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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디지털아카이브
고바우가 바라 본 世上

“時事漫畫는 假想의 世界다.
이에 對한 抗議는 社會的 雅量의 不足을 드러내는 것이다.
諷刺가 없는 漫畫는 讀者가 먼저 容恕하지 않는다”
(동아일보 2003年 9月 5日子, 김성환-이홍우 畫伯 對談에서)

1955年 1月 30日子 동아일보 社會面에 고바우가 걸어가는 모습과 함께 “김성환 連載 漫畫 ‘고바우 令監’ 2月 1日부터 揭載”라는 알림이 실렸다. ‘고바우 令監’의 東亞日報 첫 登場이었다. 以後 ‘고바우 令監’은 1980年까지 25年間 總 7,971回 동아일보에 連載됐다.

<고바우가 바라 본 世上> 컬렉션은 동아일보가 所藏하고 있는 金 畫伯의 ‘고바우 令監’ 원貨 4,000餘點 中 選別해 紹介한다. 1963年 金 畫伯이 政治査察과 身柄上의 理由로 約 8個月間 休載期間을 가진 後 다시 連載하기 始作한 1964年부터 1980年까지의 作品이다.

컬렉션은 1960年, 1970年代 大韓民國 現代史를 網羅하고 있다. 6·3示威, 韓日協定, 10月 維新, 10·26事態 等 激動期의 政治的 事件과 6·25戰爭의 廢墟 속에서 軍事政權 主導下에 始作한 經濟開發計劃과 高度成長期를 背景으로 그 時代의 世態에 對한 諷刺와 社會的 不條理에 對한 批判, 時代的 苦悶을 읽을 수 있다.

歷史의 激浪에서 世上과 呼吸하기 위해 끊임없이 苦悶한 ‘고바우 令監’. 그 속에서 우리는 앞선 時代의 삶을 共有하며 그와 반갑게 握手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고바우 漫畫 沿革
  • 1950 士兵漫畫에 첫 發表
  • 1955 동아일보 連載 (7,971回까지)
  • 1957 고바우 令監 1000回
  • 1958 映畫 ‘고바우’ 製作 上映 (趙正鎬 監督)
  • 1970 고바우 令監 5000回
  • 1980 조선일보에 連載 (11,700回까지)
  • 1992 문화일보에 連載 (14,139回까지)
  • 2000 고바우 誕生 50周年 記念郵票 發行
  • 2001 ‘고바우 漫畫賞’ 制定
  • 2001 韓國기네스북 最長壽 連載漫畵 登載
  • 2013 登錄文化財 第538號 指定
김성환 畫伯은

1949年 17歲 때 <연합신문>에 時事漫畫 ‘멍텅구리’를 連載하면서
新聞漫畫家로 데뷔했다.
1955年 동아일보에 네 컷 時事漫畫 ‘고바우 令監’을 連載하기 始作했다.
主人公 이름은 고바우. ‘높을 고(高)’ 性(姓)에 우리 民族性을 살린 구수한
體臭와 剛直한 性格을 나타내기 위해 바위(巖)란 이름을 붙였다.

김성환 畫伯

1932 ~ 2019

1932年 黃海道 開城에서 태어났다. 滿洲에서 小學校를 다녔고 解放 뒤 서울로 移住해 경복중學校(現 경복고)를 다녔다. 어려서부터 美術을 좋아했고 素質이 있었다.

1949年 17歲 때 <연합신문>에 時事漫畫 ‘멍텅구리’를 連載하면서 新聞漫畫家로 데뷔했다. 1955年 동아일보에 네 컷 時事漫畫 ‘고바우 令監’을 連載하기 始作했다. 主人公 이름은 고바우. ‘높을 고(高)’ 性(姓)에 우리 民族性을 살린 구수한 體臭와 剛直한 性格을 나타내기 위해 바위(巖)란 이름을 붙였다. 키가 작고, 한 가닥 머리카락에 작은 眼鏡을 걸친 고바우 캐릭터는 6·25戰爭이 勃發한 1950年 北韓軍을 避해 숨어 지내던 서울의 한 다락房에서 誕生했다.

‘고바우 令監’ 네 컷 漫畫는 大韓民國 現代史를 담고, 權力을 向한 寸鐵殺人과 世態 諷刺, 庶民들의 哀歡을 담아냈다. 1980年 8月 9日까지 總 7,971回를 동아일보에 連載했다. 以後 조선일보를 거쳐 2000年 문화일보에서 1萬4,139回를 끝으로 45年間의 連載를 마쳤다. 單一 漫畫로는 우리나라 最長壽 時事漫畫로 2001年 韓國기네스북에 登載됐다. 2013年에는 ‘고바우 令監 원貨’가 學術的 價値를 인정받아 近代漫畫 最初로 文化財廳이 指定한 登錄文化財 第538號로 指定됐다.

‘고바우 令監’은 讀者들로부터 歡迎과 讚辭를 받은 反面 當局의 눈총을 받아 여러 次例 筆禍事件을 겪었다. 1958年 1月 23日子에 揭載된 ‘景武臺의 便所 치우는 人夫’篇에서 金 畫伯은 景武臺를 侮辱하고 虛僞事實을 揭載했다는 理由로 卽審에서 罰金刑을 받았다. 國內 時事漫畫家 最初로 司法 處理된 事例로 남아 있다.

金 畫伯은 時事漫畫를 그리면서 東洋畫와 風俗畫 等 꾸준히 繪畫 作業을 해왔다. 1961年 첫 西洋化展 以後 14番의 個人展과 그 外 記念展과 招待展에 多數 參與했다.

東亞大上(1971), 서울言論人클럽 新聞文化相(1988), 言論學會 言論賞(1990), 寶冠文化勳章(2002) 等을 받았고, 2001年 金 畫伯이 出演한 基金으로 ‘고바우 漫畫賞’을 制定하기도 했다. 2014年 社會福祉共同募金會 ‘올해의 寄附王’ 大賞을 받았다. 2019年 9月 8日 87歲로 他界, 國立大前賢充員에 安葬됐다.

主要 略歷

1932 黃海道 開城 出生 1949 연합신문에 時事漫畫 <멍텅구리>로 데뷔 1955 동아일보에 <고바우 영감=""> 連載 始作 1957 現代漫畫家協會 會長 1961 첫 西洋化展 1987 <고바우 영감=""> 1萬回 記念展 1998 (寺)韓國漫畫家協會 顧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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