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生
| 1959年 全南 潭陽
學歷
| 전주고, 서울대 國史學科, 서울대 大學院 政治外交學科
經歷
| 나우콤 代表理事, 김근태財團 副理事長
著書
| ‘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2011), ‘함께 살자’(2011) 外
趣味
| 登山
“이 時刻 PK 바닥 民心입니다. 悖倫集團의 結集이 무서울 程度입니다.”
이番 大統領選擧 投票日을 사흘 앞둔 5月 6日 午後 8時 34分, 文在寅 候補 側의 문용식 假짜뉴스對策團長이 한 SNS에 올린 글이다. 波長은 컸다. PK(釜山·慶南)地域을 中心으로 保守層을 끌어모으던 洪準杓 自由韓國黨 候補 側에서 이를 가만둘 理 없었다. 亦是나 “釜山과 慶南 사람들을 悖倫集團으로 몰았다”면서 選擧 막판 地域感情을 刺戟하는 爭點으로 삼았다.
門 副理事長은 丈人에게 ‘令監탱이’라고 한 洪 候補의 悖倫的인 行爲를 指摘한 것이라면서 問題가 된 글에서 ‘悖倫集團’을 ‘悖倫候補’로 고쳤지만 論難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結局 다음 날 自身이 맡았던 SNS本部 副本部長 兼 假짜뉴스對策團長職에서 스스로 물러나야만 했다. 누구보다 SNS의 波及力을 잘 아는 그였기에 더 아이러니하다.
門 副理事長은 1990年代 初 代表的인 PC通信 서비스 ‘나우누리’를 만든 ‘나우콤’ 創立 멤버다. 以後 代表理事를 맡아 웹하드 서비스인 ‘피디박스’와 國內 最初 個人放送채널 ‘아프리카TV’를 성공시켜 業界의 注目을 받았다. 그가 政治權에 入門한 것은 2011年 5月 當時 민주당(더불어民主黨 前身)의 유비쿼터스委員長을 맡으면서다.
그는 代表的인 運動圈 出身 人士. 1980年代 全斗煥 政權 時節 學生運動圈의 ‘맏兄’으로 불렸다. 1985年 서울大 學生運動圈 組織인 民主化推進委員會 ‘旗발’ 事件으로 拘束되는 等 5年 넘게 獄苦를 치렀다. 當時 背後勢力으로 指目돼 남영동 分室에서 함께 拷問을 받은 김근태 前 議員과의 남다른 因緣도 이때 생겼다.
糖이 새政治民主聯合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黨名을 바꾸면서 거듭나는 동안 디지털疏通委員長을 맡아 꾸준히 黨과 國民 間의 디지털 疏通을 책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