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紅樓夢事前 : 네이버 知識百科

提供處 情報

紅樓夢: 人命, 用語辭典

홍상훈 솔출판사

限界에 이른 封建社會의 斷面을 靑寫眞으로 보여주는, 無慮 700名이 넘는 登場人物로 構成된 厖大한 스케일의 構圖 속에 歷史的 興亡盛衰를 겪는 巨大한 貴族家門을 設定하고, 다시 그곳을 舞臺로 하여 神話世界와 現實世界를 오가는 神祕로운 사랑의 三角關係를 깊이 있게 그려내 마침내 삶의 眞正한 意味에 對한 眞摯한 苦惱와 省察을 提示한다. 紅樓夢의 이야기는 두 個의 脈絡이 녹아들어 進行된다. 하나는 封建社會의 縮小版인 가씨 家門, 卽 녕局部와 英國富의 호화로운 삶과 거기에 寄生하는 수많은 群像들, 그리고 그 家門의 衰落으로 이어지는 一種의 社會史的 흐름이다. 여기에서는 祖上의 蔭德으로 富貴榮華를 누리는 貴族家門의 無能한 後孫들이 奢侈와 放蕩을 일삼아 道德的으로 墮落하면서 同時에 家門의 運勢까지 기울게 만드는 過程과 그들의 그늘에서 私利私慾을 챙기는 僞善的인 무리들의 實體가 다양한 階層의 男女老少를 網羅하여 徹底하게 暴露된다. 둘째는 ‘木石全盲木石前盟’이라는 前生의 因緣으로 엮어진 가보옥과 임대옥, 그리고 ‘金玉輛年金玉良緣’이라는 現世의 運命으로 엮어진 가보옥과 설步車의 悲劇的인 三角關係이다. 이 사랑 이야기는 가씨 家門의 巨大한 邸宅 안에 있는 대관원이라는 定員에 雲集한 美女들의 純潔하고 아름다운 삶과 함께 슬픈 童話처럼 펼쳐진다. 冷靜하고 殘酷하기까지 한 封建禮敎의 現實 속에서 悲劇的으로 犧牲당하는 主人公들의 純粹한 以上을 통해 덧없는 꿈과 같은 人生의 本質을 120回나 되는 長篇의 이야기로, 또 ‘꿈속의 꿈’으로 絶妙하게 敍述해나간다. 特히 一部 앞뒤의 敍述에서 微妙한 矛盾이 있다는 點은 오히려 讀者로 하여금 如前히 ‘未完成’인 이 作品의 줄거리를 自己 나름대로 完成하는 想像力을 發揮하게도 만든다. 仔細히보기

  • 홍상훈

    譯者 홍상훈은 1965年 全南 光陽에서 태어나, 서울大學校 중어中文學科를 卒業한 뒤 同 大學院에서 博士學位를 받았다. 現在 인제대학교 中國學部 敎授로 在職 中이다. 多數의 學術論文 外에 著書로 『하늘을 나는 수레, 『그래서 그들은 西天으로 갔다-서유기 다시 읽기』, 『傳統 時期 中國의 敍事論』, 『漢詩 읽기의 즐거움』, 『漢詩에서 배우는 마음 經營』, 『中國 古典文學의 傳統』 等이 있고, 譯書로 『西遊記』(共譯), 『中國小說批評史略』, 『베이징』, 『完譯 杜甫律詩』(共譯), 『시귀의 노래-完譯 以下 詩集』, 『별과 宇宙의 文化史』, 『儒林外史』(共譯), 『양주화房錄』(共譯) 等이 있다. 仔細히보기

  • 王朝 이름. 265年에 辰王(晉王) 司馬炎(司馬炎, 236~290, 시호(諡號)는 무皇帝(武皇帝))李 위나라 원제(元帝) 弔環(曹奐)을 몰아내고 세운 王朝로서 洛陽(洛陽)에 都邑을 두었다. 280年에는 동오(東吳)를 멸망시키고 三國(三國)을 統一했으나 37年 後인 316年에 韓國(漢國, 前兆(前趙))에 依해 滅亡했다. 317年에 皇室의 後裔인 낭야王(琅?王) 司馬睿(司馬睿, 276~323)가 健康(建康, 只今의 쟝쑤[江蘇] 난징[南京])에서 陳(晉) 王朝를 다시 세웠는데, 이것을 '東進(東晉)'이라고 부른다.

  • 王朝 이름. 581年에 北周(北周)의 精製(靜帝, 579~580 在位)가 當時 大勝上(大丞相)이자 上柱國(上柱國)으로 있던 수國共(隨國公) 楊堅(楊堅, 541~604)에게 帝位를 물려주자, 良犬은 年號를 槪況(開皇)으로 바꾸고 나라 이름을 수(隋)로 바꾸었다. 隋나라는 그로부터 9年 뒤인 589年에 거의 100年 동안 分裂되어 있던 中國 大陸을 統一했다. 비록 38年이라는 짧은 期間 만에 滅亡하고 말았지만, 試驗을 통한 官僚 選拔 制度를 導入하고 經濟와 文化, 軍事力을 大大的으로 發展시켰다. 廣大한 領土와 700萬 名이 넘는 人口를 거느렸던 高調(高祖) 良犬은 東突厥(東突厥)의 왕이 '成人漠然加한(聖人莫緣可汗)'이라는 極尊稱으로 부를 程度로 威勢를 떨쳤다. 그러나 兩制(煬帝) 陽光(楊廣, 569~618)李 大規模 土木工事를 벌여 宮殿을 짓고 運河(運河)를 열고, 세 次例나 高句麗(高句麗) 征伐에 나섰다가 失敗하면서 各地에서 農民叛亂이 일어났다. 結局 618年에 將軍 私馬德감(

  • 王朝 이름. 220年에 曹操(曹操)의 셋째 아들 조비(曹丕, 問題(文帝))가 動한(東漢) 獻帝(獻帝)를 밀어내고 皇帝가 되어 세운 王朝로, 三國(三國) 時代에 北方과 西域을 包括하는 廣大한 領土를 차지했던 가장 强力한 王朝이다. 조비는 宦官(宦官)과 外戚(外戚)에 依해 左右되던 調整 政治의 弊端을 바로잡기 위해 九品中正法(九品中正法)을 施行하여 一般 士大夫들이 官僚로 採用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265年에 司馬炎(司馬炎, 236~290, 시호(諡號)는 무皇帝(武皇帝))李 위나라 원제(元帝) 弔環(曹奐)을 몰아내고 陳(晉)나라를 세움으로써 짧은 歷史를 마감했다.

  • 王朝 이름. 紀元前 206年에 高祖(高祖) 劉邦(劉邦)이 세운 王朝로서 西紀 9年에 王莽(王莽)李 政變을 일으켜 新(新)나라를 建立할 때까지 維持되었다. 그러다가 書記 25年에 漢나라 王朝의 後裔인 有數(劉秀)가 新나라를 무너뜨리고 다시 漢나라를 建立했으니, 그가 光武帝(光武帝)이다. 歷史에서는 電子를 傳한(前漢, 또는 書翰(西漢)), 後者를 厚한(後漢, 또는 動한(東漢))으로 區分한다. 後漢은 西紀 220年에 마지막 皇帝인 獻帝(獻帝)가 强壓에 依해 曹操(曹操)의 아들 조비(曹丕)에게 帝位를 물려줌으로써 歷史에서 사라지게 된다. 조비는 以後 나라 이름을 位(魏)로 바꾸었고, 事後에 問題(文帝)라는 諡號(諡號)를 받았다.

  • 孫悟空의 稱號. 明나라 때의 長篇小說 『西遊記(西遊記)』의 主人公인 孫悟空이 스스로 붙인 封號이다. 72가지의 變化술과 근두운, 如意棒을 가진 그는 처음 하늘나라에 불려가 馬廏間을 管理하는 匹馬온(弼馬溫)이라는 末端 벼슬을 받는데, 나중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花果産의 원숭이 무리로 돌아가 하늘나라에 對抗하면서 '堤川大成'이라고 自處했다. 이것은 하늘나라 玉皇上帝와 同等한 偉大한 新鮮이라는 뜻이다. 以後 그의 威勢를 누르지 못한 玉皇上帝는 그 封號를 承認해준다.

  • 本館紅樓夢: 人命, 用語辭典 祖上들이 살던 地方을 일컫는 것으로서 '원的(原籍)'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一般的으로 '本館'이라는 表現을 더 많이 쓰는데, 例를 들어 '金海(金海) 金(金)氏'라고 했을 때 '金海'가 바로 本館에 該當한다. 外國語 表記 本貫(漢字) 露出 卷數 1卷 本館韓國古典用語辭典 원的(原籍). 外國語 表記 本貫(漢字) 用例 敵.<글월적. 또 世俗에서 本館을 일컬어 원的이라고 한다.> ; 籍<글월젹 又俗稱本貫曰原籍> [訓蒙字會 商圈, 18張 앞쪽] 原籍韓國古典用語辭典 本館(本貫). 外國語 表記 原籍(漢字) 用例 敵.<글월적. 또 俗稱 本館을 원的이라고 한다.> ; 籍<글월젹 又俗稱本貫曰原籍> [訓蒙字會 商圈, 18張 앞쪽]

  • 飮食 이름. '쟈오수[角黍]', '桶쫑[筒?]'이라고도 부르는, 中國 端午節의 傳統 飮食이다. 이것은 棕櫚나무 잎에 찹쌀과 대추 等을 넣어서 찐 것으로, 戰國時代 初(楚)나라의 屈原을 追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傳說이 있다.

  • 꽃 이름. 계화(桂花, Osmanthus fragrans)는 월계(月桂), 木犀(木犀)라고도 부르는 溫帶性 常綠樹의 꽃으로, 主로 中國 西南部 地域에 많이 자란다. 그 꽃은 乳白色과 黃色, 붉은 오렌지色 等이 있는데, 그中 黃色 系列의 꽃을 '금계화'라고 부른다.

  • 구름 이름. 明나라 때의 長篇小說 『西遊記(西遊記)』에서 孫悟空이 타고 다니는 구름으로, 한 番에 10萬 8千 里를 날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孫悟空이 領帶坊村山(靈臺方寸山) 四月三成洞(斜月三星洞)에서 須菩提調査(須菩提祖師)에게서 72가지의 變化술과 함께 배운 것으로 說明되어 있다.

  • 文學 用語. 時(詩)나 사(詞)를 지을 때 定해진 芸閣(韻脚)의 자리에 쓰도록 規定된 글字이다. 여기에 쓰는 글字들은 聲調에 따라서 部類를 區分해 놓은 韻譜(韻譜)에 羅列된 글字들만을 쓸 수 있다. 例를 들어 宋나라 때 柔軟(劉淵)이 編纂한 韻보인 『平水韻(平水韻)』 上平聲 15部와 下平聲 15部, 상성 29部, 巨星 30部, 入城 17部 等 106個의 部類와 그에 屬하는 글字들을 分類하여 整理해놓았다. 例를 들어서 上平聲의 세 番째에 該當하는 '강부(江部)'에는 江(江), 港(缸), 窓(?), 房(邦), 港(降), 雙(雙), 롱(瀧), 房(龐), 黨(撞), 江(?), 江(?), 江(?), 江(腔), 房(?), 腸(?), 黨(幢), 공(?)까지 17者가 들어 있는데, 詩를 지을 때 이것을 韻字로 쓰는 境遇는 이 17字 外에 다른 것을 쓸 수 없다.

  • 술 이름. '美洲(米酒)'라고도 부르는 釀造酒이다. 이 술은 高粱酒로 대표되는 百株(白酒)와는 달리 알코올 度數가 20度 以下이며, 色깔 또한 美色과 黃褐色, 赤紫色 等으로 다양한데 저쟝[浙江]의 紹興酒와 산둥[山東]의 즉묵로주, 푸졘[福建]의 鎔巖침航走, 幅巾로주 等이 여기에 屬한다.

  • 古代 中國의 詩 形式 中 하나. 절구(絶句)와 함께 近體詩(近體詩)를 代表하는 形式으로서 五言律詩와 七言律詩(七言律詩)가 있다. 律詩는 한 手(首), 卽 한 篇의 作品이 모두 여덟 個의 句節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 두 句節을 합쳐서 修鍊(首聯), 다음 두 句節은 頷聯(?聯), 세 番째는 痙攣(頸聯), 마지막은 未練(尾聯)이라고 부른다. 五言律詩는 唐나라 初期에 形成된 것으로서 各 句節은 모두 다섯 글字로 되어 있으며, 줄여서 '五律(五律)'이라고도 부른다. 五言律詩에서는 짝數 句節의 마지막 글字는 押韻(押韻)을 해야 하고, 첫 句節의 마지막 글字는 押韻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韻(韻)으로 쓰이는 글字는 一般的으로 平成(平聲)의 글字를 쓰며, 하나의 作品에는 한 가지 系列의 韻字(韻字)만을 써야 한다. 또한 모든 句節의 글字들은 일정한 規則이 있어서, 假令 첫 句節이 '仄聲(또는 平成)-仄聲-仄聲-平成-平成'의 順序로 되어 있다면 둘째 句節은 반드시 '平成-平成-仄聲-仄聲-平成(押韻)'

  • 書體 이름. 해서는 定해(正楷), 情緖(正書), 陳書(眞書)라고도 부르는 漢字(漢字)의 글씨體이다. 動한(東漢)시대에 만들어진 이 글씨體는 예서(隸書)를 더욱 簡略하게 改良하면서 劃을 가로 세로로 반듯하게 만들고, 글씨 全體가 正四角形을 이루는 것이 特徵으로서 '해서'라는 名稱에는 '따라 쓰기에 좋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글씨體는 오늘날까지 漢字의 正體(正體)로 看做되어 印刷된 書籍에 찍힌 漢字는 大槪 楷書體의 模樣으로 되어 있다.

  • 人命. 本名은 巫祖(武?)이다. 唐나라 高宗(高宗)의 皇后로서 高宗이 죽자 中宗(中宗)을 宮中에 幽閉시키고 睿宗(睿宗)을 내세워 調停의 政權을 휘두르다가, 結局에는 睿宗마저 廢位시키고 스스로 女皇帝가 되어 나라 이름을 週(周)로 바꾸기도 했으나 後날 宰相 장간지(張柬之) 等에 依해 上陽宮(上陽宮)에 幽閉(幽閉)되었다. 죽은 뒤 測天皇后(則天皇后)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무測天은 本來 太宗(太宗)의 비(妃)였는데 結局 太宗의 아들인 高宗(高宗)의 後(后)가 되었다. 『紅樓夢』第5回에는 眞價京義 房을 描寫하는 場面에서 무測天이 火葬하던 房에 놓았던 거울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眞價經過 媤아버지인 가진 사이의 不倫이 있음을 諷刺한 것이다.

  • 王朝 이름. 洛陽(洛陽)에 都邑을 둔 西晉(西晉) 王朝의 마지막 皇帝였던 私馬業(司馬?)李 316年에 少數民族의 侵入으로 捕虜가 되면서 亡하자, 이듬해 當時 皇室의 後裔인 낭야王(琅?王) 司馬睿(司馬睿, 276~323)가 健康(建康, 只今의 쟝쑤[江蘇] 난징[南京])에서 陳(晉) 王朝를 다시 세웠는데, 이것을 '東進'이라고 부른다. 346年에 안서장군(安西將軍) 환온(桓溫)李 燭(蜀) 地域에 자리 잡고 있던 성한(成漢) 政權을 征伐하여 동진은 長江(長江) 以南을 統一함으로써 振鈴(秦嶺)과 淮河(淮河)를 사이에 두고 後趙(後趙)와 對峙하게 되었다. 그러나 朝廷의 權力鬪爭이 끊이지 않고 奢侈와 享樂에 빠져 지내다가, 환온의 아들 환縣(桓玄)에게 帝位를 찬탈당해 國號(國號)가 初(楚)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환玄을 討伐하고 東晉 皇室을 復元하는 데 功을 세운 劉裕(劉裕, 363~422)가 控除(恭帝)를 廢位하고 스스로 皇帝가 되어 宋나라를 建立함으로써 4代에 걸쳐서 11名의 皇帝

位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