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嫌惡에는 流通期限이 없다|주간동아

週刊東亞 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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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앤씨財團 嫌惡 컨퍼런스 地上中繼

嫌惡에는 流通期限이 없다

中世 유럽 歷史 속 嫌惡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0-10-21 15: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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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박승찬 가톨릭大學校 哲學科 敎授
    박승찬 교수.

    박승찬 敎授.

    저는 1700餘年에 걸친 時間을 旅行하게 될 텐데요. 첫 番째 主題는 그리스도교에 對해 로마 帝國이 가졌던 嫌惡, 두 番째는 十字軍戰爭 中 他 宗敎에 對한 嫌惡. 세 番째는 페스트의 傳播時期 나타났던 恐怖와 嫌惡, 마지막으로 近代 初期 부터 17世紀까지 이어지는 魔女사냥에 나타났던 嫌惡에 對해서 살펴볼 豫定입니다.

    ●被害者였던 그리스도교가 加害者가 된 十字軍戰爭

    먼저 로마帝國의 그리스도교 嫌惡에 對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自由와 平等 精神으로 로마帝國 안에서 宏壯히 빨리 傳播됩니다. 로마帝國은 처음 100年까지는 매우 慣用的인 姿勢를 보여주지만 以後 100年부터 250年 사이에 그리스도교를 甚하게 迫害 합니다. 가장 甚한 사람이 네로皇帝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3分의 1이 불타서 市民들의 憤怒가 極에 達하자 그 責任을 그리스도교人들에게 덮어씌우기 始作했습니다. 

    그리스도人들이 迫害를 받은 背景에는 唯一神 思想을 믿고 있었다는 것이 컸습니다. 로마는 주피터, 유노와 같은 神들을 믿는 多神敎 文化였는데 最高 首長이 皇帝였습니다. 야훼만을 神이라고 믿는 그리스도교는 結局 多神敎 國家인 로마를 否定하는 意味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떻든 그리스도교에 對한 嫌惡는 많은 誤解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이 國家의 政治的인 目的으로 ‘만들어진 嫌惡’였다는 것을 함께 記憶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교人들은 313年에 밀리노 勅令을 통해 宗敎의 自由를 얻게 됩니다. 이어 392年 테오도시우스 皇帝에 依해 로마의 國交로까지 發展하면서 가장 影響力있고 힘 있는 宗敎가 됩니다. 로마帝國은 東과 서로 나뉘면서 서로마 帝國은 476年에 滅亡하지만 그리스도교는 以後 1456年까지 持續되게 되는 東로마 帝國에서도 持續的으로 影響力을 미치는 가장 强力한 宗敎가 되었습니다. 

    中世가 本格的으로 始作되면서 그리스도교는 迫害받는 少數 宗敎가 아니라 가장 힘 있는 宗敎가 된 것이지요. 그러자 그리스도敎徒 다른 宗敎를 迫害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무시무시했던 十字軍 戰爭이었습니다. 



    저는 十字軍 戰爭 이야기를 할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理想的이어야 할 宗敎와 政治의 모습이 가장 歪曲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十字軍戰爭은 1, 2年 사이에 일어난 戰爭이 아니었습니다. 1096年부터 1291年까지 無慮 200餘年에 걸쳐서 8次例나 일어납니다. 모든 葛藤의 불씨가 되었던 空間이 예루살렘이라는 都市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敎 그리스도교 이슬람이 다 聖地로 認定하는 곳입니다. 

    7世紀에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占領했을 때 그中에서도 殘酷하기로 有名한 셀주크 투르크種族은 그리스도교 巡禮客들의 巡禮를 막습니다. 그리스도人들은 거의 목숨을 내놓고 巡禮를 할 수밖에 없는 狀況이 되었고 이런 狀況이 徐徐히 西유럽에 알려지기 始作했습니다. 셀주크 투르크의 攻擊을 받던 帝國 皇帝 알렉시우스 1世는 敎皇에게 도움을 要請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單純하게 몇 十 名 或은 몇 百 名 훌륭한 記事들을 보내 달라는 程度였는데 로마 敎皇 우르바노 2世는 다른 꿈을 꾸게 됩니다. 이참에 分裂되어있던 東西 로마 敎會를 새롭게 統一하려는 遠大한 計劃을 세우게 된 거지요. 

    그 過程에서 ‘假짜 뉴스’가 큰 役割을 하게 됩니다. 主人公은 隱者 피에르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이 사람은 誇張法의 代價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많은 그리스도교人들이 이슬람에 依해 迫害받는 現場을 直接 보았다며 殘酷한 이야기들을 誇張해 그리스도교人들을 憤怒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든 敎皇은 마침내 1095年 클레르몽 宗敎會議에서 “짐승 같은 이슬람으로부터 거룩한 聖地인 예루살렘을 淨化해 自由롭게 祈禱하자”며 “聖地를 淨化하라”는 命令을 내립니다. 

    이때 나온 口號가 ‘데우스 로 불트(Deus lo vult)’ 卽 하느님께서 그것을 願하신다는 거였습니다. 民衆들은 歡呼했고 이것이 十字軍 戰爭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죠. 

    十字軍이 일어난 理由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純粹하게 苦行만 하던 巡禮者들도 있었지만 땅과 돈을 차지할 수 있는 機會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旅行을 떠나는 것처럼 새로운 世界에 對한 憧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十字軍 戰爭은 政治的인 戰爭

    1次 十字軍은 3年 동안 戰爭을 해서 예루살렘을 되찾게 됩니다. 그렇게 戰爭은 끝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슬람들이 사분오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十字軍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예루살렘을 占領했지만 以後 當然히 돌아갈 줄 알았던 그리스도교人들이 예루살렘 王國과 3個의 公國을 세우게 되자 이슬람은 憤怒하게 됩니다. 2次 十字軍戰爭 때 그리스도교에 對한 聖戰(聖戰), 지하드라는 槪念이 나온 背景입니다. 

    十字軍 戰爭에서 그리스도人들의 殘虐性은 이슬람人들의 齒를 떨게 합니다. 1次 十字軍 때에는 이슬람人, 유대人. 그리스도人들이 모두 다 몰살당하는 ‘마라의 虐殺’이 있었는데 當時 그리스도人들은 이슬람 捕虜들 목을 잘라 透析器로 城砦에 던져 넣은 蠻行을 저질렀습니다. 가장 醜惡한 戰爭은 4車였습니다. 그리스도교 十字軍들은 東로마 帝國 콘스탄티노플 聖 소피아 聖堂 안까지 쳐들어가 사람들을 殺戮합니다. 

    또 나중에는 12, 13歲 少年 몇 千 名이 十字軍에 나섰다가 모두 奴隸로 팔려 나가버리는 悲劇까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人들의 戰爭은 失敗로 끝났고 이슬람 世界에 그리스도교人들에 엄청난 憤怒를 새기는 契機가 됩니다. 暴力은 暴力을 부른다고 이슬람의 그리스도교人들에 對한 虐殺도 이어집니다. 이렇게 200年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준 傷處는 現代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苛酷한 迫害를 받았던 그리스도교가 千年이 지난 後 加害者가 되어 殘酷한 戰爭을 始作했다는 事實들은 嫌惡의 歷史를 돌아보면서 꼭 한 番 생각해 보아야 할 場面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皇帝나 敎皇처럼 權力가진 사람들의 責任이지 一般 사람들의 嫌惡와는 相關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럽의 歷史는 그렇게 簡單하게 展開되지 않았습니다.

    ●魔女사냥의 主導者는 平凡한 市民들

    中世 유럽 末期가 始作되면서 무시무시한 恐怖가 始作되는데 바로 페스트였습니다. 1347年 黑海 沿岸의 한 港口에서 始作된 正體不明의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피를 吐하면서 죽어가는 疾病으로 번졌습니다. 汽車나 自動車가 없었던 時節이었는데도 3年 만에 유럽 全體로 퍼져나갔습니다. 

    어린이, 老人, 聖職者, 政治가, 누구도 例外가 되지 못했습니다. 黑死病에 걸린 사람들은 徐徐히 서로의 서로에 對한 疑心과 恐怖와 嫌惡를 나타내기 始作했습니다. 敎會와 統治者들의 權威는 땅에 떨어졌고 無政府 狀態의 混亂이 찾아오면서 絶望과 憤怒에 찬 市民들은 犧牲羊을 찾기 始作했습니다. 

    當時에 가장 미움을 샀던 사람들이 社會的 少數者였던 유대人들이었는데 프랑스 獨逸 等 유럽 全域에서 유대人들에 對한 虐殺이 벌어지게 됩니다. 1800餘名이 살고 있던 스트라스부르크 地域에서는 折半이 넘는 900名이 죽습니다. 쾰른이라는 都市에서는 구덩이에다가 유대人들을 모아 놓고 火刑시키는 아주 무시무시한 일들도 벌어졌습니다. 이 過程에서도 假짜 뉴스가 重要한 役割을 했는데요. 유대人들이 우물에다 毒을 타서 페스트가 번졌다는 얼토당토않은 루머들이 퍼져나갑니다. 

    中世 末期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페스트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小氷河期’라고까지 말할 程度로 氣候가 추워지면서 페스트에 걸리지 않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番에는 굶어죽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100年 戰爭이라는 무시무시한 戰爭이 持續되었고, 나중에는 가톨릭과 改新敎 사이에 벌어진 30年 戰爭이 甁과 굶주림으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을 다시 죽음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사람들의 憤怒와 他人에 對한 嫌惡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것이 바로 魔女사냥이었습니다. 魔女사냥은 中世가 아닌 近代 初期에 일어났고 暴發的으로 增加한 時期는 中世가 끝난 다음인 1550年부터 1650年 사이입니다. 科學革命이 始作되고 啓蒙主義가 싹트기 始作했던 理性의 時代 때 가장 非理性的인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所聞만으로 사람들을 魔女를 만들어나가기 始作했습니다. 洪水와 가뭄, 때 아닌 서리와 雨雹, 겨울이 너무 길거나 男性의 勃起不能. 女性의 不妊. 家畜 斃死 等 모든 게 다 魔女 때문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웃과 이웃들이 서로를 疑心하고 밀고했습니다. 

    ‘魔女의 쇠망치’라고 하는 冊에는 魔女裁判 過程이 具體的으로 描寫돼있습니다. 밀고 되면 逮捕하고 調査하는 過程에서 酷毒한 拷問이 이뤄졌고 拷問을 이기지 못해 魔女라고 認定하면 또 拷問이 恣行됩니다. 억지로 共犯을 對面 또 새로운 사람들이 魔女로 몰려 判決과 處刑이 이어졌습니다. 

    魔女裁判은 都市가 아니라 마을 共同體에서 主로 이뤄졌다는 것이 悲劇입니다. 사람들의 憤怒가 치솟으면서 平素 惡感情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을 없애는 手段으로 魔女사냥이 使用되었다는 것입니다. 

    ‘啓蒙의 辨證法’이라는 冊을 보면 憤怒는 防禦能力이 없는 이들을 向해 噴出된다는 말이 나오는데 魔女사냥 被害者들은 75%가 女性이었고 그中에서도 寡婦나 老婆들, 藥草로 사람들을 治療해주었던 사람들. 가난한 아이들, 病者나 精神病者들이 標的이 됩니다. 魔女가 죽으면 財産을 押收할 수 있었기 때문에 財産 奪取를 目的으로 魔女사냥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弱者에 對한 사냥은 男子로도 擴張되는데 이들은 ‘魔法師’로 몰려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90% 以上이 男子가 죽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嫌惡를 供給했을까요. 十字軍戰爭 때는 皇帝나 敎皇들이었다면 페스트와 魔女사냥부터는 平凡한 市民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魔女사냥을 통해 嫌惡가 單純하고 一時的인 感情이 아니라 - 政治的 이데올로기가 되었든 宗敎的인 것이 되었든 金錢 萬能主義가 되었든 - 集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敎育 學習되면서 퍼져나갔다는 事實들을 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嫌惡의 記憶에는 流通期限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過去 몇 千 年 前에 일어났던 嫌惡라도 제대로 省察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反復될 수 있다는 것이죠. 犧牲羊 理論을 꼭 記憶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로마帝國은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人들은 이슬람과 유대人들을. 페스트에서는 유대人들을, 魔女사냥에서는 社會的 弱者와 女子를 犧牲羊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嫌惡로부터 누가 利得을 取하고 누가 嫌惡를 供給하는지를 꼭 한 番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와 環境災殃이 猖獗하고 있는 요즘이야말로 嫌惡 바이러스가 자랄 수 있는 最適의 條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犧牲羊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또 다른 魔女裁判을 始作할 수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嫌惡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省察해 嫌惡를 없앨 수 있는 眞正한 共感의 世界로 나아가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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