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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平和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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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文(序文) [ 編輯 ]

大抵 合치면 成功하고 흩어지면 敗亡한다는 것은 萬古에 변함없는 분명한 理致이다. 只今 世界는 東西(東西)로 나뉘어져 있고 人種도 各其 달라 서로 競爭하고 있다. 日常生活에 便利한 實用機械 硏究도 農業이나 商業보다는, 神 發明品인 電氣抛(電氣砲 : 機關銃), 飛行船(飛行船), 침修正(浸水艇 : 潛水艦) 等 모두 사람을 傷하게 하고 事物(事物)을 害치는 機械에만 치우치고 있다.

靑年들을 훈련시켜 戰爭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貴重한 生命들을 犧牲物(犧牲物 : 神에게 祭祀지낼 때 쓰는 짐승, 소, 돼지, 羊 따위)처럼 버려,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밝은 世界에 이 무슨 光景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 根源을 따져보면 예로부터 東洋의 民族들은 다만 文學(文學)에만 힘쓰고 제 나라만 操心스레 지켰을 뿐이지 도무지 한 치의 유럽 땅도 侵入해 빼앗지 않았다. 이는 五大洲(5大洲) 위의 사람이나 짐승, 草木까지 다 알고 있는 바 이다.

그런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가까이 數百 年 사이에 道德(道德)을 까맣게 잊고 나날이 武力을 일삼으며, 競爭心을 키워 조금도 꺼리는 氣色이 없다. 그 中에서도 러시아가 더욱 甚하다. 그 暴行과 殘忍한 害惡이 西유럽(西歐)이나 東아시아(東亞) 어느 곳에나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惡이 차고 罪가 넘쳐 新(神)과 사람이 다 함께 성을 내게 되었다.

이에 하늘이 한 매듭을 짓기 위해 東海 가운데 떠있는 조그만 섬나라 日本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强大國 러시아를 滿洲大陸에서 한 주먹에 때려눕히게 하였으니, 누가 능히 이런 일이 있을 줄 헤아렸겠는가. 이것은 하늘에 順應하고 땅의 配慮를 얻은 것이며 사람의 情에 應答하는 理致이다.

當時에 萬一 한(韓), 靑(淸) 두 나라 國民 上下가 一致해서 前날의 怨讐를 갚고자 日本을 排斥하고 러시아를 도왔다면 日本은 큰 勝利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나 그것을 어찌 豫想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韓, 淸 兩國 國民은 그러한 行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日本軍隊를 歡迎하고 그들을 위해 運輸(運輸) 치도(治道) 偵探(偵探) 等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힘을 기울였다. 이것은 무슨 理由인가.

거기에는 두 가지 큰 事由가 있었다. 日本과 러시아가 開戰(開戰)할 때, 日本天皇의 宣傳布告文 中에 '東洋平和를 維持하고 大韓獨立을 鞏固히 한다' 했으니. 이 같은 大義(大義)가 靑天白日(靑天白日)의 빛보다 더 밝아 한(韓) · 靑(淸) 人事는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를 莫論하고 一致桐深海서 服從했음이 그 하나이다. 또한 日本과 러시아의 다툼이 황백인種(黃白人種)의 競爭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난날의 원수졌던 心情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도리어 큰 하나의 人種 사랑 무리(愛種黨)를 이루었으니 이도 또한 認定의 順理라 可히 合理的인 理由의 다른 하나이다.

痛快하도다! 壯하도다! 數百 年 동안 行惡하던 白人種의 선봉을 북소리 한 番에 크게 부수었으니 可히 千古에 稀貴한 일이요 萬邦이 記念할 자취이다. 當時 韓國과 淸國 兩國의 뜻있는 이들이 期約 없이 함께 기뻐해 마지않은 것은 日本의 政略(政略)이나 일을 헤쳐나감이 東西洋 天地가 開闢한 뒤로 가장 뛰어난 대사업이며 시원스런 일로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슬프다! 千萬 番 意外로 勝利를 거두고 改善한 以後로 가장 가깝고 가장 親하며 어질고 弱한 같은 人種인 韓國을 抑壓하여 條約을 맺고, 滿洲 창춘(長春) 以南의 조차(祖借)를 憑藉하여 韓國을 占據하고 말았다. 世界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疑心이 忽然히 일어나서 日本의 偉大한 名聲(名聲)과 正大한 功勳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蠻行을 일삼는 러시아보다 더 못된 나라로 보이게 되었다.

슬프다! 龍과 虎狼이의 威勢로서 어찌 뱀이나 고양이 같은 行動을 한단 말인가? 그와 같이 좋은 機會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고 痛歎할 일이로다.

東洋 平和와 韓國 獨立에 對한 問題는 이미 天下萬國 사람들 耳目에 드러나 그들은 金石(金石)처럼 믿게 되었고 한 · 靑 두 나라 사람들의 腦裏에 깊이 새겨져 있음에랴! 이러한 思想은 비록 天神(天神)의 能力으로도 소멸시키기 어려운 것이거늘 하물며 한두 사람의 知母(智謨)로 어찌 抹殺할 수 있겠는가.

只今 西洋 勢力이 東洋으로 뻗쳐오는(西勢東漸) 患難은 東洋 사람이 一致團結해서 極力 防禦함이 最上策이라는 것은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익히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슨 理由로 日本은 이러한 大勢를 돌아보지 못하고 같은 人種인 이웃나라를 치고 友誼(友誼)를 끊어 스스로 蚌鷸之勢(蚌鷸之勢 :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물리며 다투는 形勢)를 만들어 漁夫(漁夫)를 기다리는 듯 하는가. 이로써 한 · 淸 兩國人의 所望은 크게 깨져 버리고 만 것이다.

萬若 日本이 政略을 고치지 않고 逼迫만 날로 甚하게 한다면, 차라리 다른 人種에게 亡할지언정 차마 같은 人種에게 辱을 當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한 · 靑 두 나라 兩國人의 肺腑(肺腑)에서 용솟음쳐 上下 一體가 되어 스스로 白人(白人)의 앞잡이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形勢이다.

그렇게 되면 東洋의 數億 黃人種 가운데 수많은 뜻있는 人士와 正義로운 사나이가 어찌 앉아서 袖手傍觀(袖手傍觀)하며 東洋 全體가 까맣게 타죽는 慘狀을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래서 나는 東洋 平和를 위한 儀典(義戰)을 하얼빈에서 改悛하고, 談判(談判)하는 자리를 뤼쑨(旅順)으로 定했으며, 이어 東洋平和 問題에 關한 意見을 提出하는 바이다. 여러분의 눈으로 깊이 살펴보아 주기 바란다.

1910年 庚戌 2月(음) 大韓國人 安重根 旅順(旅順) 獄中에서 쓰다 [ 編輯 ]

前鑑(前鑑) (前鑑 : 앞사람이 한 일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警戒한다) [ 編輯 ]

예로부터 只今에 이르기까지 東西南北의 어느 州(洲)를 莫論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大勢(大勢)의 흐름이고, 알 수 없는 것은 人心의 變遷이다.

지난날(甲午年 : 1894年) 淸日戰爭(淸日戰爭)을 보더라도 그때 조선국의 暑節倍(鼠竊輩: 좀도둑) 東學黨(東學黨)李 騷擾를 일으킴으로 因해서 靑 · 日 兩國이 함께 兵力을 動員해 건너와서 無斷히 戰爭을 일으켜 서로 衝突한 戰爭이었다.

日本이 淸國에 乘勝長驅하여 랴오뚱(遼東)의 班을 占領하였다. 軍事 要地인 뤼쑨(旅順)을 陷落시키고 黃海艦隊(黃海艦隊)를 擊破한 後 馬官(馬關: 시모노세키)에서 談判을 벌여 條約을 締結하여 타이완(臺灣)을 割讓받고 2億 원을 賠償金으로 받기로 하였다. 이는 日本의 維新(維新) 以後 하나의 커다란 記念辭이다.

淸國은 物資가 豐富하고 땅이 넓어 日本에 비하면 數十 倍는 되는데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敗했는가? 예로부터 淸國人은 스스로를 中華對局(中華大國)이라 일컫고 다른 나라를 오랑캐(夷狄)라 일러 驕慢이 極甚하였다. 더구나 權臣戚族(權臣戚族)李 國權을 멋대로 戱弄하고 臣下와 百姓이 怨讐를 삼고 위아래가 不和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辱을 當한 것이다.

한便 日本은 메이지 維新(明治維新) 以來로 民族이 和睦하지 못하고 紛爭이 끊이지 않았으나, 外交的 競爭이 일어난 後로는 집안싸움(同室操戈之變)李 하루아침에 和解가 되고 聯合하여, 한 덩어리 愛國黨(愛國黨)을 이루었으므로 이와 같이 凱歌를 올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親近한 남이 다투는 兄弟보다는 못 하다는 것이다.

이때의 러시아의 行動을 記憶해야 한다. 그날로 東洋艦隊(東洋艦隊)가 組織되고 프랑스, 獨逸 兩國이 聯合하여 요코하마(橫濱) 海上에서 크게 抗議를 提起하니 랴오똥 半島(半島)가 淸國에 되돌려지고 賠償金은 減額되었다. 그 外面的인 行動을 보면 可히 天下의 公法(公法)이요 定義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內容을 들여다보면 虎狼이와 이리의 心術보다 더 사납다.

不過 數年 동안에 러시아는 敏捷하고 狡猾한 手段으로 뤼쑨을 조차(租借)한 後에 軍港(軍港)을 擴張하고 鐵道를 附設 하였다. 이런 일의 根本을 생각해 보면 러시아 사람이 數十 年 以來로 펑티엔 以南(奉天以南)의 다롄(大連), 뤼쑨(旅順), 뉴쥬앙(牛莊) 等地에 不凍港(不凍港) 한 곳을 억지로라도 가지고 싶은 欲心이 불같고 밀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淸國이 한番 영(英) · 불(佛) 兩國으로부터 톈진(天津) 侵略을 받은 以後에 管뚱(關東)의 各 陣營에 新式 兵馬(兵馬)를 많이 設備瑕疵 敢히 손을 쓸 마음을 먹지 못하고 但只 끊임없이 침만 흘리면서 오랫동안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中에 이때에 이르러 셈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이런 일을 當해서 日本人 中에도 識見이 있고 뜻이 있는 者라면 누구라도 창자가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理由를 따져보면 이 모두가 日本의 過失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구멍이 있으면 바람이 들어오는 法이요. 自己가 치니까 南道 친다는 格이다. 萬一 日本이 먼저 淸國을 侵犯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어찌 敢히 이와 같이 行動했겠는가. 可히 제 도끼에 제 발등 찍힌 格이다.

이로부터 中國 全體의 모든 社會 言論이 들끓었으므로 武術改變(戊戌改變:캉유웨이[康有爲], 량치챠오[梁啓超] 等 變法派[變法派]에 依한 變法自彊運動[變法自疆運動]. 1898年 이른바 百日維新[百日維新]은 겨우 100日 만에 失敗로 끝났지만 그 影響은 至大한 것이었다)이 自然히 陽性(釀成)되고 義和團(義和團 : 中國 白蓮敎界[白蓮敎系] 等의 祕密結社. 淸日戰爭 後 帝國主義 列强의 壓力에 抗拒해서 1900年代에 山뚱性[山東省] 여러 주현[州縣]에서 表面化하여 베이징[北京], 톈진 等地에 擴大되었다. 反帝反萬排斥運動[反帝反滿排斥運動]의 主體였다)이 들고 일어났으며 日本과 西洋을 排斥하는 亂離가 熾烈해졌다.

그래서 8個國 聯合軍이 보하이(渤海) 海上에 雲集하여 톈진이 陷落되고 베이징(北京)李 侵入을 받았다. 淸國 皇帝가 시안(西安)으로 播遷(播遷)하는가 하면 郡民(軍民)할 것 없이 傷害를 입은 者가 數百萬 名에 이르고 金銀 財貨의 損失은 그 숫量을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이와 같은 慘禍는 世界 歷史上 드문 일이었고 東洋의 一帶 羞恥일 뿐만 아니라 將來 黃人種과 白人種 사이의 分裂 競爭이 그치지 않을 徵兆를 나타낸 것이다. 어찌 警戒하고 歎息하지 않을 것인가.

이 때 러시아 軍隊 11萬이 鐵道 保護를 핑계로 滿洲 境界 地域에 駐屯해 있으면서 끝내 撤收하지 않으므로 러시아 駐在 日本公使 쿠리노(栗野)가 혀가 닳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弊端을 主張하였지만 러시아 政府는 들은 체도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軍事를 憎怨하였다.

슬프다! 러 · 日 兩國 間의 對慘禍를 끝내 謀免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原因을 論하자면 畢竟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東洋에서 하나의 큰 本보기(一大前轍)가 된 것이다.

當時 러 · 日 兩國이 各各 滿洲에 出兵할 때 러시아는 團地 시베리아 鐵道로 80萬 軍備(軍備)를 실어내었으나 日本은 바다를 건너고 남의 나라를 지나 4, 5軍團과 裝備, 軍糧을 陸地와 바다 兩 篇으로 랴오허(遼河) 一帶에 輸送했다. 비록 豫定된 計算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찌 危險하지 않았겠는가? 決코 萬全之策(萬全之策) 아니요 참으로 無謀한 戰爭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日本陸軍이 잡은 길을 보면 韓國의 各 港口와 聖經(盛京), 전주만(全州灣) 等地로, 4, 5千里를 지나 왔으니, 水陸(水陸)의 괴로움을 말하지 않아도 斟酌할만 했다.

이때 日本軍이 多幸히 連戰連勝은 했지만 아직 咸鏡道(咸鏡道)도 벗어나지 못했고 뤼쑨(旅順)도 擊破하지 못했으며, 펑티엔(奉天)에서도 미처 이기지 못했을 즈음이다.

萬若 韓國의 官民(官民)이 다 같이 한 목소리로 乙未年(乙未年, 1895年)에 日本人이 韓國의 명성황후(明成皇后) 閔氏(閔氏)를 무고히 弑害한 怨讐를 이 때 갚아야 한다고 四方에 檄文을 띄우고 일어나서, 咸鏡 · 平安 讓渡 사이에 있던 러시아 軍隊가 不意의 奇襲으로 찌르고 나와 前後左右로 衝突하며, 淸國도 또한 上下가 協同해서 지난날 義和團 때처럼 들고 일어나 甲午年(甲午年) 淸日戰爭의 묵은 怨讐를 갚겠다고 하면서 베이稱(北淸) 一帶의 國民이 暴動을 일으키고 虛實(虛實)을 살펴 防備가 허술한 곳을 攻擊하며 가이핑(盖平), 랴오양(遼陽) 方面으로 遊擊奇襲을 벌여 나아가 싸우고 물러가 지켰다면, 日本軍은 南北이 分裂되고 背後에 敵을 맞아 斜面으로 包圍당하는 悲歎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萬一 狀況이 이런 地境에 이르렀다면 뤼쑨(旅順), 펑티엔(奉天) 等地의 러시아 將兵들의 禮記(銳氣)가 드높아지고 氣勢가 배가(倍加)되어 앞뒤로 가로막고 左衝右突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日本軍의 勢力이 머리와 꼬리가 맞아떨어지지 못하여 重裝備와 軍糧米를 이어댈 方道가 아득해졌을 것이다. 그러하여 야마가타(山縣有朋 : 러일戰爭 當時 2軍司令官)와 怒氣(乃木希典 : 러일戰爭 當時 3軍司令官) 大將의 經略(經略)은 틀림없이 虛事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淸國 政府와 主權者도 野心이 爆發해서 묵은 怨恨을 갚게 되었을 것이고, 時期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萬國公法(萬國公法)이니 嚴正中立(嚴正中立)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近來 外交街(外交家)의 狡猾하고 歪曲된 術數이니 말할 것조차 되지 못한다. 兵不厭詐(兵不厭詐 : 軍事行動에서는 敵을 속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出其不意(出其不意 : 意外의 虛點을 찌르고 나간다), 病暇묘산(兵家妙算 : 軍事價의 巧妙한 셈) 云云하면서 官民(官民)李 一體가 되어 名分 없는 軍士를 출동시키고 日本을 排斥하는 程度가 極烈 慘毒(慘毒)해졌다면 東洋 全體를 휩쓸 백년풍韻(百年風雲)을 어찌한단 말인가.

萬若 이와 같은 地境이 되었다면 龜尾 列强들은 아주 좋은 機會를 얻었다 해서 各其 앞을 다투어 軍士를 衝突시켰을 것이다.

그 때 英國은 印度, 홍콩 等地에 駐屯하고 있는 陸海軍을 한꺼번에 出陣시켜 웨이하이웨이(威海衛 : 山뚱 半島에 位置한 軍港) 方面에 집결시켜 놓고는 必是 强勁手段으로 淸國 政府와 交涉하고 追窮했을 것이다. 또 프랑스는 사이공 마다가스카르 섬(加達馬島)에 있는 陸軍과 軍艦을 一時에 指揮해서 아모이 等地로 모여들게 했을 것이고, 美國, 獨逸, 벨기에,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等의 東洋 巡洋艦對는 보하이(渤海) 海上에서 聯合하여 合同條約을 豫備하고 利益을 같이 나누기를 希望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日本은 別수 없이 全國의 軍事費(軍事費)와 國家 財政(財政)을 總動員하여 面성한 다음에 滿洲와 韓國 等地로 곧바로 輸送했을 것이다.

한便, 淸國은 檄文을 四方으로 띄우고 滿洲, 山뚱, 허난(河南), 찡낭(荊襄) 等地의 軍隊와 義勇甁을 매우 急히 召集해서 用箋好投(龍戰虎鬪)하는 形勢로 一帶風雲(一大風雲)을 자아냈을 것이다. 萬若 이러한 形勢가 벌어졌다면 東洋의 慘狀은 말하지 않아도 想像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한 · 靑 두 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藥欌(約章)을 遵守하고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아 日本으로 하여금 偉大한 功勳을 滿洲땅 위에 세우게 했던 것이다. 이로 보면 한 · 靑 두 나라 人事의 改名(開明) 程度와 東洋平和를 希望하는 精神을 充分히 알 수 있다. 그러하니 東洋의 뜻 있는 人士들의 깊은 사려는 可히 後날의 模範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러일전쟁이 끝날 무렵 講和條約(講和條約) 成立을 전후해서 한 · 靑 두 나라 뜻 있는 人士들의 許多한 所望은 크게 부서지고 말았다.

當時 러 · 日 두 나라의 戰況을 살펴본다면 한番 改悛한 以後로 크고 작은 交戰(交戰)李 數百 次例였으나 러시아軍隊는 連戰連敗(連戰連敗)로 傷心落膽(傷心落膽)하여 멀리서 모습만 보고도 달아났다.

한便 日本軍隊는 乘勝長驅하여 東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 가까이 이르고 北으로는 하얼빈에 肉薄하였다. 傳貰가 여기까지 이른 바에야 機會를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已往 벌인 일이니 비록 全 國力을 기울여서라도 한두 달 동안 死力을 다해 眞空하면 東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뽑고 北으로 하얼빈을 擊破할 수 있었음은 明若觀火한 形勢였다.

萬若 그렇게 되었다면 러시아의 百年大計는 하루아침에 必是 土崩瓦解(土崩瓦解)의 形勢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理由로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隱密히 區區하게 먼저 强化를 請해, (火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方道를 追求하지 않았는지, 可히 哀惜한 일이다.

더구나 러 · 日 强化 談判을 벌일 場所를 보더라도 天下에 어떻게 워싱턴을 談判할 곳으로 定하였단 말인가. 當時 形勢로 말한다면 美國이 비록 中立(中立)으로 偏頗的인 마음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짐승들이 다투어도 오히려 主客이 있고 텃勢가 있는 法인데 하물며 人種의 다툼에 있어서랴.

日本은 戰勝國이고 러시아는 敗戰國인데 日本이 어찌 제 本뜻대로 定하지 못했는가. 東洋에는 마땅히 알맞은 곳이 없어서 그랬단 말인가.

고무라 쥬打로(小村壽太郞) 外傷(外相)李 구차스럽게 數萬里 밖 워싱턴까지 가서 (포츠머스)講和條約을 締結할 때에 사할린 折半을 罰則條項(罰則條項)에 넣은 일은 或 그럴 수도 있어 異常할 것이 없지만, 韓國을 그 가운데 添加해 넣어 優越權(優越權)을 갖겠다고 한 것은 根據도 없는 일이고 合黨 하지도 않은 處事였다.

지난날 馬官(馬關) 條約(淸日 戰爭 後 이토 히로부미와 리훙장(李鴻章)李 締結한 시모노세키 條約) 때는 本是 韓國은 淸國의 屬邦(屬邦)이었으므로 그 條約 中에 干涉이 있을 수 있게 마련이었지만 한 · 러 두 나라 사이는 처음부터 아무런 關係가 없는 터인데 무슨 理由로 그 條約 가운데 이런 條項이 들어가야 했단 말인가.

日本이 韓國에 對해서 이미 큰 欲心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찌 自己 手段껏 자유로이 行動하지 못하고 이와 같이 유럽 白人種과의 條約 가운데 揷入하여 永遠히 問題가 되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도무지 어이가 없는 處事이다. 또한 美國大統領이 이미 仲裁하는 主人公이 되었는지라 마치 韓國이 유럽과 美國 사이에 끼어있는 것처럼 되었으니 仲裁者도 必是 크게 놀라서 조금은 奇異하게 여겼을 것이다. 같은 人種을 사랑하는 義理로서는 萬에 하나라도 承服할 수 없는 理致이다.

또한 (美國大統領이) 老鍊하고 狡猾한 手段으로 고무라 外相을 籠絡하여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의 若干의 땅 조각과 波線(破船), 鐵道 等 殘物(殘物)을 賠償으로 羅列하고서 巨額의 賠償金은 全部 破棄시켜 버렸다.

萬一 이 때 日本이 敗하고 러시아가 勝利해서 談判하는 자리가 워싱턴이었다면 日本에 對한 賠償 要求가 어찌 이처럼 略少했겠는가. 그러하니 世上의 일이 公平하지 않음을 이를 미루어 可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지난날 러시아가 洞으로 侵略하고 西쪽으로 征伐을 敢行해, 그 行爲가 몹시 可憎하므로 龜尾列强이 各自 嚴正中立을 지켜 서로 돕지 않았지만 이미 이처럼 黃人種에게 敗戰을 當한 뒤이고 事態가 決判이 난 마당에서야 어찌 같은 人種으로서의 友誼를 베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人情世態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슬프다. 그러므로 自然의 形勢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人種 이웃 나라를 해치는 者는 마침내 毒婦(獨夫 : 惡行을 일삼아 따돌림을 받는 사람.)의 患難을 期必코 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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