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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陽曆

두산百科

太陽曆

[ solar calendar , 太陽曆 ]

要約 太陽의 運行을 基準으로 만든 曆法으로서, 太陰曆과 相對된다. 이집트에서 BC 18世紀頃 1年 365日의 太陽曆을 만든 것이 그 起源이다. 그後 1年이 365.25日이란 것을 알게되면서 율리우스력에 採用하여 4年마다 1日 더하는 閏年이 생겼다. 1582年 그레고리력으로 이어져 現在에 이르렀다.

太陰曆(太陰曆)과 相對되는 曆法이다. 太陽 力의 起源은 이집트 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에서는 일찍부터 나일江 (江)李 汎濫할 때면 東쪽 하늘의 일정한 位置에 시리우스( 큰개자리 α별)가 나타난다는 事實을 알아냄으로써 太陽曆을 만들 수 있었다. BC 18世紀頃 이집트人들은 1年을 365日로 하고, 이것을 30日로 이루어진 12달과 年末에 5日을 더하는 式으로 달曆 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後 시리우스와 太陽의 關係를 좀더 仔細히 觀測하여 1年이 365.25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율리우스력에 採用되어 4年마다 1日을 더하는 閏年 이 생겼고, 1582年 다시 1年의 平均길이를 365.2425日로 하는 그레고리력에 引繼되어 現在에 이르렀다. 그레고리력에서는 4年마다 閏年을 擇하되, 100으로 나뉘는 해는 閏年으로 하지 않고, 다시 400으로 나누었을 때 나뉘는 해는 閏年으로 하는 等 複雜한 曆法이 利用된다.

달의 運動과는 關係없이, 太陽의 運行만을 基準으로 한 曆法. 太陰曆과 太陰太陽曆에 비해 原理的으로는 簡單하지만 여기에도 여러 問題가 있다. 于先 1太陽年의 日數의 少數分 0.2421949日이 쌓이고 쌓이면 閏日(閏日)을 두어야 하는데, 그 윤일의 數는 몇 年에 몇 番 둘 것인지 알려져야 한다. 計算에 依하면 윤일의 數는 4年에 1日, 29年에 7日, 33年에 8日, 120年에 29日, 128年에 31日, 929年에 225日, 1057年에 256日 等이다.

그中 4年法은 율리우스력에서 오랫동안 써왔고, 29年法과 33年法은 페르시아力에서 採擇되었었다. 回回曆法과 그 精神을 이어받은 《七政算外篇》에서는 卷頭(卷頭)에 128年에 閏日 31日이라고 明記되어 있는데, 이것은 128年法을 陽性的으로 標示한 것이다. 우리가 陽曆(陽曆)이라고 쓰고 있는 現行의 그레고리력에서는 400年에 97回의 閏日을 두는 方法이 쓰이는데, 이것은 128年法과 4年法이 結合되어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국력은 모두 太陰太陽曆에 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中國에서는 太陽曆法을 全然 알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력의 24期(氣)의 配當은 이미 太陽曆의 傾向을 말해 준다. 《禮記(禮記)》의 <月齡篇(月令篇)>에 依하면 中國에서는 이미 BC 600年頃에 24期가 쓰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4期는 12節氣와 12中期로 되어 있다. 여기서 節氣입기일(節氣入氣日)을 절일(節日)이라 하고 節日부터 다음 節日의 前날까지를 節鉞(節月)이라 하면, 1太陽年은 12節鉞이 되는데 이것은 節月曆(節月曆)이라고 하여 一種의 太陽曆이다. 節鉞力에서 中期(中氣)는 各月의 中央附近에 온다.

驛에 關한 知識이 없었을 때에는 人間은 單純히 일월의 經過를 自然現象의 變化로 推測하였을 것이다. 그 中에서 꽃이 피고, 새싹이 트고 철새가 날아들고 물이 얾으로서 季節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所謂 自然力(自然曆)이다.

太陽曆의 性格을 띤 몇 가지 例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마야력
中央아메리카의 마야족은 300年頃에 摩耶文明을 建設했고, 當時 世界에서 가장 좋은 달曆을 가졌다고 한다. 그 內容은 한 달을 20日, 1年은 18個月과 덧붙이 5日로 된 365日間이고, 閏日(閏日)도 閏月(閏月)도 없다. 달도 날도 各各 이름이 있어서 數로 부르지 않는다. 따로 1∼13까지의 修를 週(週)와 같이 連續시켜 各 날의 이름을 配列하여 썼다. 따라서 260日 週期로 같은 이름의 날이 같은 番號를 取하였다. 날의 이름은 20個뿐이므로 每年 5日씩 이름이 밀려나가 結局 52年 週期로 같은 달 같은 날의 이름에 같은 週期番號가 오게 되어 있었다.

이집트력
이집트에서도 처음에는 太陰曆이 使用했으나 BC 4200年頃에는 이미 太陽曆法이 이집트에서 確立된 듯하다. 이집트가 이처럼 일찍부터 太陽曆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나일江의 洪水가 너무나 規則的으로 나타난 데에 있었다. 그 汎濫은 하늘에서 第一 밝은 恒星人 시리우스가 해뜨기 直前 東쪽 하늘에 떠오를 때부터 始作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이 때가 年初이다. 結局 1年의 길이는 시리우스를 觀測함으로써 얻어지는데 그들은 이 값을 365.25日로 알았다. 그러나 이 方法에 依한 1年은 太陽曆이 아니고 恒星年이다. 이집트력에서는 每月 30日의 역월 12個와 年末에 덧붙인 5日로 된 365日을 驛에서의 1年이라 하였다. 現在도 이집트 ·에티오피아 等의 콥트敎會 等에서 使用되고 있다.

로마력
처음부터 太陽曆의 形式이 아니고 오히려 太陰曆의 性格이 濃厚하였다. BC 753年 로물루스王이 로마를 平定하고 쓰게 한 驛은 1年이 304日이었고 10個月로 된 엉성한 役이었다. 卽 첫番째 達人 마루티우스로 始作하여 31日의 4個月과 그後 30日의 6個月을 거쳐 데켐베르로 끝난다. BC 710年頃, 누마王 時代에는 Februarius와 Januarius의 두 달을 December 다음에 붙여서, 1年 12個月을 355日로 하는 太陰曆의 形式으로 整備되었다. BC 452年에는 앞에서 말한 두 달의 順序를 뒤바꿔서 December 다음에 Januarius, Februarius의 巡으로 넣고, BC 304年부터는 22日 또는 23日의 閏달을 한 해 걸러서 끼워넣어 1年을 355日, 378日, 355日, 377日의 順序로 되풀이하였다. 이리하여 不足하나마 太陽曆의 形式을 갖춘 曆法으로 썼다. 이 驛은 BC 48年 J.카이사르의 개력(改曆) 때까지 繼續되었다.

율리우스력
카이사르 개력 以後의 曆法. 카이사르가 죽은 後, 그의 功績을 記念하여 Quintilis를 July로 고쳐 부르기로 했다. BC 46年 1月 1日부터 實施되었는데 每月의 一周는 처음의 율리우스력에서는 1,3,5,7,9,11月은 모두 31日씩이고, 다른 달은 30日로 하되 2月만은 平年 28日, 閏年 29日로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第2代 王 누마 폼필리우스時代에 春分날(3月 21日)과 一致시키기 위하여 前年에 葬月(長月) 2個를 追加하여 이 한 해를 445日로 하였다. 이 해를 ‘最後의 混亂의 해’라고 불렀다. 율리우스의 平均 1年이 365.25日이므로 이 값은 季節變化에 一致하는 太陽年과의 差는 0.0078日(=11分 14秒)이나 되어 128年이 지나면 1日의 車가 생긴다. 實際로 325年 니케아會議가 開催된 해는 春分이 3月 22日이었지만, 1582年 로마敎皇 그레고리우스 13歲 때의 春分날이 3月 11日이었다.

그레고리력
現行의 太陽曆으로 400年에 97回의 閏日을 두는 曆法이다. 1582年 10月에 로마敎皇 그레고리우스 13世는 曆年에서 10日을 없애고 10月 4日의 다음날을 10月 15日로 하여 春分날이 3月 21日이 되게 하고 置閏法(置閏法)을 두는 役을 개력하였다. 卽,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于先 閏年으로 하되 100으로는 나누어 떨어지지만,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해는 平年으로 두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면 3300年 後에는 1日의 差異가 나타난다. 이 曆法은 가장 季節에 잘 맞는 曆法이라 하여 16世紀末 以來 普及되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18世紀 初에 이 曆法을 採用하였는데, 러시아만은 오래도록 從前의 율리우스력을 踏襲하다가 革命 後 1918年 2月 14日에서 13日을 없애고 이 曆法에 따르기로 하였다.

韓國에서의 太陽曆 導入:韓半島에는 朝鮮時代 孝宗(孝宗) 以來 太陰太陽曆人 時憲曆(時憲曆)李 쓰였는데 朝鮮時代 後期의 國際情勢로 太陽曆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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