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白南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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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白南準)
白南準
1959년 다름슈타트에서
1959년(年) 다름슈타트에서
신상정보(身上情報)
출생(出生) 1932년(年) 7월(月) 20일(日) ( 1932-07-20 )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조선(朝鮮) 경기도(京畿道) 경성부(京城府) 서린정
사망(死亡) 2006년(年) 1월(月) 29일(日) ( 2006-01-29 ) (73세(歲))
미국(美國) 플로리다주(플로리다州) 마이애미
직업(職業) 퍼포먼스 아티스트
미술(美術) 작가(作家)
비디오 아티스트
학력(學歷) 서독(西獨)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大學校) 대학원(大學院) 음악학(音樂學) 석사(碩士)
분야(分野) 비디오 아트
해프닝
전위음악(前衛音樂)
플럭서스
부모(父母) 백낙승 (부(簿))
배우자(配偶者) 구보타 시게코 (재혼(再婚))
초배(初配) 진안(鎭安) 이씨(李氏) 부인(否認)(사별(死別))
친척(親戚) 지누 (외종손자(外從孫子))
주요(主要) 작품(作品)
영향(影響)

백남준(白南準) (白南準, 1932년(年) 7월(月) 20일(日) ~ 2006년(年) 1월(月) 29일(日) )은 한국(韓國) 태생(胎生)의 세계적(世界的)인 비디오 아트 예술가(藝術家), 작곡가(作曲家), 전위(前衛) 예술가(藝術家)다. 본관(本貫)은 수원(水原) (水原)이다.

개요(槪要) [ 편집(編輯) ]

생전(生前)에 미국(美國) 뉴욕주(뉴욕州) 뉴욕 , 독일(獨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쾰른 , 일본(日本) 도쿄 , 미국(美國) 플로리다주(플로리다州) 마이애미 대한민국(大韓民國) 서울 에 주로(主로) 거주(居住) 한 그는 여러 가지 매체(媒體)로 예술(藝術) 활동(活動)을 하였다. 특히(特히) 비디오 아트 라는 새로운 예술(藝術)의 범주(範疇)를 발전시켰다는 평가(評價)를 받는 예술가(藝術家)로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創始者)'로 알려져 있다.

생애(生涯) [ 편집(編輯) ]

현(現) 서울특별시(서울特別市) 종로구 서린동 (구(舊) 일제(日帝) 강점기(强占期) 경기도(京畿道) 경성부(京城府) 서린정) 출신(出身)이다. 친일파(親日派)인 아버지 백낙승 과 어머니 조종희 사이의 3남(男) 2녀(女) 중(中) 막내로 태어났다. 그후(後) 종로구 창신동 197번지(番地) 소위(所謂) "큰대문집"에서 18세(歲)까지 살았다. 수송국민학교(輸送國民學校)와 경기제(競技制)1고등보통학교(高等普通學校)를 다니면서 피아니스트 신재덕 에게 피아노 연주(演奏)를, 이건우 에게 작곡(作曲)을 각각(各各) 배웠다. 이때 한국(韓國)이 낳은 작곡가(作曲家) 김순남 을 사사(師事)했다. 1949년(年) 그는 홍콩 로이덴 스쿨로 전학(轉學)했으며, 한국(韓國) 전쟁(戰爭) 이 발발(勃發)하기 이전(以前) 가족(家族)이 일본(日本) 으로 이주(移住)했다. 그 후(後) 일본(日本)으로 건너가 1952년(年) 도쿄 대학교(大學校) 문과부(門寡婦)에 입학(入學)했다. 2년(年) 후(後) 미술사학(美術史學) 및 미학(美學)으로 전공(專攻)을 정(定)했지만, 실제로(實際로)는 일본(日本) 당대(當代)의 작곡가(作曲家) 모(某)로이 사부로, 미학자(美學者) 노무라 요시오 등(等)에게서 작곡(作曲) 과, 음악사학(音樂史學) 을 공부(工夫)했다. 졸업(卒業) 논문(論文)은 ‘아르놀트 쇤베르크 연구(硏究)’이다.

1956년(年) 백남준은 졸업(卒業)과 함께 독일(獨逸) 로 유학(留學)을 떠나 뮌헨 대학교(大學校) 쾰른 대학교(大學校) 등(等)에서 서양(西洋)의 건축(建築), 음악사(音樂史), 철학(哲學) 등(等)을 공부(工夫)하였다. 뮌헨 대학교(大學校) 입학(入學) 1년(年) 후(後)에는 프라이부르크 국립(國立) 음악(音樂) 대학교(大學校) 로 옮겨 볼프강 포르트너 교수(敎授)에게 배우지만, 곧 쇤베르크 이후(以後) 현대음악(現代音樂) 의 실험(實驗)이 활발(活潑)히 진행(進行)되던 다름슈타트 하기(夏期) 강좌(講座) 에 참여(參與)했다. 1958년(年) 그 곳에서 현대음악가(現代音樂家) 존 케이지 를 만나 그의 음악(音樂)에 대(對)한 파괴적(破壞的) 접근(接近)과 자유정신(自由精神)으로부터 깊은 영감(靈感)을 얻었다. 이 영감(令監)은 "세계(世界)의 역사(歷史)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주어진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規則)을 바꿔라"라는 것으로 규정(規定)된다. 이후(以後) 1950년대(年代)부터 활발(活潑)해지기 시작(始作)한 독일(獨逸) 라인 지역(地域)의 액션뮤직 의 현장(現場)에서 백남준은 ‘아시아에서 온 문화(文化)테러리스트’( 앨런 카프로 )라고 불릴 정도(程度)의 탁월(卓越)한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약(活躍)했다. 1959년(年)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敬意)’에서 음악적(音樂的) 콜라주와 함께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始作)으로, 바이올린을 단숨에(單숨에) 파괴(破壞)하거나(바이올린 솔로) 존 케이지가 착용(着用)한 넥타이를 잘라버리는 퍼포먼스(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練習曲))가 특히(特히) 유명(有名)하다. 이 초기(初期) 퍼포먼스에 대(對)해 백남준은 스스로 "충격(衝擊), 표현주의(表現主義), 낭만주의(浪漫主義), 클라이맥스, 놀라움, 기타(其他) 등등(等等)을 보여준 것"이라고 표현(表現)한 바 있다. 1961년(年)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의 음악(音樂) 퍼포먼스 ‘오리기날레’에서 머리와 넥타이로 잉크를 묻혀 두루마리에 흔적(痕跡)을 남기는 독특(獨特)한 퍼포먼스 심플 머리를 위한 선(線) 율(律)을 보여주기도 했다. 1960년대(年代) 초반(初盤) 조지 마키우나스 , 요셉 보이스 등(等)과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플럭서스 활동(活動)을 함께 전개(展開)했다. 다다이즘 에 영향(影響)을 받은 플럭서스는 헤라클레이투스가 주장(主張)한 ‘변화(變化) 생성(生成)의 흐름’이라는 개념(槪念)을 받아들여 "목적(目的)이 없는 자유(自由), 실험(實驗)을 위한 실험(實驗)"이라는 명목(名目) 하(下)에 이벤트와 퍼포먼스 그리고 전위음악(前衛音樂)에 주력(注力)했고, 곧 유럽과 아시아 및 미국(美國) 등(等) 세계(世界)로 퍼져나갔다.

1961년(年) 백남준은 작곡가(作曲家) 슈토크하우젠 이 중심(中心)이 된 쾰른의 WDR 전자음악(電子音樂) 스튜디오 에 출입(出入)했으며, 이때 1950년대(年代)부터 노(盧)버트 위너에 의(依)해 제안(提案)된 '사이버네틱스' 개념(槪念) 하(下)에서 전자공학(電子工學)을 공부(工夫)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特히) 레이다와 TV 작업(作業)에 몰두(沒頭)했던 독일(獨逸) 작가(作家) 칼 오토 괴츠 의 실패(失敗)를 거울 삼아서 2년여(年餘) 동안 홀로 TV를 활용(活用)한 미디어 아트로서의 가능성(可能性)을 탐문(探問)하고 실험(實驗)했다. 그 성과(成果)를 바탕으로 1963년(年) 독일(獨逸)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자신(自身)의 첫 번째(番째) 전시(展示) ‘음악(音樂)의 전시(展示)-전자(電子) 텔레비전’을 열었으며, 13대(代)의 실험적(實驗的)인 TV를 통해 훗날(後날) 비디오 아트라고 불리게 되는 초기(初期) 형태(形態)를 보여주었다. 이 전시(展示)는 백남준이 자신(自身)의 즉흥음악(卽興音樂) 또는 무음악(音樂)의 발상(發想)에 기초한 실제(實際) 퍼포먼스, 그 흔적(痕跡)과 결과물(結果物)처럼 유럽에서 자신(自身)이 진행(進行)해온 작업(作業)의 성과(成果)와 함께 TV를 비롯한 미디어로 새로운 예술(藝術)의 형태(形態)를 시도(試圖)하는 작업(作業)이 공존(共存)하고 있었다. ‘적분(積分)된 피아노’, ‘랜덤 액세스 뮤직’, ‘레코드 샤슐릭’같은 20세기(世紀) 전위음악(前衛音樂)에 젖줄을 대고 있는 실험적(實驗的) 음악(音樂)의 시도(試圖)와 ‘잘린 소머리’, ‘파괴(破壞)된 누드 마네킹’, ‘보이스의 피아노 파괴(破壞) 퍼포먼스’'걸음을 위한 선(線)' '바람을 위한 선(線)' 같은 우상파괴적(偶像破壞的) 설치(設置) 작업(作業) 및 참여예술(參與藝術) 형태(形態)의 퍼포먼스가 함께 펼쳐졌다. 청년(靑年) 백남준은 이러한 전시(展示) 내용(內容)을 ‘동시성(同時性)’, ‘참여(參與)’, ‘임의접속(任意接續)’ 등등(等等)에 관(關)한 16개(個)의 테마로써 정리(整理)하는 종합적(綜合的)인 큐레이팅 전시(展示)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최근(最近) [ 언제 ?] 독일(獨逸), 오스트리아 등지(等地)의 연구자(硏究者)들 사이에서 이 전시(展示)의 중요성(重要性)을 재평가(再評價)하면서 아카이빙 작업(作業)과 연구(硏究)가 점차(漸次) 활발(活潑)해지는 추세(趨勢)에 있다.

1964년(年) 백남준은 일본(日本)으로 건너가 '로봇 K-456'을 제작(製作)했으며, 곧 세계(世界) 예술(藝術)의 중심지(中心地) 뉴욕 으로 이주(移住)했다. 뉴욕 언더그라운드 필름 운동(運動)의 중심지(中心地) 중(中) 하나였던 시네마테크 필름메이커스에 관여(關與)했으며, 스스로 영상(映像) 작업(作業)을 진행(進行)하기도 했다. 1965년(年) 소니의 포타(抛打)팩 (세계(世界) 최초(最初)의 휴대용(携帶用) 비디오카메라)으로 미국(美國) 뉴욕을 첫 방문(訪問) 중(中)이던 교황(敎皇) 요한 바오로 6세(歲)를 촬영(撮影)하여 곧바로 그 영상(映像)을 ‘ 카페 오 고고 ’에서 방영(放映)했다. 이것이 미술사(美術史)에서는 한동안 공식적(公式的)인 비디오 아트의 시작(始作)으로 기록(記錄)되어 있었다. 지금(只今)은 1963년(年) 첫번째(番째) 전시(展示)를 비디오아트의 기점(起點)으로 보고 있다. 또한 첼로 연주자(演奏者)이자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 의 기획자(企劃者)였던 샬럿 무어먼 과 함께 비디오 아트와 음악(音樂)을 혼합(混合)한 퍼포먼스 작업(作業)을 활발히(活潑히) 펼쳤다. 특히(特히) 1967년(年) 음악(音樂)에 성적(性的)인 코드를 집어넣은 백남준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에서 샬럿 무어먼은 누드 상태(狀態)의 첼로 연주(演奏)를 시도(試圖)하다가 뉴욕 경찰(警察)에 체포(逮捕)되어 큰 사회적(社會的) 파장(波長)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結果)로 인해 예술(藝術) 현장(現場)에서 누드를 처벌(處罰)할 수 없다는 뉴욕의 법(法) 개정(改正)이 이루어지는 획기적(劃期的)인 진전(進展)이 일어난다. 이후(以後)에도 미디어 아트가 미국(美國) 뉴욕을 중심(中心)으로 서서히(徐徐히) 득세(得勢)해가는 시대적(時代的) 조류(潮流) 속에서 두 사람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TV 첼로’, ‘TV 침대(寢臺)’ 등등(等等)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결합(結合)한 많은 예술활동(藝術活動)을 전개(展開)했다.

1974년(年) 부터 백남준은 영상(映像)으로서의 비디오 아트를 새로운 미술적(美術的) 방법(方法)인 설치(設置) 미술(美術)로 변환(變換)하여 다양하게 진행(進行)했으며, 그에 따라 ‘TV 붓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정원(庭園)’, ‘TV 물고기’ 등등(等等) 많은 대표작(代表作)을 선보였다. 이 작품(作品)들은 비디오 아트와 생명(生命)의 상징(象徵)을 전자적(電子的)으로 결합(結合)하여 테크놀로지로 물든 현대(現代) 사회(社會)의 새로운 합성적(合成的) 생명력(生命力)을 추구(追求)했다는 평판(評判)을 얻었다. 특히(特히) 'TV 붓다'는 그의 초기(初期) 비디오 설치(設置)의 경향(傾向)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代表作)으로서 가장 널리 알려졌다. 1960년대(年代) 후반(後半)부터 미국(美國)의 문화적(文化的) 환경(環境)이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호의적(好意的)으로 변화(變化)하면서 폭발적(暴發的)인 수준(水準)의 미디어 전시(展示)가 빈발(頻發)했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그룹전(展) 형태(形態)로 수많은 전시(展示)에 활발(活潑)하게 참여(參與)했다. 1974년(年) 뉴욕 에버슨 미술관(美術館) 개인전(個人戰)과 함께 비데아 앤 비디올로지: 1959-1973 이라는 예술(藝術)과 기술(技術)을 교차(交叉)시키는 하이브리드에 관(關)한 저작(著作)을 내놓아 미디아 아트의 이해(理解)를 도왔으며, 1982년(年) 뉴욕 휘트니 미술관(美術館)에서 개최(開催)된 ‘백남준 회고전(回顧展)’을 통해 그의 예술(藝術) 세계(世界)가 뉴욕을 중심(中心)으로 미국(美國) 사회(社會)에 많이 알려지는 계기(契機)가 되었다.

1970년대(年代) 중반(中盤)부터는 뉴욕 WNET 방송국(放送局), 보스턴 WGBH 방송국(放送局)과 협력(協力)하여 자신(自身)의 비디오 아트를 공중파(空中波) TV에서 방송(放送)했고, 이는 네트워크 방송(放送)을 끌어들여 예술(藝術) 세계(世界)의 영역(領域) 확장(擴張)을 꾀한 놀라운 시도(試圖)였다. 나아가 1984년(年) 1월(月) 1일(日)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적(世界的)인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를 뉴욕 WNET 방송국(放送局)과 파리 퐁피두 센터 를 연결(連結)한 실시간(實時間) 위성(衛星) 생중계(生中繼)로 방송(放送)하여 전(全) 세계적(世界的) 반향(反響)을 불러일으켰다. 샌프란시스코와 서울까지 연결(連結)된 이 국제적(國際的)인 규모(規模)의 위성(衛星) 아트에는 로리 앤더슨, 피터 가브리엘, 오잉고 보잉고,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등(等)의 예술가(藝術家)과 대중문화(大衆文化)의 스타가 다수(多數) 참여(參與)했으며, 전(全) 세계(世界) 2천(千) 5백만명(百萬名)(재방송(再放送) 포함(包含))이(李) 시청(視聽)하였다. 이로써 전세계적(全世界的)인 차원(次元)의 대중적(大衆的) 각인(刻印)이 이루어졌고, 마치 대중(大衆)스타처럼 성가(聲價)를 높였다. 이후(以後)에도 ‘위성(衛星) 아트’ 3부작(部作)으로 명명(命名)된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등(等)이 이어져 위성(衛星) 연결(連結)을 통한 전세계(全世界)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새로운 부족사회(部族社會)를 낳는지 실감(實感)시켰다.

1984년(年) 일본(日本) 도쿄 소게쓰[草月]홀에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공동(共同)으로 참여(參與)한 퍼포먼스 '코요테 콘서트 II'가 펼쳐졌으며, 이들이 각각(各各) 몽골의 늑대 울음소리와 초원(草原)의 달빛을 음악적(音樂的)으로 표현(表現)한 것을 통해 1961년(年) 첫 만남부터 계속(繼續) 이어온 공동(共同)의 관심사(關心事)가 무엇인지 알려지기 시작(始作)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후(以後) 퍼포먼스 계획(計劃)은 요셉 보이스의 죽음과 함께 미완(未完)으로 끝났다.

1992년(年) '비디오 때, 비디오 땅' 전시(展示)는 독일(獨逸) 쿤스트 할레와 스위스 쮜리히에서 진행(進行)된 전시(展示)의 서울 투어전시(展示)로서 당시(當時) 과천(果川) 막계동에 자리잡은 지 몇 년(年) 되지 않았던 국립현대미술관(國立現代美術館) 과천관(果川館)에 총(總) 관람(觀覽) 인원(人員) 20만명(萬名)이 찾은 첫번째(番째) 전시(展示)로 기록(記錄)되었다. 이 전시(展示)의 주요(主要)한 작품(作品)은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이다. 1993년(年) 백남준은 독일(獨逸) 작가(作家) 한스 하케 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獨逸館) 작가(作家)로 초대(招待)되어 국가전시관(國家展示館) 부문(部門)에서 황금사자상(黃金獅子賞)을 수상(受賞)했다. '문명(文明)의 동서남북(東西南北)'이라는 주제(主題)의 이 전시(展示)에서 그는 북방(北方) 유라시아의 유목(遊牧) 문화(文化)를 배경(背景)으로 전자적(電子的) 소통(疏通)을 시도(試圖)하는 비디오 로봇 형태(形態)의‘칭기스칸의 복권(復權)’, ‘마르크폴로’, ‘훈족(훈族)의 왕(王) 아틸라’,‘스키타이의 왕(王) 단군(檀君)’, ‘로봇 전사(戰死)’, ‘고대기마인물상(古代騎馬人物像)’ 같은 작품(作品)들을 중심(中心)으로 다수(多數)의 작품(作品)을 내놓았다.

1995년(年) 백남준은 제(第)1회(回) 광주(光州) 비엔날레 태동(胎動)의 산파(産婆) 역할(役割)을 하며, 한국(韓國) 미술(美術)이 국제적(國際的)으로 진출(進出)할 수 있도록 조력자(助力者) 역할(役割)을 수행(遂行)했다. 제(第)1회(回) 광주(光州) 비엔날레 는 국내외(國內外) 총(總) 관람객(觀覽客)이 160만(萬) 명(名)에 달(達)하는 성공(成功)을 거두었고, 특히(特히) 백남준이 직접(直接) 관여(關與)한 ‘INFO Art’전(前)이 주목(注目)받았다. 또한 백남준은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전시관(國家展示館) 부문(部門)에 한국관(韓國館)을 설치(設置)하는 일에 결정적(決定的)인 역할(役割)을 했다. 이로써 한국(韓國) 미술(美術)이 세계(世界) 미술계(美術界)에 진출(進出)하는 교두보(橋頭堡)가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같은 해 그의 예술적(藝術的) 정수가 담긴 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 전시(展示)를 진행(進行)했다. 1996년(年) 4월(月) 9일(日) 뇌졸중(腦卒中)으로 쓰러졌으며, 6개월(個月)만인 그해 10월(月)에 재기(再起)했다. 2000년(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美術館)에서 ‘백남준의 세계(世界)’ 라는 대규모(大規模) 회고전(回顧展)이 열렸으며, 이때 백남준은 레이저 아트 ‘야곱의 사다리’, ‘삼원소(元素)’ 등(等)을 전시(展示)한 바 있다.

2006년(年) 1월(月) 29일(日) , 미국(美國) 마이애미 의 자택(自宅)에서 노환(老患)으로 75세(歲)로 별세(別世), 유해(遺骸)가 서울, 뉴욕, 독일(獨逸)에 나눠서 안치(安置)되었다.. .

학력(學歷) [ 편집(編輯) ]

가계(家計) [ 편집(編輯) ]

백윤수 ?
조종희 백낙승 (태창그룹)
백남준(白南準) 구보타 시게코

수상(受賞) [ 편집(編輯) ]

광고(廣告) [ 편집(編輯) ]

주요(主要) 작품(作品) [ 편집(編輯) ]

퍼포먼스 [ 편집(編輯) ]

  •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練習曲) 》( 1959년(年) )
백남준의 첫 번째(番째) 음악(音樂) 퍼포먼스였으며, 피아노를 파괴(破壞)하는 장면(場面)이 포함(包含)되어 있었다.
  •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敬意) 》( 1960년(年) )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 소동(騷動)으로 유명(有名)한 퍼포먼스이다.
슈토크하우젠의 작곡작품(作曲作品) 'Kontakte'를 발표(發表)한 퍼포먼스에 백남준이 참여(參與)하여 '머리를 위한 선(線)' 등(等)을 발표(發表)하였다.
  • 《작은 여름축제(祝祭)-존 케이지 이후(以後)》( 1962년(年) )
<플럭서스>의 퍼포먼스로서 '플럭서스 선언(宣言)'이 발표(發表)되기도 했다.
<음악(音樂)에서의 네오다다> 행사(行事)에 참여(參與)하여 바이올린을 단숨에(單숨에) 파괴(破壞)하여 유명(有名)한 퍼포먼스이다.
뒤셀도르프 미술(美術)아카데미에서 펼쳐진 플럭서스 그룹의 퍼포먼스이다.
뉴욕의 시네마테크 필름메이커스에서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이 연주(演奏) 도중(途中) 옷을 벗었고, 뉴욕 경찰(警察)에 체포(逮捕)되었던 퍼포먼스이다. 이후(以後) 법정(法廷)에서 유죄(有罪) 판결(判決)을 받지만, 당시(當時) 주지사(州知事) 록펠러는 뉴욕 예술계(藝術界)의 여론(輿論)을 반영(反映)하여 "예술(藝術) 행위(行爲)에서 누드를 처벌(處罰)할 수 없다" 라고 법(法) 개정(改正)에 사인한다. 이 퍼포먼스는 뉴욕을 예술(藝術)하기 좀 더 좋은 환경(環境)으로 만든 계기(契機)가 되었다.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에게 3kg짜리 소형(小型) TV 모니터로 만든 브래지어를 채우고 연주하게 했던 퍼포먼스이다. 1969년(年) 7월(月) 20일(日) 코코란 갤러리에서 당시(當時) 아폴로 11호(號)의 달착륙(着陸) 장면(場面)을 이 TV브라를 통해 내보내어 반향(反響)을 얻기도 했다.

전시(展示) 작품(作品) [ 편집(編輯) ]

독일(獨逸) 프랑크푸르트 Museum fur Kommunikation 앞에 세워진 백남준의 작품(作品).
존 케이지의 영향(影響)을 받은 '장치(裝置)된 피아노'로서 타악기(打樂器) 음색(音色)이 난다.
즉석(卽席)에서 마음 가는 대로 음악(音樂)을 혼합(混合)할 수 있는 개방(開放)된 테이프 설치(設置) 작품(作品)이다.
백남준이 제작(製作)한 휴머노이드형(型) 로봇으로서 걷는 기능(機能), 배설(排泄) 기능(機能)이 있다.
음악(音樂) 대신(代身)에 영상(映像)을 '신시(新詩)사이징'하는 기계(機械)로서 백남준과 엔지니어 아베 슈야(野)가 만들었다. ㅇ
고요한 정신(精神)의 아이콘 붓다를 전자(電子) 테크놀로지로 표현(表現)한 걸작(傑作). 백남준의 작품(作品) 중(中) 최초(最初)로 팔렸으며, 네덜란드 슈테델릭 미술관(美術館)에서 구입(購入).
24대(代)의 TV와 어항(魚缸)이 마주보게 설치(設置)되어 있다.
침대(寢臺) 바닥이 TV로 구성(構成)된 작품(作品)으로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의 퍼포먼스에서 자주 사용(使用)되었다.
13대(代)의 TV 주사선(走査線)을 조작(操作)하여 TV 모니터 속에 인공(人工)의 달 이미지를 보여준다.
식물(植物)과 비디오 영상(映像)이 어우러진 작품(作品)이다.
십자(十字) 교차로(交叉路) 형태(形態)로 TV가 설치(設置)된 것을 실시간(實時間) 캠코더로 찍고 있는 작품(作品)이다.
전시장(展示場) 천정(天井)에 물고기 영상(映像)이 나오는 TV 수상기(受像機)를 설치(設置)하여 그 바닥에 누워서 보는 작품(作品)이다.
국립현대미술관(國立現代美術館) 에 설치(設置)되어 있다.
1003개(個)의 텔레비전 을 쌓아 만든 탑(塔)이다.
높이 18.5 미터 , 지름 7.5 미터, 무게 16
농업(農業), 환경(環境), 경제(經濟), 자서전(自敍傳) 등등(等等)의 제목(題目)을 가진 연작(聯作) 시리즈로서 총(總) 13개(個)로 설치(設置)된 작품(作品)이다.
  • 《전자(電子) 초고속도로(超高速道路):미국(美國) 대륙(大陸)》( 1995년(年) )
313대(代)의 TV 모니터, 네온과 철구조물(鐵構造物) 등등(等等)으로 설치(設置)된 작품(作品)이다.
비행기(飛行機)를 발명(發明)한 라이트 형제(兄弟)를 TV로 상징화(象徵化)한 작품(作品)이다. 2011년(年) 홍콩 크리스티 경매(競賣)에서 거래(去來)되었다.

음악(音樂) 작품(作品) [ 편집(編輯) ]

  • 《영(英) 페니스 심포니》
보기: [1]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 《20개(個)의 방(房)을 위한 교향곡(交響曲)》
보기: [2] Archived 2016년(年) 2월(月) 2일(日) - 웨이백 머신
  • 《교향곡(交響曲) 제(第)5번(番)》
보기: [3] Archived 2016년(年) 2월(月) 1일(日) - 웨이백 머신
  •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敬意)》
듣기: [4]
  • 《압(壓)쉬츠심포니》
듣기: A면(面)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 B면(面)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 《인(人) 메모리암(癌) 조지 마키우나스, 1931-1978》
듣기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 《TV 첼로》
듣기: 1부(部) · 2부(部)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 《TV 첼로와 비디오테이프를 위한 콘서트》( 1982년(年) )
듣기 : 1부(部) · 2부(部)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 3부(部)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비디오 아트 [ 편집(編輯) ]

현존(現存)하는 초기(初期) 비디오 아트 작품(作品)으로 손꼽히며, 자켓의 단추를 잠갔다 풀었다 하는 동작(動作)이 반복(反復)된다.
4분(分) 30초(秒)짜리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作品)이다.
1969년(年) 제작(製作)된 비디오 신시사이저로 제작(製作)한 작품(作品)이다.
28분(分) 30초(秒)의 싱글채널 비디오로서 비디오 신시사이저로 제작(製作)한 작품(作品)이다.
미국(美國) 무용가(舞踊家) 머스 커닝엄의 춤을 소재(素材)로 한 작품(作品)이다.
뉴욕의 마천루(摩天樓)를 배경(背景)으로 여러 영상(映像)을 편집(編輯)한 작품(作品)이다.
태평양(太平洋) 전쟁(戰爭)의 격전지(激戰地)에서 동서(東西)의 화해(和解)를 구(求)하는 퍼포먼스 필름과 전쟁(戰爭) 다큐멘터리 필름을 교차편집(交叉編輯)한 작품(作品)이다.
제(第)1회(回) 경주세계문화(慶州世界文化)엑스포 국제(國際)멀티미디어 아트쇼에서 108개(個)의 TV를 통해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의 문화(文化)와 역사(歷史)를 불교(佛敎)의 108번뇌(煩惱)로 표현(表現)된 작품(作品)이다.

위성(衛星) 아트 [ 편집(編輯) ]

조지 오웰의 소설(小說) 《 1984년(年) 》에 나오는 어두운 미래(未來)의 전망(展望)에 대(對)한 반박(反駁)이다.
동서양(東西洋)은 서로 소통(疏通)할 수 없다는 키플링의 주장(主張)에 대(對)한 반박(反駁)이다.
글로벌 수준(水準)에서 전세계(全世界)가 함께 평화(平和)를 생각하고 실행(實行)하는 것이 중요(重要)하다.
호랑이(虎狼이)라는 신화적(神話的) 동물(動物)에 의탁(依託)하여 백남준 자신(自身)과 한국(韓國)의 생명력(生命力)을 고양(高揚)하다.

전시회(展示會) [ 편집(編輯) ]

  • 음악(音樂)의 전시(展示)-전자(電子) 텔레비전
장소(場所) : 독일(獨逸)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
일시(一時) : 1963년(年) 3월(月) 11일(日)~20일(日)
대표작(代表作) : 《임의접속(任意接續) 음악(音樂)》, 《총체(總體) 피아노》, 《13대(代)의 실험(實驗) TV》, 《TV를 위한 선(線)》
  • 백남준(白南準): 비데아 앤 비디올로지
장소(場所) : 뉴욕 에버슨미술관(美術館)
일시(一時) : 1974년(年)
대표작(代表作) : 《TV 바다》
  • 백남준 회고전(回顧展)
장소(場所) : 뉴욕 휘트니 미술관(美術館)
일시(一時) : 1982년(年) 4월(月) 30일(日)~6월(月) 27일(日)
대표작(代表作) : 《비라미드(美드)》
  • Nam June Paik: Mostly Video
장소(場所) : 도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美術館)
일시(一時) : 1984년(年)
대표작(代表作) : 《굿모닝 미스터 오웰》
  • 백남준(白南準).비디오때.비디오땅.
장소(場所) : 국립(國立) 현대미술관(現代美術館)
일시(一時) : 1992년(年) 7월(月) 30일(日)~9월(月) 6일(日)
대표작(代表作) : 《나의 파우스트》
  •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전시관(國家展示館) 전시(展示)
장소(場所) : 베니스 비엔날레
일시(一時) : 1993년(年)
대표작(代表作) : 《칭기스칸의 복권(復權)》《마르코폴로》《스키타이의 왕(王) 단군(檀君)》
  • 백남준(白南準) '95 예술(藝術)과 통신(通信)
장소(場所) : 갤러리 현대
일시(一時) : 1995년(年) 9월(月) 1일(日)~9월(月) 24일(日)
대표작(代表作) : 《커뮤니케이션 타워》
  • 백남준의 세계(世界)
장소(場所) :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美術館)
일시(一時) : 2000년(年)
대표작(代表作) : 《야곱의 사다리》, 《삼원소(元素)》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狂詩曲) [5]
장소(場所) : KBS 신관(新館)
일시(一時) : 2007년(年) 7월(月) 27일(日)~12월(月) 30일(日)
대표작(代表作) : 《자라》
  • 백남준(白南準) 상설전(常設展)
장소(場所) : 백남준(白南準)아트센터
일시(一時) : 2009년(年) 3월(月)~ 현재(現在)
대표작(代表作) : 《코끼리 마차(馬車)》, 《TV 정원(庭園)》, 《TV 부처(部處)》, 《메모라빌리아》
  • 신화(神話)의 전시(展示) - 전자(電子) 테크놀로지
장소(場所) : 백남준(白南準)아트센터
일시(一時) : 2009년(年) 6월(月) 12일(日)~11월(月) 8일(日)
대표작(代表作) : 《호랑이(虎狼이)는 살아있다》《TV를 위한 선(線)》《적분(積分)된 피아노》
  • Nam June Paik: Global Visionary
장소(場所) :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뮤지엄
일시(一時) : 2012년(年)-2013년(年)
대표작(代表作) : 백남준(白南準) 아카이브
  • Nam June Paik: Becoming Robot
장소(場所) :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일시(一時) : 2014년(年)-2015년(年)
대표작(代表作) : 《로봇 K-456》

같이 보기 [ 편집(編輯) ]

관련(關聯) 저작(咀嚼) [ 편집(編輯) ]

  • 《백남준 Video》
연구자(硏究者) 에디트 데커의 박사논문(博士論文)을 단행본(單行本)으로 번역(飜譯) 출간(出刊).
  • 《백남준, 그 치열(熾烈)한 삶과 예술(藝術)》
동아일보 기자(記者)였던 이용우(전(前) 광주(光州)비엔날레 이사장(理事長)) 씨(氏)가 자신(自身)의 취재(取材) 내용(內容)을 바탕으로 단행본(單行本) 출간(出刊).
  • 《굿모닝 미스터 백!: 해프닝 플럭서스 비디오아트》
큐레이터 김홍희(현(現) 서울리십미술관장(里十美術館長)) 씨(氏)의 연구서(硏究書)로서 단행본(單行本) 출간(出刊).
  •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의 유치원(幼稚園) 친구(親舊) 이경희(수필가(隨筆家)) 선생(先生)이 집필(執筆)한 단행본(單行本) 출간(出刊).
  • 《나의 사랑 백남준(白南準)》
백남준의 부인(夫人) 구보타 시게코 여사(女史)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회고록(回顧錄) 출간(出刊).
  • 《달나라 백남준(白南準)》
백남준(白南準)아트센터에서 집필(執筆)한 어린이 청소년용(靑少年用) 도서(圖書). 2009년(年) 출간(出刊).
  •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백남준 자신(自身)이 쓴 에세이를 편집(編輯)한 앤솔로지 북(北). 2010년(年) 출간(出刊).
  • 《백남준의 귀환(歸還)》
백남준(白南準)아트센터 이영철 초대관장(館長)과 김남수 연구원(硏究院)이 공동집필(共同執筆)한 리소스(리소스) 북(北). 2010년(年) 출간(出刊).
  • 《청년(靑年), 백남준(白南準): 초기(初期) 예술(藝術)의 융합(融合) 미학(美學)》
연구자(硏究者) 임산(林産)(현(現) 동덕여대(同德女大) 큐레이터학과(學科) 교수(敎授)) 씨(氏)의 연구서(硏究書)로서 단행본(單行本) 출간(出刊).
  • 《백남준을 말하다》
국내(國內)의 백남준(白南準) 지인(知人)들이 각자(各自) 얽힌 인연(因緣)을 바탕으로 나름의 해석(解釋)을 담은 책(冊) 출간(出刊).
  • 박정진. 《(eBOOK)굿으로 보는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한국학술정보(韓國學術情報). 2014년(年). [2]

관련(關聯) 영상(映像) [ 편집(編輯) ]

외부(外部) 링크 [ 편집(編輯) ]

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International Sculpture Center. Lifetime Achievement in Contemporary Sculpture Award .
  2. “굿으로 보는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 2017년(年) 1월(月) 7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17년(年) 1월(月) 6일(日)에 확인(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