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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보다 尹錫悅이 먼저 손 내밀었다” [+映像]|新東亞

“안철수보다 尹錫悅이 먼저 손 내밀었다” [+映像]

[Special Report | 尹錫悅과 ‘나’] 최진석 서강대 名譽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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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記者

    kjy@donga.com

    入力 2023-05-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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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事 많다고? 文政府는 運動圈 一色

    • 單一化 없었으면 政權交替 不可

    • 大韓民國 正體性 지키는 것 높이 評價

    • 狹小한 人士, 疏通 不足 안타까워

    • 政黨 政治 아닌 陳永 政治가 問題

    • 先導國家 跳躍에 힘쓰는 게 내 使命

    [+映像] 尹錫悅과 ‘나’ | 최진석 서강대 名譽敎授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금이 우리나라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최진석 서강대 名譽敎授는 “只今이 우리나라가 先導國家로 跳躍할 絶好의 機會”라고 强調했다. [지호영 記者]

    최진석 서강대 名譽敎授는 老將(老莊) 哲學의 代價로 政治와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1月 19日 國民의黨 中央選擧對策委員會 常任選對委員長으로 나서자 意外라는 反應이 이어졌다. 一角에서는 그의 行步를 色眼鏡을 끼고 보기도 했다. 그는 介意치 않았다. ‘政權交替’라는 大義가 무엇보다 重要했기 때문이다. 安哲秀 當時 國民宜當 候補가 尹錫悅 大統領과 ‘候補 單一化’에 合意하는 데 決定的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지난 大選은 막판까지 結果를 豫斷하기 힘든 薄氷의 勝負였다. 候補 單一化가 成事되지 않았으면 尹錫悅 政府가 出帆하지 못했을 거라는 分析이 적지 않다.
    崔 名譽敎授는 지난해 5月 尹錫悅 政府의 初代 社會副總理 兼 敎育部 長官 候補者 下馬評에 오르기도 했다. 金仁喆 當時 候補者가 道德性 問題로 自進 辭退하면서 그 자리를 代身할 人物로 指目됐다. ‘안철수 패싱’ 論難을 잠재울 만한 ‘共同政府’의 象徵的 人物이라는 視角에서다. 湖南 出身 人士라는 點도 地域 按排 側面에서 肯定的으로 評價됐다. 結果는 豫想을 비켜갔다.

    ‘신동아’와 1年 만에 만난 그는 “安哲秀 當時 大統領職引受委員長이 直接 그 자리를 提案했지만 辭讓했다”고 밝혔다. 인터뷰 場所가 서울 汝矣島 選擧캠프에서 서울 서초구의 자그마한 事務室로 바뀌었을 뿐 밤톨 같은 헤어스타일도, 講座를 聯想케 하는 言辯도 예전 그대로였다.

    共同政權은 選擧用?

    尹錫悅 政府에서 當身이 맡으면 잘할 것 같은 자리가 있나.

    “없다. 어떤 자리든 專門性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專門性을 訓鍊받은 적이 없다. 現在 內閣에 있는 분들은 어떤 意味에서 專門性을 다 인정받은 분들이다. 내가 지난 大選 때 도운 건 政權交替가 唯一한 目的이었다. 그때는 ‘어떻게 候補 單一化를 성사시켜 政權交替를 이룰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신동아’와 만난 지 1年이 다 돼간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政權交替를 위해 여러 사람과 함께 候補 單一化를 해내고 合當한 後 安哲秀 候補 選擧캠프가 解體됐다. 바로 故鄕인 全南 咸平으로 내려가 글을 쓰고, 읽는 일에 集中했다.”

    안철수 議員과 요즘도 連絡하고 지내나.

    “자주 連絡할 일은 없다. 大選 끝나고 서로 한두 番 連絡하긴 했다. 얼마 前 안철수 議員이 國民의힘 黨代表 選擧에 出馬했을 때 ‘首都圈 總選 必勝을 爲한 戰略토크쇼’를 열었다. 그때 안 議員에게서 電話가 왔다. 直接 가보지는 못하고 成功을 祈願하는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메시지 內容이 뭐였나.

    “‘單一化를 통한 政權交替를 한 것이 안철수 議員한테는 큰 政治的 業績이다. 그 業績을 大韓民國 政治 發展을 위해 더 잘 使用하면 좋겠다’는 內容이었다.”

    當時 黨代表로 安哲秀 候補를 支持했나.

    “누구를 支持하고 말고 할 處地가 아니지만 大統領選擧를 치르면서 뜻을 함께했기에 안철수 議員에 對해서는 心情的으로 支持한다.”

    지난해 3月 3日 劇的으로 成事된 候補 單一化는 政權交替에 寄與했다. 안철수 캠프에서 單一化를 도운 사람들이 尹錫悅 政府에서 重用될 것으로 豫想됐으나 結果는 그렇지 않았다. “單一化에 功이 있는 사람으로서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서운함은 全혀 없다. 좀 안타깝다. 政策을 施行할 때는 自己가 가진 것보다 좀 더 넓은 支持勢로 外延을 擴張해야 한다. 그래야 權力 自體가 좀 더 다양해지고 支持勢度 더 넓어질 수 있다. 그래서 尹錫悅 政權이 安哲秀 候補라는, 좀 異質的이지만 共同의 志向을 가진 勢力과 함께하면 그 以前 이명박 政權이나 朴槿惠 政權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그대로 돌아와 만든 權力보다는 좀 더 나은, 넓은 權力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現實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尹錫悅 大統領 國政遂行 支持率이 大選 得票率(48.59%)보다 낮은 건 안철수 캠프 人士들을 重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分析도 있다.

    “正確한 건 統計로 봐야 알겠지만 失望한 支持者도 分明 있을 것이다. 單一化 때의 精神이 最小限 어느 程度 維持됐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聯合政權, 共同政權은 一定 期間 役割을 한 다음 結局 分裂을 겪고 破局을 맞는다. 한나라 乳房 때도 聯合政權的 性格이 있었다. 그 狀態를 65年 程度 維持하다가 함께했던 다른 權力이 全部 除去되거나 淘汰돼 單一 政權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DJP(金大中+김종필) 聯合’이라는 聯合政權이 있었다. 그때도 一定 期間 聯合軍을 維持했다. 그런데 이番 聯合政權은 始作도 해보지 못하고 選擧用으로만 使用돼 많이 아쉽다. 政治 發展을 위해 聯合政權이 어느 程度 維持됐어야 肯定的 效果가 나타날 텐데 그러지 못했다.”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이들에게서 들은 얘기는 없나.

    “그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어떤 支持者는 서운함을 넘어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正말 안타깝다.”

    ‘내로남不’式 認知 不調和

    要職에 檢事 出身이 많다는 批判에 對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檢事 出身이 政府 要職에 많은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런데 그걸 批判하는 사람들은 運動圈 出身 一色으로 政府를 꾸리지 않았나. 自己하고 뜻이나 行動 方式이 같은 사람들과만 國政을 運用하며 權力을 매우 좁은 範圍에서 使用하는 問題는 非但 尹錫悅 大統領만의 限界가 아니다. 우리나라 政治 水準의 限界로 봐야 한다. 政權이 바뀔 때마다 코드 人事가 問題로 指摘됐지만 지난 20餘 年 동안 그렇게 해왔다. 그렇다고 尹錫悅 政府의 人事 方式에 問題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政權이 어느 程度 立地를 다지면 人事 幅이 넓어지지 않겠나.

    “政權 初盤의 問題가 끝까지 問題가 된다. 그것을 애初에 問題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覺醒하거나 反省하는 일이 거의 없다. 企業 代表나 政治 리더가 그 자리에 오른 다음 두세 달 동안 보여주는 것이 그 사람의 全部일 可能性이 크다.”

    尹錫悅 政府가 들어선 지 1年이 다 돼간다. 觀戰評이 궁금하다.

    “哲學者인 내가 왜 政治판에 들어가면서까지 政權交替를 하고자 했냐면 大韓民國의 正體性 問題 때문이다. 文在寅 政權 내내 大韓民國을 敵으로 놓고 싸운 사람을 높이고 大韓民國을 위해 싸운 사람을 낮추는 일이 繼續됐다. 大韓民國 憲法을 지켜야 하는 大統領이 大韓民國을 中心에 놓지 않고 오히려 大韓民國에 敵對的이던 쪽이 便하게 國政을 運營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一般 國民은 敏感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工夫한 哲學的 方法으로 이 問題를 들여다보니 政治人이냐 哲學者냐를 따질 閑暇한 狀況이 아니었다. 政治權에 가서 이 問題를 解決해야 한다는 切迫함을 느꼈다. 尹錫悅 政府가 1年의 時間 동안 많은 批判을 들을 點이 있는 것으로 보여도 大韓民國을 中心에 놓고 國政을 運營한다든지, 大韓民國의 正體性을 지키려고 努力하는 點은 높게 評價한다.”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代表가 政權을 잡았다면 大韓民國의 正體性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나.

    “그러니까 政權交替를 하려고 한 거다. 우리나라 正體性 問題가 單純히 正體性 問題에만 限定되는 것이 아니라 心理的 或은 認知的 不調和를 가져온다. 大韓民國 軍 統帥權者가 우리 軍을 약화시키는 일을 한달지, 大韓民國 憲法을 守護할 位置에 있으면서 大韓民國을 敵으로 놓고 싸웠던 사람을 높이는 일을 한달지 하는 건 相當한 不調和다. 이런 不調和를 基本으로 놓고 統治하면 現實을 正確히 보는 能力이 사라진다. 自己가 하는 말과 行動이 다른 일이 많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文在寅 政權 내내 ‘내로남不’式으로 問題 狀況을 받아들이는 境遇가 非一非再했다. 그런 認知 不調和 狀態로는 國政을 健康하게 運營할 수 없다. 大韓民國 大統領은 大韓民國의 國防을 强化하면서 大韓民國을 中心에 놓고 國家 正體性을 지켜야 할 義務가 있다. 大韓民國 統治者이자 軍 統帥權者가 國家가 아닌 民族을 優位에 둔다면 大統領으로서 認知 不調和 狀態에 이르러 國家를 危險에 빠뜨릴 수 있다.”

    大韓民國을 敵으로 놓고 싸운 사람은 包容해선 안 되나.

    “國家의 外延을 넓히기 위해 大韓民國 建國을 反對했다든지, 大韓民國을 敵으로 놓고 싸운 사람들을 包容할 수 있다. 그러려면 大韓民國을 위해 일한 사람들, 大韓民國 建國에 貢獻한 사람들부터 먼저 높이고 尊重하는 것이 마땅하다. 文在寅 政權은 그러지 않았다. 大韓民國을 위해 싸운 사람부터 높이지 않고 우리나라를 貶下하거나 敵으로 놓고 싸운 사람을 높이려고 했다. 이건 大韓民國의 外延을 넓히려는 努力으로 보기 힘들다. 大韓民國을 忽待하거나 敵으로 놓고 싸웠던 사람들을 떠받드는 일을 한 거나 다름없다. 참 駭怪한 大統領이었다.”

    尹錫悅 大統領과 個人的 因緣이 있나.

    “個人的 因緣은 없다. 그분이 國民의힘 大統領 候補가 됐을 때 連絡이 와 한 番 만난 적이 있다. 안철수 캠프에 들어가기 前이었다. 尹錫悅 캠프의 共同選對委員長을 맡아달라고 提議했는데 그때는 辭讓하고, 安哲秀 當時 國民宜當 候補가 캠프 合流를 請했을 때는 受諾했다.”

    韓國 政治 限界에 到達

    理由가 뭔가.

    “政權交替를 하는 것이 目的인데 尹錫悅 候補 캠프는 組織이 커서 共同選對委員長으로 일하더라도 單一化나 政權交替를 하는 데 내 役割이 매우 制限的일 것 같았다. 安哲秀 候補 캠프는 相對的으로 組織이 작아서 尹錫悅 캠프보다는 내 말의 影響이 조금 더 크게 미칠 것이라고 判斷했다. 政權交替를 위해 候補 單一化를 하더라도 尹錫悅 候補를 安哲秀 候補 쪽으로 오게 하는 것보다는 安哲秀 候補를 尹錫悅 候補 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 더 쉬울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럼 애初에 안철수 캠프에 들어갈 때 候補 單一化까지 念頭에 뒀나.

    “政權交替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熱望으로 안철수 캠프에 들어갔는데 가서 보니 單一化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安哲秀 候補의 支持勢는 大統領으로 만들 수 있는 程度가 아니어서 單一化를 통한 政權交替가 最善이었다. 單一化가 成事되지 않았으면 政權交替가 不可能했을 것이다.”

    文在寅 政府에 비해 尹錫悅 政府 들어 좋은 點과 나쁜 點을 꼽는다면.

    “좋은 點은 大韓民國을 中心에 놓고 政策을 펼치는 것이고, 나쁜 點은 내가 말할 必要가 없다. 우리가 누가 더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없는 것이 只今 우리 政治의 가장 큰 問題다. 大韓民國 政治의 想像力과 使命感은 내가 볼 때 限界에 이른 것 같다.”

    限界에 이르렀다?

    “政治는 말로 하는 거다. 核心은 말이다. 가장 優先的인 信賴는 말의 信賴이기 때문이다. 秩序만 하더라도 가장 根本的인 것은 말의 秩序다. 政治를 제대로 하려면 말의 信賴, 말의 秩序를 지켜야 한다. 근데 文在寅 政權 내내 말의 秩序가 무너졌다. 文在寅 政權 初期에 自己가 한 말을 안 지킨 것이 말의 秩序를 어지럽힌 代表的 例다. 人事 5原則은 누가 시킨 것도, 要求한 것도 아니다. 人事 5原則을 지켜서 人事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初期 內閣부터 안 지켰다. 그래서 文在寅 政權이 들어서고 3~4個月 됐을 때 동아일보에 ‘문재인 大統領, 固有함이 사라진다’는 글을 發表했다. 말의 秩序를 무너뜨리거나 말의 信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어떤 政治를 할지 쉽게 斟酌할 수 있다. 豫想이 틀리지 않았다. 말의 信賴나 말의 秩序를 흐트러뜨린 사람이 할 수 있는 政治만 執權 期間 내내 했다.”

    尹 大統領은 어떤가.

    “尹錫悅 大統領은 文在寅 大統領이나 李在明 候補를 過激하게 反對하면서 大統領이 됐다. 그런데 本人도 共同政府 出帆 約束을 처음부터 안 지켰다. ‘選擧캠프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말도 지켜지지 않았다. 김대중 大統領 以後의 大統領은 다 같은 水準이다. 어떤 政治的 批判의 말도 눈 감고 들으면 어느 陣營에서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을 程度다. 앞서 내가 文在寅 政府보다 더 못 한 點을 答하지 않은 理由가 여기에 있다. 只今은 누가 누구를 批判하고 批判하지 않고 할 그런 階梯가 아니다. 우리나라 政治는 이미 限界에 到達했다. 政治에 對한 眞實性, 使命感, 想像力 모두 말이다.”

    大統領 製造 工場

    우리 政治의 어떤 點이 問題라는 건가.

    “政治가 政治 技術者들로만 채워져 있다. 政治工學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機能的인 政治에 갇혀 있다. 그래서 權力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政黨은 權力 爭取의 手段으로만 存在한다. 只今 大韓民國의 政黨은 大統領 製造 工場으로 轉落했다. 우리가 왜 政治를 하는지, 政治를 통해 우리 삶을 어떻게 改善하려고 했는지에 對한 根本 精神은 사라진 지 오래다. 政治人만이 아니라 國民도 限界에 이르렀다. 玉石을 가릴 때 感性에만 依存한다. 모두 國家 利益은 眼中에도 없고 네 便이냐 내 便이냐 하는 것만 重要하게 여긴다. 只今 우리는 政黨 政治가 아니라 陳永 政治를 하고 있는 거다.”

    陳永 政治를 하는 게 問題다?

    “생각하는 能力이 去勢된 사람들끼리 만든 政治 集團이 陣營이다. 陣營에 한番 빠지면 생각하는 能力이 去勢된다. 陣營에 빠진 사람은 생각할 피요가 없다. 陣營에서 만든 價値와 理念을 아무 생각 없이 목소리를 높여 再生産해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생각을 하지 않고는 機能 以上을 할 수 없다. 생각하는 能力이 사라져서 正常的인 政治가 이미 不可能한 狀況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廉恥가 있다. 부끄러움과 羞恥心을 안다. 皮相的 機能 以上의 價値를 지키지 못할 때, 거짓말을 했을 때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생각을 하지 않아서 人格이 망가지면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價値를 抛棄하고 機能을 選擇하면서도 羞恥心을 느끼지 않는다. 相當히 危險한 限界에 갇혔다.”

    尹錫悅 政府 出帆 以後 滿足感이나 幸福指數가 높아졌나.

    “누가 大統領이 되든지 내 幸福指數는 恒常 높다. 내 使命感은 如前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使命感으로 살고 그 使命感으로 幸福하기 때문에 누가 大統領이 되느냐가 幸福指數에 影響을 미치지 못한다.”

    어떤 使命感인가.

    “우리나라는 그동안 생각의 結果를 받아서 살았지, 생각을 하면서 살지 못했다. 戰術 國家로 살았지, 戰略 國家로는 살지 못했다. 知識을 輸入하는 나라로 살았지, 知識을 生産하는 나라로는 살지 못했다. 그런데 知識을 輸入해서 사는 形式, 생각의 結果를 받아서 사는 形式, 戰術 國家나 追擊 國家 레벨로는 到達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이미 到達했다. 이제는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先導國家로 올라서느냐, 戰略 國家로 올라서느냐, 어떻게 생각하는 나라가 되느냐, 어떻게 知識을 生産하는 나라가 되느냐 하는 것만 남았다. 이런 跳躍을 해내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더는 發展할 수 없다. 난 이 跳躍을 한番 이뤄보는 것, 跳躍을 이루는 데 한番 힘을 써보는 것을 내 使命으로 여긴다.”

    그 跳躍을 實現할 戰略을 세워뒀나.

    “于先 先導國家를 만들 수 있고, 만들고 싶은 사람이 모여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政治勢力이 形成될 것이다. 旣存 政治勢力의 想像力이나 人格的 素養은 이미 限界에 이르렀기에 先導國家 以前까지 到達하는 것은 可能했지만 그다음 跳躍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障礙가 될 수 있다. 앞으로 大韓民國의 跳躍은 그 跳躍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떻게 勢力化에 成功하느냐, 그 꿈을 共有하면서 그 方向으로 우리나라를 끌고 갈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것이 大韓民國의 未來를 決定할 것 같다.”

    시스템이 사람보다 優位에 있어야

    創黨을 생각하나.

    “恒常 생각하고 있다. 다만 새로운 勢力化는 또 다른 問題이기에 생각만으로 끝날 수도 있고 다음에 試圖할 수도 있다. 새로운 勢力化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 하는 問題에서 가장 重要한 것이 想像力, 人格, 創意性이다. 이런 力量을 가진 사람이 모여야 한다. 現 政治의 가장 큰 問題는 하겠다고 해놓고 안 하거나 本來 意圖와 다르게 個人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個人의 입맛대로 制度나 시스템을 바꿔버리는 愚를 犯하게 된다. 그런 問題를 防止하려면 사람의 感性과 主觀과 感情이 쉽게 介入될 수 없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約束을 지키라고 强要하는 것보다 지킬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重要하다. 그러려면 시스템이 사람 優位에 있어야 한다. 只今은 사람이 시스템보다 優位에 있어 問題가 생기면 自己들 便하게 法을 막 바꿔버리기도 한다. 시스템이 바뀌어서 非理를 저지른 사람도 除去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앞으로 先導國家 或은 戰略 國家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政黨이 나온다면 시스템이 사람을 制御할 수 있는 構造를 갖춰야 할 것 같다.”

    어떤 狀況에서든 시스템이 사람을 制御하는 構造를 갖추는 게 實現될 수 있나.

    “이미 技術的으로 可能해졌다. 블록체인 시스템을 利用하면 된다. 플랫폼 政黨을 만들면 된다. 우리가 한 段階 더 나은 나라, 透明하고 자유로운 나라, 參與하는 나라를 만들려면 사람 優位에 있는 시스템이 于先 갖춰져야 한다. 우리가 政治 後進國인 理由는 시스템을 지키려는 意志가 없고 사람이 시스템보다 優位에 있어서다. 그동안 시스템은 政治人의 善意에 依存했다. 그러면 시스템이 狀況에 따라 或은 陣營의 利益에 따라 지켜지기도 하고 안 지켜지기도 한다.”

    大韓民國이 글로벌 先導國家로 跳躍하려면 特히 어떤 努力이 必要할까.

    “매우 깊이 覺醒한 後에 跳躍하려는 欲望을 가져야 한다. 그런 意味에서 ‘卓越한 思惟의 視線’ 改訂版 序文에 ‘우리가 어떻게 生存해 온 民族이냐? 우리가 어떻게 繁榮시킨 나라냐? 여기까지만 살다 갈 수는 없다’라는 文章을 넣었다. 마침 機會가 왔다. 4次 産業革命이라는 全혀 새로운 文明의 흐름이 旣存 文明의 패러다임을 깼다. 只今 이 機會를 잡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몇百 年 或은 몇千 年 동안 從屬的 狀況을 벗어날 수 없다. 只今은 우리 國力이 第一 剛할 때다. 正말 좋은 찬스다.”

    文在寅 政府에서는 機會가 없었나.

    “있었다. 내가 文在寅 大統領을 批判하는 理由 中 하나도 거기에 있다. 우리가 先導國家로 가야 하는데 왜 國家가 아닌 民族을 中心에 놓느냔 말이다. 그런 方式으로는 過去를 어루만지는 일밖에 할 수 없다. 文 大統領은 大韓民國의 훌륭한 大統領이 되려 하지 않고 그냥 民族의 指導者가 되려고 했다. 民族은 國家 問題를 解決하지 못한다. 國家는 民族 問題를 解決한다. 國家를 통해 民族 問題를 解決해야지, 民族을 통해 國家 問題를 解決하려는 過去 志向的 方式으로는 先導國家가 될 수 없다.”

    인터뷰를 마치며 “尹 大統領이 옆에 있다면 해주고 싶은 助言이 있느냐”고 물었다. 崔 名譽敎授는 “國政 運營에 對해선 내가 알지 못해 해줄 말이 없지만…”이라는 前提를 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表情이 어느 때보다 眞摯해 보였다.

    “國民을 說得하고 疏通하는 일에 좀 더 比重을 두면 좋겠다. 疏通하려는 努力이 좀 더 必要하다. 이番에 韓日關係 問題도 3·1節 記念式에서 發表하기 前에 어떤 形式으로든 國民 輿論을 듣거나 國民을 說得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또 3·1節 記念辭가 아닌 다른 形式으로 發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國民과 깊이 疏通하고 積極的으로 說得하려는 努力이 더욱 眞實하게, 폭넓게 이뤄지면 좋겠다.”

    신동아 5월호 표지.

    신동아 5月號 表紙.



    김지영 기자

    김지영 記者

    放送, 映畫, 演劇, 뮤지컬 等 大衆文化를 좋아하며 人物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文化와 不動産, 流通 分野에도 특별한 關心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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