 가면 정세권이 지은 朝鮮집의 構造를 살펴볼 수 있다. 北村 亦是 朝鮮의 王族, 兩班 家門, 權力層들이 集中的으로 살았던 곳으로 明堂 기운이 葡萄송이처럼 서려 펼쳐져 있다. 이처럼 그는 歷史的 來歷이 確實한 곳을 開發함으로써 朝鮮의 自尊心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不動産 開發에도 큰 成功을 거두었다. 風水는 사람의 삶을 담고 있는 스토리(歷史) 現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땅의 來歷을 들여다보면 그 땅의 未來 價値도 把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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