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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專橫’ 暴露한 정두언度 人事介入 疑惑|新東亞

‘人事專橫’ 暴露한 정두언度 人事介入 疑惑

박영준 “정두언, 靑瓦臺 人選 때 30名 리스트 보내와 貫徹시켰다”

  • 송국건 영남일보 政治部 記者 song@yeongnam.com

    入力 2008-07-10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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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무슨 專橫을 했다는 건가, 그렇지 않다”
    • “이상득에게 人事問題 裁可 받은 적 한 番도 없다”
    • “정두언이 推薦한 사람, 靑瓦臺에 第一 많이 들어왔다”
    • 박영준 發言 事實이면 정두언度 ‘權力 私有化’
    ‘인사전횡’ 폭로한 정두언도 인사개입 의혹

    박영준 前 靑瓦臺 企劃調整祕書官.(左) 정두언 한나라당 議員.(郵)

    지난 5月30日 저녁 靑瓦臺 박영준 企劃調整祕書官에게서 電話가 걸려왔다. 記者가 ‘신동아’ 5月號에 寄稿한 ‘李明博界 이너서클 120日 超短期 權力鬪爭 內幕’ 記事에 對해 解明을 하기 위해서였다. 政府 및 靑瓦臺 人事를 둘러싼 自身과 정두언 議員의 役割을 分析한 內容 中 一部가 事實과 다르다는 게 그의 說明이었다. 朴 前 祕書官은 그때껏 言論과는 一切 接觸하지 않았었다.

    只今은 靑瓦臺를 떠난 朴 前 祕書官은 이날 電話通話에서 自身이 ‘場·次官級, 나아가 國務總理와 大統領室長 人士에까지 莫强한 影響力을 行使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部分과 關聯해 “내가 무슨 專橫을 行使한 것처럼 비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조각(組閣)과 靑瓦臺 參謀陣 人選 當時 大統領 當選人 祕書室 總括팀長 身分으로 制限된 範圍에서 주어진 役割만 했다는 趣旨였다.

    “大統領께만 보고 드린다”

    또한 ‘朴 祕書官은 財産 및 經歷 檢證 같은 基礎 作業을 마친 人選案(案)을 이상득 副議長에게 報告해 ‘裁可’를 받는 節次를 거쳤다’는 대목에 對해선 “單 한 番도 그런 적이 없다”고 反駁했다. 朴 前 祕書官은 “이 副議長을 오래 모셨지만 只今은 大統領을 補佐하는 사람인데 大統領께 報告를 드려야지 어떻게 이 副議長께 裁可를 받겠느냐”고 했다.

    그가 가장 敏感하게 反應한 部分은 ‘當時 李在五系나 정두언 議員 側에서 올라온 名單이 朴 祕書官 線에서 遮斷되기도 했다’ ‘(이상득系가) 莫强한 파워를 誇示하며 새 政府 要職 人選을 獨占하다시피 했던…’이란 記事 內容이었다.



    朴 前 祕書官은 通話에서 “靑瓦臺 參謀 人選 過程에서 정두언 議員은 50名假量의 名單을 (人選 팀에) 傳達했다. 나중에 보니 그中에서 30名 程度가 貫徹됐더라. 鄭 議員이 推薦한 사람이 靑瓦臺에 第一 많이 들어왔다. 鄭 議員이 靑瓦臺 人事에서 排除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抗辯했다.

    鄭 議員이 50名을 推薦해 30名을 貫徹시켰다는 말은 靑瓦臺의 다른 關係者에게서도 確認할 수 있었다. 汝矣島 國會 周邊에서도 鄭 議員이 平素 因緣이 있는 國會議員 補佐官들을 包含해 많은 사람을 靑瓦臺에 入城시켰다는 말이 나돈다.

    朴 前 祕書官은 ‘신동아’ 記事에서 ‘(大統領職) 引受委 構成은 이 大統領의 意中을 잘 아는 MB 直系(정두언界)가 主導해 ‘實用的’으로 짰고…’라고 記述한 部分에 對해서도 “뭐가 實用的이란 말이냐”고 되물었다. 記事 內容은 ‘引受위의 境遇 於此彼 限時的인 機構이므로 人選 過程에선 큰 雜音이 일 程度의 系派 間 힘겨루기는 없었다. 이 때문에 그 時點에 政權 이너서클의 主導權을 쥐고 있었던 鄭 議員 等이 系派 按排에 神經 쓸 必要가 없어서 일 爲主로 짤 수 있었다’는 意味였다.

    하지만 朴 前 祕書官은 鄭 議員의 境遇 引受위 人事를 공정하게 했고, 自身들은 政府·靑瓦臺 人事에서 專橫을 行使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니면 鄭 議員이 引受위 人士부터 오히려 더 專橫을 부렸다는 意味일 수도 있다.

    새 局面 맞은 ‘정두언 事態’

    朴 前 祕書官의 이 같은 發言은 自身과 關聯된 記事에 對해 解明하는 次元에서 나온 것으로, ‘作心’하고 한 發言은 아니다. 當時만 해도 그는 自身이 最近 정두언 議員이 觸發시킨 與圈 內 파워게임의 첫 犧牲羊이 되리라고는 想像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結果的으로 그의 發言은 向後 相當한 波長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이상득 副議長과 박영준 前 祕書官을 겨냥해 ‘人事 專橫’을 暴露한 정두언 議員에 對해 “鄭 議員도 人士에 介入하고 權力을 私有化했다”는 疑惑을 提起한 것이기 때문이다. 鄭 議員의 暴露에 한나라당 內 一部 少壯派 議員들은 “眞情性이 있다”고 同調했다. 그러나 朴 前 祕書官의 말이 事實이라면 鄭 議員이 觸發시킨 事態는 全혀 다른 次元으로 解釋될 수도 있다.

    ‘인사전횡’ 폭로한 정두언도 인사개입 의혹

    이상득 議員이 1月21日 大統領 當選人 特使로 訪日한 結果를 이명박 當選人에게 報告하고 있다.

    朴 祕書官과 記者의 通話가 있고 1週日餘가 지난 뒤 鄭 議員은 爆彈 發言을 했다. 그는 6月7日子 한 日刊紙와의 인터뷰에서 “靑瓦臺 一部 人士가 國政遂行에 集中한 게 아니라 戰利品(人事) 챙기기에 汨沒했다”며 國會議員 한 사람과 靑瓦臺 參謀 3名을 ‘權力 私有化’의 張本人으로 指目했다. 鄭 議員이 겨냥한 國會議員은 李明博 大統領의 親兄인 이상득 議員, 靑瓦臺 參謀 3名은 류우익 大統領室長, 박영준 祕書官, 장다사로 政務1祕書官이었다.

    鄭 議員은 特히 朴 祕書官을 原色的으로 非難했다. 그는 “B 祕書官(朴榮濬 祕書官)은 노태우 政權의 박철언, 金永三 政府의 김현철, 김대중 政府의 朴智元, 노무현 政權의 安熙正·이광재氏를 다 합쳐놓은 것 같은 힘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B 祕書官은 大統領 周邊의 사람들을 離間질시키고 陰害하고 謀略하는 데 名手”라고 人身攻擊性 發言도 서슴지않았다.

    鄭 議員의 인터뷰 記事가 報道된 날 國會 出入記者들에게 鄭 議員室에서 보낸 e메일이 왔다. 報道 內容을 否認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한 것이 맞다”고 確認하고 自身의 意見을 덧붙여 說明한 글이었다. 作心하고 事件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鄭 議員은 이어 9日에는 한나라당 議員總會 身上發言에서 “人事 失敗가 國政 無能 및 不道德 人事로 이어져 國政失敗까지 招來했다. 이제는 책임질 사람들이 各自 自己 去就를 決定하면 된다”고 마무리 펀치를 날렸다.

    朴 前 祕書官은 처음에는 “너무나 抑鬱하다”면서 이에 强力히 맞설 생각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鄭 議員의 議員總會 發言이 있던 날 午後 李明博 大統領과 한 時間 동안 面談한 뒤 “大統領께 누가 된다면 靑瓦臺에 한時라도 더 머물 수 없다”며 류우익 大統領室長에게 辭表를 내고 짐을 쌌다. 그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職員들에게 人事를 했다고 한다.

    鄭 議員과 朴 前 祕書官은 政權 創出의 産室인 ‘서울市廳팀’과 ‘安國포럼’의 核心 멤버였다. 政權 創出의 1等 功臣인 두 사람이 왜 이처럼 關係가 틀어져 朴 前 祕書官이 鄭 議員에게 極度의 不信을 表示하고, 鄭 議員은 ‘功臣의 亂’을 일으키는 地境까지 왔을까.

    둘 사이 가른 決定的 事件

    朴 前 祕書官은 1994年 이상득 議員의 國會 參謀로 政治權에 발을 디뎠다. 2002年 서울市長選擧 當時 이명박 候補 選擧 캠프에 差出된 뒤 이 大統領의 敦篤한 信任을 받아 ‘1미터 側近’이란 말도 들었다. 鄭 議員은 行政考試 24回 出身으로 總理室 等에 勤務하다 2000年 總選에 나섰다가 失敗한 뒤 2002年 서울市 政務副市長으로 拔擢됐다. 그 亦是 ‘MB의 腹心(腹心) 中 腹心’으로 불리면서 核心 側近으로 자리 잡았다.

    ‘이명박 大統領 만들기’에 意氣投合했을 때만 해도 51歲인 鄭 議員과 48歲인 朴 前 祕書官은 呼兄呼弟하며 지냈다. 그러나 大選에서 勝利를 거둔 뒤 政府와 靑瓦臺 要職 人選을 하는 過程에서 두 사람은 팽팽한 힘겨루기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特히 引受위 人事를 主導하던 鄭 議員이 政府와 靑瓦臺 人選에서 疏外되면서 關係가 極度로 惡化됐다. 그러다 ‘決定的 事件’이 發生하는 바람에 둘은 完全히 갈라섰다.

    火藥庫는 政治權과 連結고리를 갖는 靑瓦臺 政務1祕書官(與黨 擔當)과 政務2祕書官(野黨 擔當) 자리였다고 한다. 정두언 議員은 靑瓦臺 政務 1, 2 祕書官에 各各 自身과 가까운 李泰珪 尹汝雋 前 議員 補佐官과 現役 한나라당 國會議員 補佐官인 L氏를 薦擧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두 자리는 結局 장다사로 전 이상득 國會副議長 祕書室長과 김두우 前 中央日報 論說委員에게 돌아갔다. 代身 李泰珪 前 補佐官은 演說記錄祕書官으로 交通整理됐다.

    鄭 議員은 自身이 推薦한 두 사람이 ‘물먹은’ 背後에 朴 前 祕書官이 있다고 斷定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다사로 祕書官은 이상득系이고, 김두우 祕書官은 朴 前 祕書官과 故鄕이 慶北으로 같다. 이 두 사람을 拔擢하기 위해 L 補佐官을 내치고 李泰珪 前 補佐官은 다른 자리로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두우 祕書官이 靑瓦臺에 合流한 것은 親分이 있던 류우익 室長의 直接 要請에 依한 것으로 나중에 傳해졌다.

    李泰珪 演說記錄祕書官은 새 政府 出帆 不過 한 달 만인 지난 3月26日 突然 辭表를 냈다. 當時 “靑瓦臺 補職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고 辭退의 辯을 밝혔다. 自身의 ‘專攻’과 다른 자리를 맡아 適應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實際로 李泰珪 祕書官이 作成해서 올린 大統領 演說文이 제대로 反映되지 못하고 어느 線에선가 大幅 고쳐지곤 해서 마음苦生이 甚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는 靑瓦臺를 나온 뒤 KT에 專務級으로 들어갔다.

    “99% 시키는 대로 했다”

    ‘인사전횡’ 폭로한 정두언도 인사개입 의혹

    한나라당과 政府, 靑瓦臺 關係者들이 5月11日 國會 한나라당 院內代表室에서 黨-政-靑 協議會를 갖고 있다.

    鄭 議員은 政務祕書官 人選 過程에서 밀린 直後 朴 前 祕書官을 겨냥해 極度의 敵對感을 나타냈다고 한다. 當時 事情을 꿰뚫고 있는 한나라당 한 關係者의 傳言이다.

    “鄭 議員은 L 補佐官이 모시고 있는 議員에게 諒解를 求해가면서까지 그를 靑瓦臺 政務2祕書官으로 넣으려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그 議員과 L 補佐官을 만나 鬱憤을 吐露했다. ‘박영준이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L 補佐官이 내 라인도 아니지 않으냐. 그 자리가 적합한 人物이라고 생각해서 薦擧했는데 박영준이 自己 사람을 넣기 위해 밀어냈다’고 했다.”

    鄭 議員의 말대로 L 補佐官은 ‘정두언 直系’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두 사람은 같은 ‘386 世代’로, L 補佐官이 大選 當時 選對委에 派遣돼 政權 創出 後 새 政府가 나아가야 할 方向을 담은 報告書 作成 等에 干與하면서 서로 因緣을 맺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對해 박영준 前 祕書官 側의 한 人士는 “人事 專橫은 있을 수 없다”면서 펄쩍 뛴다. 그는 “靑瓦臺 政務祕書官과 같은 要職은 大統領이나 大統領室腸이 直接 決定한다. 一介 祕書官이 任意로 自身과 親한 사람을 앉힐 수 없다. 더구나 박영준 前 祕書官과 김두우 祕書官은 積極的으로 자리를 챙겨줘야 하는 關係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朴榮濬은 박철언, 김현철, 朴智元, 안희정, 이광재氏를 다 합쳐놓은 것 같은 힘을 가졌다”는 鄭 議員의 發言에 對해서도 그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一蹴했다. 이어지는 그의 說明이다.

    “朴榮濬 前 祕書官이 人事 專橫을 일삼았다는 具體的 事例가 하나도 나온 게 없다. 박철언, 김현철, 朴智元, 안희정, 이광재氏는 모두 權力型 非理 疑惑에 連累된 바 있다. 그러나 박영준 前 祕書官이 이런 非理를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는 없다. 朴 前 祕書官은 이들과는 달리 ‘마구 휘두를’ 權力 自體가 없기 때문이다. 朴 前 祕書官의 位相을 正確하게 說明하자면, 李明博 大統領이 크게 信賴하는 ‘大統領 심부름꾼’ 程度였다. 말하자면 윗분이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實務型 參謀였을 뿐이다. 99%는 윗분이 시키는 대로 하고 1%는 自身이 決定해서 했다.”

    “李明博-정두언 關係는 끝났다”

    政權 創出 以後 짧은 期間이지만 이너서클의 主導權을 쥐기 위한 벼랑 끝 對峙가 있었고, 結局 鄭 議員이 公論의 場을 통해 致命打를 날림으로써 朴 前 祕書官이 벼랑에서 떨어졌다.

    그렇다고 鄭 議員이 最後의 勝者가 된 것은 아니다. 그의 先制攻擊이 어떤 結果로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當場은 이番 일로 與圈 內에 수많은 敵이 생겼다. 李 大統領도 自身의 親兄과 大統領室長, 믿고 일을 맡기는 核心 側近을 無差別 攻擊한 鄭 議員에게 좋은 感情을 가질 理 萬無하다.

    一部 與圈 人士는 “적어도 이 大統領이 任期 末 레임덕에 빠지기 前까지는 鄭 議員이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觀測했다. 黨 內에선 “정두언 議員은 돌아오지 못할 江을 건넜다. 李 大統領과는 事實上 끝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 한 議員은 “大統領의 最側近이, 大統領이 가장 어려울 때 內部 事情을 暴露해 大統領을 더욱 窮地로 내몰았다”고 했다.

    이런 狀況을 豫想하지 못했을 理 없는 鄭 議員이 왜 ‘擧事’를 圖謀한 것일까. 正말 朴 前 祕書官이 人事 專橫을 했을까. 朴 前 祕書官이 물러나기 前까지 靑瓦臺의 人事權이 미치는 자리에 人事 要因이 생길 境遇 朴 前 祕書官과 김명식 人士祕書官, 김강욱 民情2祕書官 等이 參與하는 ‘人事實務會議’에서 基礎 選別作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2~3倍數로 候補를 壓縮하면 民政首席室의 檢證을 거쳐 流 室長과 首席祕書官들로 構成된 ‘人事委員會’에서 檢討한 뒤 大統領의 最終 落點을 받는 形式으로 人事가 이뤄졌다.

    1次 對象者를 추리는 過程에서 靑瓦臺와 國精院, 行政安全部 人事實(옛 中央人事委員會) 等이 確保하고 있는 ‘存案資料’를 들춰보지만 黨·政·廳에 布陣한 與圈 人士들로부터 推薦을 받는 境遇도 많다. 人事實務會議가 2~3倍數 候補者로 採擇할 수 있는 裁量權이 넓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以後 人事委員會와 大統領의 裁可 過程을 거쳐야 하므로 어떻게 보면 人事實務會議의 權限은 相當히 制限的이라고도 할 수 있다.

    勿論 이런 節次는 靑瓦臺의 體系가 갖춰진 以後의 公式經路다. 大選 勝利 直後 引受위를 構成하고 行政府·靑瓦臺와 政府 有關團體의 要職을 갖춰나가는 過程에선 創業功臣들끼리의 自己 사람 밀어 넣기 競爭이 極甚했던 게 事實이다. 結局 大統領과의 接近性이 높은 側近들의 입김이 더 세게 作用할 수밖에 없었다.

    特히 朴 前 祕書官은 이 大統領을 도운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나름의 理由가 있었다. 그는 大選을 앞두고 全國을 돌아다니며 外郭組織을 꾸리는 데 앞장섰다. 光州는 41次例나 다녀왔다. 그 成果物이 大選을 두 달假量 앞둔 지난해 10月24日 出帆한 ‘2007 先進國民連帶’다. 全國 240餘 個 團體를 하나로 묶은 것으로, 會員數가 無慮 400萬이었다.

    先進國民連帶를 꾸리기 위해 그는 엄청난 數의 사람을 만났다. 그는 引受위 時節 “選擧 때 도와준 사람들의 電話를 못 받을 때가 있는데 그게 가장 未安하다. ‘選擧가 끝나니까 사람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正말 가슴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다. 李 大統領이나 朴 前 祕書官에게 그들은 모두 ‘빚’이었다. 다만, 能力에 合當한 人士였고 特定系派가 獨食한 것이 아니라면 問題가 될 일은 아니라는 視角도 있다.

    鄭 議員은 이상득界가 主導한 政府·靑瓦臺 人事가 ‘고소영(高麗大·소망교회·嶺南), ‘강부자(江南 땅 富者)’ ‘S라인(서울市廳)’ 爲主로 됐고, 이런 人事가 政權 初期 亂脈相의 端緖를 提供했다고 봤다. “權力에 對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못했기 때문에 옛날 같으면 賜藥도 받을 일이지만” 銃대를 멨다는 것이다. 이에 對해 홍준표 院內代表는 “人事에서 疏外된 사람이 하는 얘기가 무슨 紛亂거리가 되겠느냐. 紛亂이 아니라 不滿”이라고 一喝했다.

    黨·청 葛藤의 決定版

    이番 事態는 本質的으로 權力 鬪爭, 人事權 鬪爭이나 다름없다는 視角이 있다. 李明博 政府 出帆 直後부터 깊어진 黨·청 葛藤이 마침내 터져 生存게임 樣相으로 번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나라당 內에선 系派別로 程度의 差異는 있지만 鄭 議員을 비롯한 少壯派들을 中心으로 靑瓦臺 參謀陣에 對한 不滿이 澎湃했다. 靑瓦臺를 掌握한 사람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새 政府 出帆 100日 時點에 이 大統領의 國政遂行 支持度가 20%線마저 崩壞돼 16~17%臺(6月初 CBS, YTN 調査)까지 墜落하는 要因이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6·10 抗爭 21周年을 맞아 ‘100萬 촛불大行進’이 벌어지던 時點에 한 初選 議員은 “모든 問題는 大統領이 너무 萎縮돼 있는 데서 出發하며, 그 責任은 靑瓦臺 參謀들에게 있다”고 診斷했다.

    “이런 때는 正面突破를 해야 한다. 大統領이 다시 한 番 對國民聲明을 통해 眞情으로 謝過하고 第2의 彫刻 水準으로 人的刷新을 해서 판을 다시 짜야 한다. 그러나 이 大統領은 政治를 잘 몰라서 그런 方法을 모른다. 그렇다면 靑瓦臺 參謀들이 積極的으로 建議해야 되는데, 只今 靑瓦臺에 가 있는 사람들은 大部分 學者 出身이라 그런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危機가 닥쳐도 對處할 方法을 몰라서 허둥대고 結局 또 다른 危機를 불러와 收拾이 不可能할 程度의 地境이 돼버렸다. 이것이 反復되는 危機의 本質이다.”

    靑瓦臺의 ‘政治力 不在’를 憂慮하는 목소리는 새 政府 出帆 初期부터 나왔다. 大統領室長을 包含한 1期 首席祕書官級 以上 9名 가운데 無慮 7名이 大學敎授를 지낸 學者 出身으로 채워졌다. 大學 講壇 經驗이 없는 人物은 檢察 出身인 이종찬 民政首席과 ‘東亞日報’ 記者 出身의 李東官 代辯人뿐이었다. 17代 國會議員을 지낸 박재완 政務首席이 唯一한 政治人(初選 議員)이지만 그도 政治入門 以前까지 오랫동안 大學敎授 生活을 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周邊에서는 “靑瓦臺가 무슨 學術團體냐, 硏究所냐” “政治人들이 政權을 創出해놓으니 ‘冊床물림’들이 靑瓦臺를 掌握해버렸다”는 歎息이 나왔다. 그런 歎息은 憂慮로 變했고, 結局 靑瓦臺의 安易한 狀況 判斷 때문에 民心收拾에 實技(失期)했다는 指摘이 黨內에서 澎湃했다.

    5月19日 한나라당 강재섭 代表는 이 大統領과의 定例會同을 통해 靑瓦臺 組織改編을 包含한 大大的인 國政刷新策을 建議할 豫定이었다. 美國産 쇠고기 輸入 再協商을 要求하는 촛불示威가 막 始作된 時點이었다. 黨에선 그 時點이 國政刷新策을 내놓을 適期라고 判斷하고 이 大統領에게 提出할 建議案을 마련했다.

    그렇지만 姜 代表는 會同에서 이 問題를 꺼내지 않았다. 그 理由에 對해선 여러 가지 解釋이 나왔다. 姜 代表가 刷新安易 言論에 미리 報道되자 “다 나온 內容을 보고 드리기 憫惘하다”며 접었다는 얘기가 있다. 黨 高位關係者는 “刷新案의 保安이 뚫려 大統領에게 말씀드리나마나한 狀況이 돼버렸기에 姜 代表가 따로 建議하지 않은 것”이라고 說明했다.

    學者 出身들의 固執

    하지만 다른 말도 나왔다. 靑瓦臺 參謀들이 “只今 黨에서 刷新策을 建議해봤자 大統領의 人氣가 떨어져 있다는 것만 浮刻시킬 뿐 아무런 實益이 없다. 自體的으로 刷新案을 마련할 테니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强力히 要請한 것을 姜 代表가 受容했다는 觀測이다. 이런 理由로 刷新策 建議가 霧散된 게 事實이라면 靑瓦臺 參謀들의 問題意識 缺如로 危機에 제때 對處하지 못하고 事態를 악화시킨 것이 된다.

    靑瓦臺 參謀들의 未熟함에 對해선 또 다른 批判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議員은 “學者들의 靑瓦臺 掌握은 內部의 疏通 不足이란 深刻한 問題點을 낳았다”고 말했다. 그는 “學者 出身들은 特有의 固執이 있다. 自身의 생각이 無條件 옳다고 믿는 것이다. 問題가 發生해도 參謀들끼리 머리를 맞대서 綜合的으로 解決策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自己가 맡은 分野만 놓고 머리를 싸맨다. 서로 疏通이 없으니 靑瓦臺 祕書室이 一種의 動脈硬化症에 걸려버렸다”고 指摘했다.

    李 大統領은 5月22日 對國民談話를 發表해 쇠고기 輸入 波動에 對해 謝過하고 國民의 理解를 求했다. 當時 談話文은 류우익 室長의 指揮로 박재완 政務首席, 김두우 政務2祕書官, 李東官 代辯人 等이 함께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過去 政權에서도 祕書室長 主宰로 政務파트와 演說祕書官이 所屬된 弘報首席室에서 談話文 作成을 主導했다. 다만 談話文에 담길 內容을 廣範圍하게 蒐集하기 위해 各 首席室의 意見을 積極 聽取했다.

    그러나 이番에는 그런 疏通 過程을 거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나라당 關係者가 傳했다. 甚至於 한 首席祕書官은 이 大統領이 談話文을 發表하기 直前까지 內容은 勿論, 發表 事實까지 까마득히 몰랐다가 言論에 報道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問題들 때문에 한나라당이 靑瓦臺를 向해 ‘政治 아마추어론’을 提起했지만 靑瓦臺 사람들은 全혀 首肯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正攻法을 쓰지 않고 政治的으로만 解決하려고 하니 問題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特히 이 大統領도 이와 비슷한 認識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泰然한 이상득, 속으로 激怒”

    한나라당 關係者는 “李 大統領은 國政을 이끌어가는 黨·政·靑 3軸 가운데 한나라당은 그다지 重要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政權을 創出한 原動力도 한나라黨보다는 서울市청팀과 安國포럼 같은 이 大統領의 오랜 參謀들과 大選候補 競選 및 本選過程에서 迎入한 學者와 官僚, 言論界 出身 參謀들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大統領職引受위를 構成할 때도 過去에 비해 政治人들을 重用하지 않았다는 說明이다.

    政權 初期에 나타난 이처럼 類例없는 黨·청 葛藤은 마침내 權力鬪爭을 폭발시켰다. 鄭 議員이 提起한 ‘權力 私有化론’은 結局 이런 脈絡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득界 核心 4人을 겨냥한 鄭 議員의 爆彈 發言은 權力鬪爭의 끝이 아니라 始作이다. 黨·청 葛藤의 불길이 黨 안으로 옮겨붙었다. 特히 이상득界에선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李 議員은 鄭 議員 發言 直後 言論 인터뷰에서 “누구든지 自己 생각을 말할 수 있다. 그분 立場에서 보면 一理가 있을 수 있다”고 짐짓 毅然하게 對處했다. 지난 總選 過程에서 李在五 議員이 自身의 公薦 返納을 要求하는 ‘55人 船上 叛亂’을 일으킨 데 이어 이番에 ‘功臣의 亂’까지 當했지만 맞對應하지 않고 自制했다. 大統領의 親兄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實際로는 이 議員이 鄭 議員 發言을 接하고 激怒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關係者는 “鄭 議員이 겨냥한 타깃이 朴 前 祕書官뿐만 아니라 이 議員 自身, 나아가 大統領이란 것을 왜 모르겠느냐. 李 議員이 단단히 火가 난 것으로 안다”고 傳했다. 이 關係者는 “朴 前 祕書官이 腸·次官 人事를 다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李 議員 代身 화살을 맞은 꼴이다. 10年 넘게 ‘이명박 大統領 만들기’를 위해 渾身의 힘을 다 바친 사람이 3個月 만에 엄청난 傷處를 입고 落馬하니 안타깝다”고도 했다.

    朴 前 祕書官은 지난 4·9 總選 때 大邱 中-南區에 出馬하기 위해 公薦을 申請했다. 當時 그는 “이제 내 政治를 해보고 싶다”고 總選 出馬의 辯을 밝혔다. 그러나 이 大統領이 그를 불러 “곁에서 일해달라”며 2時間을 說得했고, 結局 뜻을 접었다. 朴 前 祕書官과 가까운 한나라당 한 議員은 “萬一 그때 大統領의 要請을 뿌리쳤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술자리 按酒거리 돼버렸다”

    鄭 議員에 對한 批判은 主로 黨內 重鎭들과 嶺南 出身 議員들 사이에서 나왔다. 이들은 鄭 議員의 ‘權力 私有化’ 批判에 部分的으로 同意하지만 市民들이 켜든 ‘촛불’에 政權이 包圍돼 있는 時點에, 그것도 言論 인터뷰를 통해 精製되지 않은 온갖 表現을 使用하는 바람에 술자리의 按酒거리가 돼버리도록 만든 方式을 問題 삼는다. 鄭 議員은 “어느 公職者는 밥 먹자고 하도 졸라서 나가보니 ‘오빠 나 이番에 안 시켜주면 울어버릴 거야~잉. 알았지~잉’ 이래요”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表現이 日刊紙 萬坪으로 引用되는 等 世間의 話題가 됐다.

    黨 指導部 競選에 나선 공성진 서울市黨委員長은 “發言 時期나 內容이 權力鬪爭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나무랐다. 한나라黨 倫理委員長을 지낸 인명진 牧師조차 “國民을 오히려 不安하게 만들었다. (靑瓦臺와의) 對話 通路가 없다면 모를까, 鄭 議員쯤 되면 大統領에게 直接 말할 수도 있지 않느냐. 公開的으로 發言함으로써 (政權이) 不安한 모습만 드러냈다”고 批判했다.

    鄭 議員이 ‘權力 私有化’ 發言을 할 資格이 있느냐는 指摘도 있다. 朴 前 祕書官이 主張한 ‘靑瓦臺 50名 推薦, 30名 採擇’이 事實이라면 鄭 議員도 마찬가지로 權力의 많은 部分을 私有化한 것 아니냐는 反駁이다. 鄭 議員, 朴 前 祕書官과 같은 安國포럼 出身인 조해진 議員은 “果然 指摘된 몇몇에게만 問題가 있고 鄭 議員을 包含한 ‘親伊’系 全般의 잘못은 없느냐”고 反問했다. 亦是 ‘親伊’系인 車明進 議員도 “事實關係도 明確하지 않은 側近의 人事專橫을 根據로 側近끼리 싸워 李明博 政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批判的인 意見을 내놨다.

    反面 首都圈을 中心으로 한 所長그룹에서는 鄭 議員을 擁護하면서 戰線을 形成했다. 원희룡 議員은 “權力의 한 軸을 形成해온 鄭 議員이 權力 內部를 批判한 것은 適切치 못하다”고 前提하면서도 “그의 忠情을 헤아려 當場 人事專橫 等 指摘한 問題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정병국 議員은 “難局을 풀기 위해 與圈에 累積된 問題를 指摘한 勇氣를 높이 사야 한다”고 鄭 議員 便을 들었다.

    結局 鄭 議員이 敢行한 ‘功臣 叛亂’으로 與圈의 權力指導는 相當 部分 變化가 不可避해졌다. 當分間은 ‘MB 直轄體制’로 갈 可能性이 높다. 黨-靑 間, 重鎭그룹-所長그룹 間 葛藤이 擴散되는 兆朕을 보이던 6月9日, 이 大統領이 이상득 議員과 최시중 放送通信委員長 等 浦項 出身 元老들을 靑瓦臺 옆 安家로 불러 政局解法과 關聯한 助言을 들은 것은 示唆하는 바가 적지 않다.

    政治權 關係者는 “3人의 안가 會同에서 朴 前 祕書官의 退陣이 決定됐고, 이 大統領이 그날 辭表를 받았다. 이는 紛亂을 早期에 잠재우고 大大的인 人的刷新을 하겠다는 意志의 表現이지만, 한便으론 이番 일을 契機로 親政體制를 더욱 强化하겠다는 意味로도 볼 수 있다”고 解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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