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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局은

두산百科

政局은

[ 鄭國殷 ]

要約 機關紙《國際新聞》의 編輯局長으로 共産主義 宣傳에 앞장을 섰던 間諜. 搜査機關에서 調査가 始作되자 연합신문 主日特派員이라는 名目으로 日本에 逃避, 朝總聯系의 庇護下에 祕密裏에 活動을 繼續하였다.
出生-死亡 1919 ~ 1954
活動分野 諜報

日帝强占期에 아사히신문 서울支局의 記者로 親日行爲를 하다가 8·15光復 後 남로당(南勞黨)에 加入, 機關紙 《 國際新聞 (國際新聞)》의 編輯局長으로 共産主義 宣傳에 앞장을 섰다. 1949年 親日反逆者로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反民特委)에 檢擧되었다가 病保釋이 된 뒤에 國防新聞(國防新聞)을 經營하며 軍事機密을 探知하여 共産黨에 그 情報를 提供하였다. 그後 搜査機關에서 調査가 始作되자 연합신문 (聯合新聞) 週日(駐日)特派員이라는 名目으로 日本에 逃避, 朝總聯系(朝總聯系)의 庇護下에 祕密裏에 活動을 繼續하였다.

1950年 6·25戰爭이 일어나자 國際聯合軍 記者俱樂部에 所屬되어 從軍記者로 參戰하여 軍事情報의 蒐集을 繼續하다가 그 正體가 暴露되어 國際聯合軍 司令部로부터 追放命令을 받았다. 歸國 後 朝總聯系에서 投入된 金力과 國會議員 양우정(梁又正) 等 權力者의 庇護 아래 身邊의 安全을 期하고 聯合新聞社·東洋通信社(東洋通信社)의 編輯局長을 겸하면서 間諜 行爲를 繼續하였다. 1952年 國會에서 그의 正體가 暴露되어 1953年 陸軍特務臺에 拘束되고 軍法會議에서 死刑을 宣告받고 1954年 銃殺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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