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縛致

國譯 國朝人物考

縛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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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本글 出處 박치의 墓表(墓表)
著者 柔順(柳洵)
耳鳴 : 自治(子治)
原電서지 國朝人物考 卷38 淫祀(蔭仕)

紅치(弘治) 12年(1499年 연산군 5年) 4月 政事일(丁巳日)에 桶勳 代父(通訓大夫) 軍器寺 情(軍器寺正) 朴公(朴公)李 卒(卒)하여 그해 8月 乙卯日(乙卯日)에 光州(廣州)의 치소(治所) 西쪽 超덕리(草德里)에 葬事지냈으니, 그의 아내 姓氏(成氏)의 墓와 같은 언덕의 上血(上穴)이다. 공의 휘(諱)는 치( imagefont)요, 者(字)는 自治(子治)이니 羅州人(羅州人)이다. 曾祖(曾祖) 휘 相衝(尙衷)은 文學(文學)과 지절(志節)로서 高麗 末期에 드러났다. 兆(祖) 휘 은(?)은 本朝(本朝)에 들어와 太宗(太宗)을 도와 賃金으로 推戴하여 佐命 원功臣(佐命元功臣)李 되었고, 官職은 議政府 左議政(議政府左議政)에까지 이르렀으며, 衿川 府院君(錦川府院君)에 封해져 마침내 삼한(三韓)의 世가(世家)가 되었다. 議政(議政)의 아들 휘 江(薑)은 世祖를 도와 左翼 功臣(佐翼功臣)李 되었고, 金川郡(錦川君)에 封해졌다. 衿川軍이 興녕群(興寧君) 안숭직(安崇直)의 딸에게 장가들어 두 아들을 낳으니, 공은 그中막내였다.

처음에는 蔭職(蔭職)으로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再起(才氣)가 빼어나게 드러나, 刑曹(刑曹)ㆍ共助(工曹)의 正郞(正郞), 漢城府 庶尹(漢城府庶尹), 司憲府 掌令(司憲府掌令)에 祭需되고, 다시 집의(執義)가 되어서는 程度를 지켜 남에게 阿諂하지 않았으며, 南道 敢히 私的인 請託을 하지 못했다. 永川 郡守(榮川郡守)와 晋州(晉州)ㆍ忠州(忠州)의 牧師(牧使)가 되어서는 公平하고 자혜로워 衙前과 百姓들이 그를 사랑하여 모두들 그가 돌아간 뒤에도 思慕하였다. 禮賓寺(禮賓寺)ㆍ尙衣院(尙衣院)ㆍ軍資監(軍資監)ㆍ軍器寺(軍器寺)의 正(正) 等 長官을 歷任하였는데, 아랫사람은 例로써 待遇하고 處身은 바르게 하니, 同僚(同僚)와 吏屬(吏屬)李 모두 恭敬하고 服從하여 直射(職事)가 모두 잘 이루어졌다. 掌令(掌令)ㆍ집의(執義)가 되어서는 成宗(成宗)李 共의 馮道(風度)를 報告는 材木이 될 것으로 매우 期待하였다. 그 뒤에 하양(河陽)의 管理가 貪汚(貪汚)한 일이 發覺되자 공에게 가서 處理할 것을 命하였는데, 그때 마침 晉州 牧師(晉州牧使)로 뽑혀 除授되었으므로, 承政院(承政院)에서 아뢰기를, “縛致(朴 imagefont)는 이제 外職(外職)에 補任되었으니, 敬差官(敬差官)으로 보내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平素에 縛致가 賢明하고 나를 속이지 않을 줄을 안다. 이番 獄舍는 반드시 이 사람이 處理해야 하니, 비록 外觀(外官)에 除授되었더라도, 社史(使事)의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무슨 妨害가 되겠는가? 무릇 獄事를 결정짓고 百姓을 救濟하는 일에는 特別히 派遣하는 例가 많다.” 하였으니, 그가 임금의 知遇를 입음이 이와 같았다.

공이 官職에서 奉職함에 있어 모두 治績이 있었으므로 그에 미칠 사람이 드물었기에, 進出해서 높은 자리에 依據하여 큰 베풂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얼마 있다가 病으로 집에서 졸하니, 享年 59歲였다. 功은 타고난 性品이 明達(明達)하였고, 寬厚(寬厚)ㆍ화이(和易)하면서도 안으로 自身을 지킴은 실로 堅固하였다. 父母에겐 효성스럽고 兄弟에겐 友愛가 있으며, 벗과는 믿음으로써 사귀어 남들이 그 사이를 離間하는 말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學問에 뜻을 두었으나 成就하지 못하고 졸하니, 사람들은 모두 歎息하고 哀惜해 하였다.

功은 昌寧 姓氏(昌寧成氏) 迎春 縣監(永春縣監) 성효원(成孝源)의 딸에게 장가들어 5男 1女를 낳았다. 迫害(朴垓)는 生員(生員)으로 功보다 먼저 죽었고, 박기(朴基)와 박호(朴壕)는 眞사(進士), 薄함(朴?)은 謝過(司果), 朴堧(朴堧)은 遊學(幼學)이며, 딸은 忠義衛(忠義衛) 이기(李技)에게 出嫁하였다. 薄器는 1男 1女를 낳았는데, 아들은 朴孃(朴讓)으로 어리며, 딸은 忠義衛(忠義衛) 송승은(宋承殷)에게 出嫁했다. 朴函에겐 3女가 있고, 朴堧에겐 2男이 있는데, 모두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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