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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作의 祕密?]‘尹斗緖 自畫像’에 귀와 목이 없는 眞짜 理由|新東亞

[名作의 祕密?]‘尹斗緖 自畫像’에 귀와 목이 없는 眞짜 理由

뒤늦게 드러난 밑그림의 眞實

  • 이광표 西原大 敎養大學 敎授

    kpleedonga@hanmail.net

    入力 2021-03-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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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만 있어 特別한 尹斗緖 自畫像

    • 尹斗緖는 몸까지 그려낼 생각이었을까

    • 잘라낸 宕巾은 政治 構圖에 對한 抵抗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提供]

    부리부리한 눈매와 炯炯한 눈빛, 한올 한올 불타오르는 듯한 鬚髥, 목도 귀도 없는 肉重한 얼굴, 게다가 윗部分이 잘려나간 宕巾(宕巾)까지. 極度의 寫實性과 大膽한 破格으로 보는 이를 壓倒하는 그림, 國寶 第240號 ‘尹斗緖 自畫像’(18世紀 初). 그리 크지 않은 이 그림(38×20.5cm)을 많은 사람은 朝鮮時代 最高의 肖像畫로 꼽는다. 그러곤 “尹斗緖 自身의 內面을 表出한 것이자 世上을 向한 熾烈한 凝視”라고 評價한다. “嚴正한 性格” “옹골찬 氣槪”와 같은 賞讚을 덧붙인다. 

    記錄에 따르면 尹斗緖는 劍客(劍客)처럼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엉뚱한 想像을 해본다. 尹斗緖의 눈매가 부드럽고 柔順한 스타일이었다면, 鬚髥이 別로 없는 깔끔한 얼굴이었다면, “섬뜩할 程度의 自己 省察” “옹골찬 氣槪”와 같은 評價를 내놓았을까. 오히려 “맑고 透明한 선비 精神의 表出”이라고 評價했을지도 모른다. 萬若 목도 있고 귀도 있었다면 우리는 이 自畫像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런 想像에 對해 쓸데없는 짓, 無禮한 짓이라고 批判할지 모른다. 果然 쓸데없는 想像일까.

    尹斗緖, 海南 尹氏 그리고 南人

    公裁 尹斗緖(恭齋 尹斗緖·1668∼1715)는 全南 海南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海南 尹氏였다. 孤山 尹善道(孤山 尹善道)의 曾孫子였고 茶山 丁若鏞(茶山 丁若鏞)의 外曾祖父이기도 했다. 海南 尹氏는 政治的으로 南人(南人)이었다. 13歲 때 漢陽에 올라온 尹斗緖는 肅宗 때인 1693年 進士試(進士試)에 合格해 成均館에 들어갔다. 그의 나이 26歲였다. 그러나 이듬해 甲戌換局(甲戌換局)으로 南人은 西人(西人)에 밀려 權力을 잃었다. 그 後 尹斗緖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熾烈한 黨爭 속에서 自身의 뜻을 펼치는 것이 애初부터 不可能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尹斗緖는 政治 代身 學問과 藝術에 熱中했고 46歲 때인 1713年 海南으로 完全히 落鄕해 家業을 經營하며 生을 보냈다. 그는 이런 過程에서 自畫像을 그렸다. 

    尹斗緖의 親舊 湛軒 이하곤(澹軒 李夏坤)은 尹斗緖의 自畫像을 보고 이런 글을 남겼다. “六 척도 안 되는 몸으로 死海를 超越하려는 뜻이 있다. 긴 鬚髥 나부끼는 얼굴은 潤澤하고 붉으니 바라보는 사람은 船人이나 劍客이 아닌가 疑心하지만 저 眞實로 自身을 낮추고 讓步하는 風貌는 무릇 敦篤한 君子로서 부끄러움이 없구나.” 

    그러나 이 그림은 朝鮮時代의 儒敎 倫理나 普遍的 美感(美感)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士大夫가 父母로부터 물려받은 身體 一部를 除去한 채 畫幅에 옮긴다는 것은 想像하기 어려운 일이다. 尹斗緖는 왜 목이 없고 귀가 없는 얼굴로 自身을 表現한 것인가. 宕巾의 윗部分은 왜 잘라낸 것인가.



    尹斗緖 自畫像에 事實 몸이 있었다?

    목도 없고 귀도 없지만 自畫像 속 얼굴은 대단히 事實的이다. 그래서 더욱 特異하고 破格的이다. 이것이 ‘尹斗緖 自畫像’의 魅力이자 美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놀라운 反轉(反轉)李 찾아왔다. 

    1996年 國立中央博物館 圖書室에서 寫眞 한 張이 發見되었다. 1937年 朝鮮總督府가 ‘尹斗緖 自畫像’을 撮影한 것이었다. 이 寫眞은 總督府가 펴낸 ‘朝鮮史料集塵속(朝鮮史料集眞續)’에 收錄돼 있었다. 그 寫眞 속에서 尹斗緖는 道袍를 입고 있다. 옷깃線이 보이고 목과 上體가 鮮明하게 남아 있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自畫像과는 雰圍氣가 꽤나 다르다. 섬뜩하다기보다는 比較的 溫和해 보인다. 이 寫眞을 처음 發見한 美術史學者 오주석(2005年 他界)은 이렇게 推定했다. 

    “朝鮮時代 畫家들은 流彈(柳炭)으로 바탕 그림을 그렸다. 버드나무 숯人 流彈은 요즘의 스케치 鉛筆에 該當한다. 接着力이 弱해 修正하기는 便하지만 代身 잘 지워지는 短點이 있다. 尹斗緖가 미처 먹으로 上體의 線을 그리지 않아 作品이 未完成인 채로 後代에 傳해오다 表具 等의 過程에서 管理 疏忽로 지워졌다. 流彈으로 그린 上體는 지워지고 먹으로 그린 얼굴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傳한 것이다…얼굴에 두 귀가 빠진 것도 未完成이기 때문이다.”(오주석, ‘옛그림 이야기1’, ‘博物館 新聞’ 1996年 7月號, 國立中央博物館) 

    元來 밑그림 옷깃線이 있었는데 後代에 지워졌다는 말이다. 

    1998年 美術史學者 이태호 敎授가 이에 對해 反論을 펼쳤다. 

    “顯微鏡으로 그림을 들여다보면 道袍의 넓은 깃善이 종이에 비쳐 흐릿하게 드러남을 發見할 수 있다. 尹斗緖는 얼굴 正面만 앞面에 그렸고 不必要하다고 생각되는 옷주름 線은 維持(油紙) 뒷面에 그렸다. 朝鮮時代 背面線描法(背面線描法), 配線法(背線法)이다. 1937年 撮影한 寫眞에 配線이 드러난 것은 앞뒤 兩쪽에 補助 照明을 주어 찍었기 때문이다.”(이태호, ‘尹斗緖 自畫像의 變質 波紋’, ‘韓國의 古美術’ 10號, 美術저널, 1998)

    몸과 귀는 누가 그려 넣었나

    2006년 적외선 촬영한 윤두서 자화상. 옷깃선이 선명하게 보인다(왼쪽). 윤두서 자화상을 자세히 보면 얼굴 옆면에 희미하게 귀를 그린 흔적이 남아 있다(오른쪽).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06年 赤外線 撮影한 尹斗緖 自畫像. 옷깃線이 鮮明하게 보인다(왼쪽). 尹斗緖 自畫像을 仔細히 보면 얼굴 옆面에 稀微하게 귀를 그린 痕跡이 남아 있다(오른쪽). [국립중앙박물관 提供]

    앞面이 아니라 뒷面에 옷線을 그렸다는 말이다. 

    2006年 國立中央博物館이 새로운 事實을 追加했다. 博物館은 한 해 前 ‘尹斗緖 自畫像’에 對해 顯微鏡 檢査, X선 透過 撮影, 赤外線 撮影 等의 科學 分析을 實施했다. 그 結果, 옷깃線과 함께 그 周圍로 어두운 느낌을 주는 薰染(暈染) 表現까지 드러났다. 그리고 얼굴에 비해 너무 작긴 하지만 붉은 線으로 귀가 그려져 있는 것도 確認됐다. 硏究者들은 “道袍와 귀를 表現하고자 한 尹斗緖의 意志가 明確했음을 確認했다”는 意見을 내놓았다.(천주현 外, ‘尹斗緖 自畫像의 表現技法 및 顔料分析’, ‘美術資料’ 74號, 國立中央博物館, 2006) 

    2007年 美術史學者人 강관식 敎授가 加勢했다. 그는 1993年 海南에서 ‘尹斗緖 自畫像’을 햇빛에 비춰가며 꼼꼼하게 觀察한 結果, 流彈으로 옷깃을 表現한 鮮妙 자국을 發見했다고 밝혔다. 

    “1937年 朝鮮總督府 寫眞은 옷을 그린 線이 매우 鮮明하다. 그러나 2006年 國立中央博物館 赤外線 撮影 寫眞은 이 線이 흐릿하다…앞면에 그려 넣었던 流彈의 가루가 70餘 年이 지나면서 떨어져 나가고 流彈 가루 一部가 두툼하고 성근 葬地 속으로 배어들어 간 것이다. 그렇기에 赤外線 撮影을 해도 1937年 寫眞보다 흐릿할 수밖에 없다.”(강관식, ‘尹斗緖 上’, ‘韓國의 國寶-繪畫’, 文化財廳, 2007) 

    2014年, 美術史學者 안휘준 敎授는 다른 意見을 냈다. 

    “稀微한 붉은 線으로 그려진 귀의 模樣은 너무 單純하고 語塞하며…인정하기 어려울 程度로 水準이 뒤진다. 疑問이 아닐 수 없다…귀와 옷깃은 누군가가 後에 배旋法과 倍채法 等을 使用해 輔弼(補筆)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할 듯하다.” (안휘준, ‘公裁 尹斗緖의 會話, 어떻게 볼 것인가’, ‘公裁 尹斗緖’, 國立光州博物館, 2014) 

    尹斗緖가 그린 것이 아니라 第3者의 加筆(加筆)일 可能性이 높다는 얘기다.

    앞面인가 뒷面인가

    목(옷깃線)과 귀가 없는 줄 알았는데, 목과 귀가 있었다. 1996年 自畫像 寫眞의 出現은 놀라운 事件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 인해 觸發된 ‘尹斗緖 自畫像’ 옷깃線의 實體에 關한 論難. 그 爭點을 整理하면 ‘옷깃線이 앞面에 그려진 것인지, 뒷面에 그려진 것인지’로 要約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옷깃線이 앞面에 그려진 것인지, 뒷面에 그려진 것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옷깃線의 祕密과 궁금症은 ‘尹斗緖 自畫像’의 뒷面을 調査해 보면 明快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張皇(表具)李 돼 있어 뒷面까지 調査할 수 없는 狀況이다. 

    옷깃線의 궁금症을 解決하기 위해 褙接紙를 解體해 調査할 必要가 있을까. 누군가는 이에 同意할 것이고, 누군가는 굳이 그림을 解體까지 해가면서 確認할 必要가 있느냐며 反對할 것이다. 贊反 意見과는 別個로, 褙接紙를 解體하고 뒷面을 調査한다는 것은 現實的으로 어려운 일이다. 所藏者의 同意가 있어야 하는 데다 國寶이기 때문에 文化財委員會의 現象變更 許可가 있어야 한다.

    너무 작은 귀

    윤두서가 자화상을 그릴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남 윤씨 가문의 백동경.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尹斗緖가 自畫像을 그릴 때 使用한 것으로 推定되는 海南 尹氏 家門의 백東京. [국립중앙박물관 提供]

    ‘尹斗緖 自畫像’엔 옷깃線과 귀가 없다. 이에 關해 그동안 여러 專門家는 “非本質的이기 때문에 옷깃線을 省略했다”고 보았다. 

    “官服과 冠帽 모두 裝飾的인 껍질에 不過하다고 생각해 이런 모든 것을 벗어버린 그야말로 自身의 眞實된 모습에 接近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귀 部分이 省略된 것도 마찬가지 理由일 것이다.” (이내옥, ‘公裁 尹斗緖’, 時空社, 2003) 

    尹斗緖라는 個人의 本質을 表現하는 데 不必要하기 때문에 單純化하거나 省略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없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肉眼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尹斗緖 自畫像’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尹斗緖 自畫像’을 좀 더 客觀的으로 들여다볼 必要가 있다. 

    于先, 2006年 國立中央博物館 調査 硏究에서 드러난 귀를 꼼꼼히 살펴보자. 國立中央博物館은 “귀를 그린 것”이라고 했는데, 그 귀는 얼굴에 비해 너무나 작다. 實際로 尹斗緖의 귀가 이렇게 작았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귀인지 무엇인지 알 듯 모를 듯하다. 그렇다면 尹斗緖가 失手로 그리 작게 그렸을까. 그림 實力이 뛰어난 尹斗緖가 이런 失手를 저질렀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것도 아니라면 안휘준 敎授의 指摘대로 後代의 누군가가 加筆했단 말인가. 이 또한 推定일 뿐이다. 

    尹斗緖가 살았던 곳, 海南의 綠雨堂(綠雨堂)에 가면 尹斗緖 家門에서 使用하던 거울이 있다. 17世紀 後半 日本에서 製作한 백東京(白銅鏡·지름 24.2cm)이다. 尹斗緖는 이 거울에 비친 自身의 얼굴을 보고 自畫像을 그렸을 可能性이 있다. 그런데 尹斗緖는 눈이 나빠서 眼鏡을 썼다. 自畫像을 보면 눈 둘레에 오랫동안 眼鏡을 쓴 痕跡이 남아 있다. 視力이 나쁜 사람이 眼鏡을 쓰지 않은 채 거울을 보고 自身의 얼굴을 그리려면, 거울을 바짝 당긴 채 얼굴을 들여다봐야 했을 것이다. 퉁퉁한 얼굴을 거울에 바짝 댄다면 얼굴은 더욱 더 굴곡져 보일 것이다. 눈코입은 두드러지지만 周邊部는 멀어지고 작아질 것이다. 귀도 마찬가지로 實際보다 작고 멀리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귀를 작게 表現한 것일까. 하지만 이 또한 想像力 가득한 推論일 따름이다. 어쨌든 이 같은 狀況에서 自畫像 속 작은 귀를 尹斗緖의 귀(또는 尹斗緖가 그리려고 했던 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부리부리한 눈매, 불타는 鬚髥, 잘려나간 宕巾

    다음은 부리부리한 눈매와 불타는 듯한 鬚髥. 앞서 살펴본 것처럼 눈과 鬚髥에 對해선 “世上과의 熾烈한 對決” “섬뜩할 程度의 內面 表出”이라는 評이 一般的이다. 尹斗緖는 分明 눈과 鬚髥을 强調하기 위해 至極히 事實的으로 描寫했다. 甚至於 鬚髥이 慰勞 불타오르는 듯 誇張해 表現했다. 尹斗緖의 意圖가 介入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苦悶거리가 생긴다. 尹斗緖의 눈매가 부드럽고 鬚髥이 적었다면, 尹斗緖가 아무리 意圖했다고 해도 이런 效果를 낼 수 있었을까. 눈매와 鬚髥의 極事實的 表現만으로 꿈틀거리는 內面을 完璧하게 드러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結局 尹斗緖의 타고난 身體的 特徵(부리부리한 눈매, 豐盛한 鬚髥, 肉重한 얼굴)李 한몫했음을 否認할 수 없다. 

    그 熾烈함을 뒷받침하는 좀 더 客觀的인 根據는 없을까. 이 대목에서 宕巾의 表現이 重要해진다. 宕巾의 윗部分을 잘라낸 것은 分明 尹斗緖의 意圖가 反映된 것이다. 宕巾은 官職에 나간 男子들이 網巾 위에 쓰는 것이다. 士大夫들의 所重한 服飾의 하나다. 그런 宕巾의 一部를 잘라낸 채 士大夫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매우 異例的이거나 挑發的인 行爲다. 朝鮮時代 男子 肖像畫 가운데 宕巾이나 오건(烏巾)을 잘라낸 境遇는 손꼽을 程度로 드물다. 강세황(姜世晃) 自畫像, 임희수(任希壽)가 그린 누군가의 肖像畫 等 몇 點에 不過하다. 通常的으로는 肖像畫 속 主人公의 宕巾을 잘라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尹斗緖는 自身의 自畫像에서 官職을 象徵하는 宕巾의 一部를 잘라버렸다. 이는 官職制度에 對한 抵抗 卽 政治 構圖에 對한 抵抗이다. 利己的인 黨爭의 소용돌이에서, 西人 中心의 狀況에서 南人의 抵抗을 보여주는 方便의 하나로 宕巾을 잘라냈을 것이란 解釋이 充分히 可能하다. 이는 목과 귀가 없는 것 그 以上으로 意味深長하다. 

    宕巾을 잘라낸 것은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效果도 가져온다. 얼굴을 畵面 위쪽에 配置해 畵面 全體를 더욱 重量感 있게 만들었다. 여기에 自身의 타고난 눈빛과 鬚髥을 事實的이면서도 誇張되게 表現함으로써 效果를 極大化했다. 尹斗緖의 切切한 내면 表現은 宕巾을 잘라내고 그 얼굴을 畵面 위에 配置함으로써 劇的으로 成事(成事)됐다. 本質的이지 않아서 宕巾을 잘라낸 것이 아니라 尹斗緖 自身의 內面 表現에 本質的이기에 宕巾을 잘라낸 것이다. 

    現在 우리 눈에 목(옷깃線)과 귀는 보이지 않는다(귀로 推定되는 것은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보면 그 線이 肉眼으로 보이지만, 一旦 보이지 않는 것으로 設定하자). 그러나 尹斗緖는 옷깃線과 귀를 그렸다. 그럼 우리는 國寶 第240號 ‘尹斗緖 自畫像’을 옷깃線과 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우리 눈에 보이는 狀態를 ‘尹斗緖 自畫像’으로 받아들인다면, 왜 굳이 X線 撮影, 赤外線 撮影을 하는 것인가. 單純히 硏究를 위해서인가, 硏究者들의 好奇心을 充足하기 위해서인가, 데이터를 確保해 作品을 效果的으로 保存하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硏究와 保存 處理의 窮極은 또 무엇인가. 그건 무언가 情報를 더 얻어내 作家의 意圖와 內面을 좀 더 풍요롭게 解釋하기 위해서다. 

    옷깃線이 앞面에 그려졌는지, 뒷面에 그려졌는지 아직 斷定 지을 수 없다. 하지만 褙接紙를 解體하지 않더라도 實物을 놓고 檢證해 보는 일이 不可能한 것은 아니다. 앞面에 그린 것이라면 강관식 敎授의 말처럼, 맑은 날 햇빛 아래서 綿密하게 觀察해 보면 무언가 痕跡이 發見될 수도 있다. 

    ‘尹斗緖 自畫像’은 特異하고 强烈하다. 그것이 魅力이다. 목과 귀가 없어 이 그림에 빠졌는데, 목과 귀가 드러나면서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漸漸 더 複雜해진다. 科學的 分析까지 動員해 그림을 解釋해 보지만 궁금症은 더 커진다. 作品의 實體를 놓고 이렇게 흥미로운 論難이 이어지는 文化財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궁금症과 論難이 보는 이의 好奇心을 限껏 刺戟한다. 무엇이 眞짜 尹斗緖인가. 自畫像이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광표
    ● 1965年 忠南 豫算 出生
    ● 서울대 考古美術史學科 卒業
    ● 高麗大 大學院 文化遺産學協同過程 卒業(博士)
    ● 前 동아일보 論說委員
    ● 著書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博物館’ ‘韓國의 國寶’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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