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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性理學

哲學辭典

朝鮮 性理學

[ 朝鮮性理學 ]

遊學(儒學)의 한 形態로서, 中國 宋代(宋代)에 發生한 性理學이 朝鮮에 들어와 展開된 學問. 朝鮮 性理學이라 할 때는 이것이 朝鮮 留學思想의 主流를 이루었다는 側面에서 朝鮮 留學 全體를 指稱하는 것으로 使用되기도 한다. 性理學은 先進(先秦)의 根源 儒敎나 經書(經書) 註釋을 主로 한 한(漢)ㆍ黨(唐)의 訓詁學(經學)과는 性格을 달리 한다. 性理學이라고 한 것은 '性'(性)이나 '李'(理)를 論하는, 一種의 哲學的 理論의 學問이라는 것이다. 經書(特히 『周易』 『사서』를 中心으로)의 새로운 解釋을 통하여 '理氣論'(理氣論 : 本體論) '心性論'(心性論) '修養論'(修養論) 等이 展開되었다.

性理學의 다른 名稱으로는 宋代에 이루어졌다 하여 송학(宋學)이라고도 하며, 정호(程顥)ㆍ情이(程) 兄弟와 朱熹(朱喜 : 朱子 )에 依하여 體系化되었다 하여 程朱學(程朱學) 또는 朱子學(朱子學)이라고도 한다. 또한 새로운 留學이라는 意味로 新儒學(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고도 한다. 그 主流는 理學(理學) 또는 道學(道學)이라고 불리우는 朱子學과, 心學(心學)이라 불리우는 六王學(陸王學 : 陸九淵ㆍ王守仁 系統의 學派)과 陽明學 (陽明學)의 兩大 學派이다. 그러나 흔히 性理學이라 할 때는 좁은 意味로 朱子學 系統만을 일컫는 것이 常例이다. 朝鮮 性理學은 特히 理學系統의 朱子學이 正統으로서 主流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朝鮮性理學을 흔히 朱子學이라고 일컫는다.

朱子學으로서의 性理學은 우리나라에 高麗 末 忠烈王(忠烈王) 때 元나라로부터 安珦 (安珦)에 依해 傳來되었다. 안향은 1289年(忠烈王 15年)에 元나라에 들어가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베끼고, 孔子ㆍ朱子의 賞(像)을 그려 가지고 왔다. 高麗 末의 社會風潮는 老佛事床(老佛思想)의 지나친 神祕主義에 빠져 沈滯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民族 國家의 次元에서 새로운 學風 振作이 要求되었다. 元나라의 隸屬에서 벗어나 自主的 獨立性을 强調하는 데 있어서도 朱子學은 倫理的이며 合理的인 次元과 함께 社會 國家的으로 積極的이고 文化的인 活力이 될 수 있다는 點에서 歡迎을 받았다.

高麗 末의 性理學은 成均館을 中心으로 安珦ㆍ백이정(白正)ㆍ權府(權溥)ㆍ 異色 (李穡)ㆍ 정몽주 (鄭夢周)ㆍ吉再(吉再) 等에 依해서 繼承되었다. 高麗가 亡하고 朝鮮이 成立하는 過程에서 思想的 轉換의 契機가 된 '排佛崇儒'(排佛崇儒) 運動으로 性理學은 더욱 發展하게 되었다. 한便 性理學은 高麗 末에서 朝鮮時代에 이르면서 크게 2代 系列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鄭夢周에서 始作된 義理學派이다. 이 系列의 學風은 人間의 內面的 本性을 强調하고 萬古不變의 道德意識을 開發하는 데 그 主眼點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정도전(鄭道傳)ㆍ倦勤(權近) 系列로서 朝鮮의 勳舊派 政治人들에게 많은 影響을 주었다. 여기서는 不變의 人間性 開發보다는 狀況에 對應하는 創造的 變革을 强調하며, 觀念的 義理나 道德보다는 人間의 意志的 硏磨와 知識의 開發, 그리고 文化意識을 鼓吹하는데 그 重點을 두었다. 朝鮮 儒學思想史의 正統을 말할 때 정도전 系列보다는 정몽주 系列의 學脈을 淵源으로 삼는데, 利點이 朝鮮性理學의 特色이다.

鄭夢周에서 始作된 이러한 性理學은 그 後 吉再 ,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조광조 (趙光祖) 等으로 이어졌다. 朝鮮 性理學은 4大 士禍(四大士禍) 以後 선비들이 實踐儒學으로서의 至治主義(至治主義)보다 山林에서 學問에 專念하는 風潮가 일어나 理論的이며 思辨的인 學品 造成으로 그 全盛期를 맞았다.

15~16世紀가 絶頂期로서 李滉 (李滉)과 李珥 (李珥)가 그 代表로 朝鮮 性理學의 雙璧을 이루었다. 李滉은 기대승 (奇大升)과 더불어, 이이는 成婚 (成渾)과 더불어 四端七情 (四端七情)에 關한 論辯을 통하여 이기성正論(理氣性情論)과 仁心道心說(人心道心說) 等을 活潑히 展開하였다. 한便, 내면적 道德 原理인 人性論(人性論)은 송익필(宋翼弼), 김장생(金長生), 金集(金集) 等에 依해 留學의 行動 規範인 禮說(禮設)로 展開되었다. 特히 四端七情論의 人性(仁性)에 對한 分析과 辯論은 普遍的 理念인 性品이 人間과 動物에 있어서 같은가 다른가를 물었던 虎落론(湖洛論)의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問題에 關한 論爭으로 發展하였다.

한便 理氣論(理氣論)은 朝鮮 前期에는 이ㆍ基의 調和를 追求하는 立場이 優勢했던 反面, 中期 以後에는 그 中 어느 한 面만을 强調하는 傾向이 나타났다. 곧 主理論 (主理論)과 主氣論 (主氣論)을 主張하는 兩派로 갈라졌다. 이 주리ㆍ週期의 論爭은 朝鮮 性理學의 兩大 分派로 發展하였다. 朝鮮 性理學의 特徵으로는 自然이나 宇宙의 問題보다 人間의 內面的 性情(性情)과 道德的 價値의 問題를 追求한 것을 指摘할 수 있다. 또한 四端七情論, 仁心道心說, 그리고 주리ㆍ週期의 爭點에서는 中國 性理學보다 進一步한 一面이 있다는 評價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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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辭典은『세계철학사』독자들을 爲한 辭典으로 이 땅에서 自然과 社會 및 人間 思惟의 一般的 發展 法則을 探究하여 올바른 世界觀을 樹立하고 認識과 實踐의 科學的 方法을 硏究 ? 開發하는 데 礎石이 되도록 編纂되었다. 이에 본 辭典은 이 땅의 哲學이 根本的으로 不可知論(不可知論)李 前提되는 各種 哲學함이나, 孤立된 個人의 非合理主義的 主觀主義, 或은 世界觀的 見地를 放棄(放棄)하는 傾向性 等等에 依한 各種 誤謬를 剔抉하면서, 少數의 選擇 받은 者를 위한 哲學이 아니라, 그 間의 歷史 發展을 통해 明確해진 絶對多數를 위한 哲學으로 그 方向을 定立하는 데 寄與함을 一次的 目標로 삼았다. 이와 아울러 哲學에 關心을 가진 一般人, 學生, 敎育者, 로스쿨 應試者 等에게 前 哲學社 或은 哲學的 思惟의 範圍에 屬하는 各種 事項(槪念, 範疇, 理論, 學派, 文獻, 事件, 人物 等等)에 對한 簡略하고 正確한 知識을 提供하는 것을 다음 目標로 삼았다. 仔細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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