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年 4月 22日 이스프리 戰鬪에서 독일군이 英國, 프랑스軍을 向해 毒가스를 撒布했다. 毒가스 使用은 이미 國際協約으로 禁止되어 있었지만 戰爭이 熾烈해지자 獨逸軍이 誘惑을 이기지 못했다. 火가 난 聯合軍도 毒가스 使用 禁止를 풀었다. 이로부터 1次 世界大戰은 類例없는 化學武器의 實驗場이 됐다.
獨逸軍이 禁斷의 武器에 誘惑된 理由는 무슨 수를 쓰든 戰爭을 빨리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 모든 나라와 사람에게 有益하다는 論理였다. 이건 別로 創意的인 論理도 아니다. 機關銃부터 核武器까지 可恐할 殺人武器가 登場할 때 늘 이마에 붙이고 있던 名分이었다.
그러면 毒가스는 게임체인저가 됐을까? 아니다. 처음 毒가스를 噴射했을 때 獨逸軍은 數千 名의 聯合軍을 單숨에 殺傷하고 敗退시키는 成果를 얻었다. 그러나 이런 殺傷劇을 벌이고도 獨逸軍이 進擊한 距離는 10km가 되지 못했다.
聯合軍은 금세 解決策을 찾았고, 防毒面을 製作해 普及했다. 初期 防毒面은 只今 基準에서 보면 엉성했지만, 意外로 效果的이었다. 毒가스度 初步的인 水準이었기 때문이다. 毒가스는 兩側 兵士들을 至毒히 괴롭혔다. 수많은 兵士들에게 平生의 障礙와 後遺症을 남겼다. 그 뿐이었다. 戰爭을 더 慘酷하게 만들었을 뿐, 戰爭의 勝敗와는 無關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毒가스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없는 理由는 쉽게 알 수 있다. 于先 獨逸이나 聯合軍의 科學技術, 産業力은 엇비슷하다. 한쪽 製品이 더 優越할 수는 있지만 一方的인 優位는 아니다. 열쇠와 자물쇠처럼 攻擊用 武器를 만들 技術이 있다면 防毒面처럼 防禦用 裝備도 만들 수 있다. 飛行機가 武器로 使用되기 始作했을 때, 하늘에서 地上軍을 내려다보면서 攻擊할 수 있다는 事實에 어떤 이들은 幻想을 품었다. 제우스의 번개 같은 絶對兵器가 登場했다는 것. 아니었다. 對空砲와 對空미사일이 그 꿈을 꺾었다. 더 致命的인 對抗馬는 相對의 航空機였다.
왜 人間은 絶對武器에 對한 幻覺을 버리지 못할까? 經營에서 政治에서 人生에서도 그렇다. 이것만 되면 萬事 오케이라는 한 房의 誘惑에 執着하면 얻는 것은 카운터펀치뿐이다.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