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 카드에 平壤골프場이라고 쓰여 있다(왼쪽), 平壤골프場 캐디들.
4·27 南北頂上會談으로 南北關係가 急進展되고 있다. 이런 雰圍氣에서 北?·?美 頂上會談까지 成功한다면 北韓과 交流가 活潑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 北韓 골프場에서 라운드도 먼 꿈만은 아닐 것이다.
筆者는 10餘 年 前 平壤을 訪問해 7泊 8日間 머물면서 平壤골프場(18홀)과 양각도골프場(9홀)에서 라운드를 한 적이 있다.
平壤골프場은 파72, 18홀에 戰場 6271m로 國際大會 規格을 갖췄다. 1987年 當時 김일성 主席의 75歲 生日을 記念해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朝總聯)가 寄贈한 것. 태성호 周邊에 세워져 18홀 가운데 8個 홀이 湖水와 接해 있다. 平壤 都心에서 30km 떨어져 있는데 車로 40分 程度 걸린다.
클럽하우스 商店에서 파는 帽子는 테일러메이드와 나이키 브랜드였다. 렌털 클럽은 主로 美國, 日本의 中古 클럽이었고 그린피는 非會員의 境遇 100달러였다.
클럽하우스나 코스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골프用語는 한글로 바꿔놓은 것이 많았다. 캐디(北韓에서도 캐디라고 부른다)는 우리를 보자 “어서 오시라요! 반갑습네다, 동무! 막바로 運動 始作합세다”라며 활기차게 1番 打擊隊(티잉그라운드)로 案內했다. 밀車(카트)를 끄는 女性 동무에게 “예쁘다”고 하자 잘 알아듣지 못했다. ‘美人’이라고 敷衍說明瑕疵 ‘곱다’라고 해야 통한다고 했다.
앞 出發對(前半 나인) 첫 홀에서 順序를 定하는데 붉은 줄이 그어진 대나무를 使用했다. 공알받침(티) 위에 공알(공)을 놓고 第一 긴 나무채(드라이버)로 라운드를 始作했다. 나무채 샷이 잘 맞으면서 緊張도 徐徐히 풀렸다. 캐디는 쇠채(아이언)를 갖다주며 “날래날래 치시라우요”라고 재촉했다. 逆光에 공알이 잘 안 보여 똑바로 갔느냐고 묻자 “잔디區域(페어웨이)으로 잘 나갔시오”라며 安心케 했다. 3個 홀 連續 파를 잡자 “先生님, 골프를 아주 잘합네다”라고 稱讚했다.
北韓에서도 波와 버디, 더블보기, 홀인원 等의 用語는 그대로 使用한다. 그 代身 發音이 日本式이다. 퍼터는 ‘빳다’, 롱홀은 ‘第一 긴 홀’ 또는 ‘롱그홀’이라고 한다. 캐디들은 英語가 流暢하지는 않지만 疏通하는 데는 支障이 없을 程度다. 境界線 밖(OB)으로 공알이 나가자 “어서 하나 더 치시라우요”라며 공알을 갖다줬다. 다시 친 공이 定着地(그린)에 올라갔다. 목이 타 “簡易 賣臺(그늘집)가 몇 홀째 있느냐”고 묻자 “찬 단물(주스)을 갖다줄까요”라고 했다. 다른 接待員 동무가 물과 飮料를 얼음箱子에 넣어 왔다.
모래웅덩이(벙커)나 물 妨害物(워터해저드)李 처음에는 있었으나 管理가 어려워 모두 없앴다고 한다. 7番 홀 定着地에서 오르막퍼팅이라 퍼터로 캬부(컵)에 좀 세게 치니 뒷壁을 때리면서 위로 치솟다 들어간다. 이런 퍼트를 몇 個 하고 나니 筆者를 向해 “꽂아 넣기 專門”이란다. 또 “定着地에서 구멍에 넣으려면 올(오르막)경사와 내리警査를 잘 봐야 한다”는 助言도 곁들였다. 全般 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꼬부랑국수(라면)를 間食으로 먹으려 했으나 없어서 平壤 밀면을 갖다줬다.
라운드 後 캐디에게 팁으로 10달러를 줬다. “고맙다”는 人事를 하고 헤어지면서 캐디는 투박한 北韓말로 “다시 또 오시라우요”라 하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平壤에서 다시 한 番 라운드를 할 수 있기를 苦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