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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 李家煥의 墓誌銘 - 1-1

與猶堂全書 - 詩文集 (산문) 15卷

정헌 李家煥의 墓誌銘 - 1-1

[ 貞軒墓誌銘 ]

要約 丁若鏞이 정헌 李家煥의 一生을 墓誌銘 形式으로 整理한 글이다. 李家煥이 利益의 學統을 이어 받아 出衆한 能力을 所有했음에도, 從祖父 이잠의 過去 前歷을 擁護함으로써 口舌에 휘말리고, 天主敎 關聯 問題로 悲劇的인 最後를 맞이한 點을 안타까운 心情으로 記述하였다. 丁若鏞은 正祖가 죽고 정국이 急轉換하면서 일어난 1801年의 辛酉獄事에 不當하게 죽음을 當하거나 流配刑에 處해진 人物들의 行跡을 記錄하여 歷史的 事實을 後世에 밝힌다는 趣旨에서 지은 것이다.
著者 정약용
原電 서지 新造船社本 與猶堂全書 第1輯 第15卷 詩文集 墓誌銘
製作 年度 1822年(純祖 22)
區分 韓國古典 > 散文 > 碑誌類(碑誌類)

飜譯

정헌 李家煥의 墓誌銘

乾隆(乾隆, 淸 高宗(高宗)의 年號) 乙卯年(1795, 正祖 19) 봄은 우리 正祖大王께서 卽位하신 지 19年째 되던 해이다. 奸臣(奸臣)【정동준(鄭東浚) 1) 】李 誅殺되자 나라의 紀綱이 다시 바로잡혔다. 主上께서 認定門(仁政門)에 납시어 臣下들의 下隷(賀禮)를 받으실 때에 큰 鐘소리 같은 목소리로 천둥 번개처럼 怒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朝廷에 있는 너희 百官들은 나의 訓戒를 잘 들으라. 내가 오늘 小人을 물리치고 君子를 登用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우리 祖上의 보살핌을 繼承하고, 오늘 내가 線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뜻을 分明히 보임으로써 百姓의 마음을 크게 안정시키려 하노라.”

모든 臣下들이 두려워 떨며 엄숙히 입을 닫고서 공손히 王命을 들었다. 이때 主上께서 判中樞府事(判中樞府事) 新 채제공(蔡濟恭) 2) 을 起用하여 左議政(左議政)에 任命하시고, 同副承旨(同副承旨) 新 藥用(若鏞)에게 앞으로 나와 종이를 뽑아 받아 쓰도록 命하시고는, 전(前) 大司成(大司成) 新 이가환(李家煥)을 拔擢하여 工曹 判書(工曹判書)에 任命하시니, 朝廷 안팎의 雰圍氣가 어진 人物들이 一時에 進出한 것으로 생각하여 洽足해하였다.

한 달이 지난 뒤 主上께서 李家煥과 藥用을 불러 有時하셨다.

“華城(華城)은 바로 우리 掌憲(莊獻, 思悼世子(思悼世子))의 墓所가 있는 곳이다. 올봄에 내가 年老한 어머니를 모시고 墓所를 보러 갈 作定이다. 10年 後면 나도 늙을 터이다. 거기에 노래當(老來堂)이 있으니, 이 火星의 歷史(役事)는 공경히 할 것이다. 墓地 周圍에 香나무와 잣나무를 심는 일, 宮殿(宮殿)과 大使(臺?, 望樓)를 築造하는 일, 聖地(城池)와 甲兵(甲兵)을 修理하는 일, 糧穀과 전포(錢布)를 貯蓄하는 일, 定款(亭館, 建物의 建築과 配置)·右前(郵傳, 通信 施設)·老父(鹵簿, 賃金 行次 때의 儀仗隊)·喜罍(?牢, 祭物)를 베푸는 일 等, 크고 작은 일을 가릴 것 없이 모두 整理한 뒤에 帳簿에 記錄을 바르게 하여 나라의 前例(典禮)를 밝혀야 할 것이다. 街患兒, 너는 博識(博識)하니 이 일을 잘 맡아 處理하라. 藥用아, 너는 明敏하니 그를 도우라. 규靈府(奎瀛府, 奎章閣)는 임금의 居處와 가까워서 그 地域이 매우 森嚴하니 너희는 그곳에서 노닐며 쉬라. 너희에게 宮中의 술과 進饌(珍饌)과 국과 橘과 柚子와 감과 等者와 말린 고기와 엿을 내릴 것이니, 실컷 取하고 배불리 먹으면서 나의 두터운 恩澤에 흡족히 젖으라.”

神들은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공손히 命을 받들었다.

며칠이 지나 꽃구경하고 낚시질하는 宴會를 베풀었다. 主上께서 말에 오르신 뒤 宮中의 말을 내오라 命하시어 神들을 불러 말을 타고 따르게 하셨다. 채제공, 이가환, 藥用은 賃金을 따라 靑陽門(靑陽門)에 이른 뒤 담牆을 끼고 돌아서 東쪽으로 石距角(石渠閣)에 到着해서야 말에서 내렸다. 다시 돌아서 부용정(芙蓉亭)에 이르러 낚시질하며 耘耔(韻字)를 내어 詩를 지었고, 映花堂(映花堂)으로 돌아가 활을 쏘았다. 저녁이 되자 主上께서 촛불을 내리시고 원(院)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理解 가을에 鎭山 縣監(珍山縣監) 이기양(李基讓)을 불러 試驗 보이시고는, 及第를 내려 特別히 弘文館 修撰에 임명하셨다. 이때는 小人의 道가 消滅하고 君子의 道가 成長하여 和平한 기운이 길러지고 萬物이 旺盛하였으니, 眞實로 빛나던 한 太平聖代였다.

그 後 5年이 지난 己未年(1799, 正祖 23) 봄에 蔡濟恭이 죽고 그 이듬해 6月에 主上께서 昇遐하셨다. 그다음 해 辛酉年(1801, 順調 1) 봄에 和蘭(禍亂) 3) 이 일어나서 李家煥은 獄事(獄死)하였고 이기양은 端川(端川)으로, 藥用은 長期(長?)로 귀양 갔다. 이해 겨울에 惡人(惡人) 목만중(睦萬中) 4) ·홍낙안(洪樂安) 5) ·이기경(李基慶) 6) 等이 일을 꾸며 蔡濟恭의 官爵을 追奪하고 다시 李家煥의 罪를 論하여 刑罰을 더하라고 請하였다. 또 藥用을 逮捕하여 玉에다 가두어 將次 죽이려고 했지만 여러 大臣의 救命(救命)에 힘입어 强震(康津)으로 귀양地를 옮겼다. 이것이 그동안 우리들이 겪었던 不幸과 幸福, 衰落함과 蕃盛함의 大略이다.

아, 하늘이 이미 우리 先大王(正祖)처럼 총명하고 지혜로운 분을 내어 軍事(君師)로 세우고, 또 이렇게 한두 名의 어질고 뛰어난 臣下를 내어 聖君(聖君)과 現身(賢臣)李 서로 만나 한 時代의 長官(壯觀)을 이루게 하더니, 곧이어 무너뜨리고 뒤집어 恩寵과 福祿을 끝까지 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하늘의 뜻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 後 18年 만인 無人年(1818, 順調 18) 가을에 新 藥用이 熱水(洌水)의 北쪽으로 살아서 돌아와 비로소 한두 분 名臣(名臣)의 行跡을 敍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蔡濟恭은 이미 비지(碑誌)가 있기에 그만두고, 마침내 李公(李公)의 行跡을 記錄하여 무덤에 넣을 指紋(誌文)을 짓는다.

原文

貞軒墓誌銘 (靖獻墓誌銘)

乾隆 乙卯之春, 我 正宗大王 御極之十有九年也? 奸臣旣誅【 鄭東浚 】, 王綱 7) 復整? 上御 仁政門 , 受?臣賀, 發音如洪鍾, 赫怒如雷霆, 曰: “咨爾在廷百僚, 咸聽予誥? 予今日退小人進君子, 以紹我皇天祖宗之眷命, 予今日明示好惡, 以丕定民志?” 群臣震? 8) , 肅穆無譁, 恭聽大號? 於是起判中樞府事臣 蔡濟恭 爲左議政, 命同副承旨臣 進前抽紙, 擢前大司成臣 李家煥 爲工曹判書? 於是中外翕然, 以爲善類彙進?

旣月, 上召臣 家煥 ?臣 , 諭之曰: “惟玆 華城 , 卽我 莊獻 衣冠之藏也? 今年春, 予奉壽母, 往觀幽宅? 後十年, 予將老焉, 故 華城 老來之堂 ? 惟是 華城 之事, 不敢不敬, 松楸·?柏之植, 宮殿 9) ·臺?之築, 城池·甲兵之繕, 穀粟·錢布之蓄, 亭館·郵傳·鹵簿·?牢之共, 靡有小大, 咸宜整理, 悉簿悉正, 以昭邦禮? 咨 家煥 ! 汝惟博識, 宜掌是役? 咨 ! 汝惟敏給, 其與相之? 惟玆奎瀛之府, 密邇王居, 厥地深嚴, 汝往玆宅, 遊焉息焉? 賜汝內?·珍?·異?·橘·柚·柑·橙·??·??, 是醉是?, 以沾渥恩?” 臣等俯伏涕泣, 惟命之恭?

旣數日, 設賞花釣魚之宴, 上旣乘, 命進?馬, 詔臣等騎而從? 臣 濟恭 ·臣 家煥 ·臣 , 隨上至 靑陽門 , 循牆而東, 至 石渠閣 下馬? 轉至 芙蓉亭 釣魚, 發韻賦詩, 還御 映花堂 , 射熊侯? 旣夕, 令賜燭歸院?

是年秋, 召試 珍山 縣監臣 李基讓 賜第, 特授弘文館修撰? 當此之時, 小人道消, 君子道長? 太和亭育, 萬物煙?, 誠郁然一治也?

?五年己未春, 臣 濟恭 卒, 厥明年夏六月, 上薨? 厥明年辛酉春禍作, 臣 家煥 瘦于獄以死, 臣 基讓 端川 , 臣 ? ? 是年冬? 惡人 睦萬中 · 洪樂安 · 李基慶 等用事, 追奪臣 濟恭 爵, 復議臣 家煥 罪請加律, 又逮致臣 于獄, 將殺之, 賴諸大臣救, 徙謫于 康津 , 此否泰消長之大略也?

嗚呼! 天旣生聰明睿智若我先大王之人, 立之爲君師, 又生此一二賢俊之臣, 使之際會相遇, 以賁一代之觀, 又從而顚之覆之, 使不得終其寵祿, 天豈可知耶?

後十有八年戊寅之秋, 臣 生還 洌水 之北, 始敍列一二臣名跡, 蔡公 旣有碑誌, 遂志 李公 之事, 以備幽宮之藏?

參照어

正祖(正祖), 정동준(鄭東浚), 채제공(蔡濟恭), 이가환(李家煥), 火星(華城), 掌憲(莊獻), 思悼世子(思悼世子), 노래當(老來堂), 규靈府(奎瀛府), 靑陽門(靑陽門), 石距角(石渠閣), 부용정(芙蓉亭), 映花堂(映花堂), 이기양(李基讓), 목만중(睦萬中), 이기경(李基慶), 熱水(洌水)

出處

提供處 情報

  • 飜譯 및 監修 박석무

    韓國學術振興財團 理事長과 韓國古典飜譯院 院長을 歷任하였으며, 現在 茶山硏究所 理事長과 又石大 夕座敎授를 맡고 있다. 著書로 『流配地에서 보낸 便紙』, 『茶山 丁若鏞 評傳』, 『茶山 丁若鏞 流配地에서 만나다』, 『茶山散文選』, 『茶山詩精選』 等이 있다.

  • 諮問 및 監修 송재소

    成均館大學校 名譽敎授이며 現在 退溪學硏究院 理事長 兼 院長, 實施學士 硏究院長, 茶山硏究所 理事, 順菴記念事業會 會長을 맡고 있다. 著書로 『中國 人文奇行』, 『譯註 當時 三百수』, 『詩로 읽는 茶山의 生涯와 思想』, 『茶山視線』, 『茶山詩 硏究』 等이 있다. 仔細히보기

  • 諮問 및 監修 임형택

    성균관대학교 大東文化硏究院腸·成均館大學校 東아시아學術院腸·韓國古典飜譯院 理事長을 歷任했으며, 現在 成均館大學校 名譽敎授, 季刊 《創作과 批評》 編輯拷問을 맡고 있다. 著書로 『文明意識과 實學』, 『漢文敍事의 領土』, 『李朝時代 敍事詩』, 『21世紀에 實學을 읽는다』, 『우리 古典을 찾아서』 等이 있다. 仔細히보기

  • 諮問 및 監修 성백효

    忠南 豫算에서 出生하였다. 家庭에서 父親 月山공(月山公)으로부터 漢文을 受學하였으며, 월곡(月谷) 황경연(黃璟淵)·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先生을 師事하였다. 民族文化推進會 附設 國譯硏修院 연수부를 修了하고, 고려대학교 敎育大學院 漢文敎育科를 修了하였다. 現在 韓國古典飜譯院 名譽敎授를 맡고 있으며, 海東京史硏究所 所長으로 在職하고 있다. 仔細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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