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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鄕土大百科 : 네이버 知識百科

  • 총떡

  • 여러해살이풀(多年生草本)이다. 近頃(根莖)은 굵고 가로 뻗는다. 줄기는 몇 個씩 나오며 곧추 자라고 높이는 50~90cm 程度이며 윗部分에서 가지를 치고 주름이 있으며 밑部分에는 거의 털이 없으나 윗部分에는 짧은 털이 덮여 있다. 근엽(根葉)은 束生(束生)하며 勁葉(莖葉)은 互生(互生)하고 葉面(葉面)에는 先占(腺點)들이 널려 있으며 앞面은 綠色인데 털이 若干 있고 뒷面에는 털이 많다. 줄기 아랫部分과 가운데部分에 있는 잎은 長打原形(長楕圓形)이며 길이 3~12cm, 너비 1.5~6cm 程度이고 긴 葉柄(葉柄)이 있다. 葉身(葉身)은 2番 또는 거의 3番 偶像(羽狀)으로 깊이 갈라지는데 제1회 熱便葉(裂片葉)은 長打原形(長楕圓形)이고 잎줄거리와 거의 直角으로 갈라지며 밑部分은 若干 넓어진다. 第2回 裂片葉은 披針形(?針形)이며 全然(全緣)이거나 몇 個의 缺刻(缺刻)이 있다. 줄기 윗部分의 잎은 2番 偶像으로 갈라지며 작고 葉柄이 거의 없다. 줄기와 가지 끝에서 頭狀花序(頭

  • 江原道 南西部에 있는 郡. 北西部는 伊川郡, 北東部는 平康郡, 南東部는 江原道(남) 鐵原郡 · 京畿道 漣川郡, 南西部는 開城市 張豐郡, 西部는 黃海北道 兎山郡과 接해 있다. 薯童(문암리~강산리) 間의 길이는 42km이고, 北남(하식점리__301 間의 너비는 19km이며, 軍 面積은 553.92km2로서 道 全體面積의 4.99%를 차지한다. 現在 行政區域은 1邑 36里로 構成되어 있으며 軍 所在地는 철원읍이다. 江原道 鐵原郡 地圖

  • 평양시 牡丹峯區域에 있는 託兒所. 金正淑 女史의 勃起에 依하여 세워진 朝鮮의 첫 託兒所. 1948年 2月 15日에 發足되었다. 평양시 勤勞女性들의 子女들, 特히 出張이 잦은 女記者, 藝術人, 敎員, 義士 等의 子女들을 每週 月曜日에 맡기고 土曜日에 데려가는 것을 基本으로 하나 必要에 따라 몇 週日 或은 몇 달씩 되는 長期出張 全期間 동안 맡아서 키우기도 한다. 1988年 4月 現代的인 建物로 改築되어 그 規模가 크고 現代的인 設備들로 갖추어졌다. 總建坪 7,800m2로 된 託兒所는 400餘 名의 收容能力을 가지고 있다. 託兒所는 2好童(5層)과 3好童(2層) 그리고 1好童(2層)을 어린이 保育 建物로 하고 4好童(1層)을 後方補助建物로 하여 모두 크고 작은 4洞의 建物들이 조화롭게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託兒所에서는 어린이 管理責任制의 要求를 基準으로 하여 어린이들의 나이와 特性에 맞게 班을 編成하고 그에 알맞은 規則的인 生活과 營養供給, 運動과 놀이, 空氣浴과 日光浴

  • 朝鮮時代 女子머리樣式

  • 相續이라고 하면 흔히 財産相續만을 念頭에 두는 境遇가 많다. 그것은 全般的인 相續風習에서 財産相續이 主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封建社會에서 가장 主要한 財産은 집, 家藏什物, 土地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밖에 兩班統治者들속에서는 奴婢도 財産으로 되고 있었다. 家庭의 代價 맏아들에게 물려지던 家父長的家族制度下에 기초한 財産相續에서도 맏아들을 優待하는 것이 一般的인 生活慣習으로 되고 있었다. 財産相續에서 맏아들을 優待하는 生活慣習은 맏아들內外가 家長權과 主婦權을 물려받고 그들이 父母를 모시고 祖上의 祭祀를 받드는 權限과 義務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은 父母를 모시고 祖上의 祭祀를 받들 義務를 지닌 맏아들에게 물려주었고 둘째아들부터는 살림을 갈라 세간을 내보낼 때 다른 집을 마련해주었다. 맏아들이 물려받은 집은 다른 아들들이 받은 집들보다 規模가 相對的으로 컸다. 土地相續은 크게 두 가지 形態로 進行되었는데 그...

  • 白頭山의 特異한 自然景觀은 主로 白頭山의 火山活動과 그에 結合된 氣候條件을 비롯한 自然地理的 要素들과 많이 關聯되어 있다. 只今으로부터 約 100萬年 前에 이 一帶에서 地質學的 運動으로 地殼이 갈라지면서 생겨난 틈을 따라 땅속깊이에서 1,000℃ 以上의 뜨거운 鎔巖이 위로 솟구쳐 오르면서 火山이 噴出하기 始作하였다. 白頭山마루는 2,000m 以上의 높은 봉우리들이 60°以上의 急한 絶壁을 이루면서 屛風처럼 天地를 둘러싸고 솟아 있다. 各異한 模樣과 높이를 가진 봉우리들은 서로 잇닿아 있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보면 柔順하고 評퍼짐하여 어디서나 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天地湖畔에서 둘러보면 山岳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山岳이고 벼랑 가운데서도 가장 높고 險한 칼벼랑으로 되어 있다. 白頭蓮봉에는 將軍峯과 같이 높고 큰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낮은 봉우리도 있다. 또한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꼭대기가 마치 가마뚜껑처럼 생긴 두리뭉실한 봉우리도 있다....

  • 民俗舞踊 ‘부채춤’은 오랜 歷史的 期間에 各異한 生活的 契機와 情況들에서 추어진 ‘부채춤’들을 現代的 美感에 맞게 再形象한 舞臺藝術作品이다. 아름답고 優雅한 朝鮮女性들의 高尙한 精神世界를 보여주는 ‘부채춤’은 一部分形式의 舞踊으로서 느린 춤으로 一貫되어 있다. 作品은 네 個 場面으로 構成되어 있다. 再形象한 ‘부채춤’은 일정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있지 않지만 이 춤에는 우리 民族의 아름답고 高尙한 精神世界가 一般化 되어 있는 것이 特徵이다. 춤에 形象된 優雅하고 부드러운 旋律과 密着된 負債놀림은 그 하나 하나가 점잖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우리 民族의 固有한 民族的 情緖를 훌륭히 具現하고 있다. 作品에는 또한 부채눕혀펴기, 돌려펴기, 무릎쳐펴기, 어깨쳐펴기, 몸쳐펴기 等 多樣한 負債놀림技法과 돌려메機, 끌어올리기, 끌어벌리기, 메기, 뿌려치기 等 아름다운 曲線美를 보여주는 팔놀림技法이 잘 配合된 것으로 하여 朝鮮춤의 固有한 춤가락이 훌륭히...

  • [學歷] 평양영화대학 [經歷] 映畫俳優 데뷔 리坪과 結婚(1960) 離婚(1967) 김정일과 同居(1967) 김정남 得男(1971) [其他] 越北(1948.7) 모스크바에서 死亡 [主要活動] 映畫 ‘안개 흐르는 새 언덕’ 프놈펜 映畫祝祭 參席(1968)

  • 7妾班常

  • 긴鬚髥고래는 그 마릿數가 顯著히 적어져 가고 있는 種이다. Ⅳ部類에 屬한다. 긴鬚髥고래는 고래類 가운데서 두 番째로 큰 種이다. 몸길이는 18~20m(가장 큰 것은 23~27m), 몸무게는 46~50톤(最高 100톤)이다. 머리의 길이는 몸길이의 4分의 1, 가슴지느러미는 몸길이의 7.5~10%, 등지느러미의 높이는 50~60cm, 꼬리지느러미의 너비는 몸길이의 20~25%이다. 머리 위에는 50개미만의 털이 흩어져 있다. 鬚髥版은 350~400雙인데 가장 작은 것은 262雙, 많은 것은 473雙이다. 鬚髥版의 높이는 70~90cm이며 밑바닥에서 그 너비는 25cm이다. 몸色깔은 고르지 못하다. 등쪽은 검은色이고 옆구리는 漸次的으로 連해 지다가 배쪽에 이르러서는 흰色으로 된다. 몸뒷部分에는 크지 않은 흰재색의 斑點들이 있다. 아랫입술의 앞끝 오른쪽面은 흰色이고 왼쪽面이 검은色인 것이 特徵이다. 겨울에는 亞熱帶水域에서 많이 살고 봄, 가을에는 南쪽에서부터 北極地方까지의 넓은

  • 자치기

  • 黃海北道 板門郡 선적리에 있는 옛 무덤. 16世紀 初의 女流詩人人 황진이(1506~1543年)의 무덤이다. 黃眞伊는 人物이 잘 났을 뿐 아니라 時調와 漢詩를 잘 짓고 노래와 거문고에도 名水路서 ‘松島3節’로 이름났다. 朴淵瀑布 옆에 있는 바위에 그가 머리태로 썼다는 詩가 있다.

  • 모내기는 모板에서 떠온 볏모를 써레親 논판에 심는 일이다. 이 일은 힘들고 품이 많이 들며 제철에 와닥닥 해치워야 하므로 품앗이나 두레를 맺어 여러 사람들이 달라붙어 하였다. 모내기철에는 ‘고양이손도 빌려쓰고’ 싶을 程度로 일손이 많이 要求되었고 바쁘게 돌아쳐야 하였다. 이로부터 ‘모내기때에는 부지깽이도 뛴다’는 俗談까지 나왔다. 모내기때에 일꾼들은 어둑새벽에 들로 나가 논판에 들어섰고 한두판의 모를 옮기고야 새날의 해를 맞고 아침밥을 들었다. 저녁에는 못자의 눈금이 보이지 않을 때에야 논판에서 나와 손발을 씻고 별빛을 밟으며 마을로 돌아왔다. 모내기를 위하여 農民들은 于先 논물을 여러 가지 方法으로 힘들게 댔다. 그리고 모내기 前날에 써레질을 끝내고 논판의 물을 調節하여 앙금이 앉은 논판의 흙이 꾸덕꾸덕해지게 하였다. 그래야 옮기는 모포기가 흙에 잘 꽂혀 물에 뜨지 않고 빨리 자랄 수 있었다. 農民들은 土質과 種子, 地帶的 特性에 맞게 抛棄臺數, 깊이...

  • → 뵈미. 黃海北道 遂安郡 산북리 所在地의 南西쪽에 있는 마을. "뵈미"는 "洑밀"이 變한 發音이다. 洑막이가 있다. 보말 또는 補陰洞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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