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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鄕土大百科 : 네이버 知識百科

  • 첫돌옷은 어린이가 世上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生日인 첫돌맞이 때에 입는 옷이다. 家庭에서는 어린이 첫돌을 큰 傾斜의 하나로 맞았는데 이날을 앞두고 특별한 意義를 附與하여 準備하는 것이 돌옷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첫돌을 맞는 어린이들에게 새옷을 곱게 만들어 입히는 風習은 매우 오랜 歷史를 가지고 있다. 16世紀 中葉의 記錄에는 어린이를 낳은 지 한 돌이 되면 새옷을 만들어 입히고 團長시킨다고 하였으며 『正祖實錄』에는 純祖의 첫돌날에 ‘私有化양건(四遊華陽巾)’에 紫朱色 緋緞으로 만든 겹저고리를 입혔다고 傳하고 있다. 이밖에 朝鮮 末期의 記錄이나 遺物 資料에 依해서도 어린이 돌옷의 形態와 種類에 對한 것을 具體的으로 알 수 있다. 이 資料들은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의 첫돌 때에 돌옷을 지어 입히고 곱게 丹粧시키는 風習이 朝鮮時代 全期間에는 勿論 以前 時期에도 있었다는 것을 斟酌할 수 있게 한다. 어린이 돌옷으로 傳해온 것은 特色있는 色동옷이었다. 色동옷은...

  • 陰曆 6月 15日을 流頭날이라고 하였다. 유두란 ‘桐乳頭沐浴(東流頭沐浴)’이라는 말이 含蓄된 것으로서 東쪽의 냇가에서 머리를 감으며 몸을 깨끗이 씻는다는 뜻이다. 우리 住民이 流頭날을 名節로 쇠기 始作한 것도 매우 오래前 일이었다. 三國時代 記錄에는 6月 流頭에 對하여 쓴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9世紀 初의 記錄에는 高句麗, 新羅 때에 나라사람들이 飮食을 갖추어 가지고 東쪽에 있는 냇가에 가서 머리를 감고 沐浴을 하며 잔치를 베풀고 즐겁게 놀았으며 不吉한 魔鬼를 쫓아버리는데 그날을 乳頭라고 한다고 하였다. 三國時代에 이미 이날을 쇠었다는 이야기는 『冽陽歲時記』의 筆者가 지어낸 말은 아닌 것이며 그 어떤 根據를 가지고 썼을 것이다. 또한 高句麗時期 作品으로 認定되는 ‘동동’歌謠에서도 流頭날 江물에 나가 머리를 빗는다고 한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流頭가 이 時期에 있었던 民俗名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2世紀 高麗사람 김극기의 文集에도...

  • 近頃(根莖)은 굵고 옆으로 뻗으며 思想(絲狀)으로 갈라진 超상엽(?狀葉)李 덮여 있다. 줄기는 곧추 자라며 높이 50~70cm이고 가지를 많이 친다. 잎은 넓은 線形(線形)이고 길이 30~50cm, 너비 2~3cm이며 綠色인데 좀 검푸른색이 돌고 밑部分은 普通 紫色을 띠며 가운데 도드라진 줄은 뚜렷하지 않다. 各 火鏡(花梗)의 밑에는 小葉(小葉)이 있다. 抛(苞)는 좁고 끝은 뾰족하며 안쪽의 것은 길이 5cm 程度로서 보다 길다. 꽃은 2~3個이며 直徑 8cm 程度이고 紫色이다. 火피통(花被筒)의 길이는 0.5~1cm로서 子方(子房)보다 훨씬 짧다. 外貨皮鞭(外花被片)은 아래로 드리우며 길이는 6~7cm이고 넓은 部分은 普通 둥근데 길이 3.5~4cm, 너비 4cm 程度이며 푸르스름한 紫色 또는 黑赤色이며 밑部分은 좁아져서 짧은 花鳥(花爪)를 이루고 白色 바탕에 赤紫色 줄이 있다. 耐火皮鞭(內花被片)은 길이 1~2cm로서 밑部分은 넓고 위는 좁아져 뾰족하다. 암술대 裂片(

  • 江原道 高城郡 領域에 있던 敝履. 本來 간성군 현내면의 地域이었다가, 後에 廢止되었다.

  • 평양시 重九譯 원 창전리(現在 만수동)地域에 있는 小學校. 學校는 1945年 9月 平壤第2中學校(人民班, 中等半 竝設)로 發足되었다. 1958年 9月 昌廛中學校, 1968年 4月 中等半이 分離되면서 昌廛人民學校로 되었다가 2002年 8月 22日 昌廛小學校로 되었다. 學校는 8,000餘 m2의 敷地面積에 3個의 敎師로 되어 있다. 學校에는 各種 實驗室, 敎區실, 圖書室, 放送室, 體育館, 水泳館, 講堂이 갖추어져 있으며 沐浴湯, 理髮室, 診療所, 牛乳供給실 等 便宜奉仕施設들도 갖추어져 있다. 學校에서는 敎授敎養事業을 改善하고 敎員들의 資質을 높여 模範敎授子隊列을 늘렸으며 全國敎授競演에서 여러 次例에 걸쳐 優勝의 榮譽를 지녔다. 1982年 2月 16日에 敎授敎養經驗集 『社會主義敎育테제를 貫徹하는 길에서』를 作成하여 높은 評價를 받았다. 國家 主席의 ‘表彰狀’(1967年, 1986年), ‘김일성勳章’(1967年), ‘國旗勳章第1級’(1983年), ‘2重千里馬學校’(1977年),

  • 平安南道 순천시에 있는 工場大學. 1977年 9月 1日 順天시멘트工場의 勞動者들을 對象으로 하여 創立되었다. 大學傘下에는 硅酸鹽工學科, 機械工學科, 自動化工學科 等 學科들과 官吏일꾼養成半, 豫科가 設置되어 있으며 硅酸鹽工學講座, 機械工學講座, 自動化工學講座, 社會科學講座, 基礎科學講座, 工業經營學講座 等 여러 講座들이 開設되어 있다. 이밖에 現代的實驗設備들을 갖춘 여러 個의 實驗室, 實習室들과 數萬 附議 藏書를 가진 圖書室이 있다. 大學에서는 基礎科學科目, 專攻科目의 敎授事業을 實驗實習과 現場講義를 配合하여 높은 科學技術的 水準에서 進行함으로써 學生들을 理論과 實踐이 兼備된 技術일꾼으로 育成하고 있다.

  • [經歷] 人民軍 박기서동무 所屬部隊 部隊長(1970.2) 黨 中央위 候補委員(1970.11) 黨 中央위 候補委員(1980.10) 最高人民會議 第7期 代議員(1982.2) 黨 中央위 委員(1986.2) 最高人民會議 第8期 代議員(1986.11, 황북 사리원시 도림동) 人民軍 上場(1989.11) 最高人民會議 第9期 代議員(1990.4, 황북 사리원시 도림동) 人民軍 大將(1992.4) 黨 中央軍事委員會 委員(1995.3) 平壤防禦司令官(1996.10) 人民軍 次帥(1997.4) 最高人民會議 第10期 代議員(1998.7, 第42號 選擧區) 平壤防禦司令官 解任(2005) 박성철 國家葬儀委員會 委員(2008.10) [勳章] 김일성勳章(1982.4) 김일성勳章(1992.4) [主要活動] 人民軍 親善參觀團長으로 中國 訪問(1989.11) 金正日 오진우 殯所 問喪視 隨行(1995.2) 김정일의 中隊長 · 中隊政治指導員 大會 參席 隨行(1995.3.15) 金正日 人民軍 第966大聯合部隊

  • 공기놀이는 房 안, 마루, 맨땅에서 銀行알 만한 둥근 조약돌을 가지고 어린 女子애들이 올려 던지고 잡거나 줍거나 놓는 等 여러 가지 재주를 겨루는 놀이다. 이 놀이는 女性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 놀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만큼 많이 놀던 것으로서 地方마다 그 이름이나 方法이 다양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공기놀이의 由來는 매우 오래다. 공기놀이는 이미 三國時代에 널리 普及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高句麗 수산리무덤(5世紀 後半期)의 西쪽壁에 다섯 個의 空氣를 가지고 올려 던지면서 재주를 부리는 모습이 生動하게 그려져 있다. 그 옆에는 두 팔을 벌리고 걸어 나오면서 空中에서 떨어지는 둥근 고리와 막대기, 수레바퀴처럼 생긴 작은 바퀴들을 잡기 위하여 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장천1號무덤(5世紀 中葉)의 사냥그림에는 舞臺服차림을 한 男子가 일곱 個의 동그란 空氣를 次例次例 空中에 올려 던지고서 내려오는 것을 날랜 動作으로 잡기 위해 緊張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 개성시 開豐郡 여현리, 풍덕리, 해평리 等 地域에서 産出되는 特産物. 凱風은 人蔘의 故鄕이라 불릴 程度로 開城高麗人蔘의 中心山地이다. 이 고장 高麗人蔘은 1500餘 年 前부터 栽培해 온 悠久한 歷史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地域은 ‘開城人蔘(開城人蔘)’, ‘高麗人蔘(高麗人蔘)’의 本産地로 일찍이 世上에 널리 알려졌다. 現在 高麗人蔘은 이 地域의 特産物로 世界的인 名聲을 떨치고 있다. 이 고장 人蔘은 오갈피나무科에 屬하는 特産藥用植物로서 높이 50~80cm 程度 자라는 여러해살이풀(多年生草本) 이다. 잎은 줄기의 윗部分에 1~6個가 윤생(輪生)해 있으며 葉柄(葉柄)이 긴 掌狀複葉(掌狀複葉)을 이루고 있다. 잎의 數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 1年生 잎은 3個의 작은 잎으로 된 複葉이며 2年生부터는 5個의 작은 잎으로 된 複葉이 2個 나온다. 6年生에서는 5~6個의 複葉이 붙는다. 잎의 數는 늘어난다. 여름에 줄기 끝에 긴 꽃대가 나오고 그 밑에 淡綠色의 꽃이 線形化서(扇形

  • 題目 : 勸酒歌 地方民謠 : 黃海北道 谷山郡民謠 採譜 : 車勝戰 窓 : 홍소연 들으시오 잡으시오 異術한盞 들으시면 千年萬年 億萬年을 산답니다 한盞들으시오 아니놀고 뭘하겠소 다시한番 놀아봅시다 잡으시오 들으시오 異術한盞 잡으시면 萬年長壽하오

  • 江原道 南東部 海岸에 位置해 있는 郡. 西北部는 通川郡, 西部는 金剛郡, 東南部는 江原道(남) 高城郡과 接해 있으며 東部와 北東部는 東海에 면해 있다. 東西(月비산리~海金剛리) 間의 길이는 28km이고, 南北(月비산리~염성리) 間의 길이는 55.5km이며, 面積은 858.657km2(섬까지 包含)로서 道 全體面積의 7.74%를 차지한다. 現在 行政區域은 1邑 23里로 構成되어 있으며 軍 所在地는 고성읍이다. 江原道 高城郡 地圖

  • 白頭山의 特異한 自然景觀은 主로 白頭山의 火山活動과 그에 結合된 氣候條件을 비롯한 自然地理的 要素들과 많이 關聯되어 있다. 只今으로부터 約 100萬年 前에 이 一帶에서 地質學的 運動으로 地殼이 갈라지면서 생겨난 틈을 따라 땅속깊이에서 1,000℃ 以上의 뜨거운 鎔巖이 위로 솟구쳐 오르면서 火山이 噴出하기 始作하였다. 白頭山마루는 2,000m 以上의 높은 봉우리들이 60°以上의 急한 絶壁을 이루면서 屛風처럼 天地를 둘러싸고 솟아 있다. 各異한 模樣과 높이를 가진 봉우리들은 서로 잇닿아 있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보면 柔順하고 評퍼짐하여 어디서나 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天地湖畔에서 둘러보면 山岳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山岳이고 벼랑 가운데서도 가장 높고 險한 칼벼랑으로 되어 있다. 白頭蓮봉에는 將軍峯과 같이 높고 큰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낮은 봉우리도 있다. 또한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꼭대기가 마치 가마뚜껑처럼 생긴 두리뭉실한 봉우리도 있다....

  • 平安北道 香山郡 향암리에 있는 절. 1042年에 創建한 後 1765年까지 여러 次例 고쳐 지었다. 절에는 主佛全人 大雄殿을 비롯하여 萬歲樓, 觀音殿, 解酲願, 영산전, 冥府殿, 응향角 等 여러 建物들과 4角9層塔과 8角13層塔 그리고 조계문, 解脫門, 天王門 等 여러 建築物들이 南北軸을 中心으로 左右에 地勢에 맞게 配置되어 있다. 지난 6 · 25戰爭時期 爆擊으로 大雄殿, 萬歲樓를 비롯한 여러 建物들이 破壞되었는데 大雄殿은 1976年에, 萬歲樓는 1979年에 各各 高麗, 朝鮮時代의 建物의 特色에 맞게 原狀대로 復舊되었다. 妙香山 普賢寺는 아름다운 景致에서 뛰어날 뿐 아니라 建築術이 優秀하며 特히 壬辰倭亂時期에 이름을 떨친 愛國的인 中 西山大師의 史跡이 있어서 그 이름이 높다. 妙香山漁具의 향산천 기슭에 雄壯하게 들어앉은 本社인 普賢寺와 골짜기와 봉우리들에 널려 있는 末寺와 庵子들에는 祖上들의 뛰어난 建築術과 藝術才能이 깃들어 있다. 普賢寺는 향산천에 垂直된...

  • 咸鏡北道 南쪽에 位置해 있는 郡. 北쪽은 名間群 · 漁郞郡, 南쪽은 김책시 · 花臺郡, 東쪽은 明川郡 · 花臺郡, 西쪽은 양강도 白巖郡과 咸鏡南道 단천시와 接해 있다. 東西(금송리~용담勞動者區) 間의 길이는 34km이고, 南北(청암리~豊溪里) 間의 길이는 40km이며 面積은 1,032餘 km2로서 道 全體面積의 6.1%를 차지한다. 現在 行政區域은 1邑 5具 22里로 되어 있으며 軍 所在地는 길주읍이다. 咸鏡北道 吉州郡 地圖

  • 短簫는 우리나라의 固有한 民族管樂器의 하나로서 퉁소나 저(저)와 같이 세로 쥐고 부는 樂器이다. 帳籍에 屬하는 퉁소, 저보다 木管의 길이가 짧다고 하여 ‘端的(短笛)’이라고도 하였다. 『三國史記』, 『高麗史』, 『樂學軌範』을 비롯한 歷史資料에 端的에 關한 記錄이 傳하지 않으므로 短簫에 由來에 對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이미 오래 前부터 製作 利用된 것으로 認定되고 있다. 朝鮮末期까지 傳해진 短簫의 形態와 演奏法을 보면 퉁소, 저와 비슷하다. 短簫가 퉁소와 다른 點은 갈대청을 붙인 靑공이 없고 木管의 길이와 굵기가 퉁소보다 짧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短簫의 演奏法은 퉁소와 같으며 저와도 吹口, 陰功, 演奏法에서 같다. 다만 短簫가 저보다 작을 뿐이다. 短簫는 『樂學軌範』에 실려있는 ‘저’라는 樂器처럼 基本管의 앞에 5個 구멍, 뒤에 1個 구멍이 있는데 제1공은 왼손 無知로, 第2, 3共은 왼손 식지 · 葬地로, 第4, 5, 6共은 오른손 식지 · 葬地 · 명지로 各各 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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