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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 [경인일보 뿌리를 찾다·4]'통폐합' 앞둔 言論 3社 風景

創刊 68周年 경인일보 뿌리를 찾다

[경인일보 뿌리를 찾다·4]'통폐합' 앞둔 言論 3社 風景

期待感과 아쉬움속에 '統合 意志'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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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畿每日 9千戶 特輯 '哀歡 얼룩진 金字塔' 社說
'지난날' 焦點 맞춰 混亂期 中立紙 位相正立 自評
연합신문 마지막 創刊號 '京畿新聞' 새로움 期待
경기일보 '走馬燈처럼 追憶의 張…' 終刊號 所懷


1973年 8月 경기매일신문은 指令 9千戶 特輯(8月10日子·寫眞 왼쪽)을, 연합신문은 創刊 13周年 特輯(8月15日子)을 냈다. 廢刊을 한달도 남기지 않은 狀況이었지만 兩社는 大大的으로 特輯記事를 내보냈다.

京畿每日은 1970年에 세운 7層 規模의 新社屋과 最新 輪轉機 施設을 全面廣告로 내보냈다. 연합신문은 1面에 홍대건 社長 名義의 글을 실었다. 洪 社長은 9月 1日 創刊한 京畿新聞의 初代社長이 됐다.



1973年 7月 31日 '3社 統合大會'와 9月 1日 '京畿新聞 創刊' 사이 경기매일신문은 指令 9千戶(8月 10日子)를, 연합신문은 創刊 13周年(8月 15日子) 特輯을 揭載한다.

이 特輯들을 통해 各 新聞社가 보는 統合의 視線을 感知할 수 있다.

京畿每日은 '지난날'에 焦點을 맞춘 反面, 연합신문은 '앞날'에 重點을 뒀다. 共通點은 特輯記事를 8面(平常時 4面)으로 增面한 것과, 3社 統合의 課題로 '維新課業 遂行'을 꼽은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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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畿每日은 指令 9千戶 特輯 1面 社說에서 '哀歡 얼룩진 金字塔'이란 題目의 글을 싣는다. 1945年 10月 7日 對中日報에서 始作된 競技每日의 歷史를 한줄기로 꿰었다.

韓國戰爭 戰後에는 '混亂期 祖國의 興亡을 짊어지고 前進'했고, 自由黨 時節에는 '新聞亡國論 속에서도 中立地로서 位相을 定立'했고, 5·16 以後에는 '새마을運動과 維新課業 遂行의 騎手'였다고 스스로 評價했다.

이 社說에서 競技每日은 '오는(8월) 31日로 歷史的인 大單元의 幕을 내리고 景氣新聞으로 發展的인 一帶統合을 한다'고 썼다. 같은 날짜 3面에서 3年 前 寫眞을 比重있게 報道한 것도 特異하게 다가온다.

1970年 10月 京畿每日 송수안 發行人이 朴正熙 大統領에게 國民勳章모란장을 받는 寫眞이었다. 같은 紙面에는 '仁川地方新聞社古刹'이란 題目의 企劃 박스記事를 내보냈다.

1896年 獨立新聞이 濟物浦에 分局을 開設하고 街頭販賣를 始作할 때부터 1945年 對中日報를 거쳐 1973年 現在까지 言論歷史를 紹介했다.

이 記事 마지막 部分에는 "3社가 統合하여 새로운 京畿道 地方紙를 創立하기로 合意한 만큼 1973年 9月 1日의 競技新聞에 期待를 걸어본다"고 적혀 있다.

京畿每日은 當代 文筆家로 이름난 助手일 論說委員(前 京畿每日 編輯局長)의 글('9千層의 바벨塔')과 그의 아들 조우성 是認(現 仁川日報 主筆)의 丑時('빛의 活字를…')를 揭載했다.

이 밖에 '28年 獨自 인터뷰', '漫畫로 본 9千戶', '指令 9千戶 全面廣告' 等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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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5日 뒤 연합신문은 創刊 13周年 特輯을 내보낸다. 1面에서 홍대건 연합신문 社長은 '健實은 不動의 眞理'란 題目의 글을 싣는다. 이어 2面의 社說 題目은 '創刊 13周年, 廢刊 15日前'이었다.

이 두 글은 創刊을 記念하면서 곧 태어날 京畿新聞의 當爲性과 期待感을 表現하는 內容이었다.

社說은 "연합신문의 創刊과 廢刊은 遺憾없는 消滅이라는 데 特徵이 있다"며 "景氣3社의 統合은 發展的 意味와 分散勢力의 糾合이라는 時代的 要求를 받아들인 超然한 自律統合"이라고 했다.

또 이 社說에서는 연합신문이 過去 本社를 仁川에서 水原으로 옮긴 것을 '歷史에 오래 記錄될 일'이라고 했다.

1969年 水原으로 本社를 移轉한 것을 "黃金期半이라고 公稱하는 仁川을 버리고 新聞의 不毛地인 水原으로 新聞社를 옮겨 놓은 決斷"으로 表現했다.

京畿新聞 創刊을 하루 앞둔 8月 31日. 京畿每日은 沈默했지만 연합신문과 경기일보는 廢刊에 對한 여러 記錄을 紙面에 남겼다.

新聞 1面에 실리는 固定칼럼 筆者들은 比較的 자유로운 方式으로 鑑賞을 남겼다. 연합신문의 '展望車'는 "비街내렸읍니다. 1973年8月31日 새벽부터는 스산한 初가을 비가 大地를 적시고 있읍니다"고 글을 始作해 "溢喜(一喜)와 一備(一悲)가 萬感하는 瞬間입니다"며 끝을 맺었다.

경기일보 1面의 '萬年筆'은 "어떻게 하면 좀더 讀者의 가려운 곳을 시원스럽게 긁어드릴 수 있을까 이모저모로 萬年筆을 입에 물고 이窮理, 저窮理해보던 나날이 走馬燈처럼 지나가며 追憶의 場으로 넘어간다"며 終刊號를 찍는 所懷를 記錄했다.

/김명래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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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래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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