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엔비디아의 時代에 살고 있습니다(上)[김성모 記者의 神秘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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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正 2024.03.16. 午後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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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新(新) 비즈니스 가이드
‘神秘월드’는 世界 各國에서 世上을 이롭게 이끄는 革新的인 企業과 새로운 情報技術(IT) 消息들을 紹介합니다. ‘破壞的 革新’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主要 企業까지, 빠르게 變해가는 ‘新(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傳達하겠습니다.
● 痲藥보다 求하기 힘든 ‘H100’

“只今 (엔비디아의) 그래픽處理裝置(GPU)를 求하기가 痲藥보다 어렵다.”

美國 半導體 企業 엔비디아가 全 世界 情報技術(IT) 企業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主力 製品이 人工知能(AI) 硏究·開發의 必需財로 꼽히면서 品貴 現象을 빚을 程度로 需要가 몰리고 있어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最高經營者(CEO)는 지난해 5月 美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한 行事에서 엔비디아의 GPU 不足에 對해 言及했다.

品貴 現象은 現在 進行形이다. 現在 엔비디아의 最高 仕樣 GPU인 ‘H100’은 6個月은 기다려야 받아볼 수 있다. IT 企業들은 기다려서라도 받겠다는 狀況이다. 글로벌 市場 調査 機關 퓨처럼그룹의 首席 애널리스트인 대니얼 뉴먼은 “顧客들은 엔비디아 競爭社에서 製品을 購買하기보다 엔비디아 것을 기다리고 있다”며 “6個月이 아니라 1年 6個月을 기다려서라도 받을 것”이라고 强調했다.

이 같은 雰圍氣는 엔비디아 實績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賣出이 609億 달러(藥 80兆3900億 원), 營業利益은 329億 달러(藥 43兆4300億 원)로 前年보다 各各 125%, 311% 增加했다고 지난달 22日(現地時間) 밝혔다. 4分期(11~1月) 營業利益은 前年 같은 期間보다 無慮 983%나 뛰었다. 市場 展望値를 넘어선 數値다.

엔비디아는 “H100과 같은 서버用 AI 칩 販賣價 實績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賣出의 大部分을 차지하는 데이터센터 事業도 409% 成長했다. 實績 發表 直後 뉴욕證市 時間外去來에서 엔비디아의 株價는 9.5%까지 增加했다.

엔비디아의 株價는 連日 上昇勢다. 年初 470달러 水準에서 이달 8日 974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6月 1兆 달러(藥 1310兆 원) 水準이었던 엔비디아의 企業價値는 2兆 달러(藥 2620兆 원)마저 넘어섰다. 엔비디아는 世界 最大 石油企業인 사우디 아람코를 제치고 世界에서 세 番째로 비싼 會社가 됐다. 1位와 2位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이다.

뉴스트리트리서치 피에르 페라구 애널리스트는 “빅테크 業界에서 가장 强力한 人物들도 엔비디아 CEO인 젠슨 黃에게 正말, 正말, 正말 鄭重하게 行動하고 있다. 모두가 엔비디아를 화나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GPU가 뭐길래, 얼마나 重要하면 이렇게 亂離일까. 엔비디아는 어쩌다가 이토록 重要한 製品을 開發하게 됐을까.



● 김밥天國을 좋아하는 男子

엔비디아를 創業한 젠슨 黃 CEO는 1963年 2月 17日(籠球 皇帝 마이클 조던과 같은 날 出生) 臺灣의 南部 地域에서 태어났지만, 大部分을 海外에서 살았다. 캐리어(에어컨 會社) 엔지니어였던 아버지가 ‘機會의 땅’에서 젠슨 黃이 成長하기를 希望해서다. (黃이 4살 무렵 美國 뉴욕에 갔다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이 같은 다짐을 했다고 한다)

젠슨 黃의 父母는 黃이 9살이 되자 美國 켄터키州 오네이다의 低廉한 寄宿學校에 입학시켰다. 黃은 “오네이다 마을에 온 最初의 中國人”이라고 回想했다. 登錄金이 低廉한 데에는 다 理由가 있었다. 사고 친 아이들이 모이는 特殊學校였기 때문. 矯導所에서 막 出所한 그의 룸메이트는 일곱 군데의 刺傷(刺傷)에서 回復 中이었다. 黃은 學校에서 人種 差別과 따돌림을 當했는데(칼에 찔린 적도 있다고 函), 挫折하지 않고 化粧室 淸掃를 도맡아 했다. 自身보다 8살 많은 룸메이트에게는 數學을 가르쳐줬다.

家庭形便 탓에 몇 年이 지나서야 젠슨 黃의 父母가 美國에 건너왔다. 家族은 워싱턴州를 거쳐 오리건州 포틀랜드 郊外로 移徙했다. 當時 公立學校에 다니던 黃은 學業에서 才能을 보여(특히 數學) 남들보다 2年 일찍 오리건주립대에 入學했다. 專攻은 電氣工學.

半導體 産業에 발을 담근 건 1985年 大學을 卒業하고 나서다. 黃은 自身만큼 電氣工學을 사랑한 아내를 만나 실리콘밸리로 移徙했다. 半導體 企業 AMD(오늘날 엔비디아의 最大 라이벌)에 就業한 黃 CEO는 일과 學業을 竝行했다. 8年여 끝에 美 스탠퍼드대에서 電氣工學으로 碩士 學位를 받았다.

엔지니어 經驗을 쌓은 젠슨 黃은 몇 年 後 LSI로직이라는 브로드컴 子會社로 移職했는데, 그의 가장 큰 顧客社 中 한 곳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會社(자바 言語 開發)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였다. 1992年 碩士 學位를 마친 黃은 어느 날 썬에서 親하게 지내던 엔지니어들(크리스 말라코프스키, 커티스 프리엠)과 祝賀 자리를 가졌다.

黃은 自身이 좋아하는 ‘데니스(Denny‘s)’에서 親舊들을 보기로 했다. 데니스는 나초, 햄버거, 샌드위치 等 ‘美國式 白飯’을 파는 패스트푸드 체인店이다. 地點이 많고 24時間 營業해 ‘美國의 김밥天國’, ‘美國의 記事食堂’으로 불린다. 學窓 時節에 여기서 아르바이트했던 黃은 “이때 經驗이 外向的인 性格을 갖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그는 美 時事週刊誌 뉴요커와의 인터뷰도 데니스에서 했다.

이곳에서 셋은 運命을 바꿀 對話를 나눴다. 썬의 엔지니어들은 “職場生活이 재미없다”면서 ‘게임用 3次元(3D) 그래픽카드’를 함께 開發하자며 創業을 提案했다. 一般 PC나 비디오게임에서도 3D 技術을 活用할 수 있도록, 그래픽을 ‘加速(業務 處理 速度를 增幅)’하는 普及型 裝置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平素 게임을 좋아했던 黃은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當時 3D 그래픽에 關한 關心이 뜨거웠다. 映畫 ‘쥬라기 公園’이 곧 開封할 豫定이었다. 다만, 3D 그래픽은 쥬라기 公園 製作費 程度는 있어야 活用할 수 있는 ‘비싼 技術’이었다.

이들의 眼目이 대단한 理由는 對話를 나눈 時期가 1993年이었기 때문이다. PC(個人用 컴퓨터) 게임 市場 自體가 아직 存在하지도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95’는 1年 半 後에나 登場했다. 市場이 생겨나기도 前에 製品부터 떠올린 셈이다.

엔비디아 共同 創業者인 커티스 프리엠(寫眞 왼쪽부터), 젠슨 黃, 크리스 말라코프스키. (엔비디아)
● “우리 會社 廢業까지 30日 남았습니다”

세 사람은 실리콘밸리의 有名 벤처投資社人 歲퀘이아 캐피털 等에서 創業 資金을 支援받아 캘리포니아州 실리콘밸리에 事務室을 마련했다.

會社 이름부터 지어야 했다. 當時 이들은 첫 番째 그래픽 칩을 設計하고 있었는데, 作業 中인 파일을 ‘dot-NV’로 貯藏하고 있었다. ‘NV’는 ‘넥스트 버전(Next Version)’의 略字다. 세 사람은 ‘NV’가 包含된 單語를 찾기 위해 辭典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라틴語 ‘人비디아(Invidia)’를 發見했다. 그리스 神話에 나오는 ‘嫉妬의 女神’의 이름이다. 그렇게 最初의 그래픽카드 專門 會社 ‘엔비디아(Nvidia)’가 誕生했다.

그에게 事業은 數學만큼 쉽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처음 게임 機器用 그래픽 칩(카드)을 開發했는데 새로운 設計方式(아키텍처)을 擇했다가 쫄딱 亡했다. 3D PC 게임의 可能性을 본 것은 엔비디아만이 아니었다. MS는 윈도에서 開發者들이 3D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開發 生態系(DirectX)를 만들고 있었다. 開發者들은 윈도에서 直接 3D 그래픽을 具現하길 願했다. 엔비디아의 製品은 윈도 生態系에서 互換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開發者들이 ‘듣보雜’ 會社 製品에 關心 自體가 없었다.

엔비디아는 100餘 名의 職員 中 70%를 解雇해야 했다. 더 큰 問題는 ‘職員’이 아니라 ‘時間’이었다. 그래픽카드를 다시 設計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든 뒤 파운드리(除朝辭)를 오가는 테스트 過程에 通常 2年은 걸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競爭社들은 가만히 있을까.

엔비디아는 100萬 달러(約 13億 원)의 巨金을 들여 이 過程을 代身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뮬레이터)를 購買했다. 開發한 그래픽카드의 機能이 여러 PC에서 잘 作動하는지, 互換에는 以上 없는지 等을 빠르게 確認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檢證되지 않은 스타트업의 技術이었지만, 엔비디아에는 選擇의 餘地가 없었다.

엔비디아는 이를 통해 6個月 만에 두 番째 그래픽카드인 ‘RIVA 128’을 1997年 8月 선보였다. PC用 그래픽카드인 RIVA 128은 競爭社보다 1年 以上 앞선 製品이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금세 입所聞이 나면서 RIVA 128은 4個月 만에 100萬 臺나 팔렸다. ‘스타크래프트’ 出市 等 ‘게임 黃金期’로 불린 1998年 엔비디아는 410萬 달러(藥 54億 원)의 利益을 거뒀다. 다음 해 엔비디아는 美國 證市에 上場됐다. 黃은 “휘청거렸던 때가 여러 次例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무너뜨리기 가장 어려운 CEO라고 불립니다”라고 말했다.

參考로 RIVA 128 製品이 出市됐을 때 엔비디아에 남은 돈은 職員들 한 달 치 月給 程度였다고 한다. 以後 몇 年 동안 엔비디아는 職員 프레젠테이션 때 ‘우리 會社는 廢業까지 30日 남았다’는 말로 發表를 始作했다.

젠슨 黃 엔비디아 CEO가 데니스에서 食事하는 모습. 지난해 엔비디아의 企業價値가 1兆 달러를 突破했을 때 데니스가 소셜미디어에 이 寫眞을 올렸다. (데니스 인스타그램)
● 스타트업 代表가 TSMC에 보낸 便紙

黃이 自身을 ‘좀비 CEO’로 稱한 데는 單純히 事業 危機를 克服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CPU의 世上에서 GPU(Graphics Card, 그래픽카드)를 살려냈다는 意味이기도 하다.

젠슨 黃에 따르면 인텔은 엔비디아를 여러 次例 退出하려고 試圖했다. 黃은 인텔과 엔비디아를 ‘톰과 제리’에 比喩하면서 “인텔 近處에는 얼씬도 안 한다. 인텔이 가까이 올 때마다 나는 칩(GPU)을 들고 도망친다”고 말했다.

過去만 해도 GPU 市場은 틈새市場에 가까웠다. 當時 PC 市場은 훨씬 더 똑똑한 인텔의 中央處理裝置(CPU, Central Processing Unit)가 占領하고 있었다.

CPU는 사람이 디지털 機器에 特定 業務를 指示하면 이를 解讀하고, 制御하고, 計算하는 裝置다. 컴퓨터 ‘頭腦’라고 보면 된다. 인텔의 CPU는 1980年代 PC에 搭載된 以後로 거의 모든 分野에 使用됐다. 데이터 處理 市場에서 99%라는 어마어마한 占有率을 차지했었다. 인텔이 數十 年 동안 世界 最大 칩 製造業體로 자리할 수 있었던 理由다. (現在는 아님)

앞으로 言及할 유튜브 推薦 알고리즘과 구글의 廣告 推薦, 챗GPT 登場에서 엔비디아의 役割을 理解하려면 CPU와 GPU의 差異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

어렵고 複雜한 演算을 遂行하는 CPU는 次例대로 業務를 遂行하는 裝置다. 貯藏한 엑셀 파일을 불러오고, 인터넷을 實行하고, 動映像을 再生하는 作業을 CPU가 한다. 反面, GPU는 複雜한 數學 作業을 아주 작은 計算으로 나눈 다음에 ‘竝列 컴퓨팅’이라는 方式으로 한꺼번에 處理한다.

大型마트에 場을 보러 간다고 생각해보자. 쇼핑카트를 直接 밀면서 쇼핑하는 것이 CPU다. 마트 通路를 돌아다니며 적어 놓은 쇼핑目錄을 하나씩 집어넣고 計算臺로 간다. 빠르진 않지만, 相對的으로 正確하게 할 수 있다.

GPU는 여러 사람에게 손바구니를 쥐여주고 各自 사 올 것을 指示하는 槪念이다. 各自 흩어져 과일이나 化粧紙, 물, 고기 等을 담아온다. 손바구니에 TV나 靑素旗를 담아오긴 어렵지만, 크기가 相對的으로 작은 製品들을 빠르게(동시에 흩어져 가져오는 만큼) 쇼핑할 수 있다. 多量의 單純 業務를 遂行할 때, 相對的으로 正確度보다 速度가 重要할 때 GPU가 적합하다는 意味다.

처음 GPU가 비디오게임用으로 開發된 것도 이러한 理由에서다. 이미지 픽셀들을 하나하나 命令해 同時에 모니터에 出力해야 하기 때문이다. CPU도 게임用으로 活用은 可能하지만, 1秒當 畵面이 數十 番 以上 바뀌는 게임에서는 GPU가 더 적합하다. 美 블룸버그통신은 “엔비디아가 存在하는 동안 가장 重要한 것은 인텔에 依해 破壞되지 않는 것”이라며 “게임은 엔비디아가 GPU라는 틈새市場을 開拓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傳했다.

엔비디아가 RIVA 128로 50億 원 以上을 벌었지만, 아직은 스타트업 水準. 그런데, 이때 엔비디아는 臺灣 TSMC와 委託生産 契約을 맺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2017年 TSMC 創立 30周年 行事에서 祕密이 밝혀졌다. 엔비디아는 事業을 始作하고 TSMC에 繼續 接觸을 試圖했지만, 番番이 씹혔다. 젠슨 黃은 RIVA 128이 所期의 成果를 내고 나서 臺灣에 있는 모리스 窓 TSMC 創業者에게 直接 便紙를 써서 보냈다.

모리스 窓은 便紙를 읽자마자 젠슨 黃에게 電話를 걸었다. 黃과 職員들은 顧客에게 보낼 RIVA 128 製品이 以上은 없는지 手作業으로 테스트하느라 精神이 없는 狀況이었다.

처음 보는 電話番號에 黃은 “누구시죠?”라고 물었고, 모리스 窓은 自身이 누군지 밝히며 “便紙 잘 받았다”고 人事했다. 몇 秒 동안 電話에서 沈默과 歡呼聲이 共存했다. 事業을 始作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 代表가 李在鎔 三星電子 會長의 電話를 받았다고 想像해보자. 一旦 受話器를 막고 소리치지 않았을까. 딱 그 狀況이다.

둘이 通話한 다음 해에 엔비디아는 TSMC와 長期 委託生産 契約을 締結했다. 이때 맺어진 因緣이 現在까지 이어지고 있다. 엔비디아가 以後 내놓은 ‘怪物 GPU’들을 市場에 安定的으로 供給할 수 있었던 데에는 TSMC의 役割이 컸다.

1993年 엔비디아 事務室에서 엔비디아 共同 創業者인 커티스 프리엠이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모습. (엔비디아) 
● 엔비디아와 開發者들의 첫 連結고리 ‘지포스’

엔비디아는 RIVA 128을 繼續 업그레이드시켰는데, 1999年 公募展을 통해 그래픽카드의 이름을 지었다. ‘지오메트리 포스’를 줄인 ‘지포스(GeForce)’다. 이는 엔비디아의 첫 브랜딩 試圖였다. 結局, 지포스는 數年間 엔비디아를 代表하는 象徵이 됐다.

엔비디아는 1999年 8月 지포스 이름을 단 製品(지포스 256)을 선보였는데, 이 모델이 最初의 GPU(Graphics Card)로 꼽힌다. 以前에는 ‘그래픽카드’나 ‘그래픽칩’으로 불렸다. 지포스 256은 競爭社 GPU들보다 性能이 5倍假量 뛰어났다. 쉽게 말해, 競爭社보다 더 좋은 畫質을 더 빠르게 具現하는 技術을 내놨다는 意味다.

2000年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工夫하던 大學院生 이안 벅은 23個의 지포스 GPU를 連結해 ‘퀘이크’라는 게임을 즐겼다. 그는 “8K 解像度의 첫 番째 게임 裝備였다”며 “게임을 위한 裝備가 壁 한쪽을 통째로 차지했는데, 正말 아름다웠다”고 回想했다.

지포스 시리즈는 單숨에 게임用 그래픽카드 市場을 平定했다. 2013年(엔비디아 設立 20周年) 基準 全 世界 PC의 70%가 엔비디아의 GPU를 썼다. 엔비디아는 MS 콘솔 게임機 엑스박스(Xbox)에 GPU를 供給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年間 5億 달러(藥 6600億 원) 規模의 契約을 締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의 GPU가 다른 그래픽카드와 큰 差異를 보인 것 中 하나가 프로그래밍 道具인 ‘셰이더(Shader)’다. 照明, 立體感, 그림자 等을 開發者들이 直接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래밍 機能을 GPU(正確히는 지포스3)에 넣은 것. 엔지니어가 命令語를 넣는 日常 作業뿐만 아니라, 팔레트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創意性을 發揮해 畵面을 具現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技術 開發은 事業的인 側面에서도 意味가 크다. 하드웨어 性能뿐만 아니라 (우리 하드웨어에서만 作動하는) 소프트웨어를 構築해 差別化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아이폰뿐만 아니라 앱스토어를 만들어 開發者들이 各種 앱을 만들게 한 것과 類似하다. 엔비디아는 以後 開發한 프로그래밍 플랫폼 ‘쿠다(CUDA)’에서 이 같은 戰略을 極大化한다.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言語(CG)도 만들어 GPU 開發 生態系를 構築했다. 一角에서는 이때부터 ‘開發者’라는 槪念이 생겨난 것으로 본다.

엔비디아가 技術的으로나 事業的으로 뛰어났던 또 다른 理由는 獨步的으로 빠른 新製品 出市 間隔이다. 엔비디아는 코로나19 時期를 除外하고는 거의 6個月마다 性能이 向上된 새 製品을 선보였다. 反面, 1年 半에서 2年마다 새로운 것을 내놨던 競爭社들은 하나둘씩 조용히 사라졌다.

젠슨 黃 CEO가 엔비디아의 人工知能 슈퍼컴퓨터 ‘DGX-H100’을 顧客에게 傳達하기 前에 사인하고 있다. (엔비디아)    
● 巨大한 아르키메데스 지렛대

그런데, 게임用 裝置를 만들던 엔비디아는 어쩌다가 人工知能 分野에 뛰어들게 됐을까.

2000年代 初盤 엔비디아가 그래픽카드 市場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무렵 젠슨 黃은 스탠퍼드대의 한 量子化學 硏究院의 電話를 받았다. 그는 다짜고짜 “當身 德分에 오래 걸릴 硏究를 單番에 해치웠다. 感謝하다”고 人事했다.

分子 關聯 모델을 만들던 硏究員은 單純 演算에 時間을 虛費하고 있었다고 한다. 學校의 슈퍼컴퓨터를 利用해도 몇 주나 걸리는 作業이었다. (初期 슈퍼컴퓨터가 CPU의 性能 爲主로 構成돼 있었기 때문) 그런데 게임에 빠져 있던 아들이 單純 計算 作業이니 지포스(GPU)를 活用해보면 어떻겠냐고 提案했다.

硏究員은 家電製品 賣場인 프라이스에 가서 지포스 여러 個를 購買해 몇 時間 만에 演算을 해치웠다. 結果를 믿을 수 없었던 硏究員은 스탠퍼드대의 슈퍼컴퓨터에서 똑같은 作業을 遂行했다. 몇 週 뒤 나온 結果는 다르지 않았다.

黃은 이를 통해 게임 畵面 改善 以外에 GPU의 活用 可能性을 알아챘다. 그는 GPU를 ‘巨大한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라고 부르기 始作했다. 무거운 것(大規模 作業)을 들어 올릴 수 있는 GPU의 能力을 比喩한 것이다. GPU는 패턴과 關係를 認識하고, 推論하고, 豫測하는 能力을 發揮하기 始作했다. 最近 10年 동안 人工知能 速度가 100萬 倍 以上 向上된 背景에는 엔비디아의 GPU가 있었다.

事實, 엔비디아의 GPU는 人工知能 烈風이 불기 한참 前부터 우리 日常에 스며들어 있었다. 유튜브 映像 推薦, 인스타그램 피드, 구글 廣告 等이 全部 GPU를 活用한 알고리즘으로 作動한다. 韓國벤처創業學會長을 歷任한 전성민 嘉泉大 經營學 敎授는 “엔비디아는 처음에는 核心 顧客인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GPU 性能을 繼續 발전시켜나갔다. 그 德分에 알고리즘 推薦이나 AI 等 새로운 市場에서 돋보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勿論, 單番에 엔비디아가 이를 實現한 것은 아니었다. 人工知能 時代를 準備하는 10年餘 間의 過程이 있었다. 2012年 이미지 認識 大會에 參加해 世上을 놀라게 한 美 토론토대 硏究員들 이야기 亦是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엔비디아의 時代에 살고 있습니다(下)’ 便은 30日 紹介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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