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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期 映畫 廣告의 戰爭 – 新聞博物館 PRESSEUM

近代期 映畫 廣告의 戰爭

오늘날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OTT 플랫폼을 통해 上映되는 映畫에 對해 다양한 消息을 接할 수 있는데요. 映畫를 弘報하는 方法과 手段으로 以前에 비해 더욱 새롭고 創意的인 方式들이 試圖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約 100年 前, 映畫가 막 流入되고 劇場이 設立되던 時代에는 果然 어떠한 方式으로 映畫를 弘報했을까요?

1920─30年代에는 映畫 産業이 擴張되기 始作합니다. 各 劇場에서는 觀客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形態의 廣告를 내보냅니다. 傳單紙나 週報를 製作해 配布하기도 하고, 新聞 紙面을 통해 紹介하기도 했습니다. 1926年 9月 19日 者 동아일보 記事에는 羅雲奎가 監督이자 主演인 映畫 〈아리랑〉의 要約된 줄거리와 함께 劇中 主人公들의 모습이 실렸습니다.


映畫 〈아리랑〉 記事와 이미지(東亞日報, 1926年 9月 19日 者, 5面)

“朝鮮映畫俳優界 一流스타人 羅雲奎를 中心으로 現代劇 아리랑을 撮影 中인 바. 女俳優로는 신홍련이라는 新進 女俳優가 出演하였으며 이 映畫의 특별한 것은 엑스트라를 數百名이나 썼다. […]”라는 事實을 이 記事를 통해 確認할 수 있습니다.


映畫?〈먼?동이?틀?때〉?광고(동아일보, 1927年?10月?26日?字, 3面)

1927年 10月 26日 字 동아일보에는 눈에 띌 程度로 큰 活字의 映畫 題目과 그 옆에는 作品 槪要와 더불어 上映 劇場 및 날짜, 그리고 總監督, 脚色家, 映像監督, 出演者 等이 紹介되고 있습니다. 커다란 活字가 눈에 띄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흘깃 보아도 사람들에게 크게 刻印이 되었을 것 같죠?

이때는 大槪 ‘文字’ 中心 廣告가 主를 이뤘기 때문에 映畫에 對한 簡略한 情報가 收錄된 形態였습니다. 解放 以後에는 ‘視覺的 디자인’ 中心의 廣告로 進化함에 따라 보다 大衆들의 視線을 사로잡는 廣告가 많이 登場했습니다.

新聞博物館은 當時의 映畫 廣告 傳單 2點을 所藏하고 있습니다. 1966年 1月 30日 發行된 최무룡 監督의?〈限(한) 많은 石(昔)李 엄마〉와 1960年 4月 5日 發行된 리처드 브룩스 監督의?〈카라마조프의 兄弟(兄弟)〉입니다.

(左)?〈限(韓)?많은 石(昔)이엄마〉(최무룡 監督, 1966)?映畫 廣告 傳單,
(右)?〈카라마조프의 兄弟(兄弟)〉(리처드 브룩스 監督, 1960) 映畫 廣告 傳單

청계劇場에서 發行한 이 傳單에는 半切 以上 차지하는 映畫 題目과 이에 못지않게 視線을 사로잡는 主演俳優들의 리얼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亦是 上映 날짜와 劇場, 主演俳優들의 이름, 짧은 시놉시스까지 映畫의 主要 情報들이 낱張의 작은 傳單紙 안에 꽉 차게 담겨 있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映畫 廣告 傳單은 大衆들의 需要에 積極的으로 副應하면서 發展을 거듭하여 解放 以後에도 꾸준하게 製作되었습니다. 韓國 映畫史의 全體的인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映畫 廣告 傳單이 韓國의 映畫文化에서 主導的인 役割을 맡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新聞博物館이 所藏하는 映畫 廣告 傳單 亦是 韓國 映畫 및 印刷媒體의 歷史를 證明할 수 있는 하나의 根據로서 貴重한 價値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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