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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學會

韓國民族文化大百科

단단學會

[ 檀檀學會 ]

類型 團體
時代 現代

正義

檀君敎 系統 宗團의 하나.

開設

1909年 이기(李沂)를 中心으로 結成되었다는 單學會(檀學會)를 母體로 하여 1963年 이유립(李裕?)李 組織하였다.

이 團體의 母體인 單學會는 韓日合邦 直前인 1909年 대영절(3月 16日)에 이기 · 계연수 等이 江華島 摩尼山 塹城壇에서 祭天儀式을 擧行하고 單學會組織을 서고(誓誥)하며 丹學綱領 3張을 宣布함으로써 創立되었다.

淵源 및 變遷

丹學綱領은 단단學會에서도 基本 綱領으로 받들어지는데, ① 祭天報本 이구眞實(以求眞實) ② 경조興邦 이구화평(以求和平) ③ 홍도익中 이舊統一(以求統一)의 3가지이다.

單學會 創立 무렵에는 이미 民族 固有 宗敎를 標榜한 檀君敎(뒤의 大倧敎)가 創立되어 있었는데, 이기 等은 羅喆과 民族上古史 認識 및 檀君館, 固有 宗敎 理解 等에서 意見을 달리하였다.

國權을 回復하기 위해서는 民族主體意識이 必要하고 民族精神을 歸一시킬 求心體적 宗敎가 必要하다는 點에 對해서는 생각을 같이했지만, 이기 等은 在野에 傳해지던 <太白일사>나 <檀君世紀> 等의 文獻에 記錄된 歷史認識-固有宗敎館에 토대하여 民族宗敎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單學會는 特히 檀君信仰의 三新設(三神說)에 對한 正義와 新詩 · 개川 · 檀君紀元 等 核心 問題에서 羅喆의 檀君敎와 다른 認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檀君敎와 別途로 單學會라는 이름下에 團體를 創立하였다.

이 單學會는 太白校(太白敎)라는 이름의 宗敎와 耳鳴胴體(異名同體)임을 標榜했는데, 巫布交際(無布敎制) 自我信仰(自我信仰)을 信仰原則으로 삼고 있는 點에서는 다른 敎團과 差別性이 있었지만, 宗敎團體에 準한 敎團組織을 營爲하면서 三神하느님(三神一體喪制)을 信仰 對象으로 하여 일정한 儀禮를 擧行하고 三一神誥-天符經 等의 檀君敎系 經典을 重視하는 데서는 宗敎的 性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單學會는 初代 大宗師人 利器가 韓日合邦이 臨迫한 時局에 憤慨하여 1909年 7月 節食 自決함으로써 沈滯되었지만, 계연수와 최시흥 · 이덕수 · 이상룡 等 獨立運動家를 指導者로 삼아 다시 活氣를 찾았다.

그래서 三一運動 後에는 최시흥을 中心으로 天摩山隊를 組織하여 抗日 遊擊鬪爭을 展開하였고, 以後 西路軍政署(西路軍政署) · 醫民事(義民社) · 僻派臺(碧波隊) · 紀元獨立團(紀元獨立團) 等의 武裝獨立運動에 그 一員으로 參與하였다.

單學會의 主要 指導者들은 獨立運動 過程에서 戰死하거나 獄死했는데, 계연수 · 최시흥 · 이상룡 · 이덕수 等이 모두 日本軍과 싸우다 戰死하거나 獄死하였다. 그러나 單學會는 武裝鬪爭 過程에서도 單學會는 丹學會報를 8號까지 發刊하였으며, 1919年 3月 대영절에는 國內의 己未獨立宣言에 맞추어 <조선인십보장(朝鮮人十寶章)>을 發表하였다. 하지만 이덕수의 戰士와 함께 會員들이 逮捕되어 投獄되거나 흩어졌으며, 單學會 活動은 沈滯되었다.

解放 後 單學會는 日帝에 依해 收監되었던 이용담(李龍潭)李 出監하여 平壤에서 單學會를 再建하고 第5代 會長으로 就任했으나 共産 治下에서 活潑한 活動을 展開할 수는 없었다. 特히 氣管支 『太極(太極)』의 1946年 新年號에 <신탁통치반대론(信託統治反對論)>을 揭載한 것이 問題가 되어 『太極』의 週間 이유립이 拘束되고, 『太極』은 廢刊되었다. 그러나 6 · 25戰爭 때 이유립이 越南에 成功하여 1954年부터 同志를 糾合하였다.

1963年에는 단단學會로 이름을 바꾸고 이유립이 會長에 就任하였으며, 1965年에는 氣管支 『커發汗』을 創刊하였다. 名稱을 단단學會라고 한 것은 『神壇實記』의 “事物의 堅固한 것을 보고 이르기를 단단이라 한다[見物之堅固曰檀檀].”라고 한 것 等에 依據한 것이다.

단단學會는 이름을 바꾸면서 太白校라는 宗敎的 色彩에서 分離하여 民族의 宗敎 · 哲學 · 歷史를 硏究-實踐하는 團體로의 轉換을 闡明했지만, 固有 宗敎라고 主張하는 太白校를 中心으로 民族的 宗敎統一運動을 追求하는 點에서 以前의 立場은 維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단學會와 關聯하여 또 하나 言及해야 할 것은, 1979年 公開되어 在野 歷史學界의 上古史 認識에 큰 影響을 주었던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이 團體에 依해 編輯되었다는 點이다. 『환단고기』는 單學會의 계연수가 民間에 숨겨 傳해 오던 司書들을 묶어서 1911年 編輯했다는 歷史書로, <參星旗> · <檀君世紀> · <북부여機> · <太白일사> 等이 收錄되어 있다.

이 冊에서는 韓國 上古史가 桓因(桓因)의 還國(桓國)時代(7代 3301年)에서부터 始作하여 桓雄의 配達時代(18代 1565年)를 거쳐 檀君朝鮮(47代 2096年)으로 이어진 것으로 敍述하고 있으며, 上古時代의 韓民族은 優秀한 文化와 强大한 國力을 가지고 中國을 壓倒하는 歷史를 營爲했던 것으로 敍述한다.

이 冊은 編輯된 以來 오랫동안 숨겨져 왔다고 하며, 1979年 단단學會 會長으로 있던 이유립과 조병윤에 依해 公開된 後 자랑스러운 民族史를 熱望하는 一般의 情緖에 副應하여 大衆的 人氣를 끌었지만, 主流 史學界에서는 魏書라고 하여 史料로 認定하지 않는다.

단단學會는 1970年代 中盤 以後 國史敎科書의 上古史 部分 內容이 植民史學의 觀點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在野學界에서 國史찾기운동을 展開할 때 이에 參與했으며, 特히 『환단고기』를 土臺로 한 歷史 改編을 主張했었다.

단단學會는 韓民族史와 宗敎에 對한 特有의 理論을 普及하기 위해 晦日講座(回日講座) · 局社바로찾기講演會 等을 開催하기도 했으며, 『환단휘기(桓檀彙記)』 · 『광개토성릉鼻紋譯註(廣開土聖陵碑文譯註)』 · 『커發汗文化思想社』 · 『臺배달民族社(大倍達民族史)』 等을 刊行하였다.

그러나 1986年 中心 人物 이유립이 死亡하면서 活動이 稀微하게 되었다. 이유립에 이어 양종현(梁宗鉉) 等이 會長을 이으며 그 命脈을 維持하고 있으나 活動은 微細하다.

再 本部는 京畿道 江華郡 화도면 賞方里 單鶴洞 山 52番地에 있으며, 一名 ‘커發汗[居發桓]개川角’이라는 臺時前(大始殿)과 정수관(靜修觀)이 있다.

敎理

이 回에서는 천일신(天一神), 卽 三神一體喪制(三神一體上帝)를 信仰 對象으로 하고, 그 眞相(眞相)을 찾아 審(心) · 基(氣) · 新(身)을 修鍊하며, 對人接物(對人接物)의 모든 事件에 對한 適切한 判斷을 위한 종지(宗旨)와 廉表文(念標文)을 내세우고 있다.

종지는 ‘위로 천신을 받들고 아래로 모든 生民을 敎化한다[上以崇奉天神 下以接化群生].’는 것이고, 廉表文은 ‘一身上제가 人間에게 三神一體의 原理인 忠을 내려주시니 그 性이 光明에 통하며, 人世(人世)를 다스려 敎化함에 널리 人間을 이롭게 하였다[一神降衷性通光明 在世理化弘益人間]’는 것이다.

이 團體에서는 自我 人間은 능히 三神하느님을 代表하여 世界 人類를 救援하고 奉仕할 수 있는 資質을 갖추고 있다고 보며, 이를 靭帶天主의(人代天主義)라고 부른다. 人間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良心은 三神一體喪制가 三眞歸一(三眞歸一)의 原理에 立脚하여 人間에게 내려준 心性(心性)이라고 보고, 人間은 능히 三神一體上帝의 機能을 代行할 수 있고 또한 人間의 能力에 依해 人間世界를 능히 神國(神國)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단단學會에서는 이와 같은 人大川主義의 理念을 具現하기 위한 行動綱領과 世界觀으로 三綱司令(三綱四領)을 든다. 三綱은 앞에 紹介했던 祭天報本-경조興邦-홍도익中의 3原則이다. 그리고 司令은 ① 허조胴體(虛粗同體), ② 開戰日餘(個全一如), ③ 지생雙手(智生雙修), ④ 兄魂口演(形魂俱衍)의 4가지 敎說이다.

허조胴體는 天地萬物은 賞(象=粗)과 法則(法則=虛)李 對日體로 結合해 있으며, 人間世界 亦是 自然現象[粗]과 自由意識[虛]李 合一體로 움직인다는 原理이다.

開戰日여는 個體는 全體에 對한 基本 要素이며 全體는 個體의 總括이기 때문에, 個體가 個體를 위해 ‘알고 살고 일하는 것’은 全體를 위하는 것이 되며, 全體를 위하는 것은 同時에 個體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지생雙手는 하느님에게 받은 智慧(性=觀念世界)와 物質生活의 福利는 함께 追求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智)는 生(生)의 價値를 나타내며, 生은 誌의 眞意(眞意)를 啓發해야만 한다고 主張한다.

兄魂口演은 靈魂과 肉體는 長存不滅(長存不滅)한다는 原理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元來 自然의 陽氣[一元良氣]로부터 태어나 自然으로 살다가 自然으로 돌아가는데, 自然이란 실은 氣化作用(氣化作用)이며, 이것은 끝까지 一元氣에 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信念을 土臺로 단단學會는 三神一體의 原理에 立脚하여 全世界 人類의 光明全一化(光明全一化)運動의 船便子(先鞭者)로서 弘益人間의 世界를 文化的으로 建設하는 것을 目的으로 提示하고 있다.

이 會議 基本 經典으로는 홍익사서(弘益四書)와 이화삼頃(理化三經)이 있다. 홍익사서는 天帝 桓因 時代 때부터 口傳해 오던 經典이라는 『天符經』과, 亦是 天帝 桓因의 가르침을 桓雄天皇이 傳한 것이라는 『三一神誥』, 高句麗 國喪 乙巴素가 지었다는 『참전계경』, 高麗 때 이암이 썼다는 『태백진훈』 等이고, 이화삼警은 『三國遺事』의 古朝鮮朝를 解釋한 『神市개川頃(神市開天經)』과 廣開土王陵碑를 解釋한 『광개토地境(廣開土地經)』, 訓民正音을 解釋한 『訓民正音頃(訓民正音經)』 等이다.

이 會議 本部 대시展(大始殿)에는 民族思想의 爲人과 學會 歷代 指導者들의 影幀을 三皇五帝(三皇五帝) · 三門오무(三文五武) · 三從梧亭(三宗五正) 等으로 부르며 奉安 · 崇奉하고 있는데, 三皇은 桓雄天皇과 癡愚天王, 檀君王儉 等 3人이고, 五帝는 高句麗 始祖 高朱蒙과 광개토왕, 渤海 太祖 大祚榮, 代金國 太祖 阿骨打, 朝鮮 世宗 等 5人이며, 三門은 高句麗 國喪 을파소, 高麗의 서희 · 李嵒 等 3人이고, 5畝는 高句麗 乙支文德과 연개소문, 高麗 윤관과 崔瑩, 朝鮮 李舜臣 等 5人이다.

三從오정은 단단學會의 歷代 指導者였다는 이기 · 이상용 · 申采浩 等 3人의 大宗師와, 계연수 · 洪範圖 · 오동진 · 최시흥 · 이덕수 等 5人의 大僧正을 가리킨다.

이 團體에서는 마리산 單學童에 커發汗 개川角을 짓고 每年 두 番 3月 16日 한맞이[大迎節]와 10月 3日 開天節마다 祭天儀式을 베푼다. 한맞이는 三神一體의 記念日이며, 開天節은 桓雄님이 오신 날을 記念한 것이다. 그 밖에도 民族史의 特定 事實을 記念하는 날이 있는데, 5月 5日은 廣開土王의 多물統一(多勿統一)을 記念하는 날인 狂介節(廣開節)이고, 1月 28日은 세종대왕의 正音文化(正音文化)를 記念하는 날인 訓民節(訓民節)이며, 1月 1日 설날에도 祖上의 날이라 하여 記念行事를 擧行한다.

그런데 단단學會에서는 檀君王儉이 朝鮮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보지만, 이 會에서는 檀君王儉을 國調로 보지 않는다. 곧 檀君보다 1565年 앞서 桓雄天王의 神市개川(神市開天:배달국의 建國)을 韓國 民國 歷史의 起源으로 본다.

그러므로 信仰上으로는 桓因 · 桓雄 · 환검(檀君)을 天神 · 支神 · 人身으로 보아 이 3신이 一切라는 三神一體說을 믿지만, 歷史와 文化賞으로는 이들 3신이 各各이라는 삼신각開設(三神各個說)을 믿고 있다.

단단學會에서는 우리 歷史의 正統이 紀元前 3897年 桓雄天王의 配達 建國에서 비롯하여 檀君朝鮮―북부여(原始 高句麗)―高句麗(본 高句麗)―戴震(大震, 中 高句麗)―高麗(後 高句麗)―朝鮮―臨時政府를 거쳐 現在의 大韓民國에 이른 것으로 본다.

參考文獻

  • 『커發汗사요(事要)』
  • ?커發汗 第47號?(『단단學會 機關紙』, 1975.5.1.)
  • 『커發汗文化思想社 1·2』(단단學會 篇, 1976)
  • 『환단고기(桓檀古記)』(芸草 계연수 編著, 광오理解社, 1979)
  • ?檀君信仰 總論 1?(이강오, 『전북대학교論文集』 10, 1968)
  • 『臺배달民族社』(단단學會 篇, 고려원, 1985)
  • ?檀君信仰 實態分析?(이강오, 『정신문화연구』 3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 ?『환단고기』의 成立 背景과 起源?(이문영, 『역사비평』118, 역사비평사, 2017)
  • ?이유립의 계연수 捏造機?(長身, 『歷史와現實』 115, 한국역사연구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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