要約
過去 및 現在의 무덤 中에서 歷史的 또는 考古學的 資料가 될 수 있는 墳墓.
慶山 兵營遺跡
分(墳)이라는 것은 聲討(盛土)를 한 墓를 뜻한다. 넓은 意味에서 古墳이란 過去에 만들어진 무덤을 統稱하는 뜻이기도 하지만, 좁은 意味에서는 일정한 形式을 갖춘 限定된 時代의 支配層의 무덤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限定된 時代란
先史時代
部族社會
에서부터 古代國家가 成立한 後
新羅
의 三國統一 以後 佛敎의 影響이 社會 全般으로 擴大되면서
火葬
(火葬)李 盛行하여 古墳 築造가 衰退된 時期까지를 말한다.
人類가 언제부터 무덤을 만들기 始作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 現在 痕跡이 남아 있는 것으로는
舊石器時代
中企부터이며 約 7, 8萬 年 前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當時는 땅을 若干 파고 주검을 구부린 姿勢로 묻은[屈葬,
굽혀묻기
] 形態였는데,
新石器時代
가 되면
고인돌
[支石墓]과 같은 巨大한 石造 建造物이 나타나고,
靑銅器時代
에는
피라미드
같은 巨大한 무덤이 建設되기에 이르렀다.
무덤이 커지면서 各種
껴묻거리
가 豐富하게 埋藏되었는데, 이를 통해 過去 사람들의 思想 및 信仰, 其他 관계된 風習과 制度 等을 알 수 있다. 또한 꾸미개·武器·勇氣(用器) 等으로 그 時代의 文化·美術·工藝 水準과 內容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古墳은 記錄에 나타나는 過去 사람들의 生活과 風俗을 實際로 確認시켜주거나 補充 說明해줄 뿐 아니라, 한便으로는 記錄에 全혀 나타나지 않는 時期의 文化와 生活 內容을 具體的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古墳에서 주검의 매납(埋納)施設은 크게 구덩式[竪穴式]과 窟式[橫穴式] 系統의 둘로 나누어진다. 구덩式에는 突放[石室]·粘土槨(粘土槨)·나무널[木棺]·돌널[石棺] 等이 있고, 窟式으로는 돌房이 있다. 구덩式系統 무덤은 한番 주검을 每납하여 密閉하고 追加腸은 行하지 않지만, 窟式돌房의 境遇는 入口에 門을 달아 그 門을 열면 追加腸이 可能하다. 이는 賣場에 對한 思考 方式의 差異에서 起因하는 것이다. 껴묻거리度 주검의 몸에 매달은 꾸미개 및 武器類·儀式用 그릇類 等이 보이는데, 大槪 오래된 古墳에는 보기(寶器)적인 것이 많고 時代가 내려오면 實用的인 것이 많아진다.
韓國에서 분명하게 確認되는 人爲的인 무덤의 形態는 新石器時代부터 確認되고 있으며, 靑銅器時代 以後로 무덤의 形式이 다양해지고,
歷史時代
의 古墳群은 全國 各地에 남아 있다. 그러나 統一新羅時代 以後로는 껴묻거리가 貧弱해지거나 아예 없어져서 考古學에서의 古墳 硏究成果는 三國時代까지의 그것보다는 制限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