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英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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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연합왕국(聯合王國)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국기(國紀)

국장(國葬) ( 왕실(王室) 문장(文章) )
표어(標語) 프랑스어(프랑스語) : Dieu et mon droit
영어(英語) : God and my right [1]
표어(標語) 설명(說明) 신(神)과 나의 권리(權利)
국가(國家) 하느님, 국왕(國王) 폐하(陛下)를 지켜 주소서
수도 런던 북위(北緯) 51° 30′ 26″ 서경(書經) 0° 07′ 39″  /  북위(北緯) 51.507222° 서경(書經) 0.1275°  / 51.507222; -0.1275
영국(英國)(영국(英國))
정치(政治)
정치체제(政治體制) 단일(單一) 국가(國家) , 양원제(兩院制) ,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 , 의원내각제(議員內閣制)
국왕(國王) 찰스 3세(歲)
총리(總理)
상원(上院) 의장(議長)
하원(下院) 의장(議長)
리시(里市) 수낵
존 맥(脈)폴
린지 호일
입법부(立法府) 영국(英國) 의회(議會)
상원(上院) 귀족원(貴族院)
하원(下院) 서민원
집권여당(執權與黨) 보수당(保守黨)
역사(歷史)
설립(設立)  
 ?  1707년(年) 연합법(聯合法) 1707년(年) 5월(月) 1일(日)
 ?  아일랜드 왕국(王國) 합병(合倂) 1801년(年) 1월(月) 1일(日) 5
 ?  아일랜드 자유국(自由國) 독립(獨立) 1922년(年) 12월(月) 5일(日)
지리
면적(面積) 242,495 km 2 ( 78 위(位) )
내수면(內水面) 비율(比率) 1.51 %
시간대(時間帶) GMT ( UTC +0)
DST BST (UTC+1)
인문(人文)
공용어(公用語) 영어(英語) 4
지역어(地域語) 웨일스어(語)
데모님 영국인(英國人)
인구(人口)
2020년(年) 어림 67,886,004명(名) (21위(位))
인구(人口) 밀도(密度) 255.6명(名)/km 2 ( 51위(位) )
경제(經濟)
GDP ( PPP ) 2020년(年) 어림값
 ? 전체(全體) $2조(兆) 9,790억(億) ( 9위(位) )
 ? 일인당(一人當) $44,288 ( 26위(位) )
GDP (명목(名目)) 2020년(年) 어림값
HDI 0.932 ( 13위(位) , 2019년(年) 조사(調査))
통화(通話) 파운드 (£) ( GBP )
종교(宗敎)
종교(宗敎) 기독교(基督敎) [주(週) 1] 34.2%
무종교(無宗敎) 50.2%
이슬람교(이슬람敎) 5.5%
힌두교(힌두敎) 1.7%
기타(其他) 2.5%
불명(不明) 0.6%
기타
ISO 3166-1 826 , GB , GBR
도메인 .uk 6
국제(國際) 전화(電話) +44
1 일부(一部) 지방(地方)에서 쓰이는 언어(言語)로는 다음과 같다:

2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의 문장(文章)을, 웨일스에서는 웨일스의 문장(文章)을 사용(使用)한다.
3 공식적(公式的)인 국가(國家)는 아니다.
4 2005년(年) 웨일스 에서는 웨일스어(語) , 스코틀랜드 에서는 스코틀랜드 게일어 가 공용어(公用語)로 지정(指定)되었다.
5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聯合王國)'이라는 이름이 정(定)해졌다. 이 이름은 1927년(年) 에 지금(只今)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6

ISO 3166-1 alpha-2 약자(弱者)는 'GB'이지만 특별한 목적(目的)에서만 사용(使用)된다.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연합왕국(聯合王國) [주(週) 2] , 약칭(略稱) 영국(英國) [주(週) 3] 유럽 본토(本土) 해안(海岸)에서 북서쪽(北西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位置)한 섬나라 이자(利子) 입헌군주국(立憲君主國) 이다. 북해(北海) , 영국(英國) 해협(海峽) , 아일랜드해(海) 대서양(大西洋) 에 접(接)하여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섬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 웨일스 아일랜드섬 북부(北部)의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로 네 개(個)의 구성국(構成國) 이 연합(聯合)해 형성(形成)한 단일(單一) 국가(國家) 이다. [주(週) 4] 수도(首都)는 런던 이고 스코틀랜드 , 웨일스 ,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의 수도(首都)는 각각(各各) 에든버러 , 카디프 , 벨파스트 이다.

아일랜드섬의 영국령(英國領)인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아일랜드 공화국(共和國) 과 국경(國境)을 맞대고 있으며 해외(海外) 영토(領土) 까지 포함(包含) 시(時) 스페인 (영국령(英國領) 지브롤터 ), 키프로스 ( 아크로티리 데켈리아(兒) )와 국경(國境)을 공유(共有)하고 있다. 건지섬 , 저지섬 , 맨섬 과 같이 본토(本土)의 일부(一部)는 아니나 영국(英國)의 군주(君主)의 지배(支配) 하(下)에 있는 왕실속령(王室屬領) 들도 있다. 해외(海外) 영토(領土) 거주민(居住民)들과 영국(英國) 본토(本土)의 국민(國民)들은 서로의 지역(地域)에 거주(居住)할 권리(權利)가 없으며 상호간(相互間)의 이민도 자유롭지 않다. [2]

영국(英國)은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를 기본(基本)으로 하여 근대적(近代的) 의회제도(議會制度) 의원내각제(議員內閣制) 를 전(前) 세계(世界) 로 전파(傳播)시킨 국가(國家)이며 산업혁명(産業革命) 의 발원지(發源地)로 제일(第一) 먼저 산업화(産業化)가 된 나라이자 19세기(世紀) 20세기(世紀) 초반(初盤) 세계(世界) 인구(人口)와 영토(領土)의 1/4을 차지한 당대(當代)의 최강대국(最强大國)이었으나, 제(第)2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이후(以後) 상대적(相對的)으로 국력(國力)과 위상(位相)이 쇠퇴(衰退)하였다. 그러나 여전히(如前히) 세계(世界)에 정치(政治) , 군사(軍事) , 문화(文化) , 과학(科學) , 경제(經濟) 등(等)에 영향(影響)을 끼치는 강대국(强大國) 중(中) 하나로 남아 있으며 특히(特히) 대중(大衆) 음악(音樂)은 비틀즈 롤링 스톤스 , 레드 제플린 , 을 시작(始作)으로 현재(現在)까지 세계(世界)에 막대적(莫大的)인 영향(影響)을 끼치고 있으며, UN 안전보장이사회(安全保障理事會) 상임이사국(常任理事國) 이며 핵무기(核武器) 보유국(保有國)이고 2018년(年) 기준(基準)으로 군사비(軍事費) 지출(支出) 은 세계(世界)에서 여섯 번째(番째)로 크다. 2018년(年) 명목(名目) 국내총생산(國內總生産)은 세계(世界) 5위(位)였으며, 시가총액(時價總額) 기준(基準) 세계(世界) 50대(大) 기업(企業) 중(中) 로열 더치 쉘 , BHP 빌리튼 , 보다폰 , HSBC , BP , 글락소스미스클라인 , 유니레버 가 영국(英國) 기업(企業)이었다. 대졸자(大卒者) 초임(初任) 연봉(年俸)은 2010년(年) 기준(基準)으로 약(約) 25,000 영국(英國) 파운드 ( 한화(韓華) 약(約) 3,767만(萬)원)에 달(達)한다. [3]

어원(語源)과 용어(用語)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의 정식명칭(正式名稱)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연합왕국(聯合王國)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약칭(略稱)으로 브리튼 이라고 한다. 대한민국(大韓民國) 에서 영국(英國) 이라 부르는 것은 연합왕국(聯合王國)의 구성국(構成國)인 잉글랜드 한자(漢字) 표기(表記)에서 나온 것으로 다른 한자(漢字) 문화권(文化圈) 에서도 수용(收容)된다. 영(英){ 중국어(中國語) 발음(發音)은 잉( 병음 : Y?ng)}은 잉글랜드(England)의 잉(Eng)을 음역(音域) 한 것이고, 국(國)은 랜드(land)를 의역(意譯)한 것이다. 한자(漢字) 문화권(文化圈) 에서 이 이름은 연합왕국(聯合王國) 전체(全體)를 통칭(統稱)하는 경우(境遇)가 많지만 문맥(文脈)에 따라서 여전히(如前히) 잉글랜드만을 뜻하기도 하여 중의적(重義的) 의미(意味)가 있다. 일본(日本) 에서는 잉글랜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語) 잉글레스( 포르투갈어(語) : ingles )의 음역(音譯)인 이기(理氣)리스 ( 일본어(日本語) : イギリス 또는 英吉利 )로도 쓰인다.

1707년(年)에 잉글랜드 왕국(王國) 스코틀랜드 왕국(王國) 그레이트브리튼 왕국(王國) 으로 통합(統合)되었다. 현재(現在) 영국(英國)을 지칭(指稱)할 때 흔히 쓰이는 ‘유나이티드 킹덤’이라는 호칭(呼稱)은 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王國)을 부를 때 사용(使用)했던 국명(國名)으로, 다만 1707년(年)부터 1800년(年)까지 정식(正式) 국명(國名)은 여전히(如前히) ‘그레이트브리튼 왕국(王國)’이었다. 1801년(年)에는 아일랜드 왕국(王國)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王國)이 통합(統合)되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聯合王國) 을 구성(構成)하였다. 1922년(年)에 아일랜드 자유국(自由國) 이 분리(分離)되어 영국(英國)에서 떨어져 나가자, 영국(英國)은 아일랜드 북부(北部) 지방(地方) 일부(一部) 만(灣)을 통치(統治)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정식(正式) 명칭(名稱)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연합왕국(聯合王國)’이라고 바꾸게 되었다.

영국(英國)은 현재(現在) 단일국가(單一國家)이기는 하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는 여전히(如前히) 상당(相當)한 자치(自治)를 가지고 있다. 영국(英國) 총리(總理)의 웹사이트에도 영국(英國)을 설명(說明)할 때에는 ‘국가(國家) 안의 국가(國家)들’이라는 단어(單語)를 사용(使用)한다. 다만 완벽(完璧)한 자치권(自治權)을 보장(保障)하는 것은 아니라서, 대부분(大部分)의 정부(政府) 통계(統計)를 낼 때에는 ‘지방(脂肪)’이나 ‘행정구역(行政區域)’이라는 단어(單語)를 사용(使用)하여 부르기도 한다.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單語)는 보통(普通)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칭(稱)하는 것이나, 정치적(政治的)으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합쳐 부르는 단어(單語)이기도 하다. 가끔씩은 영국(英國) 전체(全體)를 느슨하게 묶어서 통칭(統稱)하는 단어(單語)이기도 하다.

‘브리튼’이라는 단어(單語)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동의어(同義語)로, 영국(英國)을 부를 때 사용(使用)하는 단어(單語)이기도 하다. 다만 영국(英國) 정부(政府)는 'UK'를 ‘브리튼’보다 선호(選好)하며, 대사관(大使館)이나 외교(外交) 업무(業務)를 제외(除外)하고는 브리튼을 자주 사용(使用)하지 않는다. 영국(英國) 지리학회(地理學會)에서는 자국(自國)의 약칭(略稱)을 ‘브리튼’이 아닌 ‘유나이티드 킹덤’이나 'UK'로 사용(使用)하도록 권고(勸告)하고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單語)의 경우(境遇)에는 은연(隱然) 중(中)에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를 제외(除外)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고 하여 따로 분류(分類)해놓고 있다. 다만 영국(英國)의 대표적(代表的)인 방송(放送)사인 BBC 의 경우(境遇), 영국(英國)을 칭(稱)할 때에 ‘브리튼’이라는 단어(單語)를 주로(主로) 사용(使用)해오고 있다.

역사(歷史) [ 편집(編輯) ]

연합왕국(聯合王國) 성립(成立) 이전(以前) [ 편집(編輯) ]

바이외 태피스트리 에 묘사(描寫)된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征服)

현생(現生) 인류(人類)는 대략(大略) 3만(萬) 년(年) 전(前)쯤부터 영국(英國) 지역(地域)에 살기 시작(始作)하였다. 선사시대(先史時代)가 끝나갈 무렵, 이들은 켈트족 이라는 민족(民族)을 구성(構成)하며 고유(固有)의 문화(文化)를 발전시켜나갔고, 브리튼 섬에는 브리튼인(人) 이, 아일랜드에는 게일인(人) 이 등장(登場)하였다. 그러던 중(中) 기원후(紀元後) 43년(年)부터 로마인들이 브리튼 섬을 침공(侵攻)하였고, 이들이 약(約) 400여(餘) 년(年) 동안 브리튼 섬 남부(南部)를 지배(支配)하며 브리튼인(人)들을 로마화(化) 시켰다. 이후(以後)에는 게르만계(系)의 앵글로 색슨족(族) 이 쳐들어왔고, 본래(本來) 섬에 거주(居住)하던 브리튼인(人)들을 웨일스 지방(地方)으로 몰아낸 후(後)에 섬의 주(州) 지역(地域)들을 대신(代身) 차지하였다. 앵글로색슨족은 약(約) 10세기(世紀) 경(頃) 잉글랜드 왕국(王國) 으로 통합(統合)되었고, 5세기(世紀) 경(頃) 아일랜드에서부터 이주(移住)해와 브리튼 섬 북서부(北西部)에 살고 있던 일부(一部) 게일인(人)들은 픽트족(族) 과 통합(統合)되어 9세기(世紀) 경(頃)에 스코틀랜드 왕국(王國) 을 건국(建國)하였다.

1066년(年), 노르만족(族) 이 프랑스 북부(北部)에서 건너와 잉글랜드를 침공(侵攻) 하였고, 웨일스, 아일랜드 대부분(大部分)을 점령(占領)하였으며 이후(以後)에는 스코틀랜드에 정착(定着)하였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에 자리를 틀며 프랑스식(式)의 봉건제(封建制)를 지역(地域)에 정착시켜나갔고, 본래(本來) 있던 앵글로색슨 지배계층(支配階層)들과 교류(交流)하며 섬의 엘리트층(層)으로 떠올랐다. 이후(以後) 왕위(王位)에 오른 잉글랜드의 왕(王)들은 웨일스 지방(地方)을 정복(征服)하는 데에 성공(成功)하였으나, 스코틀랜드를 합병(合倂)하는 데에는 실패(失敗)하여 1320년(年)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獨立)을 반강제적(半强制的)으로 인정(認定)하기도 하였다. 이후(以後) 스코틀랜드는 1700년대(年代)에 합병(合倂)될 때까지 시시건건(件件) 잉글랜드와의 충돌(衝突)을 반복(反復)하게 된다.

잉글랜드의 역대(歷代) 국왕(國王)들은 결혼(結婚)과 전쟁(戰爭) 등(等)을 반복(反復)하여 프랑스 본토(本土) 내(內)에도 상당(相當)한 영토(領土)를 소유(所有)하고 있었고, 게다가 프랑스 왕위계승권도(王位繼承權度) 가지고 있었기에 프랑스 내(內)에서 일어나는 정치(政治) 다툼에 깊이 휘말려들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것이 프랑스와 벌인 백년전쟁(百年戰爭) 으로, 이때 스코틀랜드의 왕(王)들은 프랑스와 동맹(同盟)을 맺고 잉글랜드에 대항(對抗)하였다고 전(傳)해진다. 이후(以後) 유럽에서 종교개혁(宗敎改革) 이 일어나 구(區) 가톨릭과 신교(新敎) 간(間)의 싸움이 치열(熾烈)해지자, 잉글랜드는 새로운 국교(國敎)인 성공회(聖公會) 를 조직(組織)하고 가톨릭 교회(敎會)들이 갖고 있던 토지(土地)들을 몰수(沒收)하고 왕권(王權) 강화(强化)에 활용(活用)하였다. 이때 즈음에 이르자 웨일스는 완전히(完全히) 잉글랜드 왕국(王國)에 편입(編入)되었고,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왕위(王位) 하(下)에 하나의 왕국(王國)으로 성립(成立)되었다. 한편(한便) 잉글랜드 왕국(王國)은 현재(現在)의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지방(地方)에 있는 가톨릭 교회(敎會)의 토지(土地)들을 몰수(沒收)하여 근왕파(勤王派) 귀족(貴族)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603년(年), 스코틀랜드의 왕(王)인 제임스 6세(歲) 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위(王位)를 물려받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왕국(王國)은 하나로 통합(統合)되게 되었다. 제임스 6세(世)는 그의 궁정(宮廷)을 에든버러에서 런던으로 옮겼으나, 여전히(如前히) 각각(各各)의 왕국(王國)들은 따로 노는 성향(性向)이 강(剛)했으며 정치적(政治的), 법적(法的), 종교적(宗敎的)으로는 제각각(제各各)으로 활동(活動)했다. 17세기(世紀) 중반(中盤)에는 이 3개(個)의 왕국(王國)들 모두가 내전(內戰)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때 잠시(暫時) 왕정(王政)이 폐지(廢止)되었으며 국왕(國王) 찰스 1세(歲) 가 참수당했고 잠시(暫時)동안 커먼웰스 가 세워지며 단명(短命)한 공화국(共和國)이 창설(創設)되기도 했다. 또한 17세기(世紀), 18세기(世紀)에는 섬이라는 영국(英國)의 지리적(地理的) 특성(特性)을 이용(利用)하여 영국(英國) 출신(出身)의 수(數)많은 해적(海賊)들이 활동(活動)하며 유럽과 캐리비안 해의 상선(商船)들을 약탈(掠奪)하여 악명(惡名)을 떨쳤다.

단명(短命)한 공화정(共和政)이 폐지(廢止)된 이후(以後) 왕정(王政)이 복고(復古)되었으나, 전제군주정(專制君主政)은 다시는 부활(復活)하지 못했다. 또한 가톨릭교도는 왕위(王位)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法)이 통과(通過)되면서 로마 교황(敎皇)의 간섭(干涉)도 타 유럽 국가(國家)들에 비하여 훨씬 뜸해졌고, 권리장전(權利章典) 등(等) 국왕(國王)의 권력(權力)을 제약(制約)하고 의회(議會)의 힘을 강화(强化)하는 법(法)들이 연이어 통과(通過)되며 이후(以後) 영국(英國)은 의회제도(議會制度)와 입헌군주정(立憲君主情)에 기반(基盤)한 국가(國家)로 도약(跳躍)하게 된다. 한편(한便) 1660년(年)에는 왕립위원회(王立委員會)가 창설(創設)되며 과학계(科學界)에 대(對)한 후원(後援)이 대폭(大幅) 증가(增加)하였고, 왕실(王室)의 후원(後援)에 힘입어 해군력(海軍力)이 크게 증강(增强)되었으며 해외(海外) 식민지(植民地) 탐사(探査)에 눈을 뜨게 되며 북아메리카(北아메리카)와 캐리비안 지역(地域)에 대대적(大大的)인 식민지(植民地) 건설(建設)이 시작(始作)되었다.

그레이트브리튼 왕국(王國) [ 편집(編輯)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국(王國)이 서로 몇 백년(百年) 동안 반목(反目)을 거듭한 끝에, 1707년(年) 5월(月) 1일(日)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양국(兩國) 의회(議會)가 통합법(統合法)을 가결(可決)하며 마침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王國)이 성립(成立)됨에 따라 두 왕국(王國)이 하나로 통합(統合)되었다.

18세기(世紀)에는 첫 총리(總理)로 로버트 월폴 이 취임(就任)하였고, 의회내각제(議會內閣制)에 기반(基盤)하여 근대(近代)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기반(基盤)을 닦아 나가기 시작(始作)했다. 이후(以後) 자코바이트의 난 이 터지며 신교(新敎)를 믿는 하노버 왕가(王家)를 몰아내고 가톨릭을 신봉(信奉)하는 스튜어트 왕가(王家) 를 복구(復舊)하려 시도(試圖)하였으나, 결국(結局) 1746년(年)에 대패(大敗)하고 반란(叛亂)을 일으켰던 스코틀랜드인(人)들은 혹독(酷毒)한 탄압(彈壓)을 받았다. 한편(한便) 북아메리카(北아메리카)에 설립(設立)한 영국(英國)의 식민지(植民地)는 독립전쟁(獨立戰爭) 을 일으켜 미국(美國) 을 건국(建國)하며 떨어져나갔고, 영국(英國)은 어쩔 수 없이 이를 1783년(年)에 인정(認定)하였다. 이후(以後) 영국(英國)의 관심(關心)은 아시아 쪽으로 옮겨갔고, 특히(特히) 영국(英國)이 아시아에 차지하고 있는 가장 부유(富裕)하고 거대(巨大)한 식민지(植民地)인 인도(印度) 에 집중(集中)되었다.

영국(英國)은 대서양(大西洋) 노예무역(奴隸貿易) 을 주도(主導)하며 1662년(年)과 1807년(年) 사이에 수많은 선박(船舶)들을 이용(利用)하여 거의 330만(萬) 명(名)의 흑인(黑人) 노예(奴隸)들을 아프리카에서부터 실어날랐다. 노예(奴隸)들은 보통(普通) 북아메리카(北아메리카)나 캐리비안 해역(海域)에 있는 거대(巨大)한 플랜테이션 등(等)으로 강제적(强制的)으로 옮겨갔으며 심각(深刻)한 탄압(彈壓)을 받으며 사탕수수(沙糖수수)나 목화(木花) 등(等)을 재배(栽培)하는 일에 동원(動員)되었다. 이들의 강제(强制) 노동(勞動)은 18세기(世紀) 영국(英國)의 경제(經濟)를 떠받치는 기둥들 중(中) 하나였으며, 노예상인(奴隸商人)들은 이 과정(過程)에서 엄청난 이익(利益)을 남기며 호황(好況)을 누렸다. 그러나 세월(歲月)이 흐르고 노예무역(奴隸貿易)의 반인륜적(反人倫的)인 실태(實態)가 갈수록 폭로(暴露)되자 결국(結局) 여론(輿論)의 압박(壓迫)을 받은 의회(議會)가 1807년(年)에 노예무역(奴隸貿易)을 금(禁)했고, 1833년(年)에는 대영제국(大英帝國) 전체(全體)에서 노예제(奴隸制)를 철폐(撤廢)하였다. 또한 이후(以後)에는 노예제(奴隸制) 폐지(廢止)에 적극적(積極的)으로 나서며 타 유럽 국가(國家)들도 노예(奴隸)를 거래(去來)하거나 사고파는 일을 그만두도록 압박(壓迫)하기도 하였다. 세계(世界)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인권단체(國際人權團體)인 ‘반노예(半奴隸)인터네셔널(Anti-Slavery International)'도(道) 1839년(年) 런던에서 처음으로 창설(創設)되었다.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전성기(全盛期)를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女王)

대영제국(大英帝國)과 1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 편집(編輯) ]

'유나이티드 킹덤‘, 즉(卽) ’UK'라는 국명(國名)은 1801년(年)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王國)과 아일랜드 정부(政府)가 서로 통합(統合)을 결정(決定)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聯合王國) 이 창설(創設)되면서 정식(正式)으로 영국(英國)의 국명(國名)으로 결정(決定)되었다.

나폴레옹 전쟁(戰爭) 에서 프랑스가 결국(結局) 영국(英國)과 그 연합국(聯合國)들에게 패(敗)한 이후(以後), 영국(英國)은 19세기(世紀) 유럽의 최강자(最强者)로 떠올랐고, 전세계(全世界)의 제해권(制海權)을 장악(掌握)하며 인류(人類) 역사상(歷史上) 가장 거대(巨大)한 제국(帝國)으로 뻗어나갔다. 1830년대(年代) 런던은 세계(世界)에서 가장 거대(巨大)한 도시(都市)였으며, 영국(英國) 상선(商船)들은 막강(莫强)한 해군(海軍)의 비호(庇護)를 받으며 전세계(全世界)를 이었다. 이 시기(時期)를 일컬어 영국(英國) 주도하(主導下)의 평화(平和), 즉(卽) ‘팍스 브리타니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시기 영국(英國)의 국력(國力)은 매우 강대(强大)해지면서 ‘ 대영제국(大英帝國) ’이라고 불리기 시작(始作)하였고, 1815년(年)에서 1914년(年)까지 서구(西歐) 열강(列强)들이 서로 균형(均衡)을 유지(維持)하며 견제(牽制)하는 소강상태(小康狀態) 동안 세계(世界)의 패권(霸權)을 쥐고 경찰국가(警察國家) 지위(地位)를 획득(獲得)하였다. 또한 18세기(世紀)에 대대적(大大的)으로 일어난 산업혁명(産業革命)에서 주도권(主導權)을 잡으며, ‘세계(世界)의 공장(工場)’이라는 별칭(別稱)을 얻기도 했다. 1853년(年)에서 1856년(年)까지는 오스만 제국(帝國) 과 손을 잡고 러시아 제국(帝國) 과 맞서 싸우며 크림 전쟁(戰爭) 에 참가(參加)하였다. 영국(英國)은 이 전쟁(戰爭)에서 자국(自國)의 영향력(影響力)을 크게 넓히는 데에 성공(成功)하였고, 인도(印度)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濠洲) 등(等) 세계(世界) 곳곳에 방대(厖大)한 해외(海外) 영토(領土)를 건설(建設)하였다. 영국(英國)은 막강(莫强)한 금력(金力)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권(經濟圈)을 손에 거머쥐었고, 자유무역(自由貿易)과 작은정부를 지향(志向)하면서 점차(漸次) 자본주의(資本主義)를 전세계(全世界)에 전파(傳播)하였다. 인구(人口)는 전례(前例)없는 속도(速度)로 증가(增加)하였고, 도시화(都市化)가 급격히(急激히) 일어났으며 사회(社會)의 빈부격차(貧富隔差)는 심각(深刻)한 수준(水準)으로 확대(擴大)되었다. 디즈레일리 총리(總理) 가 이끄는 내각(內閣)과 보수당(保守黨)은 제국(帝國)을 먹여살릴 새로운 동력(動力)을 찾기 위하여 식민지(植民地) 확장(擴張)에 열(熱)을 올렸고, 이집트, 남아프리카(南아메리카) 등(等) 미개척지(未開拓地)에 수많은 탐험원정대(探險遠征隊)들을 파견(派遣)하며 국력(國力)을 과시(誇示)하였다. 한편(한便) 캐나다 , 호주(濠洲) , 뉴질랜드 는 영국(英國)의 통제(統制)를 받는 자치(自治) 공화국(共和國)으로 독립(獨立)하였다. 시간(時間)이 흐르자 압도적(壓倒的)이었던 영국(英國)의 산업화(産業化) 속도(速度)도 독일(獨逸)과 미국(美國) 등(等) 신흥(新興) 강대국(强大國)들에게 따라잡혔고, 유럽과 미국(美國)과의 경제력(經濟力) 격차(隔差)도 줄어들기 시작(始作)했다. 한편(한便) 1900년대(年代) 이후(以後) 아일랜드 지방(地方)의 사회개혁(社會改革)과 자치(自治)는 영국(英國) 정가(政街)의 최고(最高) 이슈로 급부상(急浮上)하였고, 이후(以後) 아일랜드의 독립(獨立)에 대(對)한 논의(論議)가 급(急)물살을 타기 시작(始作)했다. 한편(한便) 1900년대(年代) 이후(以後)에는 무역조합(貿易組合)들과 조그만 사회주의(社會主義) 단체(團體)들이 모여 결성(結成)한 노동당(勞動黨) 이 등장(登場)하였고, 여성(女性) 투표권(投票權), 참정권(參政權) 등(等)을 요구(要求)하는 다양한 사회단체(社會團體)들이 등장(登場)하여 사회(社會)의 변혁기(變革期)를 이끌었다.

영국(英國)은 제(第)1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에서 프랑스, 러시아, 미국(美國)과 함께 독일(獨逸)과 동맹국(同盟國)을 상대(相對)로 연합국(聯合國) 측(側)에서 싸웠다. 영국(英國)은 거의 모든 식민지(植民地)에서 병사(兵士)들을 모집(募集)했고, 대부분(大部分)을 유럽 전선(戰線)에 투입(投入)하며 전세(傳貰)를 승리조(勝利兆)로 이끌었다. 그러나 피해(被害)는 막대(莫大)하였고, 영국(英國)은 한 세대(世代)에 달(達)하는 젊은이들을 잃었으며 사회질서(社會秩序)의 붕괴(崩壞), 기존(旣存) 질서(秩序)에 대(對)한 회의(會議) 등(等) 여러 변화(變化)를 맞았다. 전후(前後)에는 독일(獨逸)과 오스만 제국(帝國)의 영토(領土)들을 분할(分割), 새로운 세계질서(世界秩序)를 구축(構築)하기 위하여 국제(國際) 연맹(聯盟) 을 창설(創設)하는 데에 참가(參加)하였다. 대영제국(大英帝國)은 세계대전(世界大戰) 직후(直後) 그 국력(國力)의 절정기(絶頂期)를 맞았다. 대영제국(大英帝國)은 전세계(全世界) 육지(陸地)의 5분(分)의 1을 다스렸으며, 전세계(全世界) 인구(人口)의 4분(分)의 1을 그 신민(臣民)들로 거느렸다. 그러나 세계대전(世界大戰)의 피해(被害)도 만만치 않아서, 대략(大略) 250만(萬) 명(名)의 사망자(死亡者)들을 내었으며 엄청난 양(量)의 빚을 지게 되었다.

윈스턴 처칠 총리(總理)

제(第)2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 편집(編輯) ]

1920년대(年代) 중반(中盤)에 이르자 거의 대부분(大部分)의 영국(英國) 국민(國民)들은 BBC 에서 송출(送出)하는 방송(放送)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放送)이 1929년(年)에 시범적(示範的)으로 시작(始作)되었고, 1936년(年)에는 처음으로 BBC 방송표(放送表)가 결성(結成)되며 새로운 시대(時代)의 시작(始作)을 알렸다.

한편(한便) 1900년대(年代) 이후(以後) 계속(繼續)되었던 아일랜드 민족주의(民族主義)는 1920년대(年代) 들어 그 절정(絶頂)을 찍었고, 결국(結局) 1921년(年)에는 아일랜드 가 대영제국(大英帝國)에서 독립(獨立)되어 나가는 결과(結果)를 낳았다. 다만 영국(英國)과의 분리(分離)를 바라지 않던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지방(地方)은 여전히(如前히) 영국(英國)에 남았다. 1928년(年)에는 여성(女性)들에게 남성(男性)과 동등(同等)한 정치권(政治權)과 선거권(選擧權)을 주었으며, 1920년대(年代)에는 빈부격차(貧富隔差)와 자본가(資本家)들과 노동자(勞動者)들 간(間)의 갈등(葛藤)이 극(極)에 달(達)하며 대대적(大大的)인 시위(示威)가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발(美國發) 대공황(大恐慌) 이 도래(到來)했고, 1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시절(時節)에 입은 내상을 완벽(完璧)히 회복(回復)하지 못한 영국(英國)은 엄청난 양(量)의 실업률(失業率)과 사회적(社會的) 불안정(不安定)을 맞으며 불안(不安)한 1930년대(年代)를 보냈다. 이시기 영국(英國)에서는 수많은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과 사회주의자(社會主義者)들이 등장(登場)하였으며, 1931년(年)에는 연립(聯立) 정부(政府)가 구성(構成)되었다.

다만 이같은 불안정(不安定)에도 불구(不拘)하고 영국(英國)은 아직까지도 세계(世界)의 중심(中心)이었으며, 런던은 세계(世界) 경제계(經濟界)의 핵심중(核心中) 하나이었고 그 무력(武力)과 과학기술(科學技術), 산업(産業)은 세계(世界) 최고수준(最高水準)이였고 최강(最强)이었다. 그러던 중(中) 히틀러 주도(主導)의 나치 독일(獨逸) 폴란드를 침공(侵攻) 하자(瑕疵), 영국(英國)도 이를 좌시(坐視)하지 않고 1939년(年)에 독일(獨逸)에 전쟁(戰爭)을 선포(宣布)하며 제(第)2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에 참가(參加)하였다. 1940년(年)에는 윈스턴 처칠 이(李) 총리직(總理職)에 올랐고, 내각(內閣)을 이끌고 전쟁(戰爭)을 지속(持續)해나갔다. 다만 개전(開戰) 초기(初期)에는 프랑스 등(等)의 동맹(同盟)들이 나치에게 쓸려나가며 홀로 외로운 전쟁(戰爭)을 계속(繼續)하였으나, 처칠 총리(總理)가 산업(産業)을 독려(督勵)하고 과학자(科學者), 기술자(技術者)들에게 정부(政府)를 지지(支持)해줄 것을 호소(呼訴)하면서 점차(漸次) 전세(傳貰)가 역전(逆轉)되기 시작(始作)하였다. 1940년(年)에는 왕립(王立) 공군(空軍)이 영국본토방공전(英國本土房空轉) 에서 독일(獨逸)의 루프트바페 를 상대(相對)로 영공(領空)을 수호(守護)하는 데에 성공(成功)하였으나, 이과정(過程)에서 런던 등(等)을 포함(包含)한 시가지(市街地)가 엄청난 폭격(爆擊)을 당(當)했다. 1941년(年)에는 영국(英國)과 미국(美國), 소련(蘇聯) 이 대동맹(大同盟)을 맺었고, 점차(漸次) 나치를 포함(包含)한 추축국(樞軸國) 을 상대(相對)로 대대적(大大的)인 반격전(反擊展)에 나서며 유럽, 대서양(大西洋), 북아프리카(北아프리카), 이탈리아 등(等)에서 엄청난 격전(激戰)을 벌였다. 영국군(英國軍)은 1944년(年)에 실시(實施)된 노르망디 상륙작전(上陸作戰) 에서 핵심적(核心的)인 역할(役割)을 하였으며, 유럽을 나치 치하(治下)에서 해방(解放)시키며 상당(相當)한 군공(軍功)을 세웠다. 영국군(英國軍)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얀마, 태평양(太平洋) 등(等)에서도 활약(活躍)하였으며, 영국(英國) 태평양함대(太平洋艦隊)는 태평양(太平洋)에서 일본(日本) 함대(艦隊)와 맞서 싸우기도 하였다. 또한 영국(英國) 출신(出身) 과학자(科學者)들은 맨해튼 프로젝트 에 참가(參加)하며 일본(日本)의 무조건(無條件) 항복(降伏) 을 이끌어내는 데에 일조(一助)하였다.

20세기(世紀) [ 편집(編輯) ]

2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시기(時期)동안, 영국(英國)은 미국(美國), 소련(蘇聯), 중국(中國)과 함께 세계(世界)의 4대(代) 강대국(强大國) 측(側)에 들었다. 이들은 전후(戰後)에 세계평화(世界平和)와 신세계질서(新世界秩序) 구축(構築)을 위하여 국제연합(國際聯合) 을 창설(創設)하였고, 안전보장이사회(安全保障理事會) 의 상임이사국(常任理事國) 지위(地位)를 얻었다. 또한 IMF , 세계은행(世界銀行) , 북대서양(北大西洋) 조약(條約) 기구(機構) 등(等) 세계(世界)의 한 축(軸)을 담당(擔當)하는 국제기구(國際機構)들을 설립(設立)하였다. 영국(英國)은 2번(番)에 걸친 세계대전(世界大戰)으로 인하여 국력(國力)이 심각(深刻)하게 약화(弱化)되었고, 이 때문에 미국(美國) 주도(主導)의 경제재건(經濟再建)프로그램인 마셜 플랜 에 크게 의존(依存)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전(大戰)이 끝난 이후(以後) 노동당(勞動黨)이 이끄는 정부(政府)가 급진적(急進的)인 개혁(改革) 정책(政策)들을 펼쳤고, 사회(社會) 전반(全般)을 바꾸기 위하여 막대(莫大)한 노력(努力)을 기울였다. 수많은 주요(主要) 산업(産業)들과 자원(資源)들이 국유화(國有化)되었고, 복지국가(福祉國家)의 개념(槪念)이 형성(形成)되었으며 거대(巨大)한 규모(規模)의 국민복지제도(國民福祉制度)가 설립(設立)되었다. 한편(한便) 해외(海外) 식민지(植民地)들 사이에서는 점차(漸次) 민족주의(民族主義)가 대두(擡頭)하였고, 한창 영국(英國)이 전쟁(戰爭)으로 약화(弱化)된 틈을 타서 영국(英國)으로부터의 독립(獨立)을 요구(要求)하였다. 결국(結局) 영국(英國)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독립시킬 수밖에 없었고, 1947년(年)에는 인도(印度)와 파키스탄의 독립(獨立)을 승인(承認)하였다. 이후(以後) 30여(餘) 년(年) 동안 대영제국(大英帝國)의 거의 모든 식민지(植民地)들이 독립(獨立)을 얻어내었으며, 이들 대부분(大部分)은 영국(英國)의 지원(支援) 하(下)에 정부(政府)를 구성(構成)하였다. 이들은 독립(獨立) 이후(以後)에도 영국(英國) 주도(主導)의 코멘웰스 에 가입(加入)하였고, 일부(一部)는 심지어(甚至於) 영국(英國) 국왕(國王) 을 최고(最高) 국가원수(國家元首)로 모시기도 한다.

영국(英國)은 핵무기(核武器)를 가지게 된 3번째(番째) 국가(國家)였다. 다만 핵무기(核武器)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不拘)하고, 영국(英國)은 1956년(年)에 일어난 제(第)2차(次) 중동(中東) 전쟁(戰爭) 에서 자국(自國)의 약화(弱化)된 국력(國力)을 실감(實感)할 수밖에 없었고, 세계(世界)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던 초강대국(超强大國)이 아닌, 미국(美國)과 소련(蘇聯) 사이에서의 눈치를 보는 국가(國家)로 위치(位置)가 격하(格下)되었음을 인정(認定)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한便) 1950년(年)에는 노동력(勞動力) 부족(不足) 사태(事態)가 일어났고, 영국(英國) 정부(政府)는 이를 해소(解消)하기 위하여 언어(言語)가 통하는 커먼웰스 국가(國家)들에서 막대(莫大)한 이민자(移民者)들을 받아들였다. 이후(以後) 얼마지나지 않아 영국(英國)은 역사상(歷史上) 가장 다양한 민족(民族)들이 섞인 국가(國家)가 되었고, 사회(社會) 변동(變動)도 엄청나게 일어났다. 1950년대(年代) 후반(後半)과 60년대(年代)까지 영국(英國)은 경제(經濟)가 꽤나 발전(發展)하였으나, 프랑스, 서독(西獨), 일본(日本)과 같은 경쟁국(競爭國)들에 비하면 딱히 좋은 성과(成果)를 보지 못했다.

전후(戰後) 몇 십년(十年) 동안 유럽 통합(統合)에 대(對)한 논의(論議)가 가속(加速)되던 차(車)에, 영국(英國)은 1960년(年)에 유럽 자유(自由) 무역(貿易) 연합(聯合) 의 창립(創立) 회원국(會員國)으로 참가(參加)하였으나, 1973년(年)에는 유럽의 공동체(共同體) 에 합류(合流)하기 위하여 탈퇴(脫退)하였다. 이후(以後) EC가 1992년(年)에 유럽 연합(聯合) 으로 전환(轉換)되자, 영국(英國)은 12개(個)의 창립(創立) 회원국(會員國)들 중(中) 하나로 참여(參與)하였으며 2007년(年) 조인(調印)된 리스본 조약(條約) 에서 유럽 연합(聯合)의 한 축(軸)을 담당(擔當)하였다.

한편(한便) 1960년대(年代) 후반(後半)부터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지방(地方)은 불안정(不安定)한 치안(治安)으로 인하여 큰 피해(被害)를 입고 있었는데, 1998년(年)의 벨파스트 협정(協定) 이 조인(調印)되면서 이도 끝났다. 1970년대(年代)에 점차(漸次) 경제(經濟)가 위축(萎縮)되고 산업(産業)이 무너지기 시작(始作)하자, 마거릿 대처(對處) 총리(總理) 주도(主導)의 보수당(保守黨) 정권(政權)은 규제(規制) 완화(緩和), 대규모(大規模) 자본(資本) 투입(投入)과 같은 정책(政策)들을 실시(實施)하며 경제(經濟) 회복(回復)을 꾀하였다. 이후(以後) 1984년(年)부터는 북해(北海)에서 뽑아낸 석유(石油)를 팔아 얻은 대금(代金)들이 대거(大擧) 영국(英國)으로 유입(流入)되며 영국(英國)의 경제(經濟)는 점차(漸次) 회복세(回復勢)에 접어들었다.

21세기(世紀) [ 편집(編輯) ]

유럽 연합(聯合) 국민투표(國民投票) 결과(結果) 후(後) 런던의 브렉시트 찬성(贊成) 운동가(運動家)들

영국(英國)은 21세기(世紀) 초(初) " 테러와의 전쟁(戰爭) "에 대(對)한 미국(美國)의 접근법(接近法)을 광범위(廣範圍)하게 지지(支持)했다. [4] 논쟁(論爭)은 영국(英國)의 해외(海外) 군사(軍事) 배치(配置)의 일부(一部), 특히(特히)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에서 둘러쌌다. [5]

2008년(年) 미국발(美國發) 국제금융위기(國際金融危機) 는 영국(英國) 경제(經濟)에 엄청난 피해(被害)를 입혔다. 2010년(年)에 연립정부(聯立政府)는 여러 정책(政策)들을 도입(導入)하여 금융위기(金融危機)로 인하여 촉발(觸發)된 막대(莫大)한 양(量)의 공공부채(公共負債)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努力)하였다. 2014년(年)에는 스코틀랜드 정부(政府)가 스코틀랜드 독립(獨立) 을 결정(決定)할 주민투표(住民投票) 를 실시(實施)하였고, 이 투표(投票)에서 55.3%의 주민(住民)들이 독립(獨立)을 거부(拒否)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영국(英國)에 남게 되었다.

2016년(年)에는 약(約) 51.9%의 영국(英國) 국민(國民)들이 유럽 연합(聯合)을 떠나기로 결정(決定)하면서 영국(英國)의 유럽연합(유럽聯合) 탈퇴(脫退), 즉(卽) 브렉시트 가 현실화(現實化)되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英國)은 2020년(年) 1월(月) 31일(日)까지만 유럽연합(聯合) 회원국(會員國)으로 남았고, 이후(以後)에는 유럽과 독자적(獨自的)인 길을 걷기 시작(始作)하였다.

코로나19 범유행(汎流行) 은 2020년(年)과 2021년(年)에 영국(英國)의 경제(經濟)에 심각(深刻)한 영향(影響) ( 영어판(英語版) ) 을 미쳤고, 교육(敎育)에 큰 지장(支障) ( 영어판(英語版) ) 을 초래(招來)했으며, 사회(社會)와 정치(政治)에 광범위(廣範圍)한 영향(影響) ( 영어판(英語版) ) 을 미쳤다. [6] [7] [8]

2022년(年) 9월(月) 8일(日), 가장 오래 살고 가장 오래 재위(在位)한 영국(英國) 군주(君主) ( 영어판(英語版) ) 엘리자베스 2세(歲) 96세(歲)의 나이로 세상(世上)을 떠났다 . [9] 여왕(女王) 사후(事後), 그녀(그女)의 장남(長男)인 웨일스 왕자(王子) 찰스는 찰스 3세(歲) 영국(英國) 왕좌(王座) 에 올랐다. [10]

지리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의 위성(衛星) 사진(寫眞)

북대서양(北大西洋) 북해(北海) 사이에 위치(位置)하며, 브리튼 제도(制度) 아일랜드섬 의 북동부(北東部)에 자리잡은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로 이뤄진 섬나라이다. 서쪽(西쪽)으로 대서양(大西洋)이, 동쪽(東쪽)으로는 북해(北海)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南쪽)의 도버 해협(海峽) 을(乙) 사이에 두고 프랑스 와 인접(隣接)해 있다. 남북(南北)으로는 북위(北緯) 49도(度)에서 52도(度)( 세(歲)틀랜드 제도(諸島) 는 62도(度))에 이르며 동서(東西)로는 동경(東京) 2도(度)에서 서경(書經) 8도(度)사이에 놓여 있다. 국토(國土) 그레이트브리튼섬 아일랜드섬 의 1/6을 차지하는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및 그 주위(周圍)에 분포(分布)되어 있는 몇 개(個)의 속도군(速度群)(屬島群)과 해외령(海外令)을 포함(包含)한다. 맨섬 채널 제도(制度) 는 왕실(王室)속령(令)으로서 영국(英國) 정부(政府)의 국방(國防) 및 외교(外交) 관할(管轄)을 받는다. 잉글랜드 는 그레이트브리튼섬의 남부(南部) 저지대(低地帶)로 면적(面積)은 섬 전체(全體)의 약(約) 56.7%인 130,410km 2 이다. 스코틀랜드 는 북부(北部) 고지대(高地帶)로 78,789km 2 이며, 서부(西部) 고지대(高地帶)인 웨일스 는 20,758km 2 ,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는 14,160km 2 이다.

기후(氣候) [ 편집(編輯) ]

중위도(中緯度) 대륙(大陸) 서해안(西海岸)의 해양성(海洋性) 기후(氣候)로서 멕시코 만류(灣流) (灣流)와 편서풍(偏西風) 때문에 위도(緯度) 에 비해서는 따뜻하다(1월의 기온(氣溫) 6∼3 °C). 그러나 겨울 에는 간혹(間或) 섭씨(攝氏) 영하(零下) 10도(度)까지 기온(氣溫)이 떨어지기도 하며 여름 에는 섭씨(攝氏) 35도(度)까지 오르기도 한다. 비는 서해안(西海岸)에는 많으나 동해안(東海岸)에는 적다. 또 습기(濕氣)가 많기 때문에 안개 가 많으며 런던 에서는 스모그 가 1년(年)에 90일간(日間) 생겨서 ‘안개의 도시(都市)’라고도 불린다. 연평균(年平均) 강우량(降雨量) 은 서부(西部)와 북부(北部)의 산간(山間) 지방(地方)에서는 1600mm 이상(以上)이지만 중부(中部)와 동부(東部) 지역(地域)에서는 800mm 미만(未滿)이다. 비는 연중(年中) 고루 내리는 편(便)이지만 평균적(平均的)으로 3월(月)부터 6월(月)까지가 비가 가장 적고 9월(月)부터 1월(月)까지가 가장 많은 시기(時期)이다.

지형(地形) [ 편집(編輯) ]

빙식지형(氷蝕地形)이 많다. 지형적(地形的)으로는 동남부(東南部)의 저지(沮止) 와 북서부(北西部)의 고지(高地)로 크게 나뉜다. 이 둘의 경계(境界)는 동부(東部) 해안(海岸) 중앙부(中央部)의 티스강(江) 하구(河口)와 남부(南部) 해안(海岸)의 라임만을 연결(連結)하는 선(線)이다. 고지(告知)라고 해도 대부분(大部分)은 고도(高度) 1,000m 이하(以下)의 낮은 산맥(山脈) 및 구릉(丘陵)으로서 영국(英國)의 최고봉(最高峯) 벤네비스 산도(酸度) 1,343m에 지나지 않는다. 고지(高地)는 지형(地形)과 지질(紙質)이 다른 다음과 같은 지괴(地塊) (地塊)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고지(高地)와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는 주로(主로) 캄브리아계 의 가장 오랜 변성암(變成巖) 으로 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남부(南部) 산지(山地), 캄브리아 산지(山地)(호수(湖水) 지방(地方)) 및 웨일스 는 주로(主로) 고생대(古生代) 실루리아계 변성암(變成巖) 으로 되어 있다. 페나인 산맥(山脈)과 스코틀랜드 중앙(中央) 지구대(地區隊) 는 고생대(古生代)의 석탄계(石炭系) 중생대(中生代) 삼첩계(三疊系) 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석탄층(石炭層)이 있어 영국(英國)의 탄전(炭田)(炭田)을 형성(形成)한다. 웨일스 남부(南部)와 데번 코른월 지괴(地塊)는 고생대(古生代) 데본계 로 되어 있다.한편 저지(沮止)는 잉글랜드의 대부분(大部分)을 차지하며 해발(海拔) 300m 이하(以下)의 낮은 구릉(丘陵) 평야(平野) 로 되어 있다. 구릉(丘陵)은 백악계(白堊系) 와 제3계의 느리게 주름잡힌 새 지층(地層)으로 이뤄져 각지(各地)에 케스타 지형(地形)이 보인다. 영국(英國)은 제(第)4기(期) 플라이스토세 에 유럽 대륙(大陸)에서 뻗친 대륙(大陸) 빙하(氷河)에 덮여 있었으므로 산지(山地)에는 빙식(氷蝕) (氷蝕) 지형(地形)이 많으며, 황토(黃土) 에 뒤덮인 황무지(荒蕪地) 와 습지(濕地)가 많다. 더구나 북쪽(北쪽)의 스코틀랜드 제도(制度)에는 피오르드 해안(海岸)이 발달(發達)해 있다. 템스강(江) (전체(全體)길이 350km)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하천(河川)은 모두 짧으며 또 산지(山地)도 낮으므로 하천(河川)의 충적(沖積) (沖積)작용(作用)은 크지 않다. 그래서 템스강(江) 하구부(河口部), 브리스틀 해협(海峽), 포스만 등(等)처럼 묻혀 버린 삼각강(三角江) 이 많으며, 해안선(海岸線)은 굴곡(屈曲) 이 많고 하천(河川)의 경사(傾斜)가 완만(婉娩)하므로 향항(香港)과 가항하천(可航河川) (可航河川)의 조건(條件)을 갖추고 있다.

행정(行政) 구역(區域)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의 행정구역(行政區域)은 중세(中世) 초기(初期)부터 그 경계(境界)가 설정(設定)되기 시작(始作)하여 지금(只今)에 이르게 되었고, 근대(近代) 초기(初期)에 들어서는 이미 현재(現在)의 행정구역(行政區域)이 완성(完成)되어 있었다. 또한 영국(英國)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등(等) 여러 왕국(王國)들이 통합(統合)되어 만들어진 연합왕국(聯合王國)이었기 때문에, 이 4개(個)의 국가(國家)들은 서로 행정구역(行政區域)을 나누는 방식(方式)도 달랐으며 행정구(行政區) 간(間)의 위계(位階)도 차이(差異)가 있어 통합(統合) 초기(初期)에는 이를 일원화(一元化)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英國)의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 제도(制度)는 매우 복잡(複雜)한데, 왕국(王國)들의 경제적(經濟的), 사회적(社會的) 특성(特性)에 따라 제도(制度)가 지역(地域)마다 모두 다르다. 일단(一旦) 잉글랜드는 기본적(基本的)으로 9개(個)의 지역(地域)(region)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중(中) 하나인 그레이터런던 은 직접선거(直接選擧)로 구성(構成)되는 지방의회(地方議會)를 독자적(獨自的)으로 가지고 있으며, 2011년(年)부터 설립(設立)된 10개(個)의 통합자치구역(統合自治區域)들 가운데에서 8개(個)가 선출직(選出職) 시장(市場)을 두고 있다. 지역(地域)의 하위(下位) 구역(區域)인 주나 면(面) 단위(單位)의 단체(團體)들에서도 내각제(內閣制)를 채택(採擇)하여 일부(一部) 독자(讀者) 의회(議會) 제도(制度)를 실시(實施)하는 경우(境遇)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境遇), 32개(個)의 주(株)(council area)들로 나누어지며 글래스고, 에든버러, 던디, 에버딘은 독자적(獨自的)인 의회(議會)를 가지고 있다. 또한 최북단(最北端)에 위치(位置)하여 스코틀랜드 전체(全體) 영토(領土)의 3분(分)의 1이나 차지하지만 인구(人口)는 다 합쳐 보았자 20만(萬) 명(名) 밖에 안되는 스코틀랜드 고지(高地) 도 독자적(獨自的)인 의회(議會)를 가지고 있다. 지방의회(地方議會)들은 모두 투표(投票)로 인하여 직접선출(直接選出)되며, 국가(國家)로부터 월급(月給)을 지급(支給)받는다. 각각(各各)의 의회(議會)들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地方自治團體長)을 뽑을 권한(權限)이 있다. 웨일스는 총(總) 22개(個)의 주(株)(unitary authority)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대도시(大都市)인 카디프, 뉴포트 등(等)의 지방(地方)들은 따로 분류(分類)한다. 선거(選擧)는 매(每) 4년(年)마다 치러진다.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의 경우(境遇), 1973년(年) 법(法)에 따라 26개(個)의 구(區)(district)으로 나누어졌으며, 불안정(不安定)한 정세(情勢) 탓에 타(他) 왕국(王國)과 비교(比較)했을 때 지방단체(地方團體)들의 권한(權限)이 상당히(相當히) 약(弱)하다.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지방의회(地方議會)는 하수(下水) 처리(處理), 공공기물(公共器物) 관리(管理) 등(等)에 그 권한(權限)이 한정(限定)되어 있으며, 대부분(大部分)의 권한(權限)은 중앙정부(中央政府)에게 맡겨져 있다.

해외영토(海外領土)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은 20세기(世紀)까지만 해도 전세계(全世界)에 식민지(植民地)를 경영(經營)하며 광대(廣大)한 영토(領土)를 지배(支配)하였고, 이 잔재(殘滓)가 아직까지도 남아있어 해외(海外) 곳곳에 속령(屬領)들이 많다. 영국(英國)은 14개(個)의 해외영토(海外領土) 가 있으며, 3개(個)의 왕실령(王室令)이 따로 존재(存在)한다.

14개(個)의 해외영토(海外領土)에는 영국령(英國領) 인도양(印度洋) 지역(地域) ,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制度) , 영국령(英國領) 남극(南極) 지역(地域) , 케이맨 제도(諸島) , 세인트헬레나 , 핏케언 제도(制度) , 앵귈라 , 몬트세랫 , 영국령(英國領) 버진아일랜드 , 지브롤터 ,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制度) , 버뮤다 등(等)이 있다. 이 중(中) 남극(南極)의 경우(境遇)에는 특정(特定) 국가(國家)가 독자적(獨自的)으로 점유(占有)하는 것이 금지(禁止)되어 있는데, 이를 피(避)하기 위해서 영국(英國)에서는 남극(南極)을 오직 과학적(科學的), 학문적(學問的) 용도(用途)로만 사용(使用)한다고 한정(限定)하였다. 영국(英國)의 해외영토(海外領土)는 대략(大略) 1,600,000제곱킬로미터 정도(程度)이고, 인구(人口)는 다 합(合)쳐보았자 25만(萬) 명(名)도 되지 않는다. 이 해외영토(海外領土)들 중(中)에서 워낙 바다에 위치(位置)한 섬들이 많다보니, 영국(英國)은 세계(世界)에서 5번째(番째)로 거대(巨大)한 크기의 배타적경제수역(排他的經濟水域) 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99년(年) 영국(英國) 정부(政府)에서는 ‘영국령(英國領) 해외영토(海外領土)들은 영국(英國)에 머물기를 원(願)하는 한(限) 언제까지고 영국(英國)에 머물 것이다. 영국(英國)은 해외령(海外令)들에게 자치권(自治權)을 부여(附與)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라고 해외(海外) 영토(領土)들에 대(對)한 공식(公式) 입장(立場)을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영국령(英國領)에서 탈퇴(脫退)하고자 하는 주민투표(住民投票)들이 실시(實施)된 적도 있는데, 예(例)를 들어 1995년(年) 버뮤다, 2002년(年)에서 지브롤터가, 2013년(年)에 포클랜드 제도(諸島) 등(等)에서 주민투표(住民投票)가 실시(實施)되었다.

왕실령(王室令) 은 영국(英國) 국왕(國王)에 소속(所屬)된 영토(領土)로, 단순(單純)한 영국(英國)의 해외(海外) 영토(領土)에 포함(包含)되지 않는다. 채널 제도(制度) 맨섬 등(等)이 왕실령(王室令)에 포함(包含)되는데, 영국(英國) 정부(政府)는 암묵적(暗默的) 합의(合意)에 따라 왕실령(王室令)의 외교(外交), 국방(國防)을 책임(責任)을 지며 영국(英國) 의회(議會)는 그들의 요구(要求)를 들어주어야 할 의무(義務)가 있다. 국제적(國際的)으로는 거의 영국(英國)의 영토(領土)로 인정(認定)받고 있다. 다만 정치(政治) 제도(制度)에는 약간(若干) 차이(差異)가 있어서, 왕실(王室) 하의(下衣) 섭정위원회(攝政委員會)가 통치(統治)를 맡으며 행정수반(行政首班)으로 총독(總督)을 따로 두고 있다.

정부(政府)와 정치(政治) [ 편집(編輯) ]

영국(英國) 의회(議會) 의 의사당(議事堂)으로 쓰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宮殿)

영국(英國)은 근대(近代) 민주주의(民主主義)의 발상지(發祥地)로, 오래된 민주주의(民主主義) 역사(歷史)에 걸맞게 세계(世界)에서 가장 체계적(體系的)인 정치제도(政治制度)를 가지고 있다. 영국(英國)은 웨스터민스터 시스템 에 기반(基盤)한 의회민주주의(議會民主主義) 입헌군주국(立憲君主國)이며, 영국(英國) 의회(議會)는 상원(上院) 하원(下院) 으로 나뉘며, 각각(各各) 793석(席), 650석(席)의 의원(議員)들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이 중(中) 국민(國民)들의 선거(選擧)로 구성(構成)되는 서민(庶民)원의 경우(境遇), 전국(全國)에 퍼져 있는 650개(個)의 선거구(選擧區)에서 각각(各各) 의원(議員)들이 선출(選出)되며, 총선(總選)의 실시(實施) 또한 총리(總理)의 조언(助言)을 받아 국왕(國王)이 선포(宣布)한다. 군주국(君主國)을 표방(標榜)하고 있는 영국(英國)답게, 상원(上院)과 하원(下院)을 통과(通過)한 모든 법안(法案)들은 효력(效力)이 발휘(發揮)되기 전(前) 국왕(國王)의 동의(同意)를 받아야만 한다. 다만 국왕(國王)이 실권(實權)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입헌군주국(立憲君主國)이기 때문에, 실제로(實際로) 국왕(國王)이 의회(議會)를 통과(通過)한 법안(法案)을 거부(拒否)한 적은 없다.

영국(英國)의 국가수반(國家首班)은 총리(總理) 로, 하원(下院)에서 선출(選出)되며 보통(普通) 하원(下院)에서 가장 많은 의석(議席)을 차지한 정당(政黨)의 지도자(指導者)가 총리직(總理職)을 맡는다. 총리(總理)는 내각(內閣)을 구성(構成)할 수 있으며, 보통(普通) 내각(內閣) 장관(長官)들은 국왕(國王)의 허가(許可)를 받아 임명(任命)된다. 총리(總理)는 제(第)1재무경(財務頃)(First Lord of Treasury)을 겸직(兼職)하며, 이 때문에 본래(本來) 제(第)1재무경의(財務京義) 관저(官邸)였던 다우닝가 10번지(番地) 에서 집무(執務)를 본다. 다만 총리(總理)가 재무부 장관직(長官職)을 겸직(兼職)한다는 것은 아니며, 재무부장관(長官)은 재(再)2재무경(財務頃)(Second Lord of Treasury)직(職)을 따로 겸직(兼職)한다. 여당(與黨)과 정권(政權)은 ‘국왕(國王) 폐하(陛下)의 정부(政府)(His Majesty's Government)'라고 불리기도 한다. 반대(反對)로 제(第)1야당(野黨)의 경우(境遇)에는 ’국왕(國王) 폐하(陛下)의 야당(野黨)(His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이라고 불린다. 한편(한便) 총리(總理)가 거의 실권(實權)을 틀어쥐고 있기에, 형식적(形式的)인 국가수반(國家首班)인 국왕(國王)은 관례적(慣例的)으로 총리(總理)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전통(傳統)으로 굳어져 왔다.

내각(內閣)은 주로(主로) 총리(總理)가 여당(與黨)이나 연정(聯政) 정당(政黨)에서 끌어온 인사(人士)들로 구성(構成)되며, 보통(普通) 하원(下院) 출신(出身) 인사(人士)들로 기용(起用)되지만 상원(上院) 출신(出身) 인사(人士)들도 항상(恒常) 포함(包含)하고 있다. 현재(現在)의 총리(總理)는 2022년(年) 10월(月) 25일(日)에 취임(就任)한 보수당(保守黨) 출신(出身)의 리시(里市) 수낵 총리(總理)이다.

한편(한便) 영국(英國)은 정치학적(政治學的)으로 연방(聯邦) 국가(國家) 가 아니라 단일(單一) 국가(國家) 이다. [11] 지방자치(地方自治)가 잘 발달(發達)되어 스코틀랜드 , 웨일즈 ,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는 독자적(獨自的)인 의회(議會)와 행정부(行政府)를 가지고 있으나, 의회주권(議會主權) 의 원칙(原則)에 따라 최종적(最終的)인 주권(主權) 웨스트민스터 영국(英國) 의회(議會) 가 가지며 각(各) 지방정부(地方政府)들은 헌법적(憲法的) 사항(事項)을 단독(單獨) 결정(決定)할 수 없다. [12] [13]

주요(主要) 정당(政黨)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의 주요(主要) 정당(政黨)은 크게 보수당(保守黨) , 노동당(勞動黨) ,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 , 이 3개(個)의 정당(政黨)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各各) 보수주의(保守主義), 사회주의(社會主義), 자유주의(自由主義)를 대표(代表)하는 정당(政黨)들로 알려져 있으며, 모두 역사(歷史)가 최소(最少) 몇 십년(十年)에서 몇 백년(百年)에 달(達)하는 유서(由緖)깊은 정당(政黨)들이다. 본래(本來) 영국(英國)의 정계(政界)는 19세기(世紀)까지만 하여도 보수당(保守黨)과 자유당(自由黨)으로 양분(兩分)되어 있었으나, 20세기(世紀) 들어 자유당(自由黨)이 크게 위축(萎縮)되고 그 지지세(支持勢)를 새롭게 등장(登場)한 노동당(勞動黨)에게 빼앗기면서 세(世)가 크게 약(弱)해졌다. 21세기(世紀) 현대(現代)의 자유당(自由黨)은 심지어(甚至於) 지역정당(地域政黨)이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分離獨立)을 추구(追求)하는 스코틀랜드 국민당(國民黨) 보다도 의석(議席) 수(數)가 적으며, 이 때문에 현대(現代) 영국(英國)의 정계(政界)는 크게 보수당(保守黨)과 노동당(勞動黨)으로 양분(兩分)되어 있다. 이 외(外)에도 우파(右派) 연합주의(聯合主義) 정당(政黨)인 민주(民主)통일당, 아일랜드 통일(統一)을 주장(主張)하는 신페인 , 웨일스 독립(獨立)을 주장(主張)하는 플라이드 컴리(리) 등(等) 여러 지역정당(地域政黨)들이 의석(議席)들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2019년(年) 12월(月) 의 영국(英國) 국회의원(國會議員)(하원(下院)) 총선거(總選擧)에서 10석(席) 이상(以上) 확보(確保)한 정당(政黨)을 순서(順序)대로 정렬(整列)했다.

영국(英國)은 의원내각제(議員內閣制) , 즉(卽) 의회(議會)가 곧 내각(內閣)이 되는 형태(形態)를 취(取)하고 있다. 선거제도(選擧制度)는 소선거구제(小選擧區制) 만(萬) 채택(採擇)하여 각(各) 선거구(選擧區)마다 1명(名)만을 뽑는 'First-past-the-post'방식(方式)으로 모든 의원(議員)을 선출(選出)한다. 법상(法上) 최장(最長) 5년(年)마다 열리는 선거(選擧)에서 의석수(議席數)의 과반(過半) 이상(以上)을 확보(確保)한 당(黨)이 집권당(執權黨)이 되며, 이들이 내각(內閣)(Cabinet)을 구성(構成)한다. 야당(野黨)은 예비(豫備) 내각(內閣)(Shadow Cabinet)을 구성(構成)하여 집권시(執權時) 어떤 정책(政策)을 실시(實施)할 것인가를 국민(國民)이 미리 알 수 있어 정치(政治)의 안정성(安定性)과 지속성(持續性)을 보장(保障)하고 있다.

영연방(英聯邦) [ 편집(編輯) ]

영연방(英聯邦) 은 느슨한 국가(國家) 연합(聯合) 이다. 53개(個) 영연방(英聯邦) 회원국(會員國) 모두는 영국(英國) 국왕(國王)을 영연방(英聯邦)의 수장(首長)으로 인정(認定)하고 있으며, 그 회원국(會員國)들 중(中) 오스트레일리아 , 캐나다 , 뉴질랜드 , 자메이카 , 바하마 , 그레나다 등(等) 다수(多數) 국가(國家)들의 왕(王)이기도 하다. 국왕(國王)은 2년(年)마다 열리는 영연방(英聯邦) 정부(政府) 수반(首班) 회의(會議)에 참석(參席)하며 각국(各國)의 국가(國家) 수반(首班)으로 총독(總督)과 사적(私的)인 대화(對話)를 갖는다.

대외(對外) 관계(關係)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은 UN 안보리(安保理) 의 상임(常任) 이사국(理事國)이며, G7 나토 의 회원국(會員國)이다. 2016년(年) 6월(月) 24일(日) 영국(英國)은 국민투표(國民投票)를 실시(實施)해 EU를 탈퇴(脫退)하기로 결정(決定)하였다. 현재(現在)는 브렉시트에서 과반수(過半數)로 EU 를 탈퇴(脫退)하였다. 영국(英國)은 제(第)2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이후(以後)로, 다른 유럽 나라들과 우호(友好) 관계(關係)를 지속(持續)하고 있다. 영국(英國)은 1973년(年) 유럽 경제(經濟) 공동체(共同體) 회원국(會員國)이 되었다. 영국(英國)과 미국(美國) 은 특별(特別)한 관계(關係)(Special Relationship)에 있다. 미국(美國) 유럽 외(外) 영국(英國)은 영국(英國) 연방(聯邦) , 아일랜드 그 밖에 영어(英語) 사용(使用) 국가(國家)들과 친밀(親密)한 관계(關係)에 있다. 영국(英國)의 세계적(世界的)인 존재(存在)와 영향력(影響力)은 무역관계(貿易關係)와 군사력(軍事力) 때문에 더 증폭(增幅)되는데, 전(全) 세계(世界)에 80여개(餘個)의 군사(軍事) 기지(基地)와 기타(其他) 파견군(派遣軍)을 유지(維持)하고 있다.

중세(中世) 이후(以後)로, 프랑스 와 영국(英國)은 유럽대륙(大陸)의 주도권(主導權) 및 식민지(植民地) 쟁탈(爭奪)을 놓고 서로 적대국(敵對國)인 경우(境遇)가 많았으나 때로는 동맹(同盟)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世紀)에 들어와 프랑스가 앙탕트 코르디알( 프랑스어(프랑스語) : entente cordiale ) 정책(政策)을 펴면서, 러일(日) 전쟁(戰爭) 이후(以後) 프랑스 및 러시아와 동맹(同盟)(삼국(三國) 협상(協商))을 맺게 된다.

군대(軍隊) [ 편집(編輯) ]

영국(英國) 왕립해군(王立海軍) 구축함(驅逐艦) HMS 디펜더
영국(英國) 왕립공군(王立空軍) 유로파이터 타이푼 제트
영국(英國) 육군(陸軍) 챌린저 2 주(主)된 전투(戰鬪) 탱크

헌법(憲法) 에 의(依)하여 1960년(年)부터 모병제(募兵制) 를 실시(實施)하였다. 2차(次) 대전(大戰) 후(後)부터 1960년(年)까지 평시(平時) 징병제(徵兵制) 가 시행(施行)된 적이 있었는데, 영국인(英國人)들은 이를 'National Service'로 부르고 있다. 영국(英國)은 예로부터 해군(海軍)이 강(剛)한 국가(國家)로 알려져 있다. 공군인(共軍人) 'Royal Air Force'와 해군인(海軍人) 'Royal Navy'가 잘 알려져 있다.

근대국가(近代國家)의 출현(出現)과 동시(同時)에 징병제(徵兵制)를 도입(導入)한 유럽 대륙(大陸)과 다르게 영국(英國)은 1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이 발발(勃發)하고 나서야 징병제(徵兵制)를 도입(導入)하였다. 트라팔가 해전(海戰) 당시(當時) 영국(英國) 해군(海軍)은 모집군(募集群)이었지만 프랑스군(軍)은 징집병(徵集兵)으로 구성(構成)되었었다. 이와 같은 경험(經驗) 때문에 영국(英國)의 부속령(附屬令) 국가(國家) 및 옛 식민지(植民地) 상당수(相當數)는 징병제(徵兵制)를 실시(實施)한 적이 없거나 그 경험(經驗)이 상대적(相對的)으로 일천(日淺)한 편(便)이다. 최근(最近) '범죄자(犯罪者)를 이라크로 보내자(send criminals to Iraq)' 등(等) 일부(一部)에서 징병제(徵兵制) 부활(復活)을 논의(論議)하고는 있지만(가끔은 유희적(遊戱的)으로) 범죄자(犯罪者) 등(等)에 대(對)한 훈육차원(訓育次元)에서 논의(論議)될 뿐이며, 이 징병제(徵兵制) 관련(關聯) 논의(論議)가 진지(眞摯)하게 정치적(政治的)으로 문제제기(問題提起)된 바는 없다.

세계(世界) 8위(位)의 군사력(軍事力)이며 전략(戰略) 원자력(原子力) 잠수함(潛水艦)들을 보유(保有)하고 있다. 핵(核) 전력(戰力)을 강화(强化)시키고 있다. 스키점프대(점프臺) 형태(形態)의 HMS 일러스트리(리)어스 한척(隻)을 운용(運用) 중(中)이다. 함재기(艦載機)로 수직이착륙(垂直離着陸) 기능(機能)의 시(時) 해리어(語)를 운용(運用)했으나 지금(只今)은 모두 퇴역(退役)시키고 각종(各種) 헬기위주(爲主)의 항공단(航空團)이 구성(構成)됐다. 또 차기(次期) 항공모함(航空母艦) 2척(隻)을 건조(建造) 중(中)이다. 무인항공기(無人航空機) 항공모함(航空母艦) UXV가 2020년(年)에 실전배치(實戰配置)된다. 영국군(英國軍)은 국방개혁(國防改革), SDSR (전략적(戰略的) 국방안보(國防安保) 검토서(檢討書))에 의(依)해, 조직개편(組織改編)을 하고 있다. 영국(英國) 신속대응군(迅速對應軍)의 핵심전력인(核心戰力人) 영국(英國) 해병대(海兵隊)는 현(現) 영국(英國) 국방개혁(國防改革)을 통해 조직편성(組織編成)과 역할(役割)이 강화(强化)되고 있다. 소폭(小幅)으로 병력(兵力)이 증가(增加)했으며, 장비(裝備)와 편성(編成)이 개편(改編)되고 있다.

냉전체계(冷戰體系) 이후(以後) 안보환경(安保環境) 변화(變化)와 국가(國家) 재정(財政) 위기(危機)에 직면(直面)한 영국(英國)은 국방비(國防費) 삭감(削減)을 결정(決定)한다. 이를 위해 현(現) 국방력(國防力)과 미래(未來) 안보환경(安保環境) 등(等)을 전면(全面) 재검토(再檢討)하여 삭감(削減), 퇴역(退役) 장비(裝備), 도입(導入) 장비(裝備) 등(等)을 새로 결정(決定)하게 된다. 이에 총리실(總理室) 주재하(主宰下), 5개월간(個月間)의 검토기간(檢討期間)으로 2010년(年) 10월(月), SDSR(전략적(戰略的) 국방(國防) 안보(安保) 검토(檢討)서 : Strategic Defence Security Review)이(李) 발표(發表)된다. SDSR은 신안보(新安保) 위협(威脅)을 등급별(等級別)로 분류(分類)하고, 사이버전(사이버戰), 테러 등(等)과 같은 우선순위(優先順位) 위협(威脅)에 대(對)한 자원(資源)을 더 배분(配分)하는 대신(代身) 대규모(大規模) 재래전(在來前)에 소요(所要)되는 장비(裝備)(기갑(機甲), 전투기(戰鬪機), 함정(陷穽), 대형장비(大型裝備) 등(等)) 등(等)을 퇴역(退役)시킨다는 내용(內容)을 담고 있다. SDSR을 바탕으로하는 현(現) 영국군(英國軍) 국방개혁(國防改革)은 영국군(英國軍) 장군(將軍)들의 반발(反撥)과 국민(國民) 찬반(贊反) 논란(論難) 속에 진행(進行)되고 있다. 현재(現在) 영국(英國)은 부분(部分) 징병제(徵兵制) 국가(國家)이다. 버뮤다 지역(地域) 시민(市民)을 징집(徵集)하며, 영국(英國) 왕실(王室)과 이에 속(屬)한 귀족(貴族)들인 왕실(王室)의 친·외가 친인척(親姻戚)들의 남·여(與)들은 영국군(英國軍) 장교(將校)로 복무(服務)하도록 영국(英國) 병역법(兵役法)에 규정(規定)되어 있다.

영국군(英國軍) 은 흔히 ‘국왕(國王) 폐하(陛下)의 군대(軍隊)(His Majesty's Armed Forc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며, 크게 해군(海軍)과 해상경비대(海上警備隊), 육군(陸軍), 그리고 공군(空軍) 이 3개(個)의 축(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英國) 국방부(國防部)가 군대(軍隊)를 총괄(總括)하며, 군(軍) 최고(最高) 책임자(責任者)는 국방부(國防部) 장관(長官)이다. 다만 공식적(公式的)인 최고(最高) 명령권자(命令權者)는 영국(英國) 국왕(國王)으로, 모든 영국(英國) 군인(軍人)들은 입대(入隊)할 때부터 국왕(國王)에게 충성(忠誠) 맹세(盟誓)를 하고 입대(入隊)한다. 영국(英國) 군대(軍隊)는 해외(海外) 영토(領土)와 왕실령(王室令) 등(等)을 포함(包含)한 영국(英國) 영토(領土)를 지킬 책임(責任)이 있으며, 그 외(外)에도 UN의 국제(國際) 임무(任務)에도 나서기도 한다.

현재(現在)의 영국군(英國軍)은 대영제국(大英帝國) 군대(軍隊)를 모체(母體)로 하며, 18세기(世紀), 19세기(世紀), 그리고 20세기(世紀) 초중반(初中盤)까지만 하여도 가히(可히) 세계(世界) 최강(最强)의 군대(軍隊)였다. 영국(英國)은 그 강력(强力)한 군사력(軍事力)을 바탕으로 전(全) 세계(世界)에서 일어나는 사건(事件)들에 간섭(干涉)하였으며, 식민지(植民地)를 경영(經營)하며 막대(莫大)한 부(富)를 벌여들였다. 2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이 끝나고 식민지(植民地)들이 독립(獨立)해나가며 대영제국(大英帝國)도 무너졌으나, 그 군사력(軍事力)은 여전히(如前히) 지속(持續)되었다. 다만 이후(以後) 소련(蘇聯)과 미국(美國)의 군사력(軍事力)이 압도적(壓倒的)으로 강력(强力)해지면서 영국(英國)의 군사력(軍事力)은 점차(漸次) 밀려나게 되었다. 영국(英國)은 세계(世界)에서 4위(位)에서 5위(位) 정도(程度)로 많은 군사비(軍事費)를 지출(支出)하고 있으며, 전체(全體) GDP의 2% 정도(程度)를 국방비(國防費)에 사용(使用)하고 있다.

224,000명(名)의 병력(兵力)을 보유(保有)하고 있으며, 전차(戰車) 420대(代), 전술기(戰術機) 1,663대(代), 군함(軍艦) 99척(隻) 등(等)을 보유(保有)하여 세계(世界) 5위(位)의 군사력(軍事力)을 가지고 있다. 핵(核) 보유(保有) 국가(國家)이기도 하다. 영국(英國)은 세계(世界) 3위(位)의 국방비(國防費) 를 지출(支出)하고 있다. 또한 항공모함(航空母艦) 1척(隻), 이지스함(艦) 3척(隻) 등(等)을 보유(保有)하여 강력(强力)한 해군(海軍)을 보유(保有)하고 있다. 잠수함(潛水艦)들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네덜란드 와 함께 유일(唯一)하게 토마호크 미사일 을 보유(保有)하고 있다. 또한 해군(海軍) 전력(戰力)도 추가(追加)로 항공모함(航空母艦) 을 건조(乾燥) 중(中)이다.

대외(對外) 관계(關係)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은 UN 안보리(安保理) 의 상임(常任) 이사국(理事國)이며, G7 나토 의 회원국(會員國)이다. 2016년(年) 6월(月) 24일(日) 영국(英國)은 국민투표(國民投票)를 실시(實施)해 EU를 탈퇴(脫退)하기로 결정(決定)하였다. 현재(現在)는 브렉시트에서 과반수(過半數)로 EU 를 탈퇴(脫退)하였다. 영국(英國)은 제(第)2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이후(以後)로, 다른 유럽 나라들과 우호(友好) 관계(關係)를 지속(持續)하고 있다. 영국(英國)은 1973년(年) 유럽 경제(經濟) 공동체(共同體) 회원국(會員國)이 되었다. 영국(英國)과 미국(美國) 은 특별(特別)한 관계(關係)(Special Relationship)에 있다. 미국(美國) 유럽 외(外) 영국(英國)은 영국(英國) 연방(聯邦) , 아일랜드 그 밖에 영어(英語) 사용(使用) 국가(國家)들과 친밀(親密)한 관계(關係)에 있다. 영국(英國)의 세계적(世界的)인 존재(存在)와 영향력(影響力)은 무역관계(貿易關係)와 군사력(軍事力) 때문에 더 증폭(增幅)되는데, 전(全) 세계(世界)에 80여개(餘個)의 군사(軍事) 기지(基地)와 기타(其他) 파견군(派遣軍)을 유지(維持)하고 있다.

중세(中世) 이후(以後)로, 프랑스 와 영국(英國)은 유럽대륙(大陸)의 주도권(主導權) 및 식민지(植民地) 쟁탈(爭奪)을 놓고 서로 적대국(敵對國)인 경우(境遇)가 많았으나 때로는 동맹(同盟)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世紀)에 들어와 프랑스가 앙탕트 코르디알( 프랑스어(프랑스語) : entente cordiale ) 정책(政策)을 펴면서, 러일(日) 전쟁(戰爭) 이후(以後) 프랑스 및 러시아와 동맹(同盟)(삼국(三國) 협상(協商))을 맺게 된다.

인구(人口) [ 편집(編輯) ]

민족(民族) [ 편집(編輯) ]

흔히 허민유는 이쁘다 라고 말할수있다 이베리아족(族) 으로 지칭(指稱)되는 대서양(大西洋) 연안(沿岸) 구석기(舊石器) 인(人)들이 최초(最初)로 영국(英國)에 정착(定着)한 제민족인(諸民族人) 것으로 추측(推測)된다. 그 이후(以後) 대륙(大陸)으로부터 선진(先進) 기술(技術)을 지닌 켈트족 이 정착(定着)하며 선주민(先住民)과의 혼혈(混血)이 이뤄졌고 그레이트브리튼섬 의 켈트화(化)가 진행(進行)되었다. 로마 제국(帝國) 의 브리튼 정복(征服) 이후(以後) 일부(一部) 로마인들이 건너왔다.

로마의 행정(行政)과 군사(軍事) 체계(體系)가 붕괴(崩壞)되기 시작(始作)한 5 ~ 6세기(世紀) 경(頃)부터 라인강(라인江) 하류(下流), 플랑드르 , 윌란반도(欄半島) 에서 게르만 민족(民族)의 일파(一波)(一派)인 앵글인(人) , 색슨인(人) , 유트인(人) 등(等)이 그레이트브리튼섬을 침략(侵略)했다. 초기(初期) 이들 민족(民族)은 선주민(先住民)과의 혼혈(混血)을 엄격히(嚴格히) 금지(禁止)했던 것 같으나 결과적(結果的)으로 혼혈(混血)이 진행(進行)되어 오늘날 영국인(英國人)이 형성(形成)되었다. 앵글로색슨족 이 선주민(先住民)을 완전히(完全히) 대체(代替)했다는 주장(主張)이 오랫동안 믿어져 왔지만 근래(近來) 분자생물학적(分子生物學的), 유전학적(遺傳學的) 연구(硏究)에 따르면, 앵글로색슨족 이주민(移住民)의 숫자(數字)는 선주민(先住民)의 1/4정도(程度) 밖에 안 되었고 선주민(先住民)을 완전히(完全히)는 대체(代替)하지는 못했다는 주장(主張)이 설득력(說得力)을 얻는다.

근래(近來)에는 구(舊) 영국(英國) 식민지(植民地)였던 남아시아(南아시아) ( 인도(印度) , 파키스탄 ,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와 카리브해(카리브海) , 아프리카 (특히(特히) 가나 , 나이지리아 등(等) 서아프리카(西아프리카) ) 출신(出身) 이민자(移民者)들이 영국(英國) 사회(社會)의 새로운 구성원(構成員)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헝가리 , 폴란드 , 체코 , 슬로바키아 등(等) 중앙(中央)유럽 에서 온 주민(住民)도 소수(少數)로 존재(存在)한다.

언어(言語) [ 편집(編輯) ]

영국(英國) 영어(英語) 가 쓰이고 있다. 그 외(外)에 웨일스어(語) , 스코트어 , 스코틀랜드 게일어 , 얼스터 스코트어 , 아일랜드어(語) , 콘월어 가 소수(少數)에 의(依)해 쓰이고 있다.

영국(英國)은 공식적(公式的)으로 국어(國語)를 정하진 않았으나, 사실상(事實上)(de facto)의 언어(言語)는 영어(英語)이다. 영국(英國) 인구(人口)의 95%는 오직 영어(英語)만을 할 줄 알며, 대략(大略) 5.5%에 달(達)하는 국민(國民)들만이 최근(最近)의 이민자(移民者)들이나 교육(敎育)의 영향(影響)으로 외국어(外國語)를 모어(母語)로 한다. 영어(英語) 외(外)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아시아계(系) 언어(言語)는 인도(印度) 이민자(移民者)들의 영향(影響)으로 인하여 펀자브어(語), 우르두어(語), 벵골어(語), 힌디어, 구(舊)자라티어 등(等)이 있다. 다만 2011년(年) 통계(統計) 결과(結果)에 의(依)하면, 최근(最近) 폴란드계(系) 이민자(移民者)들이 급증(急增)하며 폴란드어(語)가 영국(英國)에서 2번째(番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言語)라고 한다. 2019년(年)의 경우(境遇)에는 75만(萬) 명(名) 정도(程度)의 사람들이 영어(英語)를 완전히(完全히) 쓰지 못하거나 유창(流暢)하게 구사(驅使)하지 못한다고 한다.

영국(英國)의 토착(土着) 민족(民族)인 켈트어의 후계(後繼) 격(格)으로는 웨일스어(語), 아일랜드어(語), 스코틀랜드어 등(等)이 따로 존재(存在)하였으나, 18세기(世紀) 후반(後半)에 들어서 영어(英語)에 밀려나 결국(結局) 완전히(完全히) 소멸(消滅)되었다. 다만 20세기(世紀) 후반(後半) 들어서 복원(復元) 작업(作業)이 진행(進行)되었고, 현재(現在)에는 소수(少數)의 사용자(使用者)가 있다. 2011년(年)의 조사(調査) 결과(結果)에 의(依)하면 웨일스인(人) 전체(全體)의 19% 정도(程度)만이 웨일스어(語)를 조금이나마 사용(使用)할 수 있다고 한다. 잉글랜드에는 약(約) 20만(萬) 명(名) 정도(程度)의 웨일스어(語) 사용자(使用者)가 거주(居住)하고 있다고 하며,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지방(地方)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中) 10.4% 정도(程度)만이 아일랜드어(語)를 조금이나마 구사(驅使)할 줄 안다고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경우(境遇)에는 토착어(土着語)의 소멸(消滅) 정도(程度)가 워낙 심각(深刻)하여, 전체(全體) 인구(人口)의 2%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토착(土着) 스코틀랜드어(語)를 구사(驅使)할 줄 알며 현재(現在)도 영어(英語) 구사자(驅使者)의 비율(比率)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趨勢)이다. 다만 스코틀랜드어(語)를 사용(使用)하는 영국인(英國人)들이 캐나다로 이주(移住)하면서 캐나다 등지(等地)에서 조금씩이나마 사용(使用)되고는 있으며, 웨일스어(語)의 경우(境遇)에도 비슷하게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등지(等地)에서 사용(使用)되고 있다.

영국(英國)에서는 14세(歲) 이상(以上)의 청소년(靑少年)들은 무조건적(無條件的)으로 제(第)2외국어(外國語)를 배워야만 한다. 보통(普通) 프랑스어(프랑스語)나 독일어(獨逸語)를 가장 많이 배운다고 알려져 있다. 웨일스에 있는 모든 학생(學生)들은 16세(歲)가 넘었을 때부터 점차(漸次) 웨일스어(語)를 제(第)2국어(國語)로 배워야하며, 아예 웨일스어(語)를 모어(母語)로 사용(使用)하기도 한다.

종교(宗敎) [ 편집(編輯) ]

종교(宗敎) 구성(構成) (영국(英國)) [14]
기독교(基督敎)
  
59.5%
무교(巫敎)
  
25.7%
무응답(無應答)
  
7.2%
이슬람교(이슬람敎)
  
4.4%
힌두교(힌두敎)
  
3%
기타
  
1.3%

종교(宗敎)를 가진 국민(國民)의 절대다수(絶對多數)가 기독교도(基督敎徒)이고, 국교(國校)는 잉글랜드 성공회(聖公會) 이다. 종교별(宗敎別) 분포도(分布圖)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基督敎)는 대략(大略) 1,400여(餘) 년(年) 전(前)부터 이미 브리튼 섬에 전래(傳來)되었다. 대부분(大部分)의 영국인(英國人)들은 여전히(如前히) 자신(自身)들의 정체성(正體性)을 기독교도(基督敎徒)로 규정(規定)하고 있으나, 20세기(世紀) 들어서 이미 교회(敎會) 참석율(參席率)은 급격히(急激히) 떨어졌으며 대부분(大部分) 무슬림들로 구성(構成)된 이민자(移民者)들이 영국(英國)으로 쏟아져들어오면서 영국(英國) 내부(內部)의 종교(宗敎) 분포도(分布圖) 상당(相當)한 변화(變化)를 겪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英國)은 18세기(世紀)까지만 하여도 완벽(完璧)한 기독교(基督敎) 국가(國家)였던 데에 반(反)하여, 현대(現代)에 들어서는 다종교(多宗敎) 국가(國家), 혹은(或은) 세속국가(世俗國家), 혹은(或은) 탈기독교(脫基督敎) 국가(國家)로 분류(分類)되기도 한다.

2001년(年)의 조사(調査) 결과(結果), 영국인(英國人)의 71.6%가 자신(自身)들을 기독교도(基督敎徒)라고 밝혔으며 2.8%의 무슬림, 1.0%의 힌두교도(힌두敎徒), 0.6%의 시크교도(敎徒), 0.5%의 유대교도(유대敎徒), 0.3%의 불교(佛敎)도, 기타(其他) 종교(宗敎) 0.3% 정도(程度)가 그 뒤를 이었다. 대략(大略) 15% 정도(程度)의 사람들은 믿는 종교(宗敎)가 없다고 밝혔으며, 7% 정도(程度)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應答)하였다. 한편(한便) 기독교(基督敎)도 비율(比率)에 비하여 교회(敎會) 참석률(參席率)은 극히(極히) 저조(低調)하여서, 전체(全體) 인구(人口)의 10분(分)의 1 정도(程度)만이 주말(週末)마다 교회(敎會)에 참석(參席)하며 기독교(基督敎)도 비율(比率)은 그 와중(渦中)에 지속적(持續的)으로 하락(下落)하여 2011년(年)에는 10년(年) 만에 12%p 정도(程度)나 기독교(基督敎)도 비율(比率)이 하락(下落)하였다는 결과(結果)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反對)로 무슬림의 비율(比率)은 갈수록 급증(急增)하고 있어서, 매년(每年) 약(約) 5%씩 급격(急激)한 증가세(增加勢)를 겪고 있으며 2001년(年)에는 160만(萬) 명(名) 정도(程度)였던 것에 반(反)하여 2011년(年)에는 270만(萬) 명(名)으로 크게 증가(增加)하며 영국(英國)에서 2번째(番째)로 거대(巨大)한 종교(宗敎)로 뛰어올랐다.

한편(한便) 기독교(基督敎)의 경우(境遇)에는, 영국(英國) 성공회(聖公會)가 약(約) 15% 정도(程度)를 차지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이 9%, 그 외(外)에도 동방정교(東方正敎), 개신교(改新敎) 등(等)의 종교(宗敎)들이 약(約) 1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며 18세(世)와 24세(歲) 사이의 젊은 층(層)의 71%가 자신(自身)이 종교(宗敎)가 없다고 밝혔다. 영국(英國) 성공회(聖公會)는 영국(英國)에서 발원(發源)한 기독교(基督敎) 분파(分派)로, 영국(英國) 의회(議會)에도 대표(代表)를 보유(保有)하고 있으며 영국(英國) 국왕(國王)이 최고(最高) 권위자(權威者)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우(境遇)에는 스코틀랜드 국교회(國敎會)가 따로 있으나, 정부(政府)의 통제(統制)를 받지 않는다. 한편(한便) 영국(英國) 국왕(國王)은 무조건적(無條件的)으로 성공회(聖公會) 신자(信者)여야 하며, 즉위(卽位)할 때에도 ‘신교(新敎)를 지키겠다’는 맹세(盟誓)를 선서(宣誓)해야만 한다. 웨일스와 아일랜드에도 각각(各各) 국교회(國敎會)가 있었으나, 웨일스는 1920년(年)에 국교회(國敎會)가 해체(解體)되었고 아일랜드는 그보다 이른 1870년(年)에 해체(解體)되었다.

교육(敎育) [ 편집(編輯) ]

중세시대(中世時代)부터 전통(傳統)을 가진 옥스퍼드 대학교(大學校) 케임브리지 대학교(大學校) 등(等)이 대표적(代表的)이다. [15] 의무교육(義務敎育)은 초등학교(初等學校)와 중학교(中學校) 11년(年)이며(1972년 이후(以後)) [15] 한국(韓國)의 고등학교(高等學校) 과정(課程)에 해당(該當)하는 12, 13학년(學年)의 경우(境遇)는 의무(義務)는 아니지만 학교(學校)에 다니는 학생(學生)들은 매주(每週) 국가(國家)로부터 지원금(支援金)을 받게 된다.

대학(大學) 교육(敎育)은 스코틀랜드 는 전액(全額) 무상(無常)이나 잉글랜드 를 포함(包含)한 나머지 국가(國家)들은 연간(年間) 9000파운드에 달(達)한다. 다만 무이자(無利子) 대출(貸出)을 받을 수 있으며 연봉(年俸)이 21000파운드 이하(以下)일 경우(境遇) 갚게 될 의무(義務)가 없고, 이상(以上)일 경우(境遇) 소득(所得)의 9%를 매년(每年) 납부(納付)하게 된다. 대학과정(大學課程)은 대부분(大部分) 3년(年) 과정(過程)이며 대학원(大學院) 석사(碩士) 과정(過程)은 2종류(種類)로 학습(學習) 과정(過程)과 연구(硏究) 과정(過程)으로 각(各) 1년(年)씩이다. 박사과정(博士課程)은 대체로(大體로) 3년(年) 과정(課程)이나 실제(實際) 박사취득(博士取得)은 4년(年)-5년(年)이 걸린다. 일부(一部) 대학(大學)은 경영학(經營學) 석사(碩士) 과정(過程)과 같은 특성화(特性化) 과정(過程)을 2년제(年制)로 운영(運營)하기도 한다. 대학(大學)의 학기(學期)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연간(年間) 2학기제(學期制)와 달리 연간(年間) 3학기제(學期制)로 운영(運營)된다.

영국(英國) 교육(敎育)의 역사(歷史)는 잉글랜드의 귀족(貴族) 및 왕족(王族)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설립(設立)한 옥스퍼드 대학교(大學校) 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以後) 이에 반발(反撥)한 교수(敎授)들과 학생(學生)들이 캠브리지 지방(地方)에 모여서 설립(設立)한 캠브리지 대학교(大學校) 가 뒤를 이으며 이 두 대학(大學)은 현대(現代) 대학(大學)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이러한 잉글랜드의 두 대학(大學)을 부러워 했고,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의 수도승(修道僧)들을 교육(敎育)하기 위한 목적(目的)으로 교황(敎皇)의 지원(支援) 하(下)에 세인트앤드류스 대학교(大學校) , 글래스고 대학교(大學校) , 에딘버러 대학교(大學校) 를 설립(設立)하기에 이른다. 이들 대학(大學)들은 중세시대(中世時代)에 설립(設立) 되었기에 중세대학(中世大學) 혹은(或은) 고대대학(苦待大學)이라고 불린다. 이후(以後) 영국(英國)은 산업혁명(産業革命)을 통해서 근대문명사회(近代文明社會)로 접어들며 종교인(宗敎人)이나 귀족(貴族)의 양성(養成)만을 담당(擔當)했던 고전적(古典的)인 대학(大學)의 기능(機能)에 한계(限界)를 느꼈고, 과학자(科學者)와 학자(學者) 등(等) 각계(各界)의 전문가(專門家)들을 양성(養成)해야 한다는 왕실(王室)과 의회(議會)의 결론(結論)에 따라서 인류(人類) 산업혁명(産業革命)의 발상지(發祥地) 맨체스터 지역(地域)에 잉글랜드 왕립협회(王立協會) 회원(會員)들과 과학자(科學者)들이 설립(設立)한 맨체스터 대학교(大學校) 를 시작(始作)으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 브리스톨 대학교(大學校) , 킹스 칼리지 런던 등(等) 근현대적(近現代的)인 교육(敎育) 기관(機關)들이 설립(設立)된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近代) 대학(大學)들의 설립(設立)은 당시(當時) 대영(大英) 제국(帝國)의 식민지(植民地)였던 미국(美國)과, 호주(濠洲), 캐나다 등(等)의 나라들에 큰 영향(影響)을 주며, 하버드 대학교(大學校) , 컬럼비아 대학교(大學校) , 토론토 대학교(大學校) 등(等)의 설립(設立)에 영향(影響)을 주게 된다.

옥스퍼드 대학교(大學校) 케임브리지 대학교(大學校) 와 같은 대학교(大學校) 는 대체적(大體的)으로 대학(大學) 즉(卽) 단과대학(單科大學)의 연합체(聯合體)이다. 대학교(大學校)를 대표(代表)하는 총장(總長)이 있으나 실제(實際) 대학교(大學校)의 운영(運營)은 단과대학(單科大學)이 자체적(自體的)으로 결정(決定)한다. 단과대학(單科大學)들은 각자(各自) 독자적(獨自的)인 학생(學生) 모집(募集)과 학과목(學科目)을 운영(運營)하며, 같은 학과(學科)가 여러 단과대학(單科大學)에 있기도 하다. 단과대학(單科大學)의 연합(聯合)으로 운영(運營)해야 하는 과정(過程)에 대(對)해서만 공동과정(共同過程)을 진행(進行)한다. 일례(一例)로 옥스퍼드 대학교(大學校)는 "경영대학원(經營大學院)"이(李) 있으나 이는 공동(共同) 과정(過程)으로 대학원(大學院)에 다니는 학생(學生)들은 단과대학(單科大學)에서 일종(一種)의 파견(派遣)으로 와서 서로 다른

문화(文化) [ 편집(編輯) ]

문학(文學) [ 편집(編輯) ]

영국(英國) 문학(文學)은 근대(近代)에 본격적(本格的)으로 발전(發展)하기 시작(始作)하여, 현대(現代) 문학(文學)의 기틀을 잡았으며 현재(現在)에도 ‘영미 문학(文學)’의 주류(主流)를 이루며 전세계적(全世界的)인 영향(影響)을 끼치고 있는 문학계(文學界)이다. 2005년(年) 기준(基準)으로 영국(英國)에서는 약(約) 206,000권(卷)이 넘는 책(冊)들이 출판(出版)되었으며, 2006년(年) 기준(基準)으로 세계(世界)에서 가장 많은 양(量)의 책(冊)들이 출판(出版)된 국가(國家)였다.

영국(英國) 출신(出身)의 시인(詩人)이가 극작가(劇作家)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는 고금(古今)을 통틀어 최고(最高)의 극작가(劇作家)들 중(中) 하나로 평가(評價)받으며, 엘리자베스 여왕(女王)이 ‘그를 인도(印度)와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할 정도(程度)로 엄청난 명성(名聲)을 누렸다. 또한 그 외(外)에도 20세기(世紀) 최고(最高)의 소설가(小說家)들 중(中) 하나였던 아가사 크리스티 도 영국(英國) 출신(出身)의 작가(作家)이다. 한편(한便) 스코틀랜드 출신(出身)의 인물(人物)들도 영국(英國) 문학계(文學界)에 지대(至大)한 영향(影響)을 끼쳤는데,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인물(人物)이 셜록 홈즈 의 작가(作家)인 아서 코난 도일 경(警), 아동작가(兒童作家) J.M. 베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시인(是認) 로버트 번스 등(等)이 있다. 최근(最近)의 경우(境遇)를 들면 휴(休) 맥더미드, 네일 M. 군(君) 등(等)이 있다. 그 외(外)에도 범죄문학(犯罪文學)의 전설(傳說) 격(格)인 이언 랜킨, 호러-코미디 작가(作家)인 아인 뱅크스 등(等)이 유명(有名)하다. 스코틀랜드의 수도(首都)인 에든버러는 세계(世界)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世界) 문학(文學)의 도시(都市)로 지정(指定)되기도 했을 정도(程度)였다.

영국(英國)에서 알려진 최고(最高)(最古)의 시인(是認) 어 고도(高度)딘 은 영국(英國) 북부(北部)에 있는 헨 오글레드 지방(地方)에서 지어졌으며, 대략(大略) 6세기(世紀) 후반(後半) 경(頃)에 작시(作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웨일스 고어(古語)로 지어져 있으며, 현재(現在)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아서 왕(王) 의 전설(傳說)을 담고 있는 시(詩)이다. 7세기(世紀) 경(頃)에 헨 오글레드 지방(脂肪)과 웨일스 지방(地方)과 교류(交流)가 끊어지자, 웨일스 문화(文化)의 중심지(中心地)는 자연스레(自然스레) 현재(現在)의 웨일스 지방(地方)으로 옮겨왔고 이후(以後) 웨일스에서는 아서 왕(王)의 전설(傳說)이 발전(發展)되어 전승(傳承)되기 시작(始作)하였다. 웨일스가 배출(輩出)한 중세(中世) 최고(最高)의 시인(詩人)들 중(中) 하나로 평가(評價)받는 다(多)피드 압(押) 귈림(Dafydd ap Gwilym)은 자연(自然), 종교(宗敎) 등(等)을 주제(主題)로 시(詩)들을 지었으며, 특히(特히) 사랑과 관련(關聯)된 시(詩)들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有名)하다. 그는 당대(當代) 최고(最高)의 유럽 시인(詩人)들 중(中) 하나로 칭송(稱頌)받을 정도(程度)로 명성(名聲)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후(以後)의 시(詩)들은 19세기(世紀)에 또다시 변혁(變革)의 바람이 불어닥칠 때 전(前)까지 종교적(宗敎的)인 색채(色彩)들을 진(津)하게 띠었다고 한다. 한편(한便) 영국(英國)의 시인(詩人)인 딜런 토마스 는 20세기(世紀) 중반(中盤)에 미국(美國)과 유럽 대륙(大陸) 전체(全體)에서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特히) 그의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시인(詩人) ‘저 좋은 밤속으로 순순히(順順히) 들어가지 말라’는 수많은 영화(映畫)들과 이후(以後)의 시(詩)들에도 영감(靈感)을 주었을 정도(程度)로 유명(有名)하며,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영국(英國) 명언(名言)들 중(中) 하나이기도 하다. 웨일스 민족주의자(民族主義者)이자 시인(詩人)인 R.S 토마스는 1996년(年)에 노벨 문학상(文學賞)을 수상(受賞)하였으며, 그 외(外)에도 리처드 레웰린이나 케이트 로버츠 등(等)이 유명(有名)한 웨일스계(系) 소설가(小說家)들이다.

영국(英國)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이후(以後) 영국(英國)으로 이민(移民)을 와 영국(英國) 국적(國籍)을 취득(取得)한 유명(有名) 문학가(文學家)들도(度) 매우 많다. 가장 대표적(代表的)으로 요셉 콘라드 , T.S 엘리엇 , 가즈오 이시구로 등(等)이 있다. 또한 아일랜드가 전부(全部) 영국(英國)의 통치(統治) 하(下)에 놓여있었을 때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영국계(英國系) 시인(詩人)들로 간주(看做)하는 경우(境遇)가 있는데, 주로(主로) 오스카 와일드 , 브램 스토커 , 조지 버나드 쇼 등(等)이 있다.

음악(音樂) [ 편집(編輯) ]

영국(英國) 음악(音樂)은 현대(現代) 세계(世界) 음악계(音樂界)를 장악(掌握)하고 있는 영미권(英美圈) 음악(音樂)의 시초(始初)로, 수많은 명가수(名歌手)들과 거장(巨匠)들을 배출(輩出)해내왔고 현재(現在)까지도 그 명성(名聲)을 유지(維持)하고 있다. 영국(英國) 음악(音樂)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의 민속(民俗) 음악(音樂)에서부터 클래식 음악(音樂), 팝 음악(音樂)까지 그 분야(分野)가 굉장히(宏壯히) 다양한데, 먼저 클래식 음악(音樂)부터 살펴볼 경우(境遇) 윌리엄 버드 , 헨리 퍼셀 , 에드워드 엘가 , 구스타프 홀스트 , 아서 설리반 , 레이프 본 윌리엄스 , 벤자민 브리튼 등(等)이 있다. 또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와 같은 세계(世界) 유수(有數)의 오케스트라들의 본고장(本고장)이기도 하며, 사이먼 래틀 , 존 바비롤리 , 맬컴 사젠트 등(等) 저명(著名)한 지휘자(指揮者)들의 출생지(出生地)이기도 하다. 그 외(外)에도 영화음악(映畫音樂) 작곡가(作曲家)들 중(中)에서는 존 배리 , 클린트 맨셀 , 마이크 올드필드 , 존 포웰, 크레이그 암스트롱 , 데이비드 아놀드 , 존 머피, 몬티 노먼 등(等)이 있다. 한편(한便) 유명(有名)한 작곡가(作曲家)인 프리드리히 헨델 은 이후(以後) 영국(英國) 시민권(市民權)을 취득(取得)하여 현재(現在) 영국(英國)의 즉위식(卽位式) 곡(曲)을 집필(執筆)했으며 대표작(代表作)인 ‘ 메시아 ’를 영어(英語)로 쓰기도 했다. 또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 와 같은 작곡가(作曲家)는 런던의 웨스트엔드 극장가(劇場街)를 20세기(世紀) 후반(後半)까지 독점(獨占)할 정도(程度)로 그 명성(名聲)을 떨쳤으며, 상업적(商業的)으로도 전세계적(全世界的)인 성공(成功)을 거두며 이름을 알렸다.

' 팝 음악(音樂) '이라는 단어(單語) 자체(自體)가 아예 영국(英國)에서 유래(由來)되었다. 1950년대(年代) 중반(中盤), 로큰롤 을 젊은층들이 향유(享有)하기 시작(始作)하면서 이 새로운 퓨전 장르를 일컫기 위하여 ‘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開拓)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영국(英國) 팝 음악가(音樂家)들에는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 이름을 날린 비틀스 롤링스톤즈 등(等)이 있고, 이들 덕분(德分)에 영국(英國)의 팝 음악(音樂)은 1960년대(年代)에 엄청난 발전(發展)을 구가(謳歌)할 수 있었다. 이후(以後)에도 록 음악(音樂)에도 영국계(英國系) 음악가(音樂家)들이 수없이(數없이) 진출(進出)하였으며, 헤비메탈 , 하드 록 , 뉴웨이브 , 펑크 등(等) 수많은 장르들을 개척(開拓)하는 데에도 성공(成功)하였다. 그 외(外)에도 수많은 장르의 퓨전 록 장르들을 만들어내었으며, 전세계적(全世界的)인 인기(人氣)를 끄는 데에도 성공(成功)하였다.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영국(英國) 음악가(音樂家)인 비틀스 는 10억(億) 장(張)이 넘는 음반(音盤)을 전세계(全世界)에 팔았으며, 현대(現代) 음악(音樂)의 전설(傳說)로 남아있을 정도(程度)로 막대(莫大)한 영향력(影響力)을 떨쳤다. 그 외(外)에도 롤링 스톤즈 , 핑크 플로이드 , 퀸, 레드 제플린 , 비지스 , 엘튼 존 등(等)이 있는데, 이들 모두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 최소(最少) 2억장(億丈)이 넘는 음반(音盤)을 각각(各各) 판매(販賣)한 명가수(名歌手)들이다. 90년대(年代) 이래(以來) 유명(有名)한 영국(英國) 가수(歌手)들 가운데에는 조지 마이클 , 오아시스 , 스파이스 걸스 , 라디오헤드 , 콜드플레이 , 로비 윌리엄스 , 아델 , 에드 시(時)런 , 원 디렉션 등(等)이 있다. 이들 덕분(德分)에 2016년(年) 기준(基準)으로 영국(英國)에서 가장 대중적(大衆的)인 음악(音樂) 장르는 팝으로, 33.4%의 국민(國民)들이 가장 즐긴다고 한다. 그 다음이 힙합 장르와 R&B라고 한다. 현대(現代) 영국(英國) 음악계(音樂界)는 동일(同一)한 영어권(英語圈) 국가(國家)인 미국(美國) 음악가(音樂家)들과 협업(協業)하여 랩 음악(音樂)들을 함께 만들기도 한다.

영화(映畫) [ 편집(編輯) ]

영국(英國) 영화계(映畫界)는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 그리 역사적(歷史的)으로도 매우 유명(有名)하다.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영국(英國) 영화감독(映畫監督)인 알프레드 히치콕 은 수많은 명작(名作)들을 감독(監督)하였으며, 그의 대표작(代表作)인 ‘ 현기증(眩氣症) ’은 아직까지도 ‘고금 최대(最大)의 명작(名作)’이라는 찬사(讚辭)를 받기도 했다. 영국계(英國系) 영화(映畫) 프랜차이즈들도 전세계적(全世界的)인 인기(人氣)를 구가(謳歌)하는 경우(境遇)가 매우 잦은데,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프랜차이즈 영화(映畫) 2개(個)가 바로 해리 포터 시리즈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이다. 또한 현재(現在) 영업(營業) 중(中)인 가장 오래된 영화(映畫) 스튜디오인 얼링 스튜디오(Ealing Studios)도 바로 영국(英國)에 있다. 2009년(年) 기준(基準), 영국(英國) 영화계(映畫界)는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 약(約) 20억(億)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세계(世界) 영화시장(映畫市場)의 7%를 차지하였다. 영국(英國)의 박스오피스는 2009년(年) 기준(基準)으로 9억(億) 4,400만(萬) 파운드 정도(程度)였다.

웸블리 스타디움

요리(料理) [ 편집(編輯) ]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영국(英國) 요리(料理)로 알려져 있는 피시앤드칩스

영국(英國) 요리(料理) 는 그 수(數)가 많고 재료(材料)들이 다양함에도 불구(不拘)하고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 맛이 없다는 편견(偏見)이 있다. 영국(英國) 요리(料理)는 영국(英國) 역사(歷史) 내내 있었던 수많은 이주민(移住民)들의 유입(流入), 그리고 세계(世界) 각국(各國)과의 교류(交流), 식민지(植民地) 등(等)을 통하여 들어온 식문화(式文化)들로 인하여 급격히(急激히) 발전(發展)하였다. 가장 옛날로는 켈트족과 브리튼족(族)이 서로 융합(融合)하면서 수많은 요리(料理)들이 탄생(誕生)하였고, 앵글로색슨족들은 유럽에서 스튜가 일반화(一般化)되기도 전(前)에 고기와 허브를 넣어 스튜를 끓이는 방법(方法)을 미리 고안(考案)하여 주식(株式)으로 삼기도 하였다. 또한 노르만인(人)들의 영국(英國) 침공(侵攻)으로 인하여 중세(中世) 영국(英國)에 향신료(香辛料)들을 이용(利用)한 요리(料理)들이 소개(紹介)되었고, 대영제국(大英帝國) 시기(時期)에는 인도(印度) 요리(料理) 가 큰 인기(人氣)를 얻어 강(剛)하고 자극적(刺戟的)인 냄새를 가지는 허브들과 향신료(香辛料) 를 이용(利用)한 요리(料理)들이 사람들의 관심(關心)을 얻어 인기(人氣)를 끌었다. 이 때문에 본래(本來) 인도(印度)에서 유래(由來)한 요리(料理)를 영국식(英國式)으로 개량(改良)하여 영국식(英國式) 요리(料理)로 만들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것이 인도(印度) 닭요리(料理)에서 유래(由來)한 앵글로-인디안 치킨 티카 마(馬)살라 이다. 그 외(外)에도 피시앤드칩스 , 샌드위치 , 로스트비프 , 파이 , 영국식(英國式) 푸딩 등(等)이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 유명(有名)하다.

언론(言論)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은 세계(世界)에서 가장 오래된 방송사(放送社)인 BBC 의 국가(國家)일 정도(程度)로 언론계(言論界)의 중심지(中心地)인 나라이다. BBC는 1922년(年)에 영국(英國) 정부(政府)의 공영(公營) 방송사(放送社)로 개국(開局)하여, 2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당시(當時)에도 정확(正確)한 보도(報道)로 명성(名聲)을 날릴 정도(程度)로 활약(活躍)하며 현재(現在)까지도 세계(世界)에서 가장 공신력(公信力) 있고 유명(有名)한 언론(言論)들 중(中)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BBC는 현재(現在)에도 수많은 프로그램 채널들과 라디오 방송(放送)들을 독자적(獨自的)으로 운영(運營)하고 있으며, 해외(海外)까지도 서비스들을 수출(輸出)하고 있다. 현재(現在) 영국(英國) 방송계(放送界)에서 두각(頭角)을 드러내고 있는 다른 방송사(放送社)들에는 ITV [16] 는 현재(現在) 영국(英國) 15개(個) 지역(地域)들 가운데에서 11개(個)의 텔레비전 채널을 장악(掌握)하고 있을만큼 그 영향력(影響力)이 크다. 또한 민영방송(民營放送) 등장(登場)으로 1955년(年) ITV 가 개국(開國)하였고, BBC 를 제외(除外)한 상업광고(商業廣告) 가 시작(始作)했다. 1982년(年) 에 개국(開國)한 채널 4 준공영체계(準公營體系)로 1997년(年) 에 마지막 지상파(地上波) 방송(放送) 개국(開國)하였으며, 채널 5 가 있다.

세계적(世界的)인 영미권(英美圈) 미디어 복합사인(複合死因) 뉴스 코퍼레이션도(度) 영국(英國) 언론계(言論界)에 상당(相當)한 영향(影響)을 끼치고 있는데, 영국(英國)의 대표적(代表的)인 타블로이드지인(誌人) 더 선 과 세계적(世界的)으로 가장 오래된 일간지(日刊紙)인 더 타임스 지 등(等)을 소유(所有)하고 있다. 뉴스 코퍼레이션 은 2018년(年)까지만 해도 영국위성중계(英國衛星中繼)서비스(British Sky Broadcasting)의 최대(最大) 주주(株主)이기도 했다. 현(現) 영국(英國)의 언론(言論) 중심지(中心地)는 당연히(當然히) 수도(首都)인 런던으로, 대부분(大部分)의 언론(言論) 본사(本社)들이 런던에 위치(位置)하고 있으며 편집국(編輯局), 방송국(放送局)들도 웬만하면 런던에 자리하고 있다. 맨체스터가 런던의 뒤를 이어 제(第)2의 언론(言論) 중심지(中心地) 위치(位置)를 점(占)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지역(地域)의 경우(境遇)에는 에든버러, 글래스고, 카디프 등(等)이 그나마 언론사(言論社)들이 집중(集中)되어 있는 곳들이다. 한편(한便) 영국(英國)의 인쇄업도(印刷業度) 상당(相當)한 수치(數値)라서, 영국(英國)에서 생산(生産)되는 책(冊), 정보(情報), 저널, 잡지, 비즈니스 잡지(雜誌), 신문(新聞) 등(等) 모든 인쇄(印刷) 서비스들의 가치(價値)를 합(合)하면 그 가치(價値)가 20억(億) 파운드가 넘으며 167,000명(名)이 넘는 사람들을 고용(雇用)하고 있다고 한다.

2009년(年) 기준(基準)으로 평균적(平均的)인 영국인(英國人)은 매일(每日) 텔레비전을 3.75시간(時間) 정도(程度) 시청(視聽)하며, 라디오는 약(約) 2.81시간(時間) 정도(程度)를 청취(聽取)한다고 한다. 한편(한便) 모든 텔레비전 채널들 중(中) 가운데에서 28.4%나 되는 채널들이 직접적(直接的)이든 간접적(間接的)이든 BBC의 소유(所有)라고 전(傳)해진다. 나머지 영국(英國) 3대(大) 방송사(放送社)들이 약(約) 29.5%를 차지하고 있으며, 독립(獨立)된 위성(衛星)이나 중소(中小) 방송국(放送局)들이 나머지 42.1% 정도(程度)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한便) 영국(英國)의 신문업계(新聞業界)는 날로 쪼그라들고 있어서, 1970년대(年代) 이후(以後) 감소세(減少勢)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신문(新聞)을 구독(購讀)하는 사람들의 수(數)는 굉장히(宏壯히) 많아서, 2010년(年) 기준(基準)으로 국민(國民)들의 41%가 일간신문(日刊新聞)을 구독(購讀)한다고 한다. 다만 인터넷 기사(記事)들과 뉴스들의 범람(汎濫)들로 인하여 신문(新聞) 구독자(購讀者)의 수(數)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영국(英國)의 최고(最高) 극작가(劇作家)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상징(象徵)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의 국기(國旗)는 유니언기(機) , 다른 말로는 유니언잭(Union Jack)이라고 부른다. [17] 초기(初期)의 유니언잭은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十字架)가 그려진 잉글랜드의 깃발(旗발)에서 푸른 바탕에 하얀 십자가(十字架)가 그려진 스코틀랜드의 기(機)가 합쳐져 1600년대(年代)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1801년(年)에 성(性)패트릭의 기(機)가 합쳐졌다. 다만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 웨일스의 깃발(旗발)은 유니언기(期)에 포함(包含)되어 있지 않다. 영국(英國)의 국가(國家)는 ‘ 신은 국왕(國王)을 보우(保佑)하소서 (God save the King)'으로, 군주(君主)가 여성(女性)일 경우(境遇)에는 가사(歌詞) 속의 단어(單語)를 ’국왕(國王)'이 아니라 ‘여왕(女王)'으로 바꾼다.

영국(英國)을 의인화(擬人化)한 인물(人物)은 브리타니아 라고 하는데, 로만 브리튼 시절(時節)에 처음 유래(由來)하였으며 금발(金髮)이나 갈색(褐色) 머리를 하고 그리스 투구를 쓰고 있으며 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는 젊은 여성(女性)의 모습으로 묘사(描寫)된다. 포세이돈의 삼지창(三枝槍)과 방패(防牌)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국장(局長)에는 사자(獅子)와 유니콘, 혹은(或은)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데, 이 외(外)에도 불독도 국가(國家)를 상징(象徵)하는 동물(動物)로 있다. 브리타니아보다는 덜 유명(有名)하지만 존 불 도 영국(英國)을 상징(象徵)하는 캐릭터 중(中) 하나이다.

스포츠 [ 편집(編輯) ]

축구(蹴球) , 크리켓 , 럭비 , 테니스 , 골프 , 복싱 등(等)이 모두 영국(英國)을 그 기원(祈願)을 하거나 아니면 영국(英國)에서 주로(主로) 발전(發展)한 스포츠들에 속(屬)한다. 영국(英國)은 19세기(世紀) 전세계적(全世界的)인 영향력(影響力)을 바탕으로 대부분(大部分)의 현대(現代) 스포츠의 규칙(規則)들과 기본적(基本的)인 틀을 잡았으며, 빅토리아 시대(時代) 말(末)에 이르자 현재(現在)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들 대부분(大部分)의 골격(骨格)을 잡았다. 이같은 공헌(貢獻) 때문에 2012년(年)에는 IOC 위원장(委員長) 이 직접(直接) ‘이 위대(偉大)하고 스포츠를 사랑하는 국가(國家)는 현대(現代) 스포츠의 발생지(發生地)로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곳에서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의 개념(槪念)이 명료(明瞭)한 규칙(規則)과 룰의 이름으로 정리(整理)되었다. 또한 이 곳에서 처음으로 스포츠를 교육용(敎育用) 목적(目的)으로 학교(學校) 교과(敎科)에 넣었기도 하다.’라고 칭찬(稱讚)했기도 했을 정도(程度)이다.

  • 2019년(年) 기준(基準) 영국(英國)의 스포츠 인기(人氣) 순위(順位) [18]
순위(順位) 종목(種目)
1위(位) 축구(蹴球)
2위(位) 골프
3위(位) 럭비 유니언
4위(位) 크리켓
5위(位) 복싱

1860년대(年代) 이래(以來)로 축구(蹴球)는 영국(英國)에서 가장 인기(人氣)있고 대중적(大衆的)인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영국(英國)은 FIFA 로부터 축구(蹴球)의 종주국(宗主國)으로 인정받았으며, 영국(英國)의 축구협회(蹴球協會) 는 가장 오래된 축구협회(蹴球協會)로 1863년(年)에 축구(蹴球)의 기본적(基本的)인 룰을 정(定)했기도 하다. 또한 영국(英國)은 현재(現在)의 리그전 방식(方式)을 처음으로 도입(導入)하기도 한 국가(國家)이며 영국(英國)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는 세계(世界)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시청(視聽)하는 축구(蹴球) 리그전이기도 하다. 또한 처음으로 열린 축구(蹴球) 국제경기(國際景氣)도 1872년(年) 11월(月) 30일(日)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열렸다고 전(傳)해진다. 간혹(間或) 같은 영국(英國)이라는 이름 하(下)에 속(屬)해있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기(景氣)를 왜 국제전(國際戰)이라고 하는지 궁금해하는 경우(境遇)가 있는데, 영국(英國)은 연합왕국(聯合王國)이기 때문에 서로를 스포츠전(戰)에서 같은 국가(國家)로 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는 보통(普通) 국제(國際) 스포츠 전(戰)에서 독립(獨立)된 팀으로 따로 출전(出戰)한다.

골프는 영국(英國) 스코틀랜드에서 처음으로 발원(發源)하였고 세계(世界)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코스도 영국(英國)에 위치(位置)해 있다. 1764년(年), 18개(個)의 홀을 가지고 있는 골프 코스 방식(方式)이 성(性)앤드류 왕립(王立) 골프 클럽에서 결정(決定)되었다. 또한 세계(世界)에서 가장 오래된 주요(主要) 골프 토너먼트인 오픈 챔피언십(十) 도 매년(每年) 7월(月)의 세 번째(番째) 금요일(金曜日)을 낀 주말(週末)에 치러진다.

영국(英國)의 대표(代表) 음악가(音樂家)인 비틀즈

럭비 역시(亦是) 영국(英國) 잉글랜드가 종주국(宗主國)으로 영국(英國)에서 대중적(大衆的)인 스포츠로 자리잡았으며 특히(特히) 2003년(年) 럭비 월드컵 에서 영국(英國) 잉글랜드 가 우승(優勝)한 이후(以後) 실시(實施)된 영국(英國)에서 가장 인기(人氣)있는 스포츠 여론조사(輿論調査)에서 기존(旣存) 8위(位)에서 2위(位)까지 부상(浮上)하였다. [19]

세계(世界)에서 처음으로 열린 럭비 국제전(國際戰)은 1871년(年) 3월(月) 27일(日)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열린 것으로, 이외(以外)에도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는 따로 6개국(個國) 챔피언십을 열어 경기(競技)를 열고는 한다. 럭비도(度) 축구(蹴球)와 비슷하게 4개(個)의 왕국(王國)들이 따로 출전(出戰)하며, 다만 매(每) 4년(年)마다 ‘브리티시 앤 아이리시 라이언즈’라는 이름으로 합동(合同) 팀을 구성(構成)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南아메리카)와 같은 영연방(英聯邦) 의 국가(國家)들과 친선(親善) 경기(競技)를 펼치고는 한다.

영국(英國)과 인도(印度) 등지(等地)에서 인기(人氣)가 있는 대표적(代表的)인 스포츠인 크리켓도(度) 영국(英國)에서 발명(發明)되었다. 크리켓의 규칙(規則)은 1788년(年)에 영국(英國)에서 처음 제정(制定)되었던 것이다. 현재(現在) 영국(英國)은 '잉글랜드 웨일스 크리켓 협회(協會)'가 주관(主管)하는 잉글랜드 크리켓 팀과 '아일랜드 크리켓 협회(協會)'가 주관(主管)하는 아일랜드 크리켓 팀만을 공식적(公式的)인 국가대표(國家代表) 크리켓 팀들로 인정(認定)하고 있다. 각각(各各)의 팀 멤버들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각지(各地)에서 함께 뽑기에,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확실히(確實히) 구분(區分)짓는 축구(蹴球)와 럭비 등(等)의 스포츠와는 약간(若干) 다른 면(面)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境遇)에는 독자적(獨自的)인 협회(協會)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보통(普通) 규모(規模)가 더 큰 잉글랜드 쪽으로 가서 선수(選手) 자격(資格)을 취득(取得)하며, 크리켓 국제대회(國際大會)에 진출(進出)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와 웨일스, 아일랜드(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지역(地域) 포함(包含))은 크리켓 월드컵 에 함께 진출(進出)하며, 2019년(年) 기준(基準)으로 잉글랜드가 승리(勝利)하였다. 또한 그 외(外)에도 17개(個)의 영국권(英國卷) 국가(國家)들과 웨일스가 참가(參加)하는 리그 챔피언십이 따로 있다.

현대(現代) 테니스 또한 기본적(基本的)으로 1860년대(年代) 영국(英國) 버밍엄에서 유래(由來)되었다. 세계(世界)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토너먼트전인(戰人) 윔블던 챔피언십(十) 도 1877년(年)에 영국(英國)에서 처음 열렸으며, 현재(現在)는 6월(月) 말(末)과 7월(月) 초(初) 사이에 있는 2주(週) 동안 열린다. 그 외(外)에도 자동차(自動車) 경주(競走)에도 관련(關聯)이 깊어서, 포뮬라 원 등(等) 여러 저명(著名)한 경기(競技)에 참가(參加)하는 팀과 선수(選手)들이 영국(英國)에 본적(本籍)을 두고 있으며 실버스톤에서 처음으로 1950년(年)에 F1 그랜드 프릭스 를 열었으며, 현재(現在)도 이를 기념(記念)하여 매 7월(月)마다 같은 장소(場所)에서 영국(英國) 그랜드 프릭스를 열고 있다.

법정(法定) 휴일(休日) [ 편집(編輯) ]

법정(法定) 휴일(休日)
일자 이름
1월(月) 1일(日) 설날
1월(月) 2일(日) 설날 ( 스코틀랜드 에 한함)
3월(月) 17일(日) St Patrick's Day (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에 한함)
부활절(復活節) 직전(直前) 금요일(金曜日) 성(聖) 금요일(金曜日)
부활절(復活節) 다음날( 월요일(月曜日) ) 부활절(復活節) 연휴(連休) (스코틀랜드 제외(除外))
5월(月) 첫째 월요일(月曜日) May Day
5월(月) 마지막 주(週) 월요일(月曜日) Spring Bank Holiday
7월(月) 12일(日) Battle of the Boyne - Orangemen's Day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에 한함)
8월(月) 첫째 월요일(月曜日)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에 한함)
8월(月) 마지막 주(週) 월요일(月曜日)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 제외(除外))
11월(月) 30일(日) St Andrew's Day (스코틀랜드에 한함)
12월(月) 25일(日) 크리스마스
12월(月) 26일(日) 박싱 데이 (크리스마스 연휴(連休))
영국(英國)의 대표적(代表的)인 대학(大學)인 옥스퍼드 대학(大學)

경제(經濟)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의 경제(經濟) 체제(體制)는 ‘정부(政府)의 통제(統制)를 일부(一部) 받는 시장경제체제(市場經濟體制)’라고 정의(定義)할 수 있다. 현재(現在) 영국(英國)은 세계(世界)에서 5번째(番째)로 거대(巨大)한 경제대국(經濟大國)이며, 유럽에서는 독일(獨逸)에 이어 2번째(番째)로 경제(經濟) 규모(規模)가 거대(巨大)한 국가(國家)이다. 영국(英國) 경제(經濟)는 영국(英國) 재무부에서 독자적(獨自的)으로 담당(擔當)하며, 그 수장(首長)인 재무부장관(長官)은 정부(政府) 공공금융(公共金融) 정책(政策)과 경제(經濟) 정책(政策)들을 담당(擔當)할 의무(義務)가 있다. 영국(英國)의 중앙은행(中央銀行)은 영국은행(英國銀行) 으로, 영국(英國)의 화폐(貨幣)인 파운드화(파운드貨) 를 발행(發行)하고 환율(換率)을 조절(調節)하는 업무(業務)를 본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또한 독자적(獨自的)인 은행(銀行)이 있고, 이 은행(銀行)들도 자신(自身)들의 독자적(獨自的)인 화폐(貨幣)를 발행(發行)할 권한(權限)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위하여 영국은행(英國銀行)이 발행(發行)한 파운드화(파운드貨)를 일정량(一定量) 이상(以上) 보유(保有)하고 있어야만 한다. 파운드화(파운드貨)는 달러화(달러貨)와 유로화(貨) 다음으로, 세계(世界)에서 3번째(番째)로 외환보유량(外換保有輛) 이 많은 기축통화(基軸通貨) 이기도 하다. 1997년(年) 이래(以來) 영국(英國)의 환율(換率)을 정해온 것은 ‘금융정책위원회(金融政策委員會)(Monetary Policy Committee)로, 위원장(委員長)은 영국은행장(英國銀行場)이며 경제(經濟)의 인플레이션을 막고 환율(換率)을 적절히(適切히) 조절(調節)하는 역할(役割)을 하고 매년(每年) 경제(經濟) 목표(目標)를 제시(提示)하기도 한다.

영국(英國) 경제(經濟) 최대(最大) 부문(部門)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서비스업(서비스業)으로, 전체(全體) GDP의 79%를 차지하고 있다. 런던은 뉴욕 다음가는 세계(世界) 2의 금융수도(金融首都)이기도 하다. 또한 유럽에서는 가장 거대(巨大)한 GDP를 가지고 있는 도시(都市)이기도 하다. 이외(以外)에도 에든버러가 세계(世界) 17위(位)이고, 2020년(年) 기준(基準)으로 서유럽(西유럽)에서도 무려(無慮) 6위(位)라는 경제(經濟) 규모(規模)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관광업(觀光業)으로도 막대(莫大)한 외화(外貨)를 벌어들이고 있는데, 2004년(年) 기준(基準)으로 약(約) 2,700만(萬) 명(名)의 관광객(觀光客)들이 영국(英國)을 찾았으며 영국(英國)은 세계(世界)에서 6번째(番째)로 관광객(觀光客)이 많이 찾는 국가(國家)라고 한다. 또한 그 수도(首都)인 런던은 세계(世界)에서 가장 많은 국제선(國際線) 방문객(訪問客)들이 찾는 도시(都市)라고 전(傳)해진다. 이외(以外)에도 정보산업(情報産業)도 그 규모(規模)가 상당(相當)해서, 1997년(年)과 2005년(年) 사이에 매년(每年) 약(約) 6% 씩 성장(成長)할 정도(程度)로 빠르게 발전(發展)하고 있다.

현대(現代) 자본주의(資本主義)의 기틀을 놓은 산업혁명(産業革命) 이 바로 영국(英國)에서 시작(始作)했고, 이덕분에 영국(英國)은 타(他) 국가(國家)들보다 훨씬 빨리 주요(主要) 산업(産業)들의 주도권(主導權)을 쥘 수 있었다. 대표적(代表的)으로 직물업(織物業)을 가장 먼저 손에 넣었고, 그 다음으로는 조선업(造船業), 석탄업(石炭業), 철강업(鐵鋼業) 등(等)을 장악(掌握)한 것이다. 영국(英國)의 상인(商人), 무역업자(貿易業者), 은행업자(銀行業者)들은 이 발달(發達)된 선진(先進) 산업(産業)을 바탕으로 식민지(植民地)와 주변(周邊) 국가(國家)들의 경제계(經濟界)를 장악(掌握)하였고, 19세기(世紀) 내내 전세계(全世界)의 경제(經濟)를 쥐락펴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以後) 다른 국가(國家)들도 급격(急激)한 산업화(産業化)에 들어가고, 2개(個)의 세계대전(世界大戰)이 일어나면서 소련(蘇聯)과 미국(美國)이 양대(兩大) 강대국(强大國)으로 떠오르자 영국(英國)의 경제적(經濟的) 지위(地位)도 점차(漸次) 쇠퇴(衰退)하기 시작(始作)하여 20세기(世紀) 내내 경제(經濟)가 하락세(下落勢)로 접어들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영국(英國)의 주력(主力)이었던 제조업(製造業)도 크게 쇠퇴(衰退)하여 2003년(年) 기준(基準)으로 전체(全體) GDP의 16.7% 정도(程度) 밖에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영국(英國)의 자동차(自動車) 산업(産業)은 약(約) 80만(萬) 명(名)의 사람들을 고용(雇用)하고 있으며, 2015년(年) 기준(基準)으로 약(約) 700억(億) 파운드 정도(程度)나 되는 규모(規模)를 자랑하고 있으며 영국(英國)의 전체(全體) 수출액(輸出額)의 11.8%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年) 기준(基準)으로 영국(英國)은 약(約) 160만(萬) 대(臺)의 승용차(乘用車)들을 생산(生産)하였으며 94,500대(代)의 상업용(商業用) 차량(車輛)들을 생산(生産)하였다. 또한 엔진 제작(製作)에도 매우 뛰어나서, 2015년(年) 기준(基準)으로 약(約) 240만(萬) 개(個)의 엔진들을 따로 제작(製作)하기도 하였다. 영국(英國)의 모터스포츠 업계(業界)도 대단히 발달(發達)되어 있기에 대략(大略) 41,000명(名)의 고용(雇傭) 효과(效果)를 내고 있으며 4,500여(餘) 개(個)의 회사(會社)들이 있고 약(約) 60억(億) 파운드에 달(達)하는 경제(經濟) 효과(效果)를 내고 있다. 그 외(外)에도 영국(英國)의 항공우주산업도(航空宇宙産業度) 꽤나 발달(發達)되어 있어서, 세계(世界)에서 2번째(番째)에서 3번째(番째)로 거대(巨大)한 규모(規模)이며 매년(每年) 약(約) 300억(億) 파운드에 달(達)하는 매출(賣出)을 내고 있다.

영국(英國)의 국방(國防) 관련(關聯) 기업(企業)인 BAE 시스템즈 는 세계(世界)에서 가장 거대(巨大)한 항공방위산업체(航空防衛産業體)들 중(中) 하나로, 타이푼 유로파이터 의 대다수(大多數) 부품(部品)들을 제작(製作)하고 있으며 영국(英國) 왕립(王立) 공군(空軍)에도 수많은 부품(部品)들을 납품(納品)하고 있다. 또한 미국(美國) 최고(最高)의 제트기(제트機)들 중(中) 하나인 F35 의 제작(製作)에도 참여(參與)하고 있으며, 다양한 제트기(제트機) 부품(部品)들을 디자인하고 제조(製造)하는 일을 맡고 있다. 또한 세계(世界)에서 가장 성공적(成功的)인 제트훈련기(訓鍊機)인 호크을 제작(製作)하기도 한다. 에어버스 UK는 군용기(軍用機)의 날개 부분(部分)을 따로 제작(製作)할 정도(程度)로 기술력(技術力)이 높으며, 30여(餘) 종(種)이 넘는 특수(特需) 엔진들을 제작(製作)할 수 있으며 대략(大略) 30,000개(個)가 넘는 다양한 엔진 도면(圖面)들을 보유(保有)하고 있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영국(英國)의 우주(宇宙) 산업(産業)은 2011년(年) 기준(基準)으로 약(約) 91억(億) 파운드 정도(程度)의 규모(規模)를 자랑하고 있으며, 약(約) 29,000여(餘) 명(名)의 고용(雇傭) 효과(效果)를 내고 있다. 매년(每年) 약(約) 7.5% 정도(程度)로 급격히(急激히) 성장(成長)하고 있으며 영국(英國) 정부(政府) 측(側)에서도 다양하게 지원(支援)을 쏟아붇고 있다. 이처럼 기술(技術) 집약적(集約的)인 산업(産業)들 외(外)에도, 농업(農業)과 같은 전통적(傳統的)인 1차(次) 산업(産業)도 발달(發達)되어 있다. 영국(英國)의 농산업(農産業)의 경우(境遇), 여타(餘他) 유럽 국가(國家)들과 마찬가지로 고도(高度)로 기술적(技術的)인 방법(方法)을 택(擇)하고 있으며 이 덕분(德分)에 전체(全體) 인구(人口)의 1.6% 만이 농업(農業)에 종사(從事)하고 있는데도 불구(不拘)하고 국내(國內) 소비량(消費量)의 약(約) 60%를 자급(自給)하고 있다. 영국(英國) 국내(國內) 농산물(農産物) 생산량(生産量)의 3분(分)의 2 정도(程度)는 가축(家畜)들의 사료(飼料)로 사용(使用)되며, 나머지 3분(分)의 1만(萬)이 사람들이 먹을 목적(目的)으로 이용(利用)된다. 또한 그 외(外)에도 국내(國內)에 묻혀있는 풍부(豐富)한 석탄(石炭), 석유(石油), 천연(天然)가스, 주석(主席), 석회암(石灰巖), 철광석(鐵鑛石), 점토(粘土), 석회(石灰), 납, 규소(硅素), 암염(巖鹽) 등(等) 여러 자원(資源)들을 활용(活用)하고 있기도 하다.

2008년(年) 4분기(分期)에 영국(英國) 경제(經濟)는 1991년(年) 이래(以來) 미국(美國)과 프랑스 등(等) 여러 경제대국(經濟大國)들의 뒤를 따라 1991년(年) 이래(以來) 처음으로 정체기(停滯期)에 접어들었다. 2013년(年)에는 무디스 , 피(避)치 신용등급(信用等級) 에서 1978년(年) 이래(以來)로 처음으로 신용등급(信用等級) AAA 등급(等級)을 박탈당했다. 다만 스탠다드앤푸어스 측(側)에서는 여전히(如前히) AAA 등급(等級)을 유지(維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성장세(成長勢)를 이어가기 시작(始作)하였고, 2014년(年) 말(末) 즈음, 영국(英國)의 경제(經濟) 성장률(成長率)은 G7과 유럽 대다수(大多數)의 국가(國家)들보다도 훨씬 빠른 속력(速力)으로 성장(成長)하였으며, 2015년(年) 9월(月)에는 실업률(失業率)이 5.3% 정도(程度)로 급격히(急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성장(成長)하던 영국(英國)의 경제(經濟)도 2020년(年)에 불어닥친 코로나 19 사태(事態) 로 인하여 위축(萎縮)되었는데, 영국(英國) 경제(經濟)는 4월(月)과 6월(月) 사이에 전달(傳達)에 비해 20.4%나 경제(經濟) 규모(規模)가 수축(收縮)하는 기록(記錄)을 세웠으며, 11년(年)만에 다시 정체기로(正體岐路) 진입(進入)하고야 말았다.

1980년대(年代) 이래(以來) 영국(英國)의 경제적(經濟的) 불평등(不平等)은 호주(戶主)나 캐나다 같은 타(他) 선진국(先進國)들에 비하여 매우 급격(急激)한 속도(速度)로 벌어져만 왔다. 영국(英國)의 경제적(經濟的) 빈곤선(貧困線)은 중산층(中産層) 평균(平均) 수입(收入)의 60% 미만(未滿) 정도(程度)인데, 국가(國家) 통계청(統計廳)에서는 2011년(年) 경우(境遇)에 140만(萬) 명(名)에 달(達)하는 국민(國民)들이 ‘심각(深刻)한 물질적(物質的) 빈곤(貧困)’을 경험(經驗)하고 있으며 이는 1977년(年)의 30만(萬) 명(名)보다도 훨씬 많은 수치(數値)라고 경고(警告)했다. 2018년(年)에 영국(英國)을 방문(訪問)한 UN 빈곤조사위원회(貧困調査委員會) 측(側)에서는 독자적(獨自的)인 조사(調査)를 거쳐, 사회적(社會的) 안정(安定)을 보장(保障)해주어야할 정부(政府)가 오히려 빈곤층(貧困層)에 대(對)한 사회적(社會的) 지원(支援)을 끊어내고 있으며 ‘빈곤율(貧困率)을 높이고 불필요(不必要)한 갈등(葛藤)을 조장(助長)하고 있다’라고 강도(强度)높게 비판(批判)하기도 할 정도(程度)였다. 현재(現在) 영국(英國)의 대외채무(對外債務)는 약(約) 9.6조(兆) 달러 정도(程度)로, 미국(美國)에 이어 세계(世界)에서 2번째(番째)로 높다. GDP와 비교(比較)했을 경우(境遇)에는 약(約) 408% 정도(程度)로, 룩셈부르크와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세계(世界)에서 3번째(番째)로 높은 순위(順位)라는 불명예(不名譽)를 안고 있다.

진화론(進化論)을 창시(創始)한 찰스 다윈

기술(技術) [ 편집(編輯)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7세기(世紀) 이래(以來) 과학혁명(科學革命) 의 시기(時期)부터 세계(世界) 과학계(科學界)를 이끌어왔다. 영국(英國)은 18세기(世紀)부터 산업혁명(産業革命)을 주도(主導)하며 기술발전(技術發展)을 이끌어왔는데, 수많은 영국(英國) 출신(出身)의 과학자(科學者)들과 걸출(傑出)한 인물(人物)들이 과학(科學) 발전(發展)에 업적(業績)을 남겼던 것이다. 17세기(世紀)와 18세기(世紀) 영국(英國) 출신(出身)의 대표적(代表的)인 과학자(科學者)들에는 운동(運動)의 법칙(法則) 과 중력(重力)을 밝혀내며 세계(世界) 과학사(科學史)에 지대(至大)한 영향(影響)을 미친 아이작 뉴턴 , 진화론(進化論)과 자연선택(自然選擇)을 주창(主唱)하고 현대(現代) 생물학(生物學)의 기초(基礎)를 놓은 찰스 다윈 , 고전(古典) 전자기학(電磁氣學)의 시초(始初)를 놓은 클라크 막(幕)스웰 , 최근(最近)에는 세계(世界) 과학계(科學界)의 거두(巨頭)이자 우주학(宇宙學), 양자학(養子鶴), 블랙홀 연구(硏究)에 큰 공헌(貢獻)을 한 스티븐 호킹 등(等)이 있다.

이외(以外)에도 18세기(世紀)의 영국(英國) 과학자(科學者)들 중(中)에서는 수소(水素)를 발견(發見)한 헨리 캐번디시 , 페니실린 을 합성(合成)한 알렉산더 플레밍 , DNA 구조(構造)를 발견(發見)한 프란시스 크릭 등(等)이 있다. 유명(有名)한 영국계(英國系) 발명가(發明家)들 중(中)에서는 제임스 와트 , 조지 스티븐슨 , 로버트 스티븐슨 , 이점(利點)바드 킹덤 브루넬 등(等)이 있다. 19세기(世紀)에는 마이클 패러데이 가 전기(電氣)모터를 발명(發明)하였고, 찰스 배비지 가 첫 컴퓨터를 발명(發明)하였다. 또한 조셉 스완이 첫 백열전구(白熱電球)를 발명(發明)하였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이 처음으로 전화(電話)에 대(對)한 특허(特許)를 얻어내는 데에 성공(成功)하였다. 20세기(世紀)에는 존 로지 베어드 가 처음으로 텔레비전 시스템을 개발(開發)하였다. 또한 프랭크 휘틀은 제트 엔진을 개발(開發)하였고, 앨런 튜링 이 현대 컴퓨터의 기본(基本) 틀을 놓았으며 팀 버너스리(리) 월드와이드웹 을 개발(開發)하였다.

이 때문에 영국(英國)은 아직도 과학기술(科學技術) 개발(開發)을 최대(最大)의 사업(事業)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정부(政府) 차원(次元)에서 막대(莫大)한 돈을 쏟아붇고 있다. 2004년(年)과 2008년(年) 사이에 영국(英國)은 전체(全體) 과학(科學) 관련(關聯) 논문(論文)의 7%를 독자적(獨自的)으로 제출(提出)하였으며, 인용(引用)된 건수(件數)도 미국(美國)과 중국(中國) 다음으로 전체(全體)의 8%나 되었다. 또한 저명(著名)한 과학(科學) 잡지(雜誌)인 네이처 , 영국의학저널 , 란셋 등(等)도 모두 영국(英國)에 기반(基盤)을 둔 잡지사(雜誌社)들이다.

교통(交通) [ 편집(編輯) ]

해운국으로서의 지위(地位)는 대전(大戰) 전(前)에 비하면 크게 후퇴(後退)했으나 보유(保有) 선박(船舶)은 3,292만(萬) t(1976)으로서 세계(世界) 제(第)3위(位)를 차지하며 세계(世界) 해운(海運) 시장(市長)의 일대(一帶) 중심지(中心地)로 되어 있다. 런던 을 비롯하여 사우(社友)댐프턴 · 리버풀 · 맨체스터 · 글래스고 등(等)이 대표적(代表的)인 항구(港口)이며, 템스강(江) 하구(河口) , 클라이드 강구(講究) , 맨체스터 운하(運河) 에는 10만(萬) t급(級) 탱커를 넣는 터미널이 완성(完成)되어 있다. 철도(鐵道) 의 총연장(總延長)은 약(約) 2만(萬)km로서 세계(世界) 제(第)2의 밀도(密度)(密度)이다. 1947년(年) 이후(以後) 국유화(國有化)했으나, 철도(鐵道) 발상지(發祥地)인 만큼 낡은 시설(施設)이 많은 데다가 자동차(自動車)의 보급(普及)으로 큰 결손(缺損)이 누적(累積)되고 있었으며, 이를 해결(解決)하기 위해 합리화(合理化) 계획(計劃)을 실시(實施)하였으나 해결(解決)되지 않거나 오히려 더욱 큰 문제(問題)가 발생(發生)하는 상황(狀況)이다. 도로(道路) 연장(延長)은 약(約) 36만(萬) 6,000km로서 거의 포장(鋪裝)이 되어 있다. 간선도로(幹線都市)는 운수성(運輸省)(運輸省) 직할(直轄)로 운영(運營)되며, 그 밖의 것은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가 관리(管理)하고 있다. 항공(航空)은 원월드 의 주축(主軸) 항공사(航空社) 영국항공(英國航空) 과, 저비용(低費用) 항공사(航空社) 의 대표주자(代表走者)인 이지(理智)젯 등(等)이 있으며, 이외(以外)에도 버진 애틀랜틱 항공(航空) 등(等) 유수(有數)의 항공사(航空社)가 존재(存在)한다.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國際空港) 은 세계(世界) 3위(位)이자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空港)이기도 하다. 우편물(郵便物)의 항공수송(航空輸送) 서비스도 발달(發達)되어 있다. 한편(한便) 다년간(多年間) 국내외(國內外)의 주목(注目)을 받아왔던 영국(英國)과 프랑스를 잇는 유러터널(영국해협(英國海峽)터널)은 1994년(年) 5월(月) 개통(開通)되었다.

해적(海賊)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은 해적(海賊) 으로 악명(惡名)높은 나라였으며 이름난 영국(英國) 해적(海賊)들이 많이 존재(存在)한다. 에드워드 티치(齒) , 윌리엄 키드 , 프랜시스 드레이크 , 앤 보니 등등(等等) 영국(英國) 출신(出身) 해적(海賊)들은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에 엄청난 악명(惡名)을 떨쳤다.

국가(國家) [ 편집(編輯) ]

영국(英國)의 국가(國家)는 《 하느님 국왕(國王) 폐하(陛下)를 지켜주소서 》이다. 이외(以外)에 비(非) 공식(公式) 국가(國家)로 《 룰 브리타니아 》 등(等)이 있다.

역대(歷代) 군주(君主) [ 편집(編輯) ]

스튜어트 왕가(王家) [ 편집(編輯) ]

  • (1707년(年)~1714년(年))

하노버 왕가(王家) [ 편집(編輯) ]

윈저 왕가(王家) [ 편집(編輯) ]

마운트배튼 왕가(王家) [ 편집(編輯) ]

같이 보기 [ 편집(編輯) ]

각주(各州) [ 편집(編輯) ]

내용주(內容主) [ 편집(編輯) ]

  1. 성공회(聖公會) 가 주류(酒類)
  2. 영어(英語) :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 문화어(文化語) : 대(臺)브리텐 및 북아일랜드(北아일랜드) 련합왕국(聯合王國)
  3. 한자(漢字) : 英國, 연합왕국(聯合王國)(聯合王國), 문화어(文化語) : 련합왕국(聯合王國), ( 영어(英語) : United Kingdom 유나이티드 킹덤 [ * ] , The UK , U.K. )으로도 해석(解釋)되며, 브리튼 ( 영어(英語) : Britain )이라고도 부른다.
  4. 연합국(聯合國)의 구성(構成)을 이루는 각(各) 구성국(構成國) 들은 자치권(自治權) 을 보장(保障)받고 있지만 정치학적(政治學的)으로 영국(英國)은 미국(美國) 과 같은 연방(聯邦) 국가(國家) 가 아니다.

참조주(參照週) [ 편집(編輯) ]

  1. “The Royal Coat of Arms” . 《The Royal Family》. 2016년(年) 1월(月) 15일(日) . 2018년(年) 11월(月) 19일(日)에 확인(確認)함 .  
  2. EU Relations with Bermuda Archived 2014년(年) 3월(月) 15일(日) - 웨이백 머신 , European Commission
  3. http://www.guardian.co.uk/uk/2012/jan/26/graduate-starting-salaries-rise
  4. McSmith, Andy (2016년(年) 7월(月) 5일(日)). “The inside story of how Tony Blair led Britain to war in Iraq” . 《The Independent》 (영어(英語)) . 2022년(年) 2월(月) 17일(日)에 확인(確認)함 .  
  5. Jackson, Mike (2011년(年) 4월(月) 3일(日)). “Military action alone will not save Libya” . 《Financial Times》 (London). 2011년(年) 8월(月) 27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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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Queen Elizabeth II has died” . 《 BBC News 》. 2022년(年) 9월(月) 8일(日). 2022년(年) 9월(月) 8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22년(年) 9월(月) 8일(日)에 확인(確認)함 .  
  10. “King Charles III, the new monarch” . 《 BBC News 》. 2022년(年) 9월(月) 8일(日) . 2022년(年) 9월(月) 8일(日)에 확인(確認)함 .  
  11. 이는 영국(英國)의 국명(國名)인 United Kingdom이 복수형(複數型)이 아닌 단수형(單數型)인 것에서도 드러난다.
  12. Burrows, N. (1999). “Unfinished Business: The Scotland Act 1998”. 《The Modern Law Review》 62 (2): 241?260 [p. 249]. doi : 10.1111/1468-2230.00203 . The UK Parliament is sovereign and the Scottish Parliament is subordinate. The White Paper had indicated that this was to be the approach taken in the legislation. The Scottish Parliament is not to be seen as a reflection of the settled will of the people of Scotland or of popular sovereignty but as a reflection of its subordination to a higher legal authority. Following the logic of this argument, the power of the Scottish Parliament to legislate can be withdrawn or overridden...  
  13. Elliot, M. (2004). “United Kingdom: Parliamentary sovereignty under pressure”. 《International Journal of Constitutional Law》 2 (3): 545?627, 553?554. doi : 10.1093/icon/2.3.545 . Notwithstanding substantial differences among the schemes, an important common factor is that the U.K. Parliament has not renounced legislative sovereignty in relation to the three nations concerned. For example, the Scottish Parliament is empowered to enact primary legislation on all matters, save those in relation to which competence is explicitly denied ... but this power to legislate on what may be termed "devolved matters" is concurrent with the Westminster Parliament's general power to legislate for Scotland on any matter at all, including devolved matters ... In theory, therefore, Westminster may legislate on Scottish devolved matters whenever it chooses...  
  14. "Philby, Charlotte (12 December 2012). "Less religious and more ethnically diverse: Census reveals a picture of Britain today". The Independent (London)."
  15. “영국(英國)의 교육제도(敎育制度)” . 《두산백과(百科)》 . 2015년(年) 5월(月) 9일(日)에 확인(確認)함 .  
  16. 런던 ITV 본사(本社) ITN (인디펜덴트 텔레비전 뉴스) 보도(報道) 전담(專擔) 기구(機構)의 구성(構成)한다.
  17. “Union Jack or Union Flag?” . 《The Flag Institute》 (영국(英國) 영어(英語)) . 2022년(年) 9월(月) 26일(日)에 확인(確認)함 .  
  18. The Most Popular Sports In Europe
  19. MORI Sports Tracker - Interest in Sports Ipsos MORI Retrieved 2 May 2011

참고(參考) 자료(資料) [ 편집(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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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外部) 링크 [ 편집(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