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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푸드’로 웰빙하라?|新東亞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貧困할수록 살찌는 美國 食卓 아이러니

  • 金守經 美國 스탠퍼드대 博士課程·社會學 kimsk@stanford.edu

    入力 2008-07-09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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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둑한 뱃살이 富(富)의 象徵이던 時節이 있었다. 只今은 正反對다. 筋肉이 適當하게 붙은 마른 몸매가 가진 者의 基準이 됐다. 값싼 飮食은 熱量은 높고 營養價는 낮은 反面 정성스레 가꾼 材料로 만든 高級 飮食은 健康食이 된다. 食卓 間 貧富隔差가 분명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美國에서는 社會·經濟的 地位가 낮은 少數人種의 肥滿度가 훨씬 높다. 飮食 選擇權과 健康조차 돈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美國으로 留學 오기 前 마냥 설레기만 했던 건 아니다. 30年 가까이 韓國에서만 生活한 데다 늘 家族과 함께 산 까닭에 낯선 땅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에 對한 두려움이 적지 않았다. 于先 言語가 가장 큰 걱정이었고, 말로만 들던 少數人種에 對한 微妙한 差別도 神經이 쓰였다. 그러나 美國 生活의 不便함은 좀 더 些少한 곳에서부터 찾아왔다. 바로 먹을거리였다.

    飮食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이 問題가 아니었다. 혼자 사는 留學生인 내게 美國 먹을거리의 包裝單位는 너무 컸다. 먹는 量보다 버리는 量이 더 많았다. 게다가 大部分 묶음 販賣를 하는 통에 먹을 만큼만 購買하는 것이 거의 不可能했다.

    留學 初期, 아침에 먹을 食빵을 사러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였다. 서른 쪽假量의 食빵 두 封紙를 한 封紙 價格에 팔고 있었다. 一週日 남짓한 流通期限 안에 到底히 다 먹을 수 없는 分量이어서 한 封紙만 들고 計算臺에 섰다. 於此彼 버려질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疑訝해하는 店員에게 서툰 英語로 짧게 說明했지만, 空짜를 마다하는 것이 如前히 理解되지 않는 눈치였다.

    狀況이 이렇다 보니 流通期限 內에 飮食을 處分하기 위해 過食하는 날이 늘어갔다. 오랜만에 冷藏庫 淸掃라도 하는 날이면, 언제 사뒀는지도 가물가물한 쓰고 남은 食材料들이 쏟아져 나왔다.

    痲藥中毒보다 무서운 飮食中毒



    勿論 적은 單位로 包裝된 物件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主로 計算臺 옆에 少量 비치되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別途의 空間에 陳列돼 있다. 또한 낱個로 物件을 購買할 境遇 單價가 懸隔히 비싸지기에 特別한 理由가 없는 한 묶음으로 購買하는 것이 一般的이다.

    韓國에도 多量을 購買하면 덤을 끼워주는 販賣方式이 있으니 別로 놀라울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實際로 場을 보면서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美國에서는 많이 사면 보너스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적게 사면 페널티를 무는 氣分이 든다. 大部分의 製品이 多量 包裝으로 販賣되기 때문이다.

    菓子나 飮料처럼 流通期限이 긴 製品은 오래 두고 조금씩 나눠 먹으면 되지 않냐고 反問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番 열면 멈출 수 없다(Once you pop, you can´t stop)’는 美國 有名 菓子 會社의 廣告文句처럼, 一旦 製品 包裝을 뜯으면 빠른 時間 안에 消費하게 되는 게 事實이다.

    감자칩과 같은 高熱量 食品의 境遇 大部分 1封紙에 2000kcal가 넘는다. 成人 1日 熱量 勸奬量이 男性의 境遇 3000kcal, 女性의 境遇 2200kcal인 點을 勘案하면 엄청난 量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製菓業體들이 最近 100kcal 單位로 包裝한 製品들을 出市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20個들이로 묶어 販賣한다.

    問題는, 食慾이 人間의 가장 큰 欲求인 만큼 抑制가 쉽지 않다는 點이다. 얼마 前 美國의 한 TV채널에서 放映한 肥滿 다큐멘터리의 內容은 꽤 衝擊的이다. 體重이 200~300kg에 達하는 超高度 肥滿 患者들의 日常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서 한 男性은 하루 3萬kcal 以上의 熱量을 攝取했다. 그는 內臟脂肪이 弊를 壓迫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酸素呼吸器를 달고 살아야 했지만 一般人의 10倍가 넘는 量의 飮食攝取를 멈출 수 없었다.

    美國에서는 이들을 飮食中毒者(food addict)라고 부른다. 藥물中毒이나 알코올中毒처럼, 單純히 個人의 意志로 高熱量 飮食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事情이 이렇다 보니 2000年代 들어 各種 패스트푸드 業體에 責任을 묻는 ‘肥滿訴訟’이 줄을 이었고, 肥滿을 果然 中毒으로 볼 수 있는지가 論難의 中心이 됐다.

    2003年 프린스턴 大學의 한 硏究팀은 쥐實驗을 통해 패스트푸드나 菓子처럼 雪糖과 地方이 多量 含有된 食品이 痲藥만큼이나 强力한 中毒性을 가진다고 主張했다. 이는 訴訟을 提起한 肥滿患者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아직까지 勝訴한 事例는 없다. 一角에서는 1990年代 ‘담배訴訟’으로 재미를 본 辯護士 集團이 패스트푸드 業體를 다음 먹잇감으로 擇해 訴訟을 助長하고 있다는 冷笑的 見解도 있다.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美國에서는 貧困할수록 肥滿이 될 可能性이 높다. 패스트푸드와 같은 低價 飮食은 熱量만 높고 營養價는 不實하고, 健康食은 價格이 비싸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業界는 不必要한 訴訟의 濫發을 막는다는 名目 아래 强力한 로비를 통해 ‘飮食消費行爲에서 個人의 責任 法案’(一名 ‘치즈버거 法案’)을 두 番이나 下院에서 통과시켰지만, 上院에서 番番이 棄却되는 해프닝도 낳았다.

    美國처럼 個人의 意志와 努力을 重視하는 社會에서조차 肥滿은 個人의 힘으로 到底히 벗어나기 힘든 굴레인 것일까. 美 疾病統制豫防센터가 2004年 發表한 硏究 結果에 따르면 美國 成人의 33%가 肥滿으로 드러났으며 過體重 人口까지 合하면 66%나 된다. 1980年 肥滿人口가 15%에 不過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增加다. OECD(經濟協力開發機構)의 統計에 따르면 美國은 肥滿人口에 있어 斷然 世界 1位다.

    ‘프리件族’의 登場

    肥滿의 責任을 業體에 돌리는 視角은 韓國人에겐 아직 낯설다. 비슷한 事例로 담배訴訟이 자주 擧論되는데, 2007年 韓國의 1審 裁判部는 吸煙이 消費者 스스로 選擇할 수 있는 問題라고 判斷해 業體의 손을 들어줬다. 그로부터 正確히 10年 前, 美 大法院은 被害 患者에게 勝訴判決을 내린 바 있다.

    肥滿의 責任 素材를 놓고 熾烈한 法的工房이 進行되는 동안, 美國 社會에서는 쓰레기를 뒤져 먹고 사는 新人類 ‘프리件族(freegan族)’이 登場했다. 거지를 想像했다면 큰 誤算이다. 이들은 大量生産·大量消費를 主軸으로 하는 美國의 物質文明에 反旗를 내걸고, 環境을 걱정하며 쓰레기를 뒤지는 ‘意識 있는 거지’들이다.

    ‘프리件’은 自由(或은 空짜)를 뜻하는 ‘free’와 菜食主義者의 一種인 ‘vegan’의 合成語로 1990年代 環境運動과 反世界化 運動의 支流로 始作됐다. 이들은 飮食을 包含한 모든 製品의 購買를 拒否하고, 버려지는 物件의 再活用 原則을 固守한다. 프리件 運動에 同參하는 사람들은 主로 大學敎育을 받은 中産層 以上의 사람들이다.

    ‘LA타임스’에 報道된 넬슨氏 事例를 보자. 年俸이 數億원에 達하던 그는 몇 年 前 職場을 그만두고 프리件이 됐다. 그는 自願奉仕者로 일하면서 끼니 때마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그러나 누가 봐도 멀쩡한 食材料로 飮食을 만들어 먹는다. 每年 生活費로 10萬달러(約 1億원) 以上을 支出했지만, 이제는 2萬5000달러(藥 2500萬원)로 줄었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한 硏究팀이 美 農務部(USDA)의 依賴로 調査한 바에 따르면 美國에서 生産되는 食糧 및 食品의 40~50%가 消費되기 前에 버려진다. 家庭에서 排出되는 飮食物 쓰레기만 年間 430億달러(藥 43兆원)어치에 達한다고 하니 쓰레기를 뒤져서 끼니를 解決하는 것도 不可能한 일은 아니다.

    時事週刊誌 ‘뉴스위크’의 한 記者는 한 달 동안 프리件들을 同行取材하며 스스로 프리件 體驗을 했다. 製菓店에서 버려진 쓰레기 封紙 안에서 新鮮한 베이글이 쏟아져 나왔다. 프리件 運動團體인 ‘美國의 두 番째 收穫(America´s Second Harvest)’은 이렇게 收去한 飮食으로 1年에 250萬名의 굶주린 사람을 먹인다고 한다.

    누군가는 배불리 먹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뒤지는 現實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以前과 다른 點이 있다면 富者가 배불리 먹고 貧者가 쓰레기를 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肥滿은 오히려 가난을 통해 代물림된다.

    굶주림과 肥滿의 패러독스

    美 농무부가 2002年 實施한 調査에서 貧困線 以下 階層에 屬한 家庭일수록 肥滿兒童의 比率이 越等히 높았으며 所得이 增加할수록 그 比率은 떨어졌다. 美 肥滿協會(American Obesity Association)에 따르면 黑人이나 히스패닉과 같이 白人보다 社會·經濟的 地位가 낮은 少數人種의 肥滿度가 훨씬 높다.

    美國에서는 이를 ‘굶주림과 肥滿의 패러독스(hunger-obesity paradox)’라 한다. 常識的으로 생각할 때 돈이 없으면 充分한 飮食 攝取를 할 수 없으므로 肥滿의 可能性이 줄어들어야 하지만, 現實에서는 더 굶주린 者가 肥滿이 되는 矛盾이 發生하는 것이다.

    이는 패스트푸드와 같이 熱量은 높고 營養價는 不實한 飮食일수록 값이 싸고, 과일이나 野菜와 같은 健康食品은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워싱턴 주립대 公共保健센터가 2004年 美國 臨床營養學會地(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發表한 論文에 따르면 肥滿을 團地 食習慣의 ‘選擇’ 問題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貧困層은 經濟的 費用 때문에 健康한 食單을 選擇할 수 없다고 指摘했다. 달리 말해, 節約이 肥滿을 부른다는 것이다.

    有機農 專門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즈마켓(Whole Foods Market)과 韓國에도 入店한 코스트코(Costco)에서 同一한 製品의 價格을 比較해보면 이를 今方 確認할 수 있다. 스테이크用 쇠고기 價格이 2倍 가까이 差異가 난다. 홀푸즈에서 販賣되는 고기에는 一一이 ‘抗生劑를 먹이지 않았음’ ‘史料는 먹이지 않고 풀만 먹였음’과 같은 案內文이 적혀 있다.

    有機農 食品은 價格이 비싸 經濟的 餘裕가 있는 上流層에 依해 消費돼왔으며 數千兆원에 達하는 美國 食料品 市場의 2% 남짓을 차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2006年 大型 슈퍼마켓 체인 월마트가 有機農 作物을 低價에 販賣하기 始作하면서 이른바 ‘有機農 食品의 民主化’가 始作됐다.

    월마트의 有機農 市場 進出은 여러 論難을 낳았다. 有機農 食品의 生産 自體가 化學肥料나 農藥을 쓰지 않고 自然 狀態 그대로 作物을 栽培한다는 倫理的 動機에서 始作된 만큼, 大型 마트에 依한 商業化는 本來의 趣旨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有機農 産業이 大型化하면 旣存의 小規模 農家들이 倒産할 것이라는 憂慮도 提起됐다.

    有機農 作物이 넘쳐나면 有機農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模糊해져 消費者가 混亂에 빠질 것이라는 指摘도 나왔다. 그러나 한便으로는 上流層만 누릴 수 있는 奢侈로 여겨졌던 有機農 作物을 보다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歡迎할 만한 일이라는 視角도 적지 않았다.

    全體人口 1/3이 다이어트 經驗

    이렇듯 美國의 現實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해서조차 돈이 必要하며, 가난한 階層에게 ‘배부른 돼지’ 노릇을 덧씌우고 있다. 이쯤 되면 食生活과 그로 인한 肥滿은 個人의 習慣 탓으로 돌릴 수 없는 問題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야 나는 왜 美國이 肥滿患者를 單純히 自己管理에 게으른 사람이 아닌, ‘飮食中毒者’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健康한 食單을 選擇하려야 選擇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美國 社會가 肥滿의 모든 責任을 構造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美國은 努力하는 만큼 거둔다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社會가 아닌가. 美國의 다이어트 産業은 肥滿을 個人의 意志로 克服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蕃盛해왔다. 勿論 肥滿治療에도 個人의 意志 以外에 돈이 必要하지만.

    ‘뉴욕타임스’의 한 記事題目은 이런 現實을 한 文章으로 要約한다. 이 新聞은 2005年 ‘꿈과 藥을 팝니다(Selling Dreams and Drugs)’라는 題目 아래 肥滿 클리닉의 實態를 報道했다. 現在 美國에는 2500名의 醫師가 肥滿管理 施術을 하고 있다. 問題는 一部 醫師들이 處方箋을 濫發하고 藥師免許 없이 藥을 販賣하다 摘發된 事例도 있다는 것. 肥滿分野는 아직 醫療界 內의 主流가 아니라서 檢證되지 않은 施術이 行해지는 것도 問題로 指摘됐다.

    報道에 따르면 相當數 醫師가 크고 작은 醫療事故에 連累된 뒤 元來의 診療科目을 접고 다이어트 業界에 뛰어들고 있다. 專門性에 對한 要求가 덜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醫療保險이 適用되지 않는 ‘現札장사’라서 高收益을 保障받는다. 外科醫師이던 슈워츠氏는 잦은 醫療事故로 州 政府로부터 手術執刀를 금지당한 뒤 肥滿 클리닉을 열었다.

    美國의 市場調査 專門機關인 거슨러먼그룹(Gerson Lehrman Group)에 따르면 美國 다이어트 産業의 規模는 2007年 現在 年間 550億달러(藥 55兆원)로 全世界 다이어트 産業의 70%에 達하는 것으로 推算된다. 美國 人口 中 7500萬名이 다이어트를 經驗했다는 調査結果도 있다. 세 名 中 한 名꼴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美國 兒童人口의 17%가 肥滿이고 그 數字가 漸漸 늘어나는 趨勢를 勘案하면 다이어트 産業은 潛在的 消費者가 約束된 黃金漁場이다. 말하자면 大量消費를 誘導하는 食品産業과 節制를 强要하는 다이어트 産業이 絶妙한 共生關係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成人 人口의 折半 以上이 過體重이라면 標準 體型의 定義가 달라질 法도 한데, 如前히 그들의 欲望은 마른 體型을 向해 있다. 實際로 다이어트에 對한 美國人의 强迫은 엄청나다. TV나 雜誌에는 各種 다이어트 補助劑 廣告가 넘쳐난다. 最近에는 10代들의 拒食症이 社會 問題로 擡頭되기도 했다.

    深刻한 것은 10代들의 拒食症이 많은 境遇 自發的 動機에서 始作된다는 事實이다. 10代 靑少年들이 인터넷을 통해 ‘拒食症 患者가 되는 法’을 배운다. 實際로 한 웹사이트에는 飮食을 먹은 뒤 吐하는 方法에 對해 詳細하게 說明하고 있으며 ‘손가락보다 齒솔을 利用하는 것이 效率的’이라는 說明까지 덧붙이고 있다.

    拒食症의 90%는 12~25歲 女性에게 發生하며 10代 人口의 1%가 拒食症을 겪고 있다는 調査結果도 있다. 그러나 拒食症 患者들은 大部分 自身의 病을 알리지 않으며 病院을 찾는 境遇도 많지 않기 때문에 實際 患者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韓國도 이미 ‘肥滿 先進國’ 隊列에 들어섰다는 憂慮가 提起되고 있다. 保健福祉家族部가 實施한 國民健康 營養調査에 따르면 2005年 韓國의 成人 過體重 人口는 30%를 넘어섰으며 肥滿兒童의 數字도 7年 새 2倍 以上 增加했다.

    흥미로운 것은 低所得 階層 肥滿의 主犯으로 燒酒와 라면이 꼽혔다는 點이다. 燒酒의 境遇 特히 低所得層 男性의 消費量이 越等히 높았는데, 삶의 고단함을 값싼 술로 달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現實을 보여준다. 메뉴는 달라도 韓美 兩國 모두 貧困層이 良質의 食事를 할 수 없어 肥滿이 되는 現實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一山백병원 윤영숙 오상우 敎授팀과 峨山病院 박혜순 敎授는 2006年 위 資料를 土臺로 한 共同 硏究結果를 美國 肥滿學會紙(‘Obesity’)에 실었다. 韓國 男性의 境遇 所得水準이 높을수록, 女性의 境遇 敎育水準이 높을수록 肥滿度가 낮았다. 社會經濟的 地位에 따른 健康의 兩極化 問題에서 韓國도 例外가 아니다.

    “韓國 肥滿의 主犯은 라면과 燒酒”

    數年 前부터 繼續되고 있는 웰빙 烈風을 생각해보자. 物質的 豐饒가 아닌 精神的 豐饒와 肉體的 健康을 圖謀하는 삶의 方式 그 自體에는 問題가 없다. 그러나 웰빙 烈風은 上流層을 겨냥한 業界의 商魂이 빚어낸 消費文化에 지나지 않다는 指摘도 적지 않다. 베블렌이 말한 上流層의 ‘誇示的 消費’일 뿐, 삶의 態度와는 無關하다는 것이다.

    1950~60年代만 해도 極貧國에 屬하던 韓國으로서는 不過 半世紀 만의 놀라운 變化가 아닐 수 없다. 가난해서 肥滿이 된다니 먹을 게 없어 배를 곯던 戰爭 世代들에게는 氣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經濟成長의 速度만큼이나 빠르게 浸透한 大量消費文化는 韓國人의 體型을 急速度로 변화시켰다.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金守經

    1976年 서울 出生

    서울대 言語學科 卒業

    동아일보 文化部·社會部 記者

    現 美國 스탠퍼드대 社會學科 博士課程


    없어서 못 먹는 極貧國의 貧困層을 생각하면, 先進國의 肥滿 問題는 그야말로 배부른 걱정일지 모른다. 또 肥滿의 責任을 全的으로 가난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無理는 있다. 꼭 헬스클럽에 登錄하지 않더라도 洞네 한 바퀴를 조깅하면서 살을 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反問도 可能하다.

    그러나 肥滿을 團地 食習慣이나 個人의 意志 問題로 還元시켜 自己管理에 힘쓰라는 것은 貧困層에겐 空虛한 主張으로 들린다. 健康을 위해 라면 代身 밥을 먹으라고 말한다면 이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말만큼이나 철없는 소리다.

    肥滿이 選擇의 問題라 해도, 貧困層에게 주어진 選擇의 幅은 富裕層에 비해 좁다. 패스트푸드를 좋아해서 肥滿이 되는 것과, 패스트푸드말고는 먹을 것이 없어 肥滿이 되는 것은 다른 問題다. 資本主義 社會에서 選擇은 곧 돈이다. ‘프리件’이 되거나 ‘웰빙族’李 되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哲學을 選擇하는 것조차 돈을 支給하고 購買해야 하는 世上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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