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韓國民俗藝術事前 : 舞踊 : 네이버 知識百科

提供處 情報

韓國民俗藝術事前 : 舞踊
  • [正義] 兩손에 접부채[摺扇]를 들고 추는 춤으로 1954年 11月 김백봉에 依해 創作된 춤. [內容] 무당춤, 탈춤, 줄타기, 판소리 等 負債는 韓國 연희사에서 소리를 하거나 춤을 추는 데 貴重하고 主要한 道具로 쓰였다. 負債를 兩손에 들어 접고 펴고 감고 어르는 等의 負債사위를 中心으로 춤추는 부채춤은 韓國舞踊史의 近·現代 過程에서 西洋式 舞臺로 옮겨지는 變貌過程을 거쳐 藝術的으로 새롭게 創出되어 發展한 作品이다. 1954年 11月 26日부터 28日까지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舞踊發表會’를 연 것이 公式的인 初演初演이다. 當時는 獨舞獨舞로 추었으며 三佛扇三佛扇이 그려진 접부채와 붉은 띠로 허리를 잘록하게 맨 高句麗 風의 蒙頭里蒙頭里를 變形한 服飾을 하였다. 初演 後 文化映畫로 製作되어 無慮 20萬 回를 웃도는 上映記錄을 세웠으며, 國內는 勿論 政府機關이나 公共團體에서 計劃하는 海外舞臺에서 主宗으로 올려지면서 韓國을 代表하는 춤의 하나로 그 이름과 存在性이...

  • [正義] 佛敎儀式에서 僧侶가 兩손에 哱囉를 들고 추는 춤. [內容] 佛敎 意識舞踊人 作法無作法舞의 하나로 不法을 讚揚하는 意味와 함께, 나쁜 기운을 물리쳐 度量을 淸淨하게 守護하고 意識에 參與한 이들의 內面을 淨化하는 뜻을 지닌다. 바라는 本來 서역의 樂器라 傳하며, 初期에는 구리로 만든 鉢盂鉢盂 模樣이었으나 漸次 지름이 커지고 납작한 모습으로 變化되었다. 中國 禪宗의 規律을 적은 唐나라 『백장청규』에는 佛殿에 香을 올리거나 說法할 때, 茶毘式, 주지 晉山式 等에 哱囉를 울려 始作을 알리도록 하였다. 따라서 統一新羅時代에 禪佛敎가 들어오면서 佛敎儀式에 哱囉를 使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高麗圖經』에는 “보제사普濟寺 僧堂에서 擧行한 儀式에서 哱囉를 使用했는데 생김새가 작고 소리가 시름겹다.”라는 記錄이 있어, 高麗時代에 이르면 佛敎儀式에서 바라 使用이 어느 程度 普遍化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世紀 以後 近世에 이르기까지 時代別로 作品이 傳하는...

  • [正義] 사람의 身體 不自由로 因한 움직임의 特徵을 흉내 내는 춤. [內容] 病身춤이 많이 추어진 時期는 朝鮮 中葉 壬辰倭亂 以後로, 民衆意識이 높아지면서 兩班을 諷刺하며 發達한 것으로 보인다. 이 時期는 兩班과 賤民과의 差別이 甚했지만 탈춤, 農樂 等 民衆藝術이 發達하면서 庶民들의 놀이판에서 風物을 치고 加貿하는 가운데 兩班을 諷刺한 病身춤을 추었다. 탈춤판에서는 兩班諷刺와 僧侶 嘲弄 等의 主題로 하는 社會諷刺가 탈춤 內容의 主流를 이루었다. 한便으로는 무당이 벌인 마을굿판에서도 무당은 勿論 구경꾼들도 病身춤을 餘興으로 추었다. 또한 마을의 回甲 잔치, 歲時風習 等의 놀이판에서도 病身춤을 추었으며 오늘날까지 殘存하였다. 病身춤은 탈춤, 農樂을 비롯하여 여러 歲時風習의 大同놀이와 回甲 및 婚禮 等의 잔치판에서 뒤풀이춤으로 興行하였다. 또한 流浪藝人들의 광대놀이에서도 잔칫집 等에 招待되어 興을 돋우기 위해 長期춤의 하나로 病身춤을 추어 兩班들을...

  • [正義] 煞풀이라는 무악巫樂 장단에 맞추어 手巾을 들고 추는 南道南道 巫俗 系列의 民俗춤. [內容] 煞풀이춤은 살煞 또는 厄厄을 豫防하거나 풀기 위한 巫俗에서 나온 祭儀的 性格의 춤에서 由來한다. 그러나 韓末 身分制의 廢止로 無人巫人들이 無業巫業을 버리고 그中 一部가 妓房妓房에 모여들면서 感想을 위한 藝術춤으로 定着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煞풀이춤은 巫俗춤으로 出發해 才人이나 妓生 等 曳引에 依해 妓房藝術로 자리 잡았으며, 近代 以後에 舞臺化를 거치며 장르化되었다고 하겠다. 煞풀이춤에 內在된 心性은 깊은 恨恨이지만, 單純히 슬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歡喜와 신명의 世界로 승화시키는 二重 構造의 人間的 感情을 表現한다. 따라서 恨의 鑑定은 停滯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풀어내는 過程을 통해 昇華의 길로 접어드는데, 맺고, 삭히고, 움켜 안는 等의 消極的인 情緖와 包容하고, 풀어내고, 떨쳐내는 積極的 情緖가 서로 交叉하며 發展해 간다. 煞풀이는 巫俗에서 派生된...

  • [正義] 釜山廣域市 東來에서 傳承되는 土俗 춤으로, 흰 道袍자락을 너울거려 鶴의 모습을 形象化한 鶴춤. [內容] 東來鶴춤의 形成 背景으로 東來마을의 地形과 關聯된 이야기가 있다. 東來마을은 예부터 地形이 鶴의 形象과 같다 하여 學에 關聯한 地名들이 많이 있었다. 鶴의 胴體는 마안령馬鞍領, 왼쪽 날개는 東將臺東將臺, 오른쪽 날개는 西將臺西將臺, 칠산동 一帶를 학소대鶴巢臺, 演算4棟을 학암마을(황새바위)이라 부르고, 現 거제동(敎育大學 앞)을 學란(황새알)마을이라 불렀다. 이 황새바위 一帶는 작은 貯水池들이 많이 있어 수많은 鶴이 떼를 지어 棲息하였다. 이로 인하여 옛날부터 東來 地域 사람들은 鶴의 모습과 動態를 많이 볼 수 있었으므로, 東萊 特有의 덧배기춤이 淸楚하고 優雅하게 鶴춤답게 自生的으로 形成될 수 있는 要件은 充分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東來 地域은 天然溫泉이 有名하여 이로 인해 自然히 놀이를 좋아하는 風流客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色香으로도 널리...

  • [正義] 판굿에서 우두머리 장구잽이가 나와 多彩로운 가락과 춤으로 솜씨를 보이며 하는 連行. [內容] 農樂판에서 장구춤의 다른 이름은 설장구춤이며, 설장구놀이라는 名稱이 더 一般的이다. 판굿에서 장구잽이가 나와서 설놀음을 펼치는데 이를 個人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傳承되는 설장구춤은 湖南右道 農樂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장구잽이들끼리 미지기, 제자리 뛰기, 바꿈질, 三進三退, 옆걸음値基, 筵風擡, 굿거리, 덩덕궁이, 세산조시 等 여러 가락을 치던 것을 金弘集이 혼자 나와 발림을 하며 구정놀이, 굿거리, 덩덕궁이, 세산조시, 동살풀이, 후두둑가락 等 장구잽이가 펼칠 수 있는 모든 技巧를 驅使하게끔 構成했다. 설장구의 賣渡地라는 맺이가락은 井邑의 이봉문 설장구에 依해 다듬어졌다고 한다. 湖南 地域 설장구춤 中에서 김병섭類 설장구는 다스름, 휘모리, 동살풀이, 굿거리, 三채, 筵風擡로 構成되며 주된 춤사위를 紹介하면 다음과 같다. 1. 숙바더듬: 오른손을 놀리는...

  • [正義] 特定 地域의 共同體 안에서 自然發生的으로 生成하여 特有의 鄕土的 特色을 바탕으로 民謠가락이나 民俗樂器 演奏에 맞춰 추는 춤. [內容] 民俗舞踊民俗舞踊, Folk Dance은 한 나라나 地方에서 自然的으로 생겨나 歲月의 흐름에 따라 獨特한 形態로 發展한 춤으로 地域 사람들의 生活에 깊이 뿌리 박혀 傳해 오는 特性이 있다. 이는 個人만의 것이 아니고 集團에 依하여 統一된 共同體 意識과 起源에서 發達된 點이 共通된 性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發展 過程에서 職業化하고 專門化된 境遇도 있지만 一般的으론 民間, 特히 農耕·漁撈·遊牧民族 사이에서 發生하여 傳承되는 것이 特徵이다. 韓國은 일찍부터 農耕 民族으로 出發하여 예로부터 많은 種類의 民俗舞踊이 傳來되었다. 이들을 크게 나누면 主로 農業·漁業 等 生業에 關聯되어 그 豐饒를 祈願하는 놀이로 發達한 춤, 巫俗巫俗과 其他 民間信仰에서 비롯된 춤, 各 고장의 傳說과 어느 特定 事實에서 비롯된 춤...

  • [正義] 檢劍을 들고 추는 춤으로 上古時代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形態로 連行되어 온 춤. [內容] 劍舞劍舞는 이 땅의 歷史만큼이나 오랜 淵源을 지니고 있는 춤이다. 上古時代의 狩獵舞踊狩獵舞踊이나 儀禮舞踊儀禮舞踊 或은 戰鬪舞踊戰鬪舞踊에서 그 由來를 찾을 수 있는 劍舞는 三國時代, 高麗時代, 朝鮮時代를 거쳐 現在에 이르기까지 그 脈脈을 이어 오고 있는 韓國의 代表的 傳統춤이다. 公演 形態를 갖춘 劍舞의 出現은 三國時代 新羅의 황창랑黃昌郞 說話에 起因한 黃槍劍舞黃昌劍舞로, 假面을 쓴 동자童子가 추는 童子假面舞童子假面舞의 樣式이다. 황창劍舞는 高麗時代에도 傳承되어 朝鮮時代 初까지 處容舞와 함께 演戱되었다. 黃槍劍舞와 다른 樣式의 劍舞가 出現한 것은 朝鮮時代 肅宗 以後로 假面을 벗고 여기女妓가 추는 여기劍舞女妓劍舞의 形態가 나타난다. 여기劍舞는 正祖 때 宮中淨齋로 定着되면서 宮中연향宮中宴享의 性格에 맞도록 連行 規模가 커지고 衣裳도 華麗해졌으며...

  • [正義] 非定型化된 춤으로 呼吸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感情을 表出하여 서서 추는 卽興춤. [內容] 立춤은 卽興舞·허튼춤·굿거리춤·手巾춤·敎坊춤·煞풀이 等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現在 立춤의 名稱이나 槪念은 正確히 定立되지 못한 狀況에서 廣義的 槪念으로 定義하고 있다. 立춤에 對한 記錄은 1866年(高宗 3) 홍순학洪淳學의 紀行歌辭人 <燕行歌燕行歌>와 作家·年代 未詳의 閨房歌辭人 <月城가月城歌>에서 나타난다. <燕行歌>는 洪淳學이 家禮冊封奏請社嘉禮冊封奏請使의 書狀官으로 北京에 다녀온 使行 記錄이다. 여기서 홍순학은 先天 議政檢에서 베푼 연향에서 춤을 鑑賞한 後 感懷를 簡略히 敍述하였는데, “맵시 있는 立춤, 시원하다 북춤이요, 工巧하다 抛毬樂, 凄凉하다 배따라기, 閑暇하다 獻蟠桃요, 우습도다 乘務로다”로 입춤을 表現하고 있다. <月城가>는 總 190句로 構成된 두루마리 形式의 歌辭이다. 이는 月城에 사는 政丞이 여러 宰相과 子孫, 親戚을 모시고 萬壽無疆을...

  • [正義] 湖南 地域을 中心으로 傳承된 民俗놀이로서, 보름달이 뜬 名節날 밤에 女性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추던 集團舞踊. [內容] 거의 모든 民俗舞踊이나 놀이가 그렇듯이 正確한 起源이나 歷史를 알기 어렵다. 다만 여러 記錄이나 口傳을 통해서 그 形成과 傳承의 일말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강강술래의 起源에 對해 크게 두 가지 說이 있는데, 하나는 馬韓時代의 歲時風俗에서 祈願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李舜臣 將軍이 鳴梁海戰의 勝利를 위해서 創案했다는 說이다. 馬韓時代에는 農事가 始作되는 5月과 農事를 마친 10月에 鬼神에게 祭祀를 모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여러 사람이 서로 따르면서 손발을 맞춰 땅을 높고 낮게 밟으면서 춤을 추었는데 中國의 鐸舞鐸舞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中國의 鐸舞가 樂器를 가지고 노는 춤이라는 點에서 우리나라 農樂의 起源을 鐸舞에서 찾기도 하지만, 여러...

  • [正義] 全羅南道 珍島 地域에서 兩손에 채를 쥐고 몸에 密着된 북을 치며 추는 춤. [內容] 進度북춤은 全南 珍島 地域에서 兩손에 채를 쥐고 추는 춤으로, ‘珍島북놀이’라고도 일컫는다. 北은 몸에 밀착시켜 어깨끈을 메고, 허리끈으로 조여 묶는다. 兩손에 채를 쥐고 兩쪽 모두 연주한다는 뜻에서 양북이라고도 하고, 채를 雙으로 들고 춘다고 해서 雙北이라고도 한다. 珍島北은 통나무로 된 梧桐나무나 미루나무의 中央 部分을 파서 여기에 소가죽, 말가죽 等을 대고 소가 죽 줄을 X字로 매서 가죽을 固定시킨다. 1980~1990年代의 양태옥이나 박관용의 境遇, 소리북을 메고 북춤을 추기도 했다. 북춤을 출 때 고깔을 쓰는 것이 一般的이었지만 以後 북춤이 變化를 겪으면서, 特히 박병천 等에 依해 상투머리를 하기도 했다. 朝鮮 末期와 日帝强占期에는 김행원金行元, 1878~1935(珍島 出身, 김득수의 아버지)李 북춤이 뛰어나 湖南 一帶에서 名聲을 크게 떨쳤다고 傳해진다. 以外에 金基洙金基

  • [正義] 農樂의 小鼓치輩들, 敎坊(妓房)曳引, 先소리꾼이 小鼓를 들고 추는 춤. [內容] 小鼓춤은 系統別로 農樂界 小鼓춤, 基傍系 小鼓춤, 선소리界 小鼓춤 等 세 가지가 있다. 類型別로는 고깔小鼓춤, 채象小鼓춤, 小鼓立춤 또는 豫期小鼓춤, 발림小鼓춤 等이 傳承되고 있다. 最近에는 小鼓춤을 綜合的으로 再構成한 創作小鼓춤도 舞臺에 많이 오르고 있다. 農樂에서 추는 小鼓춤은 고깔小鼓춤과 채象小鼓춤으로 나뉜다. 채象小鼓춤은 軍樂으로서의 機能을 가졌던 時期에 戰笠을 쓰고 象毛를 돌리면서 추는 形式에서 由來되었고, 고깔小鼓춤은 두레들의 勞作農樂과 査察 일을 하던 乞粒牌들에 依해 創造된 춤으로 傳해진다. 채象小鼓춤은 채象毛彩象毛 끝에 달린 길고 흰 띠를 돌리면서 춘다 하여 ‘象毛춤’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채象毛 爲主의 윗놀음으로 이루어지는데, 긴 천이나 종이가 돌아가는 模樣새 때문에 主로 힘차고 剛한 느낌으로 表現한다. 湖南左道農樂, 京畿忠淸農樂, 輕傷農樂에서 볼 수...

  • [正義] 晋州敎坊이나 券番에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 [內容] 1997年 慶南無形文化財 第21號로 指定받은 춤으로 晉州劍舞, 晋州抛毬樂, 晋州 閑良舞와 함께 敎坊의 固有한 레퍼토리이다. 晋州敎坊굿거리춤은 ‘立춤’으로 基本춤의 性格이 强하며 다양한 이름으로 命名된다. 卽, 敎坊에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추는 굿거리춤, 手巾을 들고 추는 手巾춤, 自身의 感情에 따라 거침없이 추는 卽興舞·허튼춤, 그리고 맨손으로 추는 손춤 等이 있다. 晋州는 朝鮮時代부터 여기女妓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音樂이 豐富했던 藝鄕이다. 晋州敎坊굿거리춤은 晉州南江의 風光과 券番에서 마지막 曳引으로 지냈던 春堂春堂 김수악金壽岳, 1926~2009에 依해 傳承되었다. 김수악은 國家無形文化財 第12號 晉州劍舞와 慶尙南道 無形文化財 第21號 晋州敎坊굿거리춤 藝能保有者이다. 김수악은 8歲 때 券番으로 들어가 晉州圈番 先生인 김옥민으로부터 처음으로 춤을 師事하고, 서울에서는 한성준...

  • [正義] 演戱者가 탈을 쓰고 才談과 춤으로 劇的인 場面을 演出하는 傳統藝術. [內容] 탈과 탈춤의 起源은 原始 狩獵과 漁撈生活에서 動物탈을 쓰고 僞裝하여 사냥의 成果를 올리는 한便, 사냥 成功을 祈願하며 탈춤을 추거나 巖刻畫에 새김으로써 그 念願을 表現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證據가 되는 遺物과 遺跡으로, 釜山 影島의 동삼동 貝塚에서 發見된 가리비탈이나 蔚山 盤龜臺 巖刻畫와 천전리 巖刻畫를 비롯하여 世界 여러 나라의 巖刻畫나 洞窟壁畫에서 狩獵漁撈生活의 斷面과 탈춤을 證明하고 있다. 三國時代 백제의 器樂은 味摩之味摩之가 612年 日本에 傳한 탈춤이며 230餘 種의 頉이 傳하고 있다. 또한 新羅의 황창랑黃倡郞의 劍舞劒舞와 無㝵舞無 舞 및 新羅 誤記五伎인 월전月顚·束毒束毒·狻猊?猊·對面大面 等과 處容舞處容舞 等도 탈춤의 一種이다. 高麗의 八關會와 燃燈會는 新羅 以來 演戱되었던 歌舞百戱로 그 內容은 『牧隱集』, 『山臺雜劇』과 『驅儺行』에서 살필 수가...

  • [正義] 火星才人廳 이동안에 依해 傳承된 꽹과리를 들고 추는 춤. [內容] 才人廳은 朝鮮 時代인 1784年에 設置되어 1920年 舊韓末까지 130餘 年을 存續한 曳引 養成機關이다. 1908年 都山主都山主였던 이종만의 證言에 依하면 當時 才人廳을 광대廳, 또는 花郞廳이라고도 불렀으며 競技·忠淸·全羅 三道에 存續했었다고 한다. 各道마다 道廳이 있었고, 그 場을 대방大房이라 하며, 대방 밑에는 都山主가 두 사람이 있고 일도를 左右로 나누어 左도 都山主, 右島 都山主로 分離 管轄하였다. 才人廳의 中心機關인 火星才人廳華城才人聽이 가장 規模가 厖大하고 全國의 藝人들을 總括하였던 것으로 보아 어느 程度였는지 斟酌할 수 있다. 科擧及第나 나라의 慶事에 으레 登場하는 演戱가 벌어지면 이 火星才人廳에서 모든 才人을 審査하여 宮闕을 비롯해 必要한 곳곳에 보냈다. 이동안李東安은 光武臺에서 火星才人廳 出身의 박춘재朴春才로부터는 발탈을, 김인호金仁浩로부터는 太平舞·乘務...

位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