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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새벽은 낮보다 아름답다|신동아

비 오는 새벽은 낮보다 아름답다

  • 박찬숙 │앵커

    入力 2014-04-21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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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을 깨우는 것은 不眠의 밤만은 아니었다. 보는 이의 느낌대로 새벽의 色깔은 하루를 열고 있었다. 날마다 다른 色깔로 새벽을 여는 곳에서 나의 새벽을 열었다.”

    이런 글을 내걸고 寫眞 個人展을 연 건 카메라를 산 지 6個月 만이었다.

    “40餘 年間 카메라에 찍혀봤으니 寫眞을 찍으면 잘 찍을 거요.” 30餘 年을 寫眞作家로 산 金 社長의 勸誘였다. 그길로 카메라를 한 臺 샀다.

    그해 2011年은 봄부터 여름까지 내내 비가 내렸다.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비를 멋있게 만날 수 있는 곳을 苦悶했다.

    들판은 물에 잠겨 하얀 廣木이 펼쳐진 듯했다. 山골짜기에는 빗물이 모여 비탈길을 타고 흘러내렸다. 街路燈에는 대여섯 마리의 까치가 모여 앉아 江을 바라보고 있었다. 漢江둔치는 暴雨에 잠겨버렸다. 構造用 裝備들은 江邊道路, 올림픽大路 위에 냉큼 올라와 있다. 水位를 가늠하는 漢江다리의 눈금 數値가 걱정스러워졌다.



    그렇게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내가 찍을 수 있는 것은 非뿐이었다. 물뿐이었다. 몇 달을 이어가는 장마 속에서 사람들은 걱정이 쌓여갔다. 사는 것에 對해, 그리고 被害에 對해.

    가끔 그 틈새에 펼쳐지는 구름의 變化無雙한 움직임은 그야말로 藝術이었다. 그런 날은 漢江다리 위나 아파트 屋上에 寫眞愛好家가 구름처럼 몰렸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엄청나게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에 놀랐다. 三脚臺를 뻗쳐놓고 그들이 주고받는 對話를 들으며 나는 주눅이 들곤 했다. 個人展은 한 番도 안 한 아마추어라면서도 저마다 所有한 카메라의 價値는 勿論이고 몇 十 年間 寫眞을 찍으며 經驗한 武勇談은 專門家 水準이었다. 完全 初步인 나는 저물어가는 絢爛한 저녁놀은 그냥 놔둔 채 아무것도 재미있게 해보지 못하고 이 나이가 된 것에 自愧感마저 들었다.

    새벽 나들이

    커튼을 젖혀보고 빛이 보일 듯한 새벽에는 屋上으로 올라갔다. 짙은 藍靑色 구름이 품고 있던 붉은빛을 슬쩍 보여주는가 싶더니 어느새 明紬 疋을 풀어놓은 듯 한 자락 다紅치마가 펼쳐지고 太陽이 말간 얼굴을 내미는 새벽은 너무도 아름다워 셔터를 누를 타이밍도 놓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장마 속에 祝福처럼 찾아오는 빛의 膳物은 잠깐이었다.

    다시 비는 始作됐고 나는 習慣的으로 장마를 뚫고 새벽을 만났다.

    모두가 자고 있는 것 같은 새벽에도 밤새 내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淸掃夫들이 있었다. 노란 비옷을 입고 진연두色 淸掃車 꽁무니에 서서 매달려 가는 그들을 쫓아 노란 비옷이 눈치 못 채게 며칠을 찍기도 했다.

    비와 안개 속에 잠겨 있는 아파트團地들은 윗部分만이 드러나 魔法의 城처럼 보이기도 했다. 魔法師가 휘젓고 다니는 어느 굴뚝에선가 엄마 잃은 아이의 울음이 들릴 것 같은, 아련한 어린 時節 읽었던, 題目도 잊어버린 童話가 눈물샘을 刺戟하기도 했다.

    漢江다리의 橋脚이 없어지기도 했다. 江에서 피어난 안개가 스멀스멀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다리를 덮었다.

    鄭薰姬의 안개가, 김승옥의 안개가, 윤정희의 안개가,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의 카사블랑카가 뒤섞여 온갖 안개가 內容을 設定하는 데 얼마나 아름다운 裝置인가 생각했다. 안개처럼 사라져간 歲月과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비 오는 새벽은 낮보다 아름답다

    박찬숙 앵커가 찍은 寫眞 作品 ‘모정’.

    장마가 便해졌다.

    雨傘을 쓰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江가를 걸었다. 어제보다 더 차오를 물 때문에 좀 더 위로 올라서서 걸으면서 부풀어 오른 江물 위를 떠다니는 오래된 나무 饌欌, 작은 冷藏庫, 나뭇가지들이 엉킨 무더기 위에 얹힌 雜多한 옷가지들, 色 바랜 장난감들, 고단한 삶들이 떠내려와서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차오른 江물 때문에 江邊에 더 以上 들어갈 수 없게 됐을 때 못 다니는 길도 많아졌다.

    비 내리는 새벽에 差도 別로 없는 高速道路를 달려 다른 都市를 가보기도 했다.

    江原道 山속에 無窮花가 줄지어 피어 있었다. 꽃술이 鮮明한 紫朱色 無窮花, 象牙色 無窮花, 하얀色 無窮花…. 달리아도 그 무거운 머리를 숙여 내 어린 時節을 불러주고 있었다.

    벌개미취라는 이름보다 훨씬 端正한 보라 꽃도 時計처럼 열려 있었다.

    왜 해가 있어야 꽃은 피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쏟아지는 비 속에서 꽃은 確實한 表情으로 제各各의 모습으로 선연히 웃고 있었다. 雨傘을 목덜미에 끼고 허리를 굽혀 꽃 가까이 렌즈를 대고 빗물에 잠긴 꽃의 얼굴들을 만났다.

    寧越 청령포 가는 날도 間間이 비가 내렸다. 배를 타고 청령포로 건너갔다.

    端宗의 가슴

    朝鮮 6代 임금 端宗. 12歲에 王位에 오른 어린 王은 三寸인 首陽大君에게 王位를 簒奪당하고 寧越 청령포로 流配되었다. 17歲에 死藥을 받고 죽을 때까지 江물이 휘돌아 陸地로 나갈 수 없는 청령포에서 老産대군으로 강봉(降封)되어 갇혀 있었다.

    강봉된 端宗이 每日每日 올라서서 漢陽을 바라봤다 해서 이름 지어진 언덕 老産對,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곳에서 팔을 뻗어 絶壁 아래 江물을 向해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絶壁에 붙어 있던 두 個의 작은 풀더미가 少年의 가슴처럼 찍혀 있었다.

    가슴속 돌은 端宗의 단단한 憤怒, 마른 풀잎은 끝없는 絶望, 軟草綠 이파리는 세 살 年上의 아내 定順王后를 向한 애틋한 그리움과 稀微한 希望이 아니었을까.

    江물은 피비린내 나는 權力의 卑劣함을 알기나 하는지 只今도 모른 척 흐르고 있다.

    이런 글로 展示된 寫眞에 생각을 보탰다.

    비 오는 새벽은 낮보다 아름답다
    박찬숙

    1945年 京畿 水原 出生

    1968年 淑明女大 國文科 卒業

    1968年 KBS 公採 1期 아나운서 入社

    1976~2004年 時事프로그램 앵커

    2004~2008年 第17代 國會議員

    東西文學賞 新人賞, 韓國放送大賞 앵커上, 國政監査 優秀議員 4回 受賞

    著書: 小說集 ‘沙漠에서는 날개가 必要하다’ 칼럼集 ‘世上을 연다, 사람들을 연다’ 等

    現 채널A ‘土曜뒷담’, MBN ‘박찬숙의 視線’ 앵커


    유례없는 暴雨를 同伴한 긴 장마는 8月 末쯤 끝나가고 6個月 동안 찍은 寫眞은 컴퓨터 속에 數萬 張 쌓였다.

    個人展, 그냥 해야겠다.

    프로級 아마추어가 되려면 100世는 되어야 할 것 같다. 光學 技術의 엄청난 發展으로 나 같은 初步도 찍고 展示할 수 있는 좋은 世上이 됐다고 생각하자.

    인사동의 한 갤러리를 豫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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