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地中海)
연안(沿岸)이 원산지(原産地)인
국화(國花)
과의 다년생(多年生)
식물(植物)
.
고대(古代)
이집트
인(人)들도(度) 식용(食用)으로 썼다는 기록(記錄)이 있을 정도(程度)로
[1]
굉장히(宏壯히) 오랫동안 재배(栽培)된 식용(食用) 식물(植物) 중(中) 하나이다. 본래(本來) 야생(野生)
엉겅퀴
였으나, 지속적(持續的)인 품종(品種) 개량(改良)을 거쳐 고대(古代)
그리스
로마
시대(時代) 이후(以後)
남유럽(南유럽)
지역(地域)에 널리 보급(普及)되어 현재(現在)의 모습이 되었다.
유럽
에서 많이 소비(消費)되는 채소(菜蔬)로, 보통(普通) 5월(月)에서 8월(月) 말(末)까지 꽃이 피기 전(前)의 꽂대(代)를 수확(收穫)하기 때문에 이 때쯤의 유럽 시장(市場)에서는 산더미(山더미)처럼 쌓인 아티초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달짝지근하며 풀 향기(香氣)와 비슷한 풍미(風味)가 있고, 섬유질(纖維質)이 많아
죽순(竹筍)
처럼 아삭아삭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大部分) 감자와 같은 전분질(澱粉質)이기에 식감(食感)이
감자
류와 흡사(恰似)하다. 유럽에서는 살짝 붉은 기(氣)가 도는 아티초크를 더 상등품(上等品)으로 취급(取扱)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소비(消費)하며, 주로(主로) 절인 아티초크를 다른 음식(飮食)과 곁들여 먹는다. 식료품(食料品) 가게 등(等)에 가면 병조림(甁조림)으로 판매(販賣)된다.
[2]
분류상(分類上)으로는 채소지(菜蔬地)만,
르네상스
시대(時代)
프랑스
에서는 미각(味覺)을 돋우기 위한
향신료(香辛料)
처럼 취급(取扱)했다고 한다.
기본적(基本的)으로 따뜻한 기후(氣候)에서 자라지만, 워낙 예민(銳敏)한 탓에 재배(栽培)가 상당히(相當히) 까다롭다. 때문에 한국(韓國)에서는 아티초크를 재배(栽培)하기 거의 불가능(不可能)해서 매우 생소(生疏)한 채소(菜蔬)다.
[3]
인지도(認知度)가 떨어지는 만큼 수요(需要)도 굉장히(宏壯히) 적어서, 어쩌다 수입(輸入)되는 아티초크의 가격(價格)은 기(氣)가 막힌 수준(水準)이다. 백화점(百貨店) 같은 곳에서 종종(種種) 팔리기도 하는데, 작은 아티초크 하나에 가격(價格)을 5,000 ~ 6,000원대(臺)로 책정(策定)하는 등(等) 굉장히(宏壯히) 비싸 선뜻 구매(購買)하기 어려운 채소(菜蔬)다.
[4]
국내(國內)
코스트코
에서 가끔 병조림(甁조림)을 찾을 수 있다. 같은 유럽권(圈)이라고 해도
독일(獨逸)
이나
북유럽(北유럽)
쪽에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생소(生疏)한 채소(菜蔬) 취급(取扱)받는다.
이처럼 한국(韓國)은 물론(勿論)이고 동아시아(東아시아) 국가(國家)들과는 영 인연(因緣)이 없는 식물(植物)이지만, 과거(過去)
일본(日本)
에서는 뜬금없이 '조선(朝鮮) 엉겅퀴(朝鮮?)'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티초크가 처음 일본(日本)에 소개(紹介)된
에도 시대(時代)
에 외국(外國)의 물산(物産)을 대표(代表)하는 이름은
화란(和蘭)
(네덜란드) 혹은(或은)
조선(朝鮮)
이었는데, 이 아티초크 역시(亦是) 네덜란드를 통(通)해 들어왔으나 유통(流通) 과정(過程)에서 조선(朝鮮)에서 들어왔다는 착오(錯誤)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以後) 이 이름이
중국(中國)
에도 소개(紹介)되어 한동안 중국(中國)에서도 조선(朝鮮) 엉겅퀴란 이름이 통용(通用)되었다. 유래(由來)가 제대로 알려진 현재(現在)는 일본(日本)에서는 그대로 아티초크(ア?ティチョ?ク), 중국(中國)에서는 양지(陽地)(洋?; 서양(西洋) 엉겅퀴), 차이(差異)지(菜?; 채소(菜蔬) 엉겅퀴)라고 부른다.
유럽에서는 지방(脂肪)이 많은 음식(飮食)의 소화(消火)에 효과(效果)가 크고, 궁극적(窮極的)으로
과민성(過敏性) 대장(大腸) 증후군(症候群)
의 증상(症狀) 개선(改善) 효과(效果)도 어느 정도(程度) 있다고 알려져 보충제(補充制) 형태(形態)로도 인기(人氣)가 많다. 어째서인지 예전부터
정력(精力)
에 좋은 음식(飮食)으로 간주(看做)된다.
튀르키예의 국부(國富)
아타튀르크
가 죽기 전(前)에 먹어보고 싶어한 음식(飮食)이다. 죽기 며칠 전(前)에 경호원(警護員)에게 "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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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單) 한 번(番)도 아티초크를 먹어본 적이 없단다. 알고 있느냐?(Cocuk, ben hic enginar yemedim biliyor musun?)"라고 말했고, 경호원(警護員)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유명(有名)한 요리사(料理師)를 각하(閣下)를 위해 불렀습니다.
카흐라만마라쉬
에서 기차(汽車)를 타고 오고 있습니다. 각하(却下).(Turkiye'nin en unlu a?cısı sizin icin hazırladı. Kahramanmara?'tan trenle yola cıktı. Geliyor Pa?am.)"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차(汽車)는 아타튀르크의 사망일(死亡日)인 1938년(年) 11월(月) 10일(日)까지 도착(到着)하지 못했고, 결국(結局) 아타튀르크는 아티초크를 먹어보지 못하고 세상(世上)을 떠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