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第)19대(代) 국회의원(國會議員) 선거(選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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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李明博)
대통령(大統領)의 행보(行步)가 상당히(相當히) 불안(不安)한 상태(狀態)를 보이면서, 연(連)이은 재보궐(再補闕) 선거(選擧)에서 연패(連霸)와 불안(不安)한 위기(危機)가 일어났다. 결국(結局) 집권여당(執權與黨)인
한나라당(한나라黨)
의 정당(政黨) 이름을
새누리당(새누리黨)
으로 변경(變更)했지만 일각(一角)에서는 총선(總選) 대참패(大慘敗)을 할 것으로 예측(豫測)하였다. 한편(한便)으로 중도(中道)-진보(進步) 진영(陣營) 사이의 통합(統合) 논의(論議)가 있었고, 비록 둘이 통합(統合)하지는 않았지만 대신(代身) 연대(連帶)하면서 새누리당(새누리黨)의 대항마(對抗馬)로 떠오름과 동시(同時)에 총선(總選)에서 승리(勝利)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예상(豫想)을 깨고 새누리당(새누리黨)이 152석(席)으로 단독(單獨) 과반(過半) 의석(議席)을 차지하며 승리(勝利)했다. 그러나
문대성
와
김형태
등(等) 새누리당 두명(名)의 당선자(當選者)가 구설수(口舌數)와 각종(各種) 의혹(疑惑)이 일자 결국(結局) 당(黨)에서 탈당(脫黨)하는 조치(措置)를 하면서 잠시(暫時) 일시적(一時的)으로 원내(院內) 과반(過半) 의석수(議席數)가 붕괴(崩壞)되었고, 반면(反面) 제(第)1야당(野黨)
민주당(民主黨)
는 2011년(年) 재보궐선거(再補闕選擧)에서 승리(勝利)하여 정권교체(政權交替)에 대(對)한 기대(期待)했는데 총선(總選) 4개월(個月)을 앞둔 시점(時點)에서
친노(親盧)
와
친문(親文)
진영(陣營)과 진보성항(進步性港) 시민사회(市民社會) 단체(團體)와 개혁성향(改革性向)의 재야세력(在野勢力)과 진보성향(進步性向)의 재야인사(在野人士)들과 의기투합(意氣投合)을 하여
민주통합당(民主統合黨)
으로 재편(再編)한다. 진보야당(進步野黨) 통합진보당(統合進步黨)의 단일화(單一化)을 하여 기대(期待)했지만 그러나 적지 않은 잡음(雜音)이 일어났고 결국(結局) 통한(痛恨)의 패배(敗北)을 하게 된다. 다만 개헌저지선(改憲沮止線) 100석(席)을 이상(以上) 확보(確保)하며 견제(牽制)하는 심리적(心理的) 노선(路線)을 확보(確保)하는게 위안(慰安)이 되고만다.
헌정(憲政) 이후(以後)
양당제(兩黨制)
의 절정기(絶頂期)
이기도 했던 때이다.
새누리당(새누리黨)
-
민주통합당(民主統合黨)
의 실질적(實質的)인 양당제(兩黨制)가 확실히(確實히) 굳어지기 시작(始作)했고, 보수(保守) 진영(陣營)의 또다른 정당(政黨)인
선진통일당
이 새누리당(새누리黨)과 합당(合當)하면서 보수(保守) 및 중도(中道) 진영(陣營)의 분열(分裂)이 종식(終熄)되면서 양당제(兩黨制)는 굳어졌음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진보(進步)의 선두(先頭)인
통합진보당(統合進步黨)
의 분열(分裂)로 진보진영(進步陣營)은 되레 분열(分裂)되었고, 결국(結局)
2014년(年) 해산(解散) 크리를 맞으면서
사실상(事實上) 사망선고(死亡宣告)를 받게 된다. 다만 전반적(全般的)으로 보았을때 새누리당(새누리黨)이 2014년(年) 상반기(上半期) 정도(程度)를 제외(除外)하면 민주당(民主黨)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支持率)은 20%대(臺)로 지지부진(遲遲不進)했고 강력(强力)한 조직력(組織力)을 이용(利用)해 재보선(再補選)에서 지속(持續)해서 압승(壓勝)을 거두었기 때문에 사실상(事實上) 새누리당(새누리黨)이 독주(獨走)하는 체제(體制)나 마찬가지였다.
여하튼(如何튼) 양당제(兩黨制)의 절정기(絶頂期)였지만, 2015년(年) 말(末) 중도진영(中道陣營)의 분열(分裂)로 3당(黨) 체제(體制)로 바뀌면서 2004년(年) 17대(代) 국회(國會) 이후(以後) 굳어진 양당제(兩黨制)가 붕괴(崩壞)되었다. 그러나 21대(代) 총선(總選)에서 다시 양당제(兩黨制)로 복귀(復歸)한다. 한편(한便) 이 19대(代) 국회(國會)는 보수정당(保守政黨)이 의회권력(議會權力)을 차지한 마지막 국회(國會)가 되었다.이은 20대(代),21대(代),22대(代) 국회(國會)에서 연(連)달아 더불어민주당(더불어民主黨)이 승리(勝利)해 진보(進步) 진영(陣營)이 1당(黨)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