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문민정부(文民政府)
출범(出帆) 이후(以後) 재산(財産) 공개(公開) 과정(過程)에서 축소(縮小) 공개(公開) 등(等)이 논란(論難)이 되어 국회의원직(國會議員職)을 사퇴(辭退)하였다. 이 때
토사구팽(兎死狗烹)
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배신감(背信感)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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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以後), 1994년(年)부터 2002년(年) 3월(月)까지 서울대(對) 총동창회장(總同窓會長)을 역임(歷任)하였다.
2016년(年) 5월(月) 17일(日) 노환(老患)으로 사망(死亡)했다.
철원(鐵圓)에서 4선(線) 국회의원(國會議員)을 하는 동안 가장 자랑스러워한 업적(業績)은 토교(土窖) 저수지(貯水池)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