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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이 묻고 臣下가 答하다: 明宗-양사언

내 잘못에 直言하는 사람을 곁에 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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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明宗이 “國家의 人材인 선비를 隆盛하게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는 말에 文人 양사언은 中國 皇帝의 告祀를 例로 들어 人材를 極盡히 待遇하고 人材가 거침없이 自己 뜻을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强調한다. 이를 實踐하기 위해서는 賃金이 첫째, 原則으로 人材를 이끌어야 하며, 둘째, 自身의 좋고 싫음을 아랫사람에게 내보여서는 안 되며, 셋째, 嚴한 스승의 直言을 들어야 한다고 助言한다. 오늘날 人材를 모으고자 하는 리더들이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1546年, 이제 막 寶位에 오른 明宗은 展示(殿試)에서 이런 問題를 냈다. “선비의 氣像은 나라의 根本 바탕이다. 선비가 隆盛한가, 衰弱한가에 따라서 國家의 興亡이 決定된다. … 우리나라는 선비의 紀綱을 重視하고 선비의 節槪를 激勵함으로써 그들의 氣像을 培養하기 위해 努力했지만 선비가 懦弱하고 구차스러워짐이 요즘보다 더 甚한 때가 없다. 禮儀가 行해지지 않고, 廉恥가 없으며, 氣槪와 節槪가 땅에 떨어지고 굽실대는 것이 風潮를 이뤘다. 선비가 이러하니 大體 나라는 누구를 依支해야 하겠는가?” 1

    선비는 在野에서는 批判的 知識人으로, 出仕해서는 官僚이자 政治家로 活動한다. 國家 經營의 主軸이 되는 人的 資源이라 할 수 있다. 옛말에 “나무가 서 있어도 말라 죽지 않는 것은 그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 있기 때문이고, 물이 흘러도 마르지 않는 것은 그것이 水原(水源)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나라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나라의 人材가 마르지 않게 만들어주는 存在가 바로 선비다. 그런데 이처럼 重要한 선비의 水準이 크게 낮아지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對해 後날 文人이자 書藝家로 名聲을 날린 양사언(楊士彦, 1517∼1584) 2 은 이렇게 答했다. “선비가 隆盛할 때는 邪慝한 것이 正義를 어지럽히지 못하고 그른 것이 올바른 것을 흐리게 하지 못하니 小人의 道가 消滅하고 君子의 道가 成大해질 것입니다.” 當然한 말이다. 나라의 核心 人材가 健康하면 自然히 그 나라도 健康하다. 인재가 能力에 더해 올바름을 追求하고 反省할 줄 알며 智慧와 氣槪가 있다면, 不正이나 不義는 자리하지 못할 것이다. 設令 잘못을 해도 이내 바로잡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健康한 人材가 넘쳐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비의 氣像을 드높이고 선비를 隆盛하게 만들려면 어떤 努力이 뒤따라야 할까? 양사언은 ‘한나라 高祖가 魯나라를 지날 때 孔子의 祠堂에 祭祀를 지낸 일’ ‘동강에서 낚시질한 일’ ‘한나라 환제 때 黨錮之禍(黨錮之禍)의 日’을 例로 들었다. 漢 高祖 劉邦은 皇帝로서는 처음으로 孔子의 墓를 參拜하고 孔子에게 祭祀를 지냈다. 孔子가 아무리 成人(聖人)이고 偉大한 學者라고 하더라도 臣下의 班列에 있던 사람이다. 法度대로라면 皇帝가 그 앞에 머리를 굽혀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乳房은 孔子에게 禮를 表示함으로써 孔子의 가르침을 繼承하고 선비를 尊重하겠다는 메시지를 傳達한 것이다. 다음으로 동강에서 낚시질한 일이란 後漢 때 嚴狂이라는 선비가 光武帝의 懇曲한 勸誘를 辭讓하고 隱居하며 낚시질로 餘生을 보낸 것을 가리킨다. 光武帝가 人材를 發掘하기 위해 努力하고 優待했다는 意味와 함께, 皇帝의 要請도 뿌리칠 수 있는 선비의 氣槪를 象徵한다. 마지막 ‘黨錮之禍’는 否定的인 事例다. 後漢 丸劑 때 이응, 眞番 等 儒學者와 太學生들이 宦官의 專橫을 批判하자 환제가 이들을 逮捕해 處罰했고, 이 事件이 擴大돼 儒學者 數百 名이 죽임을 當했다. 不義에 抗拒하고 바른 말을 한 선비들이 禍를 當한 것이다.

    以上 한 高祖, 光武帝, 환제의 措置는 國家 經營에도 큰 影響을 미쳤다. 高調와 光武帝의 境遇 皇帝가 直接 人材 育成과 學問 振興에 關心을 갖고 선비를 優待하니 자연스럽게 그 時代에는 人材가 넘쳐났다. 그 德分에 좋은 政策이 나오고 政治도 安定되면서 國家가 繁榮하게 된다. 이에 反해 환제의 時代에는 人材들이 沈默하거나 아예 調整을 脫出해 숨어버렸다. 國政이 紊亂해진 것은 當然한 歸結일 것이다.

    中國 皇帝들의 이야기긴 하지만 오늘날 各 組織도 銘心해야 할 部分이다. 리더가 人材를 極盡하게 禮遇하고, 人材가 리더에게 거침없이 自身의 뜻을 밝힐 수 있는 組織에는 좋은 人材가 몰릴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人材를 消耗品으로 여기고, 自己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쳐버리는 組織에는 좋은 人材가 남아 있을 理가 없다. 人材를 어떻게 對하느냐가 組織의 成敗까지 左右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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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와 같은 事實은 大部分의 리더가 익히 알고 있다. 알면서도 實踐하지 못하는 理由는 리더 本人이 태만한 탓도 있겠지만 具體的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사언은 몇 가지를 提案한다. 于先, “임금으로서 原則을 가지고 人材를 이끌어야 한다”. 人材를 無條件 잘 待遇해준다고 해서 能事는 아니다. 狀況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해서도 안 된다. 基準과 原則에 立脚해 人材를 對해야 公正性을 確保할 수 있으며, 人材도 리더를 信賴할 것이다. 두 番째는 “賃金이 좋고 싫어하는 것을 아랫사람에게 내보여서는 안 된다”. 윗사람이 특정한 것을 좋아하거나 選好하면 아랫사람도 이를 따라가는 傾向이 있다. 阿附하기 위해서, 或은 눈치를 보느라 다른 選擇肢를 고르지 못한다. 當然히 不滿이 쌓일 수밖에 없다. 아랫사람의 속마음, 率直한 생각을 듣기 위해서라도 리더는 自身의 호오(好惡)를 먼저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세 番째로 양사언은 “임금에게도 嚴한 스승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君主가 스승을 깍듯이 모시고 가르침을 따르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스승을 尊敬하고 배움에 힘쓰게 된다. 이 말은 임금이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임금은 나라에서 가장 尊貴한 存在다. 無所不爲의 힘을 휘두르며 제멋대로 行動하기 쉽다. 智慧와 經驗이 不足한 데도 自身은 다 안다며 自慢하기도 한다. 이런 賃金을 긴장시키고 反省하게 만들며 適切하면서도 깊이 있는 助言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임금은 적어도 잘못된 方向으로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임금을 바로잡아주는 助言은 普通 듣기 싫은 말인 境遇가 많다. 스승을 尊敬하고 어려워해야 그런 듣기 싫은 말도 受容할 수가 있다.

    이런 楊士彦의 提言은 非但 임금에게만 該當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꼭 스승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直屬 上司나 親한 先輩與도 좋고 親舊, 아니 後輩나 아랫사람이어도 좋다. 내가 잘못했을 때 나에게 直言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좋은 助言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믿고 尊重해서 그의 말이라면 반드시 귀 기울이게 되는 사람, 尊敬하기 때문에 함부로 對할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이런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人材가 알아서 먼저 찾아온다는 것이 楊士彦의 생각이다.

    이 밖에도 양사언은 ‘선비를 發掘하고 育成할 수 있는 能力을 갖추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배움에 힘쓸 것’ ‘賢者(賢者)를 얻어 敎育을 擔當하게 할 것’ ‘뛰어나고 어진 사람을 登用해 補佐를 맡길 것’ ‘선비를 適材適所에 配置함에 있어서 品階에 拘礙받지 말고, 勤務한 歲月을 따지지 말 것’ ‘끝없는 容器와 흔들리지 않는 智慧로 굳게 지켜 나갈 것’ 等을 主張했다. 이 모든 主張을 綜合하면 人材가 일하고 싶은 環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人材가 尊重받는 文化를 造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리더가 慣性에 물들고 懶怠함에 젖지 않도록 끊임없이 努力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비의 氣像이 隆盛’해지기 위해서는 선비 個個人의 努力도 重要하지만 무엇보다 임금의 責任이 莫重하다는 것이 楊士彦이 傳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김준태 성균관대 韓國哲學人文文化硏究所 責任硏究員 akademie@skku.edu
    筆者는 성균관대에서 韓國 哲學으로 博士 學位를 받았고 同 大學 儒敎文化硏究所, 留學大學 硏究敎授를 거치며 우리 歷史 속 政治家들의 리더십과 哲學을 硏究하고 있다. 特히 現實 政治에서 朝鮮時代를 이끌었던 君主와 宰相들에 集中해 多數의 論文을 썼다. 著書로 『君主의 條件』 『卓越한 調整者들』 『論語와 朝鮮王朝實錄』『다시는 神을 부르지 마옵소서』 等이 있다.
    • 김준태 | 성균관대 幼學東洋學과 招聘敎授

      筆者는 성균관대에서 韓國 哲學으로 博士學位를 받았고 同 大學 儒敎文化硏究所, 留學大學 硏究敎授를 거치며 우리 歷史 속 政治家들의 리더십과 哲學을 硏究하고 있다. 特히 現實 政治에서 朝鮮 時代를 이끌었던 君主와 宰相들에 集中해 多數의 論文을 썼다. 著書로는 『王의 經營』 『王의 工夫』 『卓越한 調整者들』 等이 있다.
      akademie@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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